오랫만에 고향에 갔다가 옛 추억을 더듬으면서 돌아봣니더 !!........
이 건물은 진사(進士) 이민적(李敏迪1702~1763)이 학문을 닦기위해 마련한 정자이다,
순조때 용눌재 이한오가 노모를 모시고 거처하기도 하였다,
정자앞에 위치한 삼신선(三神仙)을 상징하는 3개의 인공연못이 정자와 잘 어울린다.
예안이씨(禮安李氏) 7세손 이훈(李薰)의 종택으로 조선중종(中宗)20년(1525) 무렵에 세워젔다,
그는 연산군(燕山君)10년(1504) 생원시(生員試)에 급제하였으나 기묘사화(己卯士禍1519)의 참혹함을
보고나서 벼슬의 뜻을버리고 낙향하여 이 집을짖고 살았다고 합니다.
예안이씨 16세손 근제공의 둘째아들 풍은(豊隱) 이홍인(李洪仁)의 종택입니다.
이 건물은 조선 성종(成宗)때 양소당(養素堂) 김영수(金永銖1446~1502)가 지었다고 한다,
김영수는 자(字)가 적옹(積翁), 호는 양소당이고 태사 김선평의 후손으로 사헌부 장령을 역임하였으며
안동김씨 소산입향조 비안공의 손자이다.
지래예술촌 건물은 임하댐 건설로 수몰될 의성 김씨지촌(芝村) 김방걸(金邦杰) 선생(1623~1695)의 종택과
서당, 제청등 3점을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로 지정받아 이를 지례마을 뒷산에 옮겨 지은후 다시 이를
문화부로부터 예술창작 마을로 지정받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용계의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175호(1966.01.13지정)인 노거수 이다.
용계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7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37m, 둘레 14.5m입니다. 원래는 용계초등학교 운동장에
있었으나 임하댐의 건설로 물에 잠길 위치에 있어, 15m의 높이로 흙을 쌓아 지금의 위치에 옮겨 심은 것이라고 ~~
화악정(花鄂亭)은 예천임씨 금양입향조 야은공의 종손으로 조선 현종때 유현(儒賢)인 야와 세명(世明),
농와 근명(謹明), 석와 순명(順明) 삼형제를 위하여 1972년 후손들이 건립 하였다고 합니다,(임하면 금소리)
모하정(募河亭) 은 에천임씨 시조 서하(西河) 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정자라고 합니다.
仙夢臺(선몽대)는 퇴계 이황의 종손이며 문하생인 遇巖 李閱道 (우암 이열도 1538∼1591) 公이 1563년 창건한 정자로서
“선몽대”의 대호 세글자는 퇴계 선생의 친필로 알려져 있으며,
정자 내에는 당대의 석학인 退溪 李滉(1501~1570), 藥圃 鄭琢(1526~1605), 西厓 柳成龍(1542∼1607)),
淸陰 金尙憲(1570∼1652), 漢陰 李德馨(1561~1613), 鶴峰 金誠一(1538~1593), 監司公 丁士優(등의 친필시가
목판에 새겨져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는 곳으로 선인들의 유교적 전통공간으로서 역사적 의미가 큰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