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3360]정조대왕시 관덕풍림(觀德楓林)
관덕 풍림(觀德楓林)
과녁판이 울릴 때면 화살이 정곡을 맞히는데 / 畫鵠鳴時箭中心
운하의 장막이 선경 숲을 에워쌌네 / 雲霞步障擁仙林
삼청동의 물색은 원래부터 이러하기에 / 三淸物色元如許
즐겨 제군과 함께 취하기를 금치 않노라 / 樂與諸君醉不禁
이상은 관덕 풍림(觀德楓林)을 읊은 것이다.
정조는 창덕궁 후원에서 아름다운 전경을 10곳을 뽑아 시를 남겼는데
8경은 관덕정(觀德亭)으로 관덕 풍림(觀德楓林)을 지었다
과녁판이 울릴 때면 화살이 정곡을 맞히는데
/ 畫鵠鳴時箭中心
구름과 안개로 장막이 선경 숲을 에워쌌네
/ 雲霞步障擁仙林
삼청동(신선이 사는 곳)의 물색은 원래부터 이러하기에
/ 三淸物色元如許
즐겨 제군과 함께 취하기를 금치 않노라
/ 樂與諸君醉不禁
관덕(觀德)이란 유교 경전「예기(禮記)」 사의(射義)편에
‘활을 쏘는 것은 높고 훌륭한 덕을 쌓는 것이다
(사자소이관성덕야射者所以觀盛德也)’에서 유래하였듯이
이곳은 활을 쏘는 장소와 관계가 있던 곳으로 보인다.
옛날 사람들이 활을 쏘는 것을 단순히 무술로만 생각하지 않고 인(仁)을 행하는 수행으로 생각하여 무인뿐 아니라 문인들도 활을 쏘는 것을 즐거이 하였기에 지방의
여러 곳에도 관덕정이란 이름의 정자가 많았다. 위의 시는 단풍나무 숲의
관덕정이라는 제목의 시로 아름다운 가을의 단풍 색을 노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궁궐지」에 의하면 ‘관덕정은 영화당의 동쪽 장원봉 북쪽에 있고
남쪽에는 잠단(蠶壇)이 있는데 바로 성종 3년(1472)에
채상단(採桑壇)을 옛터에 지었다.
공혜왕후는 항상 이곳에서 잠례를 행했다.
인조 20년(1642)에 세워졌는데 이름은 취미정(翠微亭)이었다.
현종 5년(1664)에 개수하고 이름을 관덕정으로 고쳤다‘라고 적고 있다.
관덕정 장소의 용도
조선전기는 누에를 처음으로 치기 시작한 잠신(蠶神) 서릉씨(西陵氏)에게 제사을 지내는 잠단의 자리로 성종도 이곳에 채상단을 중건하고 공혜왕후(한명회의 막내딸)가 이곳에서 잠례를 치었던 곳으로 사용하였고 임진왜란으로 이곳도 궁궐과 같이 소실되었다고 추정된다.
임란이 끝난 후 광해군이 동궐의 많은 부분을 복원했으나, 이곳까지는 못하고 인조시기에 ‘청록빛 산의 색’이라는 뜻의 ‘취미정’을 이곳에 중건한다.
잠단과 관계없는 취미정의 이름은 이곳에 뽕나무와 잠단이 없어졌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관덕정은 활을 쏘는 장소인가
현종이 관덕정으로 개명되기 이전의 이름은 취미정으로 활터와 관계없이 ‘청록빛의 색’을 가진 아름다운 명칭이기에 당시의 이곳을 활터로 보기에는 무리라고 본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 경도 편에 ‘관덕정은 춘당대 동북쪽에 있으며 곧 사정(射亭)이다’라 하여 이곳이 활터에 세워진 정자라고 적고 있어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과거시험 초시, 복시, 전시 중 마지막 단계인 대과인 전시는 궁궐에서 치러지며, 창덕궁 시절에는 보통 춘당대에서 시험이 이루어졌다. 춘당대는 네모형태의 넓은 마당으로 영화당과 관덕정의 사이에 있으며 한변의 길이는 약 60m 정도다.
대전통편(大典通編)에 의하면 무과시험에서 과녁의 거리는 100보(약 120m)가 되어 시험장은 춘당대와 그 옆의 연못을 넘는 곳까지 확장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즉 대과의 문과시험은 춘당대로 영역만으로 충분하여 영화당을 주관 건물로 사용하였지만, 무과시험은 춘당대 영역을 넘어서야 함으로 영화당이 아닌 새로운 건물이 필요하였다고 본다. 그 결과 영화역의 건너편 언덕에 있던 취미정을 용도에 맞게 리모델링하고 이름도 관덕정으로 변경했다고 볼 수 있다.
관덕정에서 직접 활의 시위를 당길 수도 있겠지만, 주 용도는 무과시험을 과장하거나 궁궐 수비군의 훈련을 사열하는 장소였다고 보인다.
현재 관덕정은 대온실의 동쪽 언덕에 2칸 건물로 남서향으로 자리하는데 건물을 보면 이상한 생각이 든다. 건물은 비합리적인 구조로 구성되어 있고, 건물 앞에 있는 초석은 활 쏘는 장소였음을 나타내고 있는데 과연 원형인지 의심이 들게 한다.
재료의 마감 상태를 볼 때 근래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며 여기저기 복원에 대한 자료를 찾아봤으나 아직 이에 대한 내용을 알아내지 못했다. 이번 자료검색에서 근현대자료가 오랜 된 자료보다 찾기가 더 어렵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동궐도 - 관덕정 상세
「동궐도」에서 관덕정은 2칸 건물로 서남향을 하고 있으며 뒤편에는
‘ㄱ’자 꺾인 5칸의 벽이 없는 행각이 있고 남쪽으로는 궁궐에서
성균관으로 가는 길과 그 출입문인 집춘문(集春門)이 있다.
근대 자료인 「동궐도형(1907년)」에서는 관덕정과 뒤에 있는 행각은 없고
대신 관덕정의 자리에 서남향이 아닌 서향을 한 ‘3칸짜리 건물’이 보여
구한말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