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히더의 저서를 읽어보았는데,
내용은 토착민의 역할만 과도하게 강조하고 이주민의 역할을 축소하려는 잘못된
동서 유럽 고고학계 동향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무덤 몇 개, 무기 몇 개 갖고 이주민 집단이 토착민을 싹다 쓸어내고
예컨대 게르만족은 서유럽, 슬라브족은 동유럽을 차지했다는 썰이 19~20세기를 풍미했는데,
이에 대해
원래부터 토착민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고 이주민은 별 것 없었다 내지는
무조건 토착민이 옆에 이주민 무기를 받아들인 거란 론이 떴습니다만 이 또한 잘못된 워딩임이
밝혀지고 있다고 하네요.
즉 인종 청소는 없었어도 상대적 소수 이주민이 최상층, 상층, 중층을 차지한 건 사실이고,
토착민 대부분은 물론 이주민의 비중과 이주민의 태도, 문화 수준에 따라
상층에서 하층까지 분포했습니다만, 어쨌든 이주민에게 최상층은 양보했고
상층과 중층에서도 상당히 밀리는 수준이었던 건 부인할 수 없다는 겁니다.
다시 요약
1. 대부분은 이 경우 일제 시대만 떠올리는 나머지 토착민은 무조건 하류층, 중상층은 이주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건 아니다.
--------> 오히려 근세 일제시대 같이 피지배 조센징들이 대부분 다 중하류층에 쑤셔박혀진 게 상당히 특이한 경우인데
역사 좀 안다는 분들이 이걸 무비판적으로 통으로 고중세에 적용하더군요. ;;
기록문화에 철두철미한 조선사의 특이성, 상당히 악질적이었던 일제 시대의 특이성 탓에
우리가 다른 나라 역사를 해석할 때 상당 부분 장애가 생기는 게 여기에도 적용됩니다.
2. 즉 계층 피라미드에서 높은 사다리꼴 기준으로 주욱 찍 선을 그어서 유리한 쪽은 이주민,
불리한 쪽은 토착민이 된다. 그 선이 어디까지 내려오는지는 이주민 VS 토착민의 힘겨루기 및 타협에서 결정된다.
3. 대부분의 경우 이주민의 언어, 종교 등 문화적 요소가 우세하며 이것이 통설이지만,
토착민이 인구가 많고 문화 수준이 원래부터 이주민보다 현격히 높았다면 이것이 역전되는 예외가 발생한다.
3-1.-1. 갈리아 남부, 에스파니아 등지에서는 토착민 인구가 워낙 많았고 문화도 발전해 있었기에
역으로 이주해온 게르만족의 언어, 종교, 문화가 토착민의 바다에 쓸려버리고 만다.
3-1-2. 노르만족이 인구압과 자체 분규를 못이겨 서쪽과 동쪽으로 확장하는데,
실은 동쪽으로 이주한 노르만 이주민이 인구는 더 많았다.
서쪽으로 확장하려면 배를 탈 수 있어야 하는데 배값 비용이 생각보다 만만찮았고
강을 타고 이동하는 게 더 수월했기에 서쪽으로 확장한 부류는 비교적 잘 사는 부류에 국한된 반면
동쪽은 그야말로 개나소나 아무나 가서 더 많이 이주했다.
그런데도 동쪽으로 이주한 노르만인들은 언어, 문화, 종교가 역으로 슬라브화되고 만다.
물론 최상층은 노르만인들이 독차지했지만 상층~하층은 다 슬라브족이었고 이렇게 저렇게 혼혈되다보니
시간이 흘러 최상층 노르만인도 다 슬라브족 DNA 바다에 빠지고 만다.
이유? 슬라브족이 앵글로-색슨 혹은 갈리아-로만인 혹은 프랑크족보다 저항을 잘해서?
아니었다. 조건은 오히려 불리하였으나..... 그냥 간단히 요약하면 슬라브족 인구가 엄청 많아서 시간은 슬라브족들
편이었다.
3-1-2. 갈리아 북부는 무려 게르만족 침투가 백수십 년 더 앞서 있었기에 3-1의 현상이 벌어지지 않았다.
3-2-2. 서쪽으로 이주한 노르만인들은 보다 소수가 갔는데도 본인들 언어, 종교, 문화는 동쪽으로 이주한
동포들에 비해선 토착민에게 보다 영향력이 컸다. 그냥 그 당시엔 그들이 이주한 브리타니아나 갈리아 북쪽
등등등이 동유럽보다 인구가 적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물론 이들도 결국 다 토착화되고 말지만 토착화되는 속도가 동유럽측 노르만들보다는 느렸다.
3-2-3. 그러나 역시 이주민의 문화적 요소와 정체성이 토착민이 아무리 인구가 많았어도
영향력은 더 크다.
잉글랜드를 로만 브리튼인들에게 빼앗은 잉글랜드 상황을 보면
앵글로-색슨 인구 비중이 150년 동안 인구 20%만 대체한 걸로 나온다.
그런데도 잉글랜드는 문화와 종교가 거의 앵글로-색슨화되고 만다.
3-2-4. 스코틀랜드 북부 섬들에서 아이슬란드에 걸친 주민들은 거진 노르만적 정체성에 가깝지만,
지역 DNA를 분석해보면 부계 DNA 는 70%만 노르만, 30%가 토착인,
모계는 거꾸로 30%만 노르만, 70%는 토착인이다.
즉 토착인 비중이 거진 절반이란 건데 그럼에도 정체성이나 문화는 거진 노르만화되었음을
잊어선 안 된다.
3-2-5. 로마 제국과 충돌하던 게르만족이 죄다 옛 로마 제국으로 넘어가면서
옛 게르만족이 지배하던 지역은 전부 슬라브화되었는데,
과거에는 슬라브족이 게르만족들을 싹 다 쓸어내고 그 지역을 차지한 걸로 잘못 해석했고,
이를 반박하던 자들이 다시 토착설을 강조해 슬라브족이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걸로
이상한 썰을 풀었다.
그러나 실제로 드러난 건 게르만족들이 로마 제국령으로 이주하면서
옛 게르만족 거주 동유럽 지역은 가난하고 기술 떨어지는 게르만 잔존민만 있게 되어
인구밀도가 그전보다 1/2~1/3로까지 팍 떨어졌고, 그 자리에 슬라브족들이 대량 밀고 들어오게 되니
이 게르만족들은 슬라브족들에게 동화되어 정체성을 잃게 된다.
여하튼 동유럽의 정체성은 이주 슬라브족의 영향력이 훨씬 더욱 컸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다시 확증되었다.
!!!! 그러한데..... 나무위키 일부 서술을 보면 한반도 삼한의 토착성만 과도하게 강조한 옛날 연구만 들고와서
이주민의 영향력을 과하게 제한해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듭니다.
꼴랑 150년 동안 바다 타고 건너온 앵글로 색슨이 잉글랜드의 인구 20% 비중만 갖고, 정체성과 사회상을 바꿔버렸습니다.
그러한데, 천 년 넘게 육로로 남하해온 예족들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남부 선주민은 그냥 계속계속
무기나 묘제만 받아들여가며 연속된 정체성을 이어갔다? 이건 좀 아니다 싶은데.....
피터 히더가 강조했던 20세기 후반 서구 고고학의 토착민 편향성이 또 반복되는 건 아닌가 심각한 의심이 듭니다.
첫댓글 요론거 관련해서 제일 최근에 발생했고, 따라서 증거도 많이 남아 있어 대표할 만한 사례로 볼만한 것이 노르망디공작 윌리엄의 잉글랜드 침공 이후의 잉글랜드겠네요.
극도로 소수만 온 거라서 상층 상당수는 기존 토착민들에게 꽤 배려했는데도, 언어와 문화에서 대단히 큰 영향력을 행사한 건 부인할 수 없죠. 그러한데 상당히 대규모로 들어온 게 분명한 북방 예족의 한반도 영향을 과소평가하려는 행태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뭔 전북 서부 지역 고고학이 연대가 안 맞는다고 이상한 소리나 하던데 참 그..... ;
피터히더 저서 사두기만 하고 아직 못읽고 있는데
재미있게 글 잘 읽었습니다
엥 껀바이껀이 당연한거 아닌가 싶은데용
원주민과 이주민간의 파워 게임이 그렇게 일방적일리가 없잖아용.
단 이주민이 원주민을 상회하는 힘(보통은 무력)이 없다면 이주민은 시체가 되거나 쫓겨나거나 잘해야 레이드 뛰는 오랑캐 취급일테니 성공한 이주민은 원주민을 지배하는 구조가 되기 쉽상 아닐까 합니다.
이것도 일종의 생존편향이겠지요.
문제는 이상한 사람들이 어떤 이데올로기성 편향으로 지나친 원주민 근원설 혹은 이주민 근원설을 주장한다는 겁니다. 현재 한국사의 경우 예전 서구학계처럼 과도한 원주민 근원설이 판치고 있는 상황이 우려됩니다.
게르만의 로마영내 이주 및 그 공백지로의 슬라브 침투
이걸
게르만→발해유민, 로마→고려, 슬라브→여진
이렇게 치환해도 될까요?
대강 비슷합니다. 이는 예맥 -> 야요이 -> 조몬에게도 적용됩니다.
@마법의활 음...발해유민 이동→공백지 발생→여진 대거이주 순이라면,
야요이도 야요이인들이 먼저 이동하여 상대적 공백이 발생 후 예맥이 내려온 것이었나요?
저는 예맥의 이주가 야요이 이주를 촉발시킨걸로 생각했거든요.
@무장간첩 예맥은 그보다는 중원 세력의 전진에 타의로 밀려난 측면이 더 큽니다. 공백 이론과는 또 얘기가 다릅니다.
@마법의활 제가 이해한게 맞겠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