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룡골에는 여자가 없다☆
삼짇날 지내는 오룡골 산신제-正牧스님의 저서-오룡골에는 여자가 없다 -93~96쪽-26회
작성자:甘露華
작성시간:17.06.15
삼짇날 지내는 오룡골 산신제
음력 삼월 삼일은 만물이 따뜻한 봄기운을 머금고 일어난다는 복양절復陽節입니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이날을 삼짇날이라 부르며 명절로 여긴 복된 날입니다.
오룡골에서는 삼짇날 오룡 산신제山神祭와마을신을 섬기는 당산제堂山祭를 지냅니다.
그래서 올해 78세인 마을김영감님은 초하룻날 이른 아침부터 올라와 당산나무 주위를 청소하느라 분주하였습니다.
내가 밖으로 나가니 영감님은 “스님, 삼짇날 산신제 지내는 것 알지요?
올해는 아무래도 나 혼자 지내야겠어요? 시장도 봐야 하고 이거
참.....” 하면서 너털웃음을 지었습니다.
그 소리에는 세월의 무상함,
쓸쓸함이 진하게 배어 나오는듯 하였습니다.
오룡골 당산나무는 수백 년 된 서어나무 고목인데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본래 거목이 있었는데 그것은 죽고 그 나무 사이에서 또 한 나무가 자라나와 지금 이렇게 몇백 년을 버티고 서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의 무게를 버티다 못해 올 일월에 커다란 두 가지가 부러졌습니다.
그 아픔을 삼 개월이나 참다가 마침내 봄을 맞으며 서러운 눈물을 열흘 넘게 흘리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는 산신제를 지낼 때 동네 이장과 더불어 외석리 주민들이
많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점차 뜸하다가 이제는 오룡골 사람들조차 참석하지 않습니다.
옛 것을 지키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극락으로 가시고, 젊은이들은 고향 선산과 전답 팔아 도시로 나가 살기 때문에 오룡골 토박이라고는 김영감님과 또 한 집 할머니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이곳에 온지십년이 넘은 화백이 있지만 지난 정월에 모친상을 당해서 관습상 부정한 사람으로 여겨 참석할 수 없습니다.
김 영감님은 제물을 준비해야 한다며 손가락을 꼽으며 근심어린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내뱉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내가 “영감님! 제물은제가 준비할 테니 염려마시고 새끼줄만 준비해 주세요.”하자 “어! 그러면 안되지요” 하면서 만류 하다가 마침내 제물을 주문하였습니다.
문어, 명태, 과일, 과자, 떡, 미나리, 막걸리, 향, 초, 창호지......., 그것도 두 군데 몫입니다.
하나는 당산님,
하나는 산신님 몫입니다.
나는
먹구름이 차곡차곡 쌓이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시내로 내려가 제물을ㅡ모두 준비해 왔습니다. 장을 다 보고 돌아오는 길부터 많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틀 동안 많은 비가 내리더니 삼짇날은 그치고 구름 사이로 파란
얼굴의 하늘이 오룡골 골짜기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전날 김영감님은 새끼줄을 정성들여 꼬아 나무에 묶어 두고 오늘은 창호지를
접어 그 사이에 걸어두었습니다.
새끼줄은 장수長壽를 기원하는 것인ㅡ데 왼쪽으로 꼬는 것은 밝음光明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한지로 된 창호지는 돈이요, 재물을 기원하는 것입니다.
무량수 무량광 의식주가 풍요로운 극락정토를 기원하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영감님은 평화로운 오룡골, 자식들의 안녕과 자신의 건강을 기원하고, 나는 모든 사람들이 정토문 염불의 참뜻을 알고 진실한 믿음ㅡ을 일으키기를 염원하며 을유년 산신제를 마쳤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원시사회로부터 내려오던 자연물 숭배 풍습이공동체적 신앙형태로 발전한 것을 토테미즘Totemism이라고 부릅니다.
혈연적 지연적 집단이 자신들과 자연물 사이에 공통의 기원 혹은 운명적 결합관계가 있다고 믿고, 그 자연물을 공동으로 숭배하는 신앙형태입니다.
우리 민족이 시조로 받드는 단군은 웅녀와 환웅 사이에 탄생하였다고 하며 곰을 조상신이요, 수호신으로 신성시하였던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까지도 행해지고 있는 마을의 당산제堂山祭, 동신제洞神祭, 큰
마을의 기운을 머금고 있다는 진산鎭山에 대한 믿음 등이 모두 토테미즘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토테미즘은 공동체의 화합과 단결,
협동정신을 도모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그 공동체적 신앙형태는 점점 사라지고, 그 산, 그바위, 그 나무 아래서 개인의 복을 빌고 있는 모습들만 보입니다.
아마개인주의적 사고가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전통신앙 모습에는 선조의 지혜가 스며있습니다. 일 년에 한 두 번은 마을 사람들이 마을 산과 당산나무 아래 함께 모여 정답게 추억을이야기하고 내일을 설계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그리운 시대입니다.
이제 자연의 신비함 그 청정광명을 찬탄하되 정령精靈 혹은 신성한힘을 실체화 하여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적 세계관을 구현하고 공동체적 복된 삶을 위한 현대적 토테미즘을 연구해 보아야 할 때입니다.
정토문의 염불은 자연과 생명의 청정광명, 그 세계를 염원하며 성취
하고자 찬탄하고 관찰하는 수행입니다.
염불수행은 전통신앙의 간절한 종교심마저 섭수하여 차원 높게 승화시키는 넓고도 깊은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나는 매년 삼짇날 지내는 오룡골 산신제가 마을 사람들이 모여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염불재念佛齋가 되도록 날마다 일하며 염불 정진하는 생활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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