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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저에게 4연패의 가장 큰 원인이 뭐냐고 물으면 '4게임 38개의 사사구'라고 답하겠습니다. 투수진의 멘탈을 망가뜨릴 어설픈 수비, 쉴 새 없이 허용하는 안타도 문제였지만 기본적으로 상대 타자를 무료로 진루시켜주는 사사구가 너무 많았습니다. 볼넷과 데드볼이 뭐가 나쁘냐면, 어떻게든 타자를 아웃시킬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봉쇄해버린다는 겁니다. 수비력이 아무리 약하더라도 어쨌든 투수 등 뒤에는 수비수가 7명이나 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투수들이 왜 자꾸 볼을 던지는지 한번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그걸 고민하기 위해 본질적으로 '투수가 던지는 공'에 대해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우선, 투수가 던지는 공을 설명하는 단어가 크게 3가지 있습니다. [구위] [구종] 그리고 [구질]입니다.
구위는 '공의 위력'을 뜻합니다. 우리가 중계화면이나 전광판에서 보는 144Km라는 숫자는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나는 순간의 스피드입니다. 스카우터나 전력분석원들이 갖고 있는 스피드건 중에는 투수가 던지는 순간과 포수 미트에 꽂히는 순간의 스피드가 그래프로 나오는 제품들이 있는데 소위 말해서 '볼끝에 힘이 있다' 혹은 '종속이 좋다'는 투수들은 그 차이가 적습니다.
(대개 4~5Km내외면 차이가 적다고 보는데 제가 전성기 박명환의 공을 그 스피드건으로 봤을때 4Km정도의 차이를 보였습니다)
공이 빠르기만 하다고 힘이 실리는 건 아니고, 어떻게 들어오느냐에 따라 타자가 대처하기 어려워질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을 통틀어 [구위]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구위가 좋다]는 것은 공에 힘(스피드를 포함한 여러 의미)이 있다는 것 뜻하겠죠.
구종은 '공의 종류'를 말합니다. 직구(요즘은 속구라고 말하죠.Fastball)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이렇게 투수가 던지는 다양한 종류의 공을 말합니다. 여러가지 공을 원하는대로 잘 던질 수 있으면 타자와의 승부에서 선택지가 많아져 유리하겠죠. 이런 투수들을 보고 우리는 [구종이 다양하다]고 말합니다.
구질은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난 후에 나타나는 공의 특징입니다. 쉽게 말하면 같은 커브라도 김진우가 던지는 커브와 박명환이 던지는 커브는 그 공이 들어오는 궤적이나 모양새가 다른데 그 차이를 [구질]이라고 말합니다. 해설자들이 가끔 [아무개 투수는 구질이 다양하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틀린 표현입니다. 여러가지 변화구를 던질 줄 아는 것은 "구종이 다양한"것이고, 구질은 "투수마다 다 다른 것"이니까요.
투수들은 저마다의 구위-구종-구질을 가지고 마운드에 섭니다. 이 패를 들고 타자와 싸우는데 여기서 또 한가지 중요한 능력이 있습니다. 공을 자기가 원하는 코스로 던지는 능력, 그러니까 [제구력]입니다. 지난 4경기에서 우리 투수들에게 늘 문제였던 제구력 말입니다.
제구력은 두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능력]과 [볼을 던지는 능력]입니다. 팬들은 '스트라이크를 잘 던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야구인들은 볼을 활용하는 능력을 더 중요하게 봅니다. 스트라이크를 잘 던지면 10승투수가 되지만 볼을 잘 던지면 15승 투수가 된다는 야구 격언이 그래서 나왔죠. 유인구를 잘 써야 된다는 얘깁니다.
지난 2월 중순, 송진우 코치가 의미있는 발언을 했습니다 "볼넷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겁니다. 물론 이 말은 볼넷을 많이 주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 인터뷰에서 송진우 코치가 했던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컨트롤이 중요하다는 것은 맞다. 하지만 볼넷을 주지 않으려 힘없이 가운데로 밀어넣는 공은 의미가 없다. 오히려 그러다 큰 것을 맞으며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다. 차라리 볼넷을 주더라도 자신있게 자신의 공을 원하는 곳으로던지는 게 중요하다. 볼넷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이다. 어려운 말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중요한 건 어떤 상황에서든 피하지 않고 자신의 밸런스에서 공을 던져야 한다는 거다"
(2월5일자 OSEN. Written by_이상학 기자)
KBO통산 최다승/최다이닝/최다탈삼진에 빛나는 레전드 투수의 천금같은 조언입니다. 맞습니다. 모든 투수는 저렇게 공을 던져야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투수들 중에 힘없이 가운데로 밀어넣는 공을 던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투수들은 어려서부터 타자의 무릎쪽이나 바깥쪽 아래로 꽉찬 공을 던지는 연습을 합니다. 한가운데 던지는 연습을 하는게 아닙니다. 가운데는 맞으니까 코너웍 되는 공을 던져야 된다는 생각을 다들 한단 말입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꽉 찬 코스의 공을 던지되 스트라이크와 볼을 필요에 따라 조절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송진우 코치는 이게 가능했습니다. 가능할 뿐만 아니라 현역시절 그걸 한국에서 제일 잘했습니다. 문동환이나 이상군, 한용덕도 그걸 잘했습니다. 정민철도 마찬가지고 류현진도 그랬죠. 정민철과 류현진은 불꽃같은 강속구를 던지며 그걸 보완할 낙차 큰 변화구도 잘 섞었습니다. 그래서 많이 이긴겁니다. 구대성은 어떻습니까. 꽈배기 같은 폼으로 타자 무릎을 꽉 차게 파고드는 공을 던지면 아무도 못쳤습니다. 송진우 자신도 그랬고 그와 함께 전성기를 이끌었던 동료들 전부 그걸 잘했단 얘깁니다. 볼카운트가 불리해도 자기가 원하는 공을 (때로는 유인구도) 자신있게 던져 타자와 싸웠죠.
문.제.는
지금 투수들은 그게 안 됩니다.
안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분명한 것은 그게 송진우 코치만의 잘못은 아니라는 겁니다. 제구력이라는 건 결국 좋은 폼이나 자기 몸에 맞는 밸런스에서 나옵니다. 투수들은 이미 10년 가까이 나름의 폼으로 공을 던졌고, 밸런스라는 건 아주 작은 것으로도 확 변하거나 무너지거든요. 예를 들면 발을 들어 올리는 미세한 높이, 공을 놓는 찰나의 순간, 그 짧은 타이밍에서 손끝의 작은 차이, 포수를 바라보는 목의 각도 같은 것들요. 최원호 같은 투수가 왜 그렇게 팔을 비꼬면서 던지고 김광현은 왜 그렇게 역동적인 폼으로 공을 던지겠습니까. 그들을 가르쳤던 코치와 감독들이 전부 바보가 아닌 이상 말입니다.
구위가 훌륭한 투수는 많습니다. 구종이 다양한 선수도 많습니다. 타자를 상대하기 유리한 구질을 가진 선수들도 있고요. 그것을 그 투수가 가진 [자질]이라고 말하는데 그 공을 자기가 원하는 코스로 던지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이걸 잘하면 좋은 투수, 1군 선수가 되는거고 그걸 못하면 마운드에 서지 못하는 겁니다. 김혁민의 직구가 KBO 몇손가락 안에 들고 유창식의 슬라이더가 일품이지만 그걸 적당한 타이밍에 원하는 코스로 넣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다른 투수들도 마찬가지고요. 이 기본적인 능력 차이가 있는데, 과거 그걸 잘하는 투수들이 오랫동안 이글스 마운드를 지켰으나 어느 순간 그런 선수들이 전부 사라지고 후계자가 안 나왔습니다. 불과 1~2년간 후배들과 생활한 송진우 코치에게 책임을 물을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돈을 들여 선수를 뽑고, 그 선수들을 물리적인 공간에 모아놓고 훈련해서 1군으로 계속 올려줘야 하는 시스템이 동작하지 않았으니까요
(그 시스템이 각각 누구의 책임인지는 이전 글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여기서 한화 팀 사정이 설상가상입니다. 가뜩이나 투수력이 약합니다. 투수의 기량을 가르는 기준이 좋은 공을 원하는 곳으로 던지는 능력이라고 봤을 때, 기본적으로 그 전력차이가 있다는 얘깁니다. 그런 상황에 외야는 넓어졌고, 외야수들은 느린데다 타구판단이 엉망이고, 내야 수비도 강한 편은 아닌데다 포수는 신인이죠. 자기 공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한데 배터리간의 믿음도 (아직은) 없고 야수들이 잘 잡아줄거라는 기대도 못하는데다 주자가 나가면 도루할 가능성이 큽니다. 주자를 남겨놓고 강판되면 후속 투수가 잡아줄거라는 신뢰도 없고요.
지난해에 삼성 투수조 조장 정현욱이 후배 투수들에게 그랬습니다.
안타를 맞을 것 같으면 차라리 볼넸을 주라고.
그래도 지만이랑 승환이가 다 막아줄거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가 내려가도 안지만-오승환이 막아줄 거라는 삼성투수의 기대감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내야로 아무리 빠른 타구가 날아가도 안치홍과 김선빈이 전부 낚아줄 거라는 기아투수의 기대감도 가지면 안 됩니다. 이종욱과 정수빈이 어지간한 뜬공은 전부 건져줄 거라는 두산 투수의 기대도 우리에겐 먼 얘기고, 한두점쯤 내줘도 끈질긴 동료들이 어떻게든 따라가서 점수를 내줄거라는 SK투수들의 기대도 가질 수 없습니다. 우익수나 좌익수 쪽으로 타구가 뜨면 중계를 보는 나부터도 불안한데 투수들이 어떻게 마음을 놓겠습니까. 타자들의 방망이가 부진해도 다른 팀은 발을 써서 점수를 짜내는데 우리는 그것도 안됩니다. 경기 초중반에 타선이 좀 부진하다 싶으면 투수가 마운드에서 평정심을 가질 수가 없죠. 게다가 그 투수의 기량도 다른팀에 비해 그닥 뛰어나지 않다면 이 싸움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여러 애기가 오가지만, 결국 선수층이 얇아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노련한 감독이 왔다고-강훈련을 했다고 그게 하루 아침에 나아질 리 없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김경문 감독이 그토록 매몰차게 훈련시켰다던 NC도 4강 후보겠지요. 전력은 결국 선수단의 두께가 결정하는거고, 우리는 독보적인 전력의 최하위팀이었는데 그 전력에서 선수가 18명 나가고 7명 들어왔습니다. 숫자 자체는 무제가 아니지만 가뜩이나 약한 투수진에서 에이스와 중심 축들이 빠졌다는 게 문제입니다.
(OUT_류현진 박찬호 송신영 양훈 신주영 안영진 장민제 최우석 장성호 정원석 김재우 이상훈 김원석 박병우 이영기 김용호 공민호 오준혁)
(IN_김태완 정현석 황재규 송창현 김일엽 김강석 박상규)
*신인 입단은 9개구단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변수라 제외했습니다.
전력은 약하지만 열심히 해서 좋은 성과를...
선수가 빠져나갔지만 다른 선수들이 그 공백을 메워서...
그런건 그냥 희.망.사.항. 입니다.
실현 가능성 적은 부질없는 희망.
아프면 쉬고 치료를 해야지, 참고 버틴다고 되는게 아닙니다
기다립시다.
지금은 못 이깁니다.
어떻게 이깁니까. 저 전력으로.
오랫동안 투자해서 좋은 전력 만들어 놓은 다른 팀에게 부끄럽고 미안한 일입니다.
앞으로 3년 5년 아니면 7년
그래야 답이 나옵니다.
오래 기다렸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사실 얼마 안됐습니다.
그동안 선수단의 내실을 다져온 적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선수지명 적게 하고 2군 훈련장도 없던 게 불과 2~3년 전 애기입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P.S_[왜 유독 올해 볼넷이 많냐]고 생각하겠지만, 그것 역시 '착각'일 수 있습니다. 지난해 한화는 488개의 볼넷을 허용해 (많은 순서대로) 넥센-두산에 이어 3위였는데 182이닝 51사사구의 류현진이 나가고 그 자리를 146이닝 54사사구의 김혁민, 그리고 111이닝 80사사구의 유창식이 메웠으니까 올해도 많을 수밖에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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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제구력 --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능력>과 <볼을 던지는 능력> 야구 중계때 해설자들이 말할 때는 그런가 보다 했는제 1선발님 글 읽으면서 확 와 닿네요 -- 볼을 던지는 능력 즉 스트라이크 비슷 하니 유인구 볼을 던져 상대 방망이 나오게 하여 헛스윙 내지 범타 유도하는 능력가진 투수가 역시 최고죠. 그런데 개막전 9회 안승민 투수 1사 1 2루 강민호 타석때 -- 결과론 이지만 그 당시 그 시점에서는 <큰 거 맞더라도 가운데 밀어 넣었어야 했다> 로 봅니다 ㅠㅠㅠ
일번 선발님 야구 지식에 대단함을 느낍니다. 근데, 매번 글이 좀 길어서 다 읽으려면 눈이 침침해져요.
아웃된 선수가 상당히 많네요. 전력누수.ㅠㅠ
공감합니다~ 지금은 승부자체를 즐기지는 않습니다.. 다만 안타까울 뿐이죠.. 확실한 목표와 의지를 가지고 장기적인 관점으로 움직여줬으면 좋겠습니다! 내실이 다져진 진정한 강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때지도 계속 응원할거구요! 한화의 팬들이 1번선발님의 글을 다 읽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ㅋ
결과적인 얘기지만 지금 상황에선 신주영도 아쉽네요...ㅠ.ㅠ
공감가는 말씀입니다!! 투수에서는 신주영/장민제가 타자에선 정현석/장성호가 그립네요...
마음은 신인들 크는거 봐야지~ 코치들이 어떻게 조련했는지 봐야지~ 얼마나 저 선수가 성장했는지 봐야지~ 등등 승패를 떠나 즐기려는 마음인데.... 막상 지는 꼴을 보고있으니 나도 모르게 화가 나는건 어쩔수 없나봅니다~
그건 맞는거 같습니다^^ 어쨋든 응원하는 팀이니까요
정말 좋은 글이네요. 송진우코치님이 그립네요. 아직 몸관리도 하셔서 130은 던진다고 얼핏 들었는데.. 정말 대단하신분인거 같습니다. 얼른 선수들이 송코치 본받아야 할텐데 말이죠
마음에 확 와 닿고, 이기기를 바라는게 욕심인건 아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맨날 지기만 하면 선수들 멘탈이 심히 걱정되고, 또한 팬들 멘붕에 감독님 건강이 심히 걱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