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 싫은 차에 비가 눈으로 바뀌면서 함박눈이 제대로 내려 줍니다. 휴가 내기
딱 좋은 명분입니다. "1.14(sun) 휴가 신청합니다." 어제 위례 신도시를 다녀왔어요.
컴컴한데도 성남 오거리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어요. 21살 7월, 3개월 동안 x뺑이
치다가 첫 T.C.P실습을 나갔어요. 논산23수용연대-남한산성을 거쳐 산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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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가 이곳에 나왔는데 어찌나 황홀하던지 아직도 임펙트가 쇼트처럼 강렬합니다.
손님에게 위례시가 성남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어요. 위례 때문에 골치가
지근지근 아픈 놈도 있겠지만 나는 종행교와 영0라는 여성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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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는 현역이 30개월 복무를 했고 육사가 서울 대 만큼이나 인기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다들 각자 병과로 독립해갔지만 그땐 육군종합행정학교에 위탁 교육을
받으러 온 병과들이 헌병 말고도 경리 단, 정훈, 법무 장교, 카추샤, 상무체육부대가
상주하고 있었고 남한산성으로 불리던 육군 교도소가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사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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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는 시선은 삼청교육대 같은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박 정희 군사혁명위원회가
이 정재, 곽영주, 임 화수 같은 깡패들을 사그리 잡아들여 사형을 시켰던 그 악명
높은 육군교소를 행정학교 헌병들이 직접 근무를 섰습니다. 교육 중에 D J가 갇혔던
독방도 보고 간수들 생활을 체험한 적이 있습니다. 21살 제 눈에 비친 놈들의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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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는 하나같이 임 꺽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구 대장을 제외한 기관병 기수들이
워커 광내는 것이나 반합으로 군복 각 잡는 방법은 신기했고 사형수 사형집행 절차를
언 놈이 썰을 풀면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뻥인지 뭔지 모르지만 김 재규 사형시켰다는
선임은 휴가 3박 4일 나와서 하루도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하더이다. 이곳에 6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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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소를 했는데 기록이 12일부터 남아있는 걸 보면 10일 동안 일기를 못 쓸 만큼 빡빡
굴린 모양입니다. 육군종합행정학교를 ‘남성 대‘라고도 부릅니다. 박통이 남한산성의
첫 자와 끝 자를 따서 이름을 지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종행교가 처음엔 용산 삼각지
국방부 옆에 창설되었다가 1968년부터 2011년까지 43년을 성남 시 수정구 창곡 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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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를 박았는데 제 현역시절은(1983) 수정구에 있었어요. 그 후(2011년 11월 11일)에
충북 영동군 양강 면으로 이전하였다고 합니다. 저는 아직 한 번도 못 가봤습니다.
종행교의 이전 배경에는 2008년 위례신도시 개발 계획 때문인 것 같습니다. 계획이
알려지자 4개 후보지에서 치열한 유치전을 벌였고, 영동군에서는 군수를 포함한 3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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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이 삭발을 했다고 합디다. 어느 시대 건 부조리는 존재합니다. 카뮤와 샤르트르는
'부조리'를 까는 구라쟁이 들입니다. 제게 있어 사르트르는 낯선 인물인데 프랑스
태생이랍니다. 예나지금이나 먹물들이 공부하는 척하면서 연애질 한 놈들도 많아요.
1929년, 프랑스 최고의 엘리트들만이 가는 파리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사르트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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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교수 자격시험을 1등으로 합격했대요. 2등은 소르본 대학을 졸업한 시몬 드
보부아르라는 여인이었는데 둘은 그 시험을 계기로 사랑에 빠졌어요. 그런데 두
사람은 2년간 계약 결혼을 하되, 다른 이성을 사랑할 권리를 인정하기로 하는 뜻밖의
결의를 했다는구만. 흠, 백년 전에 계약 결혼이라. 상당히 세련된 커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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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둘의 관계는 사르트르가 죽기까지 50년이나 이어졌으니 사랑은 제대로 했어요.
성남 상대원 사는 간호원과 1년 이상 사귄 기억이 있는데 만약 내가 그녀와 잘 됐다면
최소한 홀아비신세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랑 얘기는 여기까지. 사르트르에
따르면 인간은 아무 이유 없이 부조리하게 세상에 내던져졌대요. 따라서 인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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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거야. 정해진 게 없기에 오히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게지. 인간은 자유로운 삶 속에서 자기 스스로 존재와 삶의 의미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래서 실존주의는 주체적이며 또한 휴머니즘이라고 S가 말해요.
그러나 한편으론 스스로 늘 선택해야 하고 또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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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하기도 할겁니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그렇다고 자유 자체를 포기하려는
사람은 자신을 속이는 사람입니다. 존재-실존-본질 알쏭달쏭 한 단어 해석이
필요합니다 '본질'이란 한 사물을 다른 사물과 구별시켜 주는 '그것만의 성질'을
말하고 '존재'와 '실존'은 비슷하지만 같은 것은 아닙니다.'실존'은 본질에 앞선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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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란 뜻같아요. 사르트르에 의하면 인간 '존재'란 실존이 본질을 갖추고 있을
때를 말합니다. 즉,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본질'이 있어야만 해요. 의자를
예로 들면 '의자는 무엇이냐?'에서 '무엇'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의자의 본질입니다.
그렇다면 의자의 본질은 뭘까? 바로 '앉는 것'입니다. 아무리 멋진 의자라도 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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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없다면 본질을 잊은 겁니다. 그런데 왜 의자가 만들어졌을까? 그것은 의자가
탄생하기 전에 이미 앉기 위한 의자를 만들려는 목수의 뜻이 있었을 테지요.
그리고 바로 이 '뜻'이 의자의 본질이 된 겁니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인간이 만든
물건에는 모두 본질이 있지만, 이 본질은 존재보다 앞서 있다고 했어요. 자연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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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이전에 본질이 있는데 다만 누군가가 의도한 것이 아니고 그 자체에 본질이
있다는 뜻입니다. 사과 씨에는 사과나무의 본질이 들어 있듯이 말입니다. 사르트르
는 인간의 본질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자유롭다고 했어요. 인간은 미래의 여러
가지 가능성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본질을 만들어 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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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아요. 그런 점에서 사르트르는 "인간 존재는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한 것
같아요.사르트르가 말한 1. 왜 세상에 던져졌는가? 2.불안 그리고 인간의 현존
3번째는 '죽음'입니다. 죽음에 대해 극렬한 불안과 공포를 느낀 적은 없는가?
무심코 채널에서 올가미에 목이 걸린 안 중근의 최후를 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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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역사를 차치하고라도 죽음, 그 섬뜩함 속에서 내가 집착해 온 가치들의
의미를 일거에 말소시키는 강한 힘이 엄습하더이다. 이것이 ‘무(Nichts)입니다.
그것은 익숙했던 주변의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어두운 심연을 드러내어 나를 공허
하게 만듭니다. 돈, 명예, 가족, 국가, 권력 등 모든 가치가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
버린 ‘무화’의 순간, 비로소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다고 합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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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근본적인 결단을 촉구합니다. 두려움 속에 회피함으로써 위선적인
삶을 이어갈지, 아님 기만적인 가치로부터 스스로를 해방하고, 조용히 말 걸어
오는 존재를 인수할지는 본인의 태도에 달려있어요. 단지 사멸할 뿐인 다른
존재자들과 달리, 오직 인간만이 진정 ‘죽을’ 존재입니다. 하이데거는 ‘지시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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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에서 각 존재자가 고유한 존재로 거듭나는 하나의 ‘지평’, 즉 존재 개시 성이
열려 있는 지평을 ‘근원적 시간’이라 했습니다. 지금까지 있어 온 '본래 적 과거'와
'본래적 미래'가 만나, 자신의 진정성을 깨닫는 '본래 적 현재'가 탈 자 적으로
통일을 이루고 있는 ‘하나의 시간 지평’ 이러한 기반위에서 인간은, ‘존재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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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다양함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뜻같기도 해요. 지금의 나는 사회가
덧씌운 비본질적 삶을 살고 있을 수 있어요. 존재가 망각 되는 퇴락으로부터,
어떻게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까? 죽음과 마주했을 때 우리는 고독한 ‘단독자’
가 되지만, 혼자가 아닌 다양한 존재자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세계가 내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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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현주소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어찌하면 상실감이 낳은 크나큰 고통이,
존재의 충만함으로 치유되는 사건, 존재의 진리가 존재자의 존재 안에서 일어
나는 생기의 사건으로 뒤바꿀 수 있을까요? 사르트가 페시미스트인가?
What can I say? 내가 무슨 말을 하겠어요?
2024.1.14.sun.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