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에 서서
정 의 홍
한줄기 고요한
기쁨인 줄 알았는데
강은
가슴 밑바닥까지 훑어 내는
아린 상처 같은 슬픔
종일토록 강을
바라보는 물새는
작은 몸 안에
바다로 흘러 다 채우고 남을 만큼
모든 흐르는 것이 지닌
끝 모를 지독한 허무 모두 숨기고
얼마나 많은 저를
강물에 떠내려 보냈을까
강가에 서면
벌써 저만치 사라져가는
내가 있는데
내 섰던 자리
또 다른 내가 물새처럼 아직
그 자리에 남아 있고
시집 『홀로가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하였을』에서
강물은 곁에서 볼 때 늘 같은 것 같지만 한번 지나간 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늘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는 물새는 끝 모를 허무를 담은 모습으로 강물을 바라본다. 나도 강물을 바라본다.
시간도 강물처럼 흘러가는데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내가 아니다. 과거의 나는 이미 흘러 가버리고 현재의 나는 이 자리에 서있지만 이 또한 영속적(永續的)인 것이 아니다.
강가에 서서 흘러가는 물을 관조(觀照)하여 얻은 좋은 시이다.
이 시를 쓴 정의홍시인은 1956년 강원도 강릉 출생이고 서울 의대를 졸업한 후 현재 중계동에서 안과의원을 하고 있다. 나는 개업 기념으로 시집을 환자에게 나누어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인에게 요청하여 시집을 얻어왔다.( 벼룩의 간을 빼먹은 것과 같다) 가끔 꺼내어 읽어보면서 어떻게 이처럼 좋은 시를 63편이나 써서 시집을 펴낼 수 있을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 같은 이름의 다른 정의홍시인이 계셨는데 1944년 5월 17일생으로 휘문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을 하시다가 대전대학교 국문학 교수로 재직중 교통사고로 사망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