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득의 기술 ]
홍역으로 인한 사망은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으며 지난 20년 동안 백신 접종을 통해 약 2,000만 명이 목숨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백신의 1차 접종률은 85퍼센트, 2차 접종률은 67퍼센트밖에 되지 않습니다.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단순합니다. 백신을 믿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처벌과 불이익을 주고 있음에도 여전히 아이들에게 백신을 접종하지 않는 부모들이 존재합니다. 이들은 홍역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정보가 가짜 뉴스라는 사실을 접하고도 자신의 확신을 조금도 바꾸지 않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은 백신에 관한 진실을 알리고 백신 거부자들에 대해 대대적인 설득 작업을 전개하고 있지만 지금도 아이들에게 백신을 맞히지 않는 부모들은 여전합니다.
캐나다 퀘벡의 마리-엘런이라는 산모 역시 백신 거부자였습니다. 출산예정일보다 석 달이나 이른 2018년 9월에 채 2킬로그램도 되지 않는 넷째 아이를 출산한 마리-엘런은 당시 홍역이 유행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고도 아기에게 홍역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이미 출산한 세 아이에게도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는데 병원에 갈 때마다 의사들은 그녀에게 백신의 효능을 설명하고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았을 때 아이들에게 어떤 위험이 뒤따르는지를 경고했습니다.
의사들은 그녀의 질문은 무시한 채 그저 백신에 관한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정보만을 전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리-엘런의 입장에서는 의사를 만날 때마다 자신이 나쁜 엄마인 것처럼 공격받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결국 의사들의 설득은 마리-엘런의 마음을 바꾸기는커녕 오히려 그녀의 믿음을 한층 견고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칠삭둥이 넷째가 퇴원할 무렵 병원 간호사들은 아이의 백신 접종을 위한 마지막 시도로 신생아 전문의 아르노 가뇌르(Arnaud Gagneur)를 마리-엘런에게 소개했습니다. 아르노는 마리-엘런과의 만남에서 그녀에게 마음을 바꾸라고 윽박지르지도 않았고 백신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전달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르노는 백신을 맞지 않기로 한 그녀의 결정을 받아들이며, 다만 상황을 조금 더 자세하게 알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한 시간 넘게 이어진 면담에서 아르노는 그녀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백신의 안전성과 관련한 혼란스러운 정보가 세상에 넘쳐난다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아르노는 다른 의사나 간호사처럼 온갖 과학적인 사실로 그녀의 생각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르노는 어디에서 그런 말을 듣고 그렇게 걱정하느냐고 마리-엘런에게 물었습니다. 그녀는 인터넷에서 백신 관련 글을 읽기는 했지만 정확한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르노는 온갖 주장이 난무하는 드넓은 정보의 바다에서 백신이 안전한지 확신하기가 어려웠을 거라는 사실에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의사라는 직업적 전문성을 바탕으로 백신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얘기해도 좋을지 물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아르노는 마리-엘런의 신뢰를 얻은 상태에서 그녀가 백신에 관한 지식을 새로 구축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면담이 끝나갈 무렵에 아기에게 백신을 맞히든 맞히지 않든 그녀가 자유롭게 선택하면 된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그녀의 능력과 진심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마리-엘런은 결국 아기에게 백신을 맞히고 퇴원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마음을 바꾼 결정적인 계기가 “백신을 맞히든 맞히지 않든 아르노가 내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라고 회상했습니다. 마리-엘런은 성장한 다른 세 아이에게도 백신을 접종했고 동서를 설득해서 조카들도 백신을 맞게 했습니다.
아르노 가뇌르가 사용한 설득의 기법을 동기강화 면담(motivational interviewing)이라고 합니다. 임상심리학자 빌 밀러(Bill Miller)와 간호사 스티븐 롤닉(Stephen Rollnick)에 의해 개발된 이 방법의 요체는 본인 스스로가 동기를 부여해서 자신의 행동을 바꿀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동기강화 면담은 겸손함과 호기심을 동시에 드러내는 태도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공격하거나 깎아내리는 대신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이 기법의 핵심입니다. 설득하는 사람의 역할은 거울을 상대방 앞에 두고 그 자신의 믿음과 행동을 꼼꼼히 살펴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설득은 전도사처럼 자신의 생각을 설교하거나, 검사처럼 상대방의 잘못된 점을 조목조목 따지거나, 정치인처럼 감정에 호소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겸손한 마음으로 상대방에게 호기심 어린 질문을 하고, 상대방이 하는 말을 경청한 후 진심으로 상대방이 잘되기를 바라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최종 결정은 그에게 맡기면 되는 것입니다. 쉬운 듯이 보이지만 실행하기는 어려운 ‘설득의 기술’을 가까운 지인들에게 한 번 사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지역산업입지연구원 원장 홍진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