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글과 인연. 214
[문단 20년, 글은 곧 등대]
여러 날 사촌 집에 있으면서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먹고 자고, 그리고 조카의 컴퓨터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그 때 인터넷 카페가 활성화되기 시작할 무렵이었으며, 나 역
시 몇 곳의 카페에 가입하고, 카페에 올라오는 글과 음악 등을 대하면서 인터넷에 적응하기 시
작했다.
카페의 글을 대하면서 학창시절을 기억했다. 당시 연천에는 도서관이 군민도서관 하나뿐이었는
데, 나는 일 주일에 두 권의 책을 빌려서 등하교 시간 30리 산길을 걸으며 책을 읽었고, 시간의
틈만 있으면 책을 손에 들고 있었다는 것과, 30대에 작은 글이지만 신문의 ‘독자의 소리’에 실렸
던 경험도 있었고, 또한 마음의 여유를 찾으면서 시작한 것이 카페에 시의 흉내를 내는 글을 조금
씩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정도 마음이 안정되니 그렇게 사촌의 집에 얹혀 지낸다는 것이 부담이 되기 시작했고, 그래
서 시작하게 된 것이 일용직 노동일이었다. 하긴 무슨 재주나 기술이 없었으니 몸으로 버는 방법
밖에 없었고, 당시 태백에는 스키장 공사와 고한의 강원랜드 주변에 콘도 공사뿐 아니라 여러 건
축공사가 있어서 나같이 노동의 경험이 없는 사람도 일을 시작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지금도 그
지역을 지나가게 되면 그 건물을 보면서 추억을 되새기기도 하는데,
직업소개소를 통해 일을 하게 되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가 ‘직영잡부’ 와 일용잡부‘라는 말인데, 어
느 한 곳에 큰 공사가 시작되면 그 회사에서 그 지역의 일꾼을 구하게 되는데, 그렇게 일하는 일꾼 중
에 적당한 사람을 선택해서 그 현장 공사가 끝날 때까지 출퇴근 하는 사람이 ’직영잡부‘ 이고, 매일 사
무소에 들러 그날그날 현장을 지정받는 사람을 ’일용잡부‘라고 부르는데, 그 일용잡부들이 자신을 가
리켜 ’개잡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말의 뜻은 독자들이 판단하시면 될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노동을 하면서 남는 시간을 피시방이나 조카의 컴퓨터를 이용해 글을 읽고 쓰고 하는
일로 어느 정도 적응하던 중, 어느 카페의 리더에게서 문자가 왔다. ‘혹 등단에 관심 없느냐? 등단에 관
심이 있다면 자신이 나를 추천하고 싶다.’는 글이었고, 당시까지 등단이라는 것이 문외한이었던 나는
그때부터 문단이라는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는 모 월간문학지에서 나름의 위치에 있던 시인이었고, 그의 도움으로 월간지 추천 등단이라는 방식
으로 문단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게 있어 문학이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을 할 것이다. “내게 문학이란 곧 등대이다.” 그 이후 문학은 내 삶을 이끄는 동기가 되었
고, 아직까지 문단에서 벗어나지 않고, 삶의 중심에 존재하며 내 삶을 이끌어 주고 있는 동력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고맙게도 태백의 일용직 노동자 생활의 경험은 ‘개잡부’라는 장편 소설의 소재를 얻게 되는 기회가 되기도
했고.(그 소설은 집으로 돌아와 1년 정도의 시간을 들여 썼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면 참 부끄럽고, 내용이
부실해서 기회가 된다면 다시 정리할 생각이다.) 그리고 그때 꾸준하게 쓴 시가 바로 연작시 ‘신작로에서’
인데, 그래서 그런지 그 시들을 보면 시가 무겁고 어둡고 부정적인 내용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