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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균열의 시작
늦은 밤, 거실의 불은 꺼져 있었지만 민준 씨의 마음은 환하게 깨어 있었다. 거친 숨을 고르며 잠든 아내와 두 아이의 평화로운 얼굴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 표정은 더없이 사랑스러웠지만,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과 한없는 미안함으로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며칠 전 받은 권고사직 통보는 단순히 직장에서의 해고 통보가 아니었다.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맞닥뜨린 그 청천벽력 같은 소식은, 그간 그를 지탱해오던 삶의 많은 부분을 한순간에 허물어뜨리는 거대한 해일과도 같았다. 퇴직금으로 얼마간은 버틸 수 있겠지만, 언제까지일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쌓여가는 고지서들은 벽지 속 거친 콘크리트처럼 그의 어깨를 서서히, 그리고 끈질기게 짓눌러 왔다.
민준 씨는 30년 가까이 한 교회를 섬겨온 장로였다. 그의 삶은 늘 교회와 함께였다. 서리집사 시절부터 새벽 예배를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고, 주일이면 늘 가장 먼저 교회에 도착해 예배당 문을 열었다. 찬양대의 맨 앞자리는 늘 그의 몫이었고, 교회의 크고 작은 행사에는 언제나 그의 땀과 열정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는 봉사란 이름 아래 그의 주말을 아낌없이 교회 일로 가득 채웠다. 연말이면 어려운 이웃 돕기 행사에도 늘 앞장섰고, 교회의 주요 의사결정에도 깊이 관여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했다고 자부했다. 그에게 교회는 단순한 종교 시설이 아닌, 삶의 중심이자 전부였다.
그의 신앙은 '이만큼 열심히 했으니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 위에 세워져 있었다. '심은 대로 거두리라'는 말씀은 그에게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의미했고,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는 기도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절대적인 확신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믿었다. 고난은 잠시일 뿐, 더 큰 축복을 위한 통과 의례이며, 믿음을 굳건히 하면 모든 역경은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간증의 도구가 될 것이라고. 그러나 지금, 그의 현실은 냉혹했고 참혹했다. 실직 이후, 그는 새벽 기도는커녕 밤잠조차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믿음의 동역자들이 따뜻한 위로 대신 건넨 "기도하세요, 형제님. 분명 하나님께서 더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실 거예요. 우리가 힘써서 헌금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지경을 넓혀주시는 길이랍니다!" 같은 말들은, 오히려 그를 외딴섬에 고립시키는 듯했다.
그들에게 민준 씨의 실직은 그저 '개인의 역경'일 뿐, 함께 짊어져야 할 '공동체의 짐'으로는 여겨지지 않는 듯 보였다. 심지어 몇몇 집사들은 그의 실직이 그의 '믿음 부족'이나 '기도 부족' 때문이라고 은연중에 비난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지난 주일, 담임 목사님의 설교는 민준 씨의 마음에 깊은 균열을 만들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교회가 이 지역 사회의 등대가 되기 위해서는 더 큰 빛이 필요합니다. 곧 시작될 교육관 증축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거룩한 사명이요, 우리의 신앙과 교회의 위상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입니다! 우리 모두 기쁨으로 동참하여,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읍시다!" 환호성과 '아멘' 소리가 강당을 가득 메웠지만, 헌금 봉투를 든 민준 씨의 손은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지금 이 순간, 당장 한 달치 관리비도 버거운 상황이었다. 그의 머릿속은 '생활비는? 아이들 학원비는? 아내에게는 언제쯤 말해야 하나?'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교회는 '위상', '사명', '풍성한 열매'를 외치며 헌금을 독려했다.
이 단어들은 왜 이리도 공허하게 울리는 걸까? '하나님은 정말 당신의 성전을 크게 짓는 일에만 관심 있으실까? 그 안에서 고통받는 성도의 텅 빈 지갑과 찢어진 마음에 대해서는 침묵하실까?'라는 못된 의문이 그의 마음을 잠식했다.
그는 문득 성경 속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떠올렸다. 강도 만난 자를 보고 제사장과 레위인은 바쁜 일정이나 율법적 규례, 또는 자기의 정결함을 지키기 위해 피하여 지나갔다. 당시 그들에게는 시체나 피를 만지면 부정해진다는 율법적 규례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율법의 '정신'보다 '행위'를 통해 사랑을 실천한 사마리아인을 칭찬하셨다. 그렇다면 지금 교회는 어떠한가? '사랑 나눔'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밖으로는 지역 사회를 돕는다고 하지만, 정작 교회가 돌봐야 할 가장 가까운 곳의 '강도 만난 자'인 자신에게는 누구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 듯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랑을 나누는 주체"라고 생각했지, 그들 중 누구도 "사랑을 받아야 할 대상"이 교회 안에 있을 거라고 상상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민준 씨는 누구보다 교회를 사랑했고, 교회의 성장을 자신의 자랑으로 여겼다. 그러나 지금의 교회는 그를 점점 밀어내는 것 같았다. 그의 신앙은 특정 건물이나 단체의 규모, 혹은 목사님의 열정적인 설교에 맞춰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그의 마음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개인의 고통은 언제나 '더 큰 그림' 앞에서 축소되고 간과되기 일쑤였다. 교회는 그를 든든한 장로이자 신앙의 모범으로 여겼지만, '실직한 가장'으로서의 그의 외침에는 침묵했다. 그 침묵은 그 어떤 비난보다 날카롭게 그의 마음을 찔렀다.
깊은 밤, 잠 못 이루던 민준 씨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다음 주일, 장로 김민준 씨가 앉아 있던 예배당 맨 앞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그는 더 이상 그곳에 앉아 형식적인 '아멘'을 외칠 수 없었다. 거대한 건물 안에 갇힌 채 '우상'처럼 변질되어가는 교회의 시스템을 떠나, 그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했다. 그의 발걸음은 불안했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해방감을 동반하고 있었다.
2부: 새로운 에클레시아를 찾아서
교회를 떠난 지 한 달. 민준 씨의 일상은 예상보다 혼란스러웠다. 매주 채워지던 주일 아침의 공백은 그에게 익숙함이 사라진 허전함을 안겨주었다. 주변 지인들의 눈총과 걱정 어린 시선은 그를 더욱 위축시켰다. "장로님이 교회를 쉬다니,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믿음이 약해진 게 아닌가?" 웅성거리는 소리들이 들리는 듯했다. 아내는 그의 변화를 불안하게 지켜보았고, 아이들은 아빠의 표정이 예전 같지 않음을 눈치챘다. 사회생활의 붕괴에 이어, 신앙생활의 붕괴까지 겪는 듯한 이중고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붕괴 속에서 민준 씨는 진정한 자기 자신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는 옷장 깊숙이 넣어두었던 낡은 성경책을 꺼내 들었다. 아버지가 손때 묻은 표지를 넘기며 읽어주시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아련했다. 교회 강단에서 수없이 들어온 복잡한 교리나 신학적인 설교 대신, 그는 오직 말씀 자체에 집중했다. 이전에는 '구원', '축복', '심판' 같은 거대하고 교리적인 틀 안에서만 성경을 해석하려 애썼지만, 이제는 마음속 한 조각도 허황된 것 없이 오롯이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찾았다.
그는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다시 읽어나갔다. 예수님은 궁궐 같은 건물이나 화려한 제단 대신, 길 위에서 사람들을 만나셨다. 배고픈 자에게 떡을 먹이시고, 아픈 자를 치유하셨으며, 세리나 창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셨다. 부자들에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고 가르치셨지, "성전을 크게 짓기 위해 더 많은 헌금을 하라"고 종용한 적은 없었다.
민준 씨는 성경에서 '교회'라는 단어가 단순히 '건물'을 의미하지 않고,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 즉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초기 교회 신도들은 자신의 소유를 팔아 가진 것을 서로 나누어, 그들 중에 부족한 자가 없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었다. 그들은 '교회의 이름으로 베푸는 행사'가 아닌, '서로를 보살피는 삶' 그 자체가 신앙이었던 것이다.
민준 씨의 마음속에 강렬한 빛이 스며들었다. 그간 교회의 시스템 안에서 '장로 김민준'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오면서 무의식적으로 지켜왔던 '불법적인 불순종'들을 깨달았다. 교회의 재정 투명성에 대한 의문을 애써 외면하고, '더 큰 복을 받기 위해' 맹목적으로 건축 헌금을 독려했던 자신의 모습, 그리고 자신 역시 '믿음이 좋은 자'와 '믿음이 약한 자'를 은연중에 나누었던 오만함까지. 그는 회개했다. 그것은 목사님 앞에서 고백하는 형식이 아니라, 홀로 성경을 펴들고 주님 앞에 무릎 꿇는 진정한 회개였다.
텅 빈 의자를 벗어난 민준 씨의 삶은, 새로운 에클레시아를 향한 발걸음이 되었다. 그는 더 이상 교회 건물에 묶이지 않았다. 그의 집은 때로는 예배당이 되었고, 공원의 벤치는 고독한 기도의 자리가 되었다. 아내에게 드디어 실직 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아내는 예상과 달리 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당신이 너무 힘들어 보여서 나도 마음이 아팠어요. 우리 같이 버텨봐요." 그 따뜻한 위로야말로 그가 그토록 교회에서 갈구하던 '사랑 나눔'의 본질임을 깨달았다.
민준 씨는 실직 후 자존감이 떨어져 한동안 피했던 취미였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들, 즉 '참된 신앙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본심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웹소설로 풀어내기로 했다. 주인공은 삶의 역경 속에서 전통적인 종교의 틀을 벗어나 진정한 사랑과 공동체의 의미를 찾아가는 인물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특정 종교에 얽매이지 않고도, 삶의 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공감과 위로를 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작은 모습으로 자신을 돌보고, 사랑하는 가족의 손을 잡고 오늘을 살아가는 것. 그리고 작은 실천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 이 모든 것이 그의 새로운 신앙생활이었다. 웹소설 공모전 마감일을 앞두고 밤늦게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그의 얼굴엔 이전의 불안 대신 옅은 미소가 번져 있었다.
이제 그의 신앙은 그가 머물던 큰 건물을 벗어나, 그의 삶 속으로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걸어 들어온 것이다. 그 안에서 그는 자신이 강도 만난 자가 아닌, 작은 용기로 다시 일어선 '선한 사마리아인'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작은 이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웹소설 한 편이 그가 찾던 '새로운 에클레시아'의 시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의 삶은 이제 텅 빈 의자가 아닌, 새로운 말씀으로 채워진 하나의 공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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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씨 색깔때문에 다크모드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네요
그러신가요? 죄송합니다
불편하시더라도 드래그 전체선택 하시면 좀 보일듯 하고요
모바일이라시면 전체 복사 하셔서 메모장 혹은 개인 밴드나 블로그에 옮겨보시는 방법이 있는데 귀찮죠 ㅎ
글씨 색은 하얀 바탕에 검은색인데 안보이시는군요? ^^
다크모드 임시 해재 하시면 될듯 싶습니다만 ㅎ
찬물끼얹어서 죄송합니다, 웹소설 분야에서는 이런 주제는 전혀 통하지 않을것 같아요 ㅎㅎ;;;거기는 판타지, 로맨스 아니면 어디서도 불러주지 않는판....
하지만 별개로,
내용은 좋네요.
공감두 되구요 ^^;;;
건물 교회의 외적인 성장보다, 강도 만난자들에 대한 사랑이 더 중요한데.
강도 만난자들은 소외되거나...
불편함을 유발하거나...
교회를 떠날수밖에 없는 씁쓸한 현실...^^;
신앙적으로는...
더 신앙이 깊어지고 예수님과 가까워지는 시간이 된다는거...
전혀 아무렇지 않습니다 ^^
너무 딱딱해서 소설 형식으로 시도한 것이니 상관 없어요
편안하게 생각 할 거리 동기 부여가 목적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