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23장 29-36절 외식하는 자들의 악행과 당할 결과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거부하고 있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그들의 외식을 적나라하고 통렬하게 증거하고 계십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겉모습은 그럴 듯하게 보이면서 정작 내면은 완전히 썩어 냄새나는 탐욕으로 얼룩져져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그들이 대대적으로 자신들이 행하는 일을 옳게 보이고자 하는 일들에 대하여 그 일들에 숨겨진 진실에 대하여 지적하십니다. 우리 2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그들이 선지자들의 무덤을 다시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지나간 시대의 선지자들과 많은 의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을 하면서 살다가 박해를 받아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삶이 재 조명이 되어 이제는 그들이 옳았으며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이 확실했다고 인정하고 선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왜냐하면 그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일들이 모두가 이루어지고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지자들과 의인들이 예언할 당시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선지자들과 의인들은 비금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조상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숨겨진 불의를 드러냈기 때문에 그 말이 듣기 싫어서 죽여버렸습니다. 우리 34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을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조상들도 박해자였고 지금 예수님 앞에 있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역시 선지지들과 의인을 박해할 것이며 앞으로 오는 세대들도 역시 선지자들과 의인들을 박해할 것을 말씀하고 게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의 지금 행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말하는 그들이 전에 자신들의 조상들은 선지자들과 의인들에게 죄를 범했다고 시인하면서 그들의 묘를 만들고 단장하며, 또 그 앞에 비석을 세워 기념하고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기들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자기들 역시 똑같은 조상들의 전철을 밟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진리가 가리워진 이들은 그렇게 무덤을 만들고 단장하며, 비석을 세우면서 말합니다. 30절입니다.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자기들은 자기들의 조상들과 다르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바로 그점이 너희가 바로 그 선지자와 의인들을 죽인 조상들의 후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 아니냐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너희도 다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고 하십니다.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는 말씀은 아직도 그들의 죄악이 끝나지 않았으며, 그 죄악을 이어받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악은 악의 분량이 있으며 선은 선의 분량이 있습니다. 물론 선의 분량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계획하신 선한 역사의 분량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경우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까지가 예수님이 하셔야할 선의 분량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순종하셨고 하나님은 기뻐받으셨습니다.
이렇듯 악인들의 악한 분량도 있고 의인들의 의의 분량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이끌어 내실 때 바로와 바로의 신하들은 자기들의 고집을 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신판으로 인한 재앙이 하나씩 이루어져 애굽 전체가 고통을 당해도 그들은 자기들의 고집대로 게속해서 밀고 나갔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들에게 내리려고 하셨던 열가지 재앙을 다 내리신 후에야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이들이 행한 악의 분량을 채우게 하심으로 그들의 악에 대한 심판을 행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지금 선지자들과 지혜자들과 의인들을 위한 무덤을 만들고 비석을 세우는 이들 역시 예수님을 박해하는 악과 예수님이 세우셔서 진리의 복음을 전하게 하신 사도들과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박해하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선지자들과 의인의 무덤을 만들어봐야 이무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렇게 의롭게 죽은 자들을 위한 무덤을 만드고 비석을 만들어 기념하는 이유는 바로 자기들이 의롭다는 것을 보이고 싶어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너희가 옛날의 의로운 선지자들과 지혜자들과 의인들을 기념한다고 해서 너희가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희 조상이 악했다는 사실과 너희가 그 악한 자의 자손으로써 지금도 역시 악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낼 뿐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에 대하여 강한 어조로 말씀하십니다. 33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갰습니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뱀들은 지금 예수님 앞에서 외식을 행하고 있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말씀하고 있고, 독사는 그들의 조상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독사에게서 독사가 나왔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독사요 뱀답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34절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이는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와 지혜 있는 자들을 박해하는 악을 행한 것처럼 지금 너희도 너희 조상들과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악한 행위가 바로 죽이고 십자가에 못밖고 회당에서 채찍질 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는 일입니다.
이 일들은 예수님과 사도행전에 다 이루어졌음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런 그들에게 보응이 있을 것입니다. 그 보응이 어떻게 이루어질지에 대하여 35-36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아벨은 가인에게 죽임을 당한 첫사람 아담의 작은 아들입니다. 그는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다가 그렇지 못한 형의 미움을 받아 죽게 됩니다.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는 요아스왕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다가 성전 뜰에서 죽은 스가랴를 가리킵니다. 히브리어에는 모음이 없기 때문에 사가랴와 스가랴는 같은 자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라고 한 것은 성전 뜰에서 죽은 스가랴가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손자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정확하게 아시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다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람 가운데 제일 근접한 사람이 바로 요아스왕에게 죽임을 당한 쓰가랴가 맞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가랴가 성전 뜰에서 죽었다는 것과 앞으로 사도들이 박해를 당할 장소인 회당을 연결시키고 계십니다.
시대적인 보응의 날이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박해하고 사도들을 박해했던 유대인들은 AD 70년에 로마군대에 의해 짖밟혀서 그들이 행한 대로 보응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일은 그들이 영원히 불타는 지옥에 떨어져 영원한 불못 가운데 태움을 받으면서도 죽지 못하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2-15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이 옳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은 죄인이기에 옳은 사람이 없고, 오직 여러분 안에 임하신 그리스도가 옳으신 분이시기에 그분의 의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거짓된 외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을 따라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복된 삶을 사시길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