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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밥그릇은 지금의 세 배 크기이다. 당시에는 점심을 먹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도 요즘 사람보다 두 배 이상 밥을 많이 먹었다는 뜻인데, 불과 몇 백년 전만 해도 우리는 이렇게 밥을 많이 먹었다. 그런데 지금은 서구 식생활의 영향으로 밥그릇도 작아지고 일인당 소비하는 쌀의 양도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밥을 많이 먹고 반찬을 조금 먹는 식생활이 아니라 밥과 반찬의 양이 비슷한 병식(竝式) 식생활을 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외국 사람이 쌀과 밀가루를 비교분석한 글을 본 적이 있다. 대충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밀가루의 영양가는 쌀의 절반밖에 안 된다. 더욱이 빵은 밀가루 덩어리가 아니라 부풀린 풍선 같은 것이니 밥과 비교하면 영양가는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빵을 먹을 때는 반드시 고기와 함께 먹어야 한다. 쌀을 먹는 민족은 쌀의 영양이 충분하기 때문에 주식(主食)으로 삼는 반면 서양에는 따로 주식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또한 쌀을 먹는 식생활은 환경친화적이다. 논 한 평에서 나는 쌀로 열 명이 먹을 수 있다고 가정하면, 같은 수의 사람이 빵과 고기를 먹기 위해선 한 평의 밀밭과 열 평의 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돈은 많이 들지 않으면서 누구나 따를 수 있으면서 효과도 뛰어난 건강법을 찾고 있던 나는 밥의 중요성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가장 소중하면서도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밥. 그러나 밥을 바르게 먹어야만 건강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글쓰기의 편의를 위해서 그 동안 연구해온 내용을 문답형식으로 정리한다.
먹는 행위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체는 소우주"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동양에서 사람을 정의할 때 흔히 인용되는데, 우주의 광대무변한 기운과 사람의 기운은 크기만 다를 뿐 내용은 같다는 말이다. 천지사방 곧 공간[宇]과, 옛날부터 지금까지 곧 시간[宙]의 개념을 아우르는 우주는 다른 말로 하늘과 땅[天地]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하늘과 땅의 기운이 합하여 사람이 되었다"는 말은 아버지[陽]와 어머니[陰]가 결합하여 자식을 낳았다는 생물학적 표현일 뿐만 아니라, 사람의 의무와 권리도 함께 드러낸 말이다. 하늘은 공기, 땅은 먹을거리이니 숨 잘 쉬고 밥 잘 먹는 것이 인간의 의무이고 일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하나의 우주처럼 당당하게 사는 것은 인간의 권리이다. 결국 먹는 일은 사람이 우주처럼 살기 위해 행하는 일이니, "사람 몸과 먹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신토불이(身土不二)의 정신과도 같은 의미이다.
왜 밥의 재료는 일년생 식물의 씨앗인가
농사를 지어보면 알겠지만 쌀, 보리, 콩, 밀을 거두어들이기 위해선 꼬박 일 년이 필요하다. 수박이나 시금치처럼 한두 달만 고생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봄·여름·가을·겨울 내내 땀을 흘려야만 결실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은 어느 계절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조화로운 성질을 갖고 있다. 병에 걸린 사람이나 건강한 사람, 남녀노소 누가 먹어도 질리지 않고 부작용이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들이 모두 씨앗이라는 점이다. 씨앗 속에는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식물 전체의 생명 기운이 들어있다. 그래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좋은 먹을거리가 될 수 있어서, 불로불사( 不老不死)의 약효를 자랑하는 먹을거리 중에는 씨앗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쌀이 밥의 기본이 된 이유
인도 지방이 원산지인 쌀은 남쪽부터 재배가 시작되어 신라가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북쪽까지 전해졌다. 다른 작물에 비해 늦게 우리 땅에 들어온 쌀이 다른 곡류를 이기고 밥의 주원료가 된 데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우리 나라 땅과 기후가 쌀의 재배에 가장 적합하다는 점이다. 쌀의 일생은 봄에 태어나서 [春生], 여름에 자라고 [夏長], 가을에 거둬들여 [秋收], 겨울에 저장하는[冬藏] 사계절의 흐름과 완전히 일치한다. 한참 자랄 때 필요한 뜨거운 열기와 충분한 물은 우리 나라 여름의 특징이기도 하다. 또 하나는 쌀이 사람 몸에 가장 좋다는 점이다. 건강한 사람은 머리가 차고 배는 따뜻하다. 그러므로 뱃속으로 들어가는 음식도 따뜻한 것이 좋은데, 더운 나라가 고향이고 여름을 좋아하는 쌀은 그 성질이 따뜻하다. 또 논에 물을 대주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쌀은 물은 많이 먹는다. 그래서 70퍼센트가 수분으로 되어있는 우리 몸에 촉촉함을 더할 수 있으니 콩, 조, 보리, 밀은 아무리 요리를 잘해도 쌀밥의 윤기를 낼 수 없다.
아침을 굶을 것인가, 왕처럼 먹을 것인가
일본의 서(西)의학에서 주장하는 조식폐지를 믿고 아침을 굶는 사람이 많다. 아침은 배설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안 먹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이유인데, 밥을 먹는 목적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밥을 먹는 것은 기운을 내기 위한 것이고 기운은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낮에 일하고 밤에 자는 것이 우리 몸의 리듬이니 당연히 아침은 왕처럼 잘 먹고 저녁은 거지처럼 간단히 먹는 것이 좋다. 간혹 아침에 입맛이 없어서 안 먹는다는 사람도 있는데 저녁을 거지처럼 먹으면 밥맛이 돌아온다. 인도 의학의 영향을 받아 낮에 인체 기능이 최고조로 활성화되기 때문에 점심을 잘 먹어야 한다는 이론도 있다. 기록에 나와 있는 것을 보면 점심은 영·정조 때 처음 먹기 시작했는데, 그야말로 마음에 점찍듯이 가볍게 먹고 겨울에는 그것마저도 먹지 않았다.
얼마만큼의 양을 먹어야 하나
옛사람의 건강법을 찾기 위해 의방유취와 동의보감 해석본 약 삼 천 쪽을 통독한 적이 있다. 그 결론은 '소식(小食)'과 '일을 적게 하는 것'이었는데 여기서 말하는 소식은 7부 식사법이라 하여 위장의 70퍼센트 정도만 채우는 식사를 말한다. 이는 현대 의학에서 말하는 장수의 비결과도 같은데 (참고,{125세까지 걱정 말고 살아라 - 생로병사의 비밀}, KBS문화사업단) 성장기에 있는 어린이와 청년, 그리고 일꾼들은 꼭 이 기준에 맞출 필요 없이 과식을 하지 않는다는 것만 원칙으로 삼아도 되겠다. 뇌에서 만복감을 느끼는데 30분 정도 시간이 걸리므로 빨리 먹으면 과식하는 경우가 많다.
쌀의 효능과 특성
한의학에서는 우리 몸이 정(精), 기(氣), 신(神)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이 중 정신 작용인 신(神)을 빼고 정(精)과 기(氣)에는 모두 쌀미(米) 자가 들어 있으니 쌀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 지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옛날 책에서도 기를 늘리며 속을 덥게 하며 위장기능을 좋게 하여 살찌게 하고 내장을 보하고 근육과 뼈를 튼튼하게 하며 장과 위에 이익이 되고 귀가 밝아지고 눈이 맑아지며 혈맥을 통하게 하고 오장 기운을 고르게 하여 안색이 좋아진다고 하였으니 쌀은 그야말로 만병통치약이다.
쌀은 크게 멥쌀과 찹쌀로 나누어진다. 멥쌀은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의 재료로써 앞서 기록한 약효를 가지고 있다. 쌀뜨물도 버릴 수 없는 좋은 약이니 약을 잘못 먹어 가슴이 답답하고 정신이 혼미할 때 마시면 좋다. 쌀겨기름, 곧 미강유는 쌀의 윤기를 모은 엑기스로서 건조한 것을 촉촉하게 해주는 명약이다. 피부가 건조하여 가려운 노인들의 소양증과 대머리에 하루 서너 번씩 발라준다. 옛날 한복에 풀을 먹일 때 쌀풀을 쓴 이유도 짐작할 수 있는데 진물이 흐르지 않는 건조한 아토피 피부염에 미강유를 바르면 증상이 개선된다.
찹쌀은 멥쌀보다 찰기가 더한 쌀로, 현대 과학으로 분석한 결과 화학적 성질에는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옛 어른들은 그 찰기로 인해 많이 먹으면 좋지 않다고 했는데 '오래 먹으면 모든 경락의 기가 막히고 사지가 자유롭지 못하다', '풍기를 발하고', '잠을 많이 자게 한다'고 한다. 이 세 가지 표현은 모두 살이 쪄서 몸이 둔하게 된다는 뜻이니 찹쌀을 밥에 넣어 먹어야 할 사람은 다음과 같다. 첫째, 마른 사람이다. 둘째, 산후에 젖이 안 나올떄 좋다. 이때 된장국과 달걀을 함께 먹으면 더 좋은데 사나흘만 계속하면 젖이 나온다. 셋째, 위나 십이지궤양 환자이다. 궤양을 앓고 있는 사람의 비쩍 마른 몸으로 알 수 있듯이 궤양은 조(燥)한 병이다. 찹쌀떡을 만들어 계속 먹으면 살이 찌면서 좋아진다. 이 방법으로 고친 사람이 무척 많다. 넷째, 불면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다. 다섯째, 물 같은 똥이 나올 때 찹쌀을 먹으면 쫀득쫀득한 똥으로 변하니 살짝 볶아서 사용하면 더 효과적이다. 여섯째, 노인이다. 나이 들면 대개 몸이 마르면서 건조해진다. 이런 경우 찹쌀을 먹으면 몸이 촉촉해진다. 옛날 어떤 효자가 찹쌀로 엿을 고아 부모님을 봉양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책에서도 노인들의 해수 기침과 잦은 소변에 좋다고 했으니 오줌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사람은 찹쌀떡을 한 달 동안 매일 저녁 먹어보기 바란다. 저녁에 잠이 들면 아침에 눈을 뜨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보리의 효능과 특성
함경도에서는 보리를 봄에 파종하지만 날씨가 온화한 남쪽 지방에서는 가을에 파종하여 이듬해 봄에 수확한다. 이것은 보리의 기운이 차다는 것을 말해준다. 얼음이 귀했던 시절에는 보리로 얼음찜질을 대신했을 정도인데, 생보리를 주머니에 담아 머리 위에 올려두면 열이 떨어진다. 또 보리는 씹어보면 미끌미끌하다. 그래서 막혀있는 기운을 매끄럽게 소통시켜주는 힘이 있는데, 차가운 음적(陰的) 기운과 합치면 주로 내리는 작용을 한다. 이 두 가지 큰 특징을 알고 있으면 어떤 경우 보리밥을 먹어야 하는가 감을 잡을 수 있다. 첫째, 여름에 더위 탈 때 보리밥이 좋다. 둘째, 입이 마른 증상, 즉 소갈병이 있을 때다. 소갈병은 요즘의 당뇨병과 같은데 열(熱)로 인해 발생한다. 셋째, 양기(陽氣)가 너무 세서 하룻밤에도 부인을 여러 번 괴롭히는(?) 사람과 욕정을 참지 못하는 사춘기 남학생에게 좋다. 같은 이유로 한 달에 한 번도 부인 곁에 가지 못하는 사람은 보리밥을 먹지 말아야 한다.
노인의 경우에는 다리 힘이 약해지면서 수명이 단축된다. 넷째, 체기가 있을 때다. 소화란 음식물이 입에서 항문으로 내려가는 과정이다. 때문에 내리는 기운이 강한 보리는 소화작용을 도와주며, 현대 과학에서도 보리에는 소화를 도와주는 효소가 많이 들어있다고 한다. 식후에 보리차를 먹는 이유도 이것인데, 주의할 점이 있다. 머리는 차고 배는 따뜻하게 해주어야 하므로 겉이 탈 정도로 잘 볶아 보리의 찬 성질을 없애야 한다. 다섯째, 변비가 있을 때 보리밥을 먹으면 미끌미끌 똥이 잘 내려간다. 여섯째, 보리가 지방간과 혈중 콜레스테롤을 녹이는 작용을 한다는 사실이 보고되었으니 뚱뚱한 사람이나 풍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보리밥을 먹는 것이 좋다. 같은 이유로 심장병에도 효과가 있어 파키스탄에서는 보리를 심장 약으로 사용한다. 보리밥을 지을 때는 쌀과 보리의 비율은 7대 3이 가장 좋다는 동물 실험 결과가 있다. 그러나 꼭 이 기준에 맞출 필요 없이 먹는 사람의 특성이나 증상에 따라 적당히 가감하자. 마른 사람이 더위를 탈 땐 9대 1, 뚱뚱한 사람의 지나친 양기에는 5대 5 등등이다.
콩의 효능과 특성
콩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또 인삼을 캐낸 밭과 같이 땅심이 죽은 곳에 콩을 심으면 뿌리혹 박테리아의 영향으로 다시 땅이 살아난다. 동양사상에서는 태극(太極)에서 음양이 생기고 다시 사상(四象)과 팔괘(八卦)가 형성된다고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데, 만물의 근본인 태극처럼 콩도 스스로 존재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목태(太), 서리태(太)라고 하는데, 같은 의미로 성경에서 가장 처음 나오는 작물도 콩이라고 할 수 있다(태초에…창1:1). 고구려 땅이었던 만주가 원산지인 콩은 이십 세기 초까지만 해도 전세계 생산량의 90퍼센트가 그곳에서 생산됐다. 그런데 지금 우리 나라는 콩 자급률이 25퍼센트를 밑돌고 있으며 모자란 나머지를 대부분 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우리 종자}라는 책을 보면 미국이 1901년부터 1976년 사이에 우리 나라에서 수집한 토종 콩은 무려 5496종이나 되며, 이것을 이용하여 힐, 윌리암 등 다수의 우량 품종을 육성했다고 한다. IMF로 경제 주권을 잃어버린 일 이상으로 큰 수치이니 앞으로 뜻 있는 사람들은 우리 콩을 살리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콩은 쌀과도 궁합이 잘 맞아서 콩밥에 김치는 가장 간단하면서 완전한 식사 형태이다. 콩밥을 먹어 나쁜 경우는 없지만 특히 다음과 같을 때는 콩밥을 꼭 먹는 것이 좋다. 첫째, 감방에 있을 때다. 가난한 사람이 감방에 있으면 영양실조로 쓰러질 수밖에 없는데 콩밥은 생명을 지켜주는 약이 된다. 예전에 교정당국에서 콩밥을 보리밥으로 바꾼 적이 있는데 재소자들의 건강 상태가 나빠져서 다시 콩밥을 준다고 한다. 큰 병을 앓고 난 후, 혹은 출산 후에 생기는 여러 질병에도 콩을 꼭 먹는 것이 좋다. 둘째, 아이가 생기지 않을 때다. 태극에서 음양이 생겨 만물을 생성하듯 콩에는 정액을 생성하는 단백질과 여성호르몬 성분이 많이 들어 있다. 셋째 신(腎)을 보강하고 싶을 때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신(腎)은 방광, 생식기, 허리, 무릎, 호르몬 등을 포함하는 큰 개념이다. 게다가 타고난 체력이라는 선천지기(先天之氣)가 간직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니 신이 약한 사람, 즉 소변이 시원치 않고 허리가 자주 아프고 무릎이 시큰거리고 빨리 지치고 피곤한 경우에 콩밥이 좋다. 넷째, 몸의 가장 근본인 뼈가 약할 때도 좋다. 된장국을 자주 먹는 사람은 골다공증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콩을 잘 먹는 어린이는 키가 잘 크니 성장통 염려도 없다. 다섯째, 변비가 있을 때 좋다. 연구 결과 콩은 변의 부피를 늘리고 부드럽게 하는 최상의 식품이라서 변비, 치질, 게실증을 비롯한 장기능 장애와 직장암, 결장암 예방에 효과가 탁월하다. 여섯째 해독 기능을 필요로 할 때다. 해독이란 다 죽어 가는 것을 새로 살리는 것으로 인삼을 캐낸 밭에 다시 땅심이 생기는 것과 같다. 검정콩에 감초를 더한 감두탕은 동양의학 최고의 해독제로서 수은·비상·납중독뿐만 아니라 유기용제 중독에도 널리 이용된다. 일곱째, 여러 가지 성인병을 치료할 수 있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3대 성인병은 심장, 당뇨, 혈압인데 이 모두를 해소하는 놀라운 힘이 콩에 들어있다. 연구 결과, 육식으로 인한 콜레스테롤을 제거하는 힘은 아주 탁월해서 선천적으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사람에게도 효과가 있어 동맥경화로 인한 고혈압과 심장병이 모두 콩으로 치료된다. 음식 중 혈당치를 적정 수준으로 안정시키는 최고의 식품은 땅콩이고 다음이 콩이다. 콩을 적당히 섭취할 경우, 인슐린을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하는 유형의 당뇨병 환자는 인슐린을 주사할 필요가 거의 없어지고, 매일 인슐린을 주사 맞아야 하는 유형의 환자는 인슐린 양을 38퍼센트 줄일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 여덟째, 여러 가지 암을 예방할 수 있다. 직장암, 결장암 뿐만 아니라 위암, 유방암, 폐암, 간암, 췌장암 등에 대한 탁월한 예방 효과가 입증되었으며 전이를 예방, 치료하는 효과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아홉째, 흰머리를 검은머리로 바꾸고 싶을 때 좋다. 나의 할아버지도 볶은 검정콩을 늘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수시로 잡수셨던 일이 기억난다. 일본의 오무라라는 노인은 20여 년을 다른 음식은 전혀 안 먹고 콩만 먹으면서 살아왔는데 90이 넘은 나이에도 건강하다고 자랑하고 있다.
이와 같은 콩의 위대함 때문에 시골에서는 새경이나 도지는 쌀보다 콩으로 하는 것을 좋아한다. 또 난리가 났을 때도 쌀보다는 콩을 가지고 피난을 갔다. 노화를 연구하는 세계적 권위자 유병팔 교수도 6·25 당시 아버님 말씀을 어기고 쌀을 가지고 피난 갔다가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장미에 가시가 있듯이 이렇게 좋은 콩도 단점이 있으니 소화가 약간 안 된다는 점이다. 이럴 땐 콩을 이용한 가공 식품으로 태극의 기운을 섭취하는 것이 좋은데 된장은 85퍼센트, 두부는 95퍼센트, 간장은 98퍼센트의 소화흡수율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되어 있다.
조의 효능과 특성
예로부터 북중국, 만주,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작물로 여겨졌던 조는 가뭄에 잘 견디고 흙 속의 영양분을 흡수하는 능력이 강하여 아무 곳에서나 잘 자란다. 또한 오곡 중 가장 단단하고 그 맛도 짜기 때문에 신(腎)을 보하는 곡식, 혹은 "죽을 쑤어 먹으면 단전(丹田)을 보한다"고 하여 도가(道家)의 먹을거리로 생각했다. 동의보감에서는 "조의 성질은 약간 차고 맛이 짜며 독이 없다. 신의 기운을 보양하고 비위 속의 열을 없애며 기를 보하고 오줌을 잘 나가게 하여 비위를 돕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조밥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먹어야 한다. 첫째, 위에 열이 있는 경우이다. 생리적으로 열이 있는 경우 대표적인 증상은 소화가 너무 잘 되어서 밥 먹고 돌아서면 바로 배가 다시 고파오는 것이고, 병리적인 경우는 급성 위염 증상인데 독주를 먹고 속이 아프거나 입에서 썩은 냄새가 나고 불쾌한 냄새가 나는 음식물을 토하는 것 등이다. 둘째, 신에 열이 있는 경우인데 붉은 색 오줌을 누고 소변 끝이 아프다. 셋째, 갑자기 코피가 나고 눈이 충혈 될 때도 좋다. 넷째, 신장 기운이 약하거나 단전을 보강하고 싶을 때 조가 필요하다.
사신도(四神圖)에서 현무도는 북쪽에 자리잡고 있는데 거북과 뱀이 어우러져 있다. 겨울 기운, 곧 신(腎)은 거북의 물 기운과 뱀의 불기운이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데, 형이하학적으로(?) 말해서 평상시 축 늘어져 있던 물건도 열이 나면서 서야만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그러니 찬 기운을 띈 조는 단전을 온전히 보강할 수 없는데 이때 만든 것이 장수(漿水), 곧 신 좁쌀죽웃물이다. 좁쌀로 죽을 쑤어 시게 한 것으로, 삭힌 것 또는 발효시킨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것은 신을 보하는 기운은 그대로 두고 찬 성질만 따뜻하게 바꾼 절묘한 음식이니 옛날 양생서에 이 장수가 곧잘 나온다. 다섯째, 나이 들어 근골이 쑤시고 아픈 신경통에 좋은데 이때는 메조보다 찬 기운이 덜하고 차진 차조가 좋다. 여섯째, 폐결핵으로 인해 점점 체중이 빠질 때도 차조밥이 좋은데 폐결핵은 음허화동(陰虛火動)이라고 해서 신이 약해져 오는 병으로 본다. 평상시 속이 찬 사람은 초대상에 조밥이 나왔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따뜻할 때 기쁜 마음으로 먹으면 큰 탈은 없을 것이다.
밀의 효능과 특성
우리 밀이 수입 밀보다 좋은 것은 농약과 방부제 때문만은 아니다. 수입 밀은 대부분 봄에 심어 여름에 거두는 반면, 우리 밀은 가을에 심어 겨울, 봄을 지나 초여름에 거둔다.
"보리 참밀은 가을에 파종하고 겨울에 자란다. 봄에 다 커서 여름에 여문다. 사계절의 기가 모여 화(和)하니, 오곡의 귀(貴)가 된다. 기후가 따뜻한 지방에서는 가히 봄에 심고 여름에 수확한다. 이것은 두 계절의 기만 있으니 편벽 된다(원서에는 有毒, 곧 독이 있다고 되어 있다).
천년 전 사람의 주장이라 믿고 안 믿고는 독자 개인의 자유지만, 자연의 이치는 실험실에서 분석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할 때 깨달을 수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비가 오래 내리면 대부분의 작물은 작황이 좋지 않다. 그 중에서도 밀은 정도가 더 심하니, 습과 반대되는 조(燥)한 성질을 갖고 있다.
이명래 고약이 나오기 이전에는 종기가 나면 밀가루를 식초에 볶아 고약을 만들어 붙였다. 이것을 필자도 확인한 적이 있는데, 십수년 전, 어떤 아주머니가 유방암으로 의심되는 종기에 밀가루 떡을 한 달 동안 붙이고 나았다는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또한 사계절의 기운이 모여 화하다고는 하지만 겨울을 보냈기 때문에 쌀보다는 차고, 보리보다 늦게 수확하기 때문에 보리보다는 따뜻하다.
조와 약간 찬 성질이 있는 통밀은 어떤 경우에 먹는 것이 좋을까. 첫째, 청심환처럼 마음을 시원하게 하면서 맺힌 한을 풀어 주니, 여자들의 화병에 특효이다. 실지 임상에서도 많이 쓰는데, 통밀 50그램, 감초 12그램, 대추 10그램을 달여서 하루 동안 수시로 마시면 된다. 이를 감맥대조탕이라 하는데, 흥분하여 홀연 슬퍼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잠을 못 자고 심하면 쓰러져 경련을 일으키는 자를 치료한다고 되어 있다. 이 때문에 통밀밥은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 좋은 치료약인데, 공부하는 사람의 뇌기능을 활성화시키는 성분이 들어 있다는 보고도 있다.
둘째, 아이들이 땀이 많이 날 때 파우더를 뿌려 주면 땀이 덜 나듯이 마찬가지로 통밀은 땀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으니, 오줌을 통해 그 수분을 내보낸다. 낮에 흐르는 식은 땀(自汗)과 밤에 잘 때 흐르는 땀(盜汗) 모두를 거두어들이는데, 빨리 좋아지고 싶은 사람은 통밀밥과 함께 통밀을 볶아 달인 물을 식후에 한 사발씩 마시면 된다.
셋째, 히포크라테스도 말한 바 있듯이 밀기울을 제거하지 않은 통밀은 대변의 소통에 효과적이다. 이것은 현대의학에서도 입증된 바, "변비를 없앰과 동시에 치질, 게실증, 정맥류, 열공 헤르니아, 그리고 결장암의 발병 기회를 대폭 줄인다"고 했다. 또 다른 실험에서 변의 무게를 두 배로 만드는데 밀기울은 4분의 3컵이 필요하고, 삶은 당근은 4.5컵, 삶은 양배추는 5컵, 흰밀가루빵은 14조각, 사과는 11개가 필요하다고 하니, 배변 효과에서 밀기울 만한 것은 없다. 껍질을 제거한 밀가루는 통밀보다 그 성질이 따뜻하다. 그래서 더위 먹었을 때 밀가루를 물에 타서 먹으면 배가 따듯해지면서 원기를 되찾게 되니, 더운 여름날 먹는 칼국수 역시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건강음식인 것이다.
왜 우리 음식문화에서는 빵이 자리잡지 못했을까. 아마도 밀가루의 성질이 너무 건조한 탓이라 생각되는데, 국물이 충분히 있는 수제비, 칼국수와 함께 밀가루 덩어리인 중국식 만두와 달리 속를 가득 채운 만두가 우리 밀가루 음식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메밀의 효과와 특성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 댁에 냉면 재료를 납품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자기 회사 냉면은 메밀이 무척 많이 들어 있어 냉면발을 젓가락으로 오래 잡고 있으면 끊어진다"는 자랑을 했다. 이는 고산지대 자갈밭에서 자란 것일수록 품질이 뛰어난 것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이니, 메밀은 차고 거친 성질을 갖고 있다.
첫째, 메밀은 변비를 해소하는 힘이 좋다. 특히 색이 검고 거친 메밀일수록 통변성이 강하니, 많이 먹으면 똥배가 들어간다. 둘째, 장만 데굴데굴 소통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혈관 내 콜레스테롤도 제거하는 힘이 강하니, 고혈압, 심장병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있다. 셋째, 체지방도 데굴데굴 분해가 되니 최고급(?) 다이어트 식품이다. 넷째, 찬 성질을 띤 메밀 중에서 껍질은 그 성질이 더 차다. 그러므로 껍질로 베개 속을 만들어 베고 자면 머리가 시원해지니, 만성두통, 화병, 어깨 결림, 고혈압 증상에 좋다.
옥수수의 효능과 특성
쌀, 밀과 함께 세계 3대 작물인 옥수수는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가장 많은 작물에 속한다. 이 때문에 북한처럼 기아에 허덕일 때에는 다른 어느 것보다 옥수수를 심는 것이 좋은데, 영양가는 쌀이나 밀에 견주어 다소 떨어진다.
옥수수는 어떤 약효가 있을까? 첫째, 다른 작물에 비해 성장기간이 짧은 옥수수는 주로 여름에 자란다. 그러나 최고 온도가 섭씨 30도 이하이고 낮과 밤의 온도차가 많은 지역에서 크기 때문에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평(平)한 성질을 갖고 있다. 여기에 소화기와 관계 있는 노란색이니, 옛 책에서는 "속을 평하게 하고 위를 돕는다", "쪄먹고 죽을 쑤어 먹기 좋다"고 했다. 알맹이는 소화 흡수율이 30퍼센트지만 가루는 90퍼센트나 되니, 소화 촉진, 피로 회복에 특효약으로 알려진 강원도 원주의 옥수수차를 복원시킬 필요가 있다.
둘째,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데 반드시 생육 기간 중에 충분한 비가 내려야 한다. 이는 여름철 장마 때 옥수수가 여무는 것을 말하는데, 충분한 비와 물이 잘 빠지는 척박한 땅을 결합하면 수분 대사를 원활하게 해준다는 것도 짐작이 된다. 옥수수 수염은 임산부의 부종에 가장 안전한 이뇨제이며, 신장병과 당뇨병에 옥수수 수염, 뿌리, 잎 등을 꾸준히 달여 마시면 바라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셋째, 옥수수밥을 씹어 보면 미끌미끌하다. 이는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식물들의 일반적인 특징으로, 음식물을 미끌미끌하게 소통시키는 힘이 있다. 옥수수 기름은 다른 어떤 식물성 기름보다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춰 준다. 그러나 너무 많이 먹는 경우 옥수수 밭처럼 몸이 척박해지니, 총 지방 섭취량의 10퍼센트가 넘지 않는 선에서 조절하는 것이 좋다.
수수의 효능과 특성
수수는 아프리카가 원산지로 고원이면서 강한 햇빛을 좋아하는 광지역 적응성 식물이다. 첫째, 성질이 따뜻하니 위와 장을 보하여 설사를 멈추게 한다. 또 몸이 차서 생기는 천식, 요즘 말로 하면 냉방병으로 생긴 기침에도 좋으며, 입맛이 없을 때에 수수로 빚은 술이 제격이다.
둘째, 양기가 떨어질 때도 수수밥을 먹으면 좋은데, 일설에 수수밭에는 뱀이 많다고 한다. 가끔 수수 날 것을 가축들이 먹고나면 두세 시간 후에 중독 증상을 보이는데, 이것은 시안산이라고 하는 유독성 물질 때문이다. 그러나 햇빛에 말리면 독성이 사라진다.
율무의 효능과 특성
요즘 율무처럼 각광을 받는 작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종자에 대한 연구와 보존은 제대로 안 되어 있다. 건강식 또는 항암식으로 빛을 볼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 뜻있는 농군들은 미리 준비하는 좋을 듯하다.
십병구담(十病九痰)이라는 말이 있다. 병의 원인은 대부분 담(痰)이라는 뜻인데, 담은 우리 몸의 진액이 화(火)기를 받아 걸쭉해진 것을 말한다. 이 담을 없애는 것이 여러 가지 병을 치료하는 첩경인데, 동의보감에서는 "비위를 든든하게 하고, 습을 마르게 하는 것이 치료의 기본"이며, "인삼과 감초로 비를 보하고, 흰삽주와 귀무릇으로 비습(脾습)을 마르게 하고 귤껍질과 선귤 껍질로 기를 잘 돌게 하며, 솔풍령과 택사로 물기를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밥이 되는 음식 중에 이 모든 효능을 갖고 있는 것이 바로 율무이다. 율무밥은 어느 때 먹는 것이 좋을까? 첫째, 소화기가 약할 때다. 병약한 사람이나 노인의 보양식, 또는 자리끼(밤에 마시기 위해 미리 떠놓는 물 같은 것)로 예로부터 써온 것은 응이이다. 응이는 본래 율무로 만든 것인데, 요즘은 녹말로 풀어 만든 죽을 모두 응이라고 한다. 율무응이는 쌀이나 다른 곡류로 만든 응이보다 병후 회복식으로 더 뛰어난 효과를 갖고 있다.
둘째, 윗배가 더부룩하고 자주 구역질할 때 좋다. 이것은 과일, 청량음료 등 수분 섭취가 과다할 때 생기는 증상인데, 이를 한의학에서는 소화기에 담이 있다고 표현한다.
셋째, 순환을 잘 시킨다. 자동차가 잘 굴러가기 위해서는 힘이 좋거나 길거리에 장애물이 없어야 한다. 율무는 장애물을 없애므로 기와 혈의 순환을 잘 시킨다. 근육 굴신이 부자유스러운 것, 무겁고 저린 신경통, 류머티스 관절염에 율무 밥뿐만 아니라 율무목욕, 율무술이 모두 효과적이다. 담결석, 방광 결석을 녹이는 데에는 이미 증명이 되었고, 암, 특히 폐암, 자궁암, 중이암에도 효과 있음이 보고되었다.
넷째, 몸이 잘 붓고 소변이 시원치 않을 때 좋다. 율무는 완만한 이뇨 작용이 있으므로 소변의 양을 많게 하여 부기를 없애 주는데, 이때는 율무의 양을 늘려야 한다. 무거우면 아래로 빨리 내려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다섯째, 피부 미용에 좋으니, 닭살, 죽음의 꽃이라고 하는 노반, 물사마귀, 아토피 피부, 기미, 주근깨, 여드름에 율무밥이 효과적이다. 여섯째, 폐결핵 환자와 천식이 심한 사람, 그리고 당뇨병이 있는 사람들도 율무밥을 가끔 먹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임산부는 양수가 마를 수 있고, 마른 사람은 더 마를 수 있기 때문에 율무를 먹지 않아야 한다.
팥의 효능과 특성
왕의 수라상에는 밥이 두 종류 올라가는데, 그 중 하나는 팥밥이다. 왜 팥밥일까. 여러 가지 자료를 뒤져보았지만 답을 구할 수 없었다. 붉은 색은 귀신을 쫓아내는 색이니 전염병이 돌 때 또는 사고가 자주 나서 '부정 쓸기'를 할 때 흔히 팥죽을 쑤어 뿌린다. 그러나 수라상의 팥밥은 이런 의미로 해석할 수 없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붉은 색은 왕의 색이라는 것이다. 왕이 입는 곤포도 붉은 색이고 사는 집도 자금성(중국)이듯 붉은 색 밥이어야 왕에게 어울린다는 뜻이다.
돌이나 생일 잔치의 수수경단이나 부꾸미, 또 고물로 팥을 가장 많이 쓰는 이유도 이것이니, 모두 귀하다, 높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앞서 팥죽도 결국 왕이 나서야만 전염병이나 사고를 진압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될 성싶다.
우리 나라의 여러 지역에 걸쳐 팥의 근연종인 새팥이 자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 나라가 팥의 기원지에 가깝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다. 여하튼 아주 오래 전부터 재배한 팥은 콩의 성질 중에서 다음 성질이 강하다.
첫째, 껍질이 두꺼워 물이 잘 스며들지 않는다. 이것은 대단히 건조한 성질이 팥에 있다는 뜻인데, 특히 소변 양을 늘려 부기를 없애 준다. 산후 부기에 잉어와 함께 달여 먹는 것이 대표적인 예인데, 너무 많이 먹으면 사람도 팥처럼 물기 하나 없이 마르게 된다. 둘째, 대변을 보게 한다. 옛 선조들은 매월 초하루 보름에 팥밥을 먹었는데, 숙변 제거의 의미가 있지 않다 생각된다. 셋째, 대소변을 잘 나가게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팥은 내리는 힘이 세니, 출산 후 태반이 나오지 않거나 난산일 때 생팥을 물로 삼켜 먹는다. 넷째, 하지 후에 파종하기 때문에 그 성질이 차다. 입이 마르고(소갈병), 가슴이 답답할 때(화병) 그 열을 끌 수 있고, 열독으로 생긴 종기에 팥가루를 달걀 흰자에 개어 발라 주면 효과가 있다.
녹두의 효능과 특성
"녹두 밭은 윗머리다라는 전북 지방의 농사 속담이 있다. 녹두는 초세가 강하고 토질을 가리지 않고 잘되기 때문에 같은 밭에서도 제일 위쪽에 있는 척박한 곳에 심는다는 말이다. 또 팥보다 만파에 견디는 힘이 더욱 강해 귀한 식품으로서 지금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이 글은 안완식 선생이 쓰신 책「우리 종자」 중 '녹두조'에 나오는 첫부분이다. 이것을 읽으면서 필자는 벅찬 감동을 느꼈다. 예전에는 녹두가 해독제인 이유를 '검은 깍지에서 나온 초록색 콩' 곧 죽음에서 나온 어린 생명과 상(象, 곧 이미지)이 같기 때문이라고 다소 추상적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이제는 말 밥통에서 태어난 예수처럼 녹두도 가장 천한 곳에서 살기 때문에 남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 것이다. 팥은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을까.
첫째, 아래로 내리는 기운이 있다. 팥보다는 세지 않지만 대소변을 잘 내려 준다. 둘째, 해독 기능이 강하다. 모든 금석(金石) 초목(草木)의 비상독을 풀어 주는데, 생것을 껍질채 갈아서 그 물을 마시면 된다. 단독(丹毒), 풍진(風疹) 등의 급성 피부병과 옹저(癰疽), 창종(瘡腫) 및 탕화상(湯火傷)에도 같은 방법을 쓴다. 한약을 먹을 때 녹두를 먹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셋째, 베개에 넣어 베고 자면 눈이 밝아지고 두통이 사라지니, 녹두는 그 성질이 약간 차다. 넷째, '녹두가루 주면 국 끓여 먹을 애'라는 속담이 있다. 흔히 세상물정 어두운 딸에게 하는 말로서, 녹두가루는 예로부터 비누 대용으로 사용되었다.
밥을 어떻게 먹으면 건강을 지킬 수 있을까
앞서 우리 음식은 주식과 부식이 확실히 구분되어 있다고 했다. 아픈 주인 하나가 건강한 머슴 열 몫을 한다는 속담처럼 주식만 잘 먹으면 부식은 어떻든 건강을 지킬 수 있다. 다음 다섯 가지 원칙을 생각하며 밥을 먹도록 하자.
첫째, 이층 밥을 만들어 먹어야 한다. 대가족이 함께 생활할 때에는 이층밥, 삼층밥을 만들어 노인은 진밥, 아이들은 된밥 등 각자 좋아하는 식성대로 밥을 먹었다. 요즘처럼 식구가 단촐할 때에는 굳이 이럴 필요가 없으니, 여기에서는 새로운 개념의 이층 밥을 소개한다. 가령 아버지는 뚱뚱하고 엄마는 마를 때, 또는 술을 많이 마시고 와서 해독의 필요가 있을 때 한 밥솥(압력) 안에서 모두가 만족하는 밥을 만드는 것이다. 가장 먼저 쌀과 콩은 함께 씻어서 기본으로 밑에 깔아 둔다. 다음으로 각자에게 필요한 잡곡이 무엇인지 생각한 다음, 씻어 구석에 가만히 놓아둔다. 뚱뚱한 아빠라면 율무, 술을 마셨을 때는 팥, 변비가 있으면 보리를 놓는 식이다. 밥이 다 되면 구석에 있는 밥을 먼저 떠서 필요한 사람에게 주고, 나머지 밥은 잘 섞어 남은 사람들이 먹는다.
둘째, 저녁에는 죽을 먹자. 누구나 다 저녁에 죽을 먹을 필요는 없지만 정신 근로자와 몸이 특히 안 좋은 사람은 저녁에 죽을 먹는 것이 좋다. 죽은 소화기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최상의 음식이니, 앞서 나온 곡식의 특성을 잘 살펴 죽의 기본 재료를 선택한다. 여기에 특정 질병에 좋은 한약재, 예컨대 복령, 연자, 밤, 용안육 등을 넣어 만들면 금상첨화이니, 밤에 잠을 깊이 자고 아침에 거뜬히 일어날 수 있다.
셋째, 대소변, 특히 대변 상태를 항상 점검해야 한다. 밥은 똥 만드는 재료이고 국은 오줌의 재료이다. 그러므로 밥을 잘 먹고 있는가 없는가는 자신의 똥을 보면 잘 알 수 있는데, 너무 되거나 질지 않고 하루에 한 번, 황금색 똥이 나와야만 밥을 잘 먹고 있는 것이다. 초보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잘못 중의 하나가 지방간에 보리가 좋다고 하면 대변 상태에 관계없이 보리를 먹는 것이다. 변비일 때에는 좋지만 설사할 때는 절대 먹으면 안 되니, 이때에는 다른 먹을거리로 대체하거나 적당한 것을 함께 섞어 먹어야 한다. 밥으로 병을 고칠 의지가 있는 주부라면 항상 식구들의 변 상태를 알고 있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 될 수 있으면 원형 그대로 거칠게 밥을 해먹는 것이 좋다. 쌀도 백미보다는 현미로, 밀도 통밀로 먹는 것이 더 좋다는 뜻인데, 전체식의 의미가 있다. 다섯째, 꼭꼭 씹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어야 한다. 침 속에는 소화효소 외에도 면역력을 증감하는 유사 호르몬 물질이 들어 있다. 그래서 상처가 났을 때 침을 바르면 소독이 되어 빨리 치유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들수록 침도 줄어드는데, 꼭꼭 씹어 먹으면 침이 잘 나와 음식과 잘 섞이게 되고 씹어 먹는 근육(저작근)의 작용으로 머리도 총명해진다.
약식 동원 차원에서 밥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양념이다. 양념이란 본디 약(藥)이 되라는 생각(念)으로 넣는 먹을거리를 말하는데, 맛을 조절하는 조미료와는 격을 달리한다. 입만 만족시키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 오장육부와 아픈 몸을 낫게 하는 놀라운 힘이 양념에 들어 있는 그 효능과 특성, 그리고 '국과 김치, 장', '여러 가지 반찬', '떡과 과자, 음료, 그리고 명절음식'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더 연재할 예정이다.
출처 : 귀농통문 10호 / 1999년 여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