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정직을 저울에 달아보시는 하나님
[시편 37:29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로다
잠언 2:21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시편 37:11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시편 37:22
주의 복을 받은 자는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는 끊어지리로다
시편 37:9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언 11:6
정직한 자는 그 의로 인하여 구원을 얻으려니와 사특한 자는 자기의 악에
잡히리라]
인간을 가장 낮게 규정하면 인간도 자연만물 중에 하나로써 자연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자연만물이 순환하는 이치 처럼 인간의 "생노병사" 가
바로 그것이다. 11월, 조락의 계절
가을의 끝자락에서 들판의 나무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을 보라.
자연 따라 와서 자연 따라 순(殉)하는 마지막 삶의 장관을 연출하는
그 아름다운 모습에서 잠시나마 인간의 생노병사에서도 어쩌면
너그러히 눈을 감게 되는 감상에 젖을 수 있는 듯 하다.
그러나 그것은 본의 아닌 한 순간의 강제적 승복이요 감상일뿐,
이내 정신을 차리고 돌아서면 인간의 생노병사 만큼 현실적으로
처절한 아픈 체험이 없다.
인간이 흙으로만(자연으로 왔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한줌 흙)
지어지고 말았다면 조금은 견딜 수 있었을까? 아니다. 인간이 흙으로만
지어졌다고 할지라도 인간에게는 자연만물과 다른 높은 차원의
영혼이 반드시 추가된 피조물이므로 생노병사에 엄청난 의문과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즉 자연인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원천적으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을 주셨다는 점이다.
인간에게는 이 땅에서의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전3:11).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생(生)은 좋으나, 노병사(老病死)는
끔찍한 치욕이다. 따라서 생명공학도들과 인간게놈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생노병사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며, 과거 석가모니도 생노병사에
회의를 품고 출가하여 입산수도에 들어갔던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할것없이 그 마음 중심은 자연 그 이상이기를 갈망한다.
자연현상, 그 이상인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충족시켜 주실분도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의인이 땅을 차지하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라 했다. 정직한 자,
땅에 거한다고 했다. 주의 복을 받은 자,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
그 도를 지키는 자가 모두 땅을 차지한다고 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가납되는 자가 모두 땅을 차지한다고 함을 볼 때,
우선 우리의 육체가 살아서 받는 이 땅에서의 영생이 하나님이
주시리라 약속하신 유업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유업을 받는 조건은
인간의 "정직함(의)" 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직(의)" 이다.
우리가 정직하기만 하면 하나님을 절로 만나게 되며 영생(유업)을
받게 마련이다. 정직이란 어디서 나오는가?
우리의 양심이 명하는 바가 곧 정직이다.
각인에게는 양심이 있으며 그 양심은 곧 각인에게 하나님의
좌정하심이 되기 때문에 정직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고 했던 것이다.
자기 양심을 깨끗이 지키는 자는 정직한(의로운) 자이며 하나님의
명을 따름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을 따라, 즉 양심을 지켜 정직할 수 있는자가
과연 몇이나 되는지, 그리고 그들이 과연 누구인지 하나님은
우리의 정직에 대해서 반드시 시험하시는 분이다.
즉 인간의 정직을 반드시 저울에 달아보시는 분이 하나님이다.
저울에 달려서 함량에 맞으면 시험에 패스한 것이고, 함량 미달이면
불합격 판정이다. 하면, 우리의 정직을 시험하시는 하나님의
시험문제지는 무엇이며 우리의 정직을 달아보시는 하나님의 저울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아담)을 흙으로 지으신 후에, 하나님이 그 코에
불어넣으셨다고 하신 최초의 “생기(말씀)” 였다. 아담은 예수님을
예표한 자이므로 아담에게 들어간 이 생기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우리 인간에게 최초로 주신 복음의 말씀이었다.
즉 천국복음이었으며 그리고 그것은 비유였다.
비유였기 때문에 천국의 현실화를 말씀하지 아니했다.
조만간 천국이 오리라는 천국예언의 복음이었으며 그 예언은
분명히 비유였다. (예수님은 ‘천국이다!’ 라고 하지 않고 ‘천국이
가까이 왔다!’ 라고 했음을 기억하자)
천국이 오리라는 천국예언의 복음은 비유이기 때문에, 그 비유의
말씀(생기)은 천국이 오기 전에 우리에게 풀어보라고 내주신 숙제가
되는 것이며, 숙제이므로 그것은 “시험문제지” 였으며 우리의
실력함량이 달리는 “저울” 이 된다.
예수님이 주신 비유의 말씀, 즉 시험문제지를 풀어내는 실력의
키워드는 다름 아니라 오직 “정직함” 하나에 달려있다.
정직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험지로 내주신 성경전체의
비유가 사통팔달 만사형통으로 풀어지게 되어 있다.
정직함 하나로 성경을 깨달아서 그 정답을 써내면 영생이다.
따라서 정직한 자(의로운 자)가 땅을 차지한다고 했던 것이다.
하면, 어떻게 해서 사람은 하나님이 만족하실 만큼의 정직함을
소유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간단하다면 아주 간단하고 어렵다면 아주 어렵다.
죽기를 두려워 하지 않으면 아주 간단하고 두려워하면 아주 어렵다.
사람들은 성경이 비유임을 뻔히 알고 있음을 확증할 수 있다.
왜냐면 예수님은 천국의 주인으로 오셔서 천국에 대한 비유만 베풀어
말씀하셨고 비유가 아니면 한 마디도 하지 않으신다고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으면 앞뒤 문맥이 맞지 않아서 우선 성경의
첫 단추인 창세기 한줄도 읽을 수 없기 때문에
누구라도 성경이 비유가 아니라고 부인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것이 인간의 기본적 양심이고 정직함의 출발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기성교단 사람들은 이러한 기본적 양심과 정직함마저
송두리째 내팽개치고 앞뒤 문맥이 맞지 않아도
문자 그대로 읽고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문맥이 맞지 않으면
여기서는 이렇게 믿고, 저기서는 저렇게 믿으면 그만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믿음에 일관성이 없고 논리가 없고 들쑥날쑥 혼란스럽기
짝이 없기 마련이고, 혼란스럽기 때문에 아예 아무것도 묻지 않고
무조건 믿고 구원받겠다는 맹신을 택한다.
이러한 맹신은 기성교단의 목회자와 신도들 모두에게 서로 말없이
통하는 관대함이다.
(그들은 신도 머릿수로 승부하고자 한다. 그러나 하나님도 과연 그리하실까?).
자칭 매시야교단은 어떤가? 그들은 성경의 비유문자를 풀었다고 주장하지만
그 일관성 없는 치졸함의 해석이야말로 개도 웃고 소도 웃게 한다.
하지만 자칭 메시야교주는 자기의 신비체험을 적당히 버무려서 내놓은
요리인지라 사람들은 먹고 즐기며 천국혼인 잔치집에 초대받은 양
득의만만하다.
하늘을 찌를 듯 사기충천하다 보니 거기에 중독되어서
성경에 누누히, 그리고 분명히 기록된 자칭 메시야에 대한 경고에는
눈이 감겨 있고 귀가 막혀 있다.
즉 성경 여러 군데서
자기를 들어 메시야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적그리스도임을 분명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모르쇠 작전을 쓰고 역시 관대하기가 이를데 없다.
왜 기성교단이나 자칭메시야교단 사람들은 자기들의 양심을 팔아먹는
일에 관대한가?
죽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죽기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거짓인줄
알면서도 그곳에서 이탈하면 달콤한 거짓말로 약속된 영생일지라도
그것을 놓칠 것을 염려하여 싫어한다는 말이다. 거짓일지라도
그 영생의 약속이 너무나 소중하고 달콤해서 떠날 수가 없음이다.
그러나 아무리 영생이 좋더라도 그것이 하자가 있다면 즉시 떠나야
하는 용기와 정직함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강력히 요구하신다.
즉 하나님은 그 비진리에서 죽기를 요구하신다. 죽어야 진정 살게
되는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마련하셨기 때문이다.
맨 처음엔 기성교단이 세워지고, 그 다음엔 자칭 메시야(적그리스도)가
세워지고, 맨 나중엔 참메시야가 그 신분을 감추고 오시도록 하나님이
창세부터 정하셨던 것이다.
다시 말해 맨 나중에 오신 참 메시야께서 우리가 그동안 답안지를 써내지
못한 성경의 비유문자에 대해서 마침내 그 정답을 가지고 오시는 것이다.
이로써 영생은 가장 마지막에 나중 된자들에게 돌아가도록 의도하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인내하라고 하셨던 것이며
“먼저 된자는 나중되고, 나중 된자는 먼저 된다” 고 하지 아니하셨는가.
품삯은 영생의 복을 뜻하는데, 하나님의 포도밭에서 일한자들의 품삯을
주실 때도 가장 뒤에 들어온 자로부터 시작해서 품삯을 주신
기록도 있지 않는가?
먼저 품삯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세대에 구원받는 첫열매가 됨을 뜻하고,
뒤에 품삯을 받았다는 것은 오늘의 첫열매와 함께하는 그리스도의
천년통치 후에 둘째열매로 구원받게 됨을 뜻한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 정직을 요구하신 것이 된다.
먼저 세워진 것은 다 짝퉁이고 가장 뒤에 오는 것으로 명품이 되도록
하신 까닭은 우리에게 제발 정직하도록 요구하신 것이 된다.
우리의 정직을 달아보시는 하나님이 그 함량이 미달되는 자들은
오늘의 구원에서 제외하시고 먼 훗날의 구원대상으로 밀쳐내신다(둘째 열매).
그리고 그 함량이 꽉 찬 자들에게는 오늘의 왕과 제사장반열인
첫열매로 거두신다.
정직하지 못한 자들은 짝퉁이에 속게 하시고, 정직한 자들은
속지 않게 하시므로써 구원하신다.
“정직하기만 하면 자다가도 떡(영생의 떡)이 생긴다” ^^*
원문카페:https://cafe.daum.net/kkys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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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음이 즐거워야 행복해 진다고 합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모든것이 긍정적으로 보이게 되므로
얼굴엔 늘 미소를 짓게되고 밝고 유쾌하게 된답니다.
얼굴에 환한 웃음과 함께 오늘도 멋지게 시작하시고요.
항상 웃음이 있는 그런 행복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