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강천산을 길~게 한 바퀴 돌아오기로 하였다
눈부신 봄꽃과 풋풋한 신록으로 단장된 강천산은 아늑하게 우리를 감싸주었다
네 사나이들이 무르익는 봄빛 속으로 깊이깊이 들어가 그대로 봄이 되었다
강천산은 비록 낮으나 기암절벽과 계곡 및 울창한 숲 등이 어우러져 자연경관이 뛰어나다.
원래는 생김새가 용이 꼬리를 치며 승천하는 모습과 닮았다 하여 용천산(龍天山)이라 불렸다.
<산행 코스> 금강교-깃대봉-왕자봉-형제봉-금성산성 북분-산성산-운대봉-북바위-동문-강천사-주차장
산행 들머리
병풍바위를 지나 금강교를 건너면 오른쪽에 깃대봉으로 오르는 들머리가 있다
평일인데다 우리가 가는 길은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곳이라 한가해서 매우 좋았다
시들어 가는 꽃과 새로 피어나는 꽃 그리고 신록이 어우러진 봄산은 천국이었다
깃대봉(572m)
깃대봉 삼거리까지는 땀을 많이 흘리며 올라갔지만 이후로는 능선으로 이어졌다
출발한지 약 1시간 가량 되어서 오늘의 첫 봉우리인 깃대봉에 당도하였다
우리들은 봄꿈에 젖어있는 풀과 나무들을 방해하는 것 같아서 조심조심 움직였다
생명(生命)
생명이란 참으로 경이로운 것이다
투박한 나무 줄기 속에 이렇게 아름다운 색깔의 꽃잎을 숨기고 있었다니...!
인간의 과학이 제아무리 발달했다 해도 봄에 피어나는 꽃 한송이의 신비에도 미치지 못한다
왕자봉 584m
드디어 오늘 산행의 최고봉인 왕자봉에 도착하여 오랫동안 쉬어 갔다
정상에서 동쪽을 내려다보면 스님이 앉아 합장을 하고 수도하는 형국이다.
산의 기세가 충천하여 조상의 묘를 쓰면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왕자를 낳을 수 있다는 스님의 예언이 있어 왕자봉이라 한다
자주괴불주머니
걸어가는 길섶에는 자주괴불주머니꽃이 무리지어서 앙증스럽게 피어있었다
괴불주머니는 옛날 어린이들이 허리춤에 차고 노는 노리개이다.
꽃잎 뒷부분은 기다란 꿀주머니로 되어 있고, 앞쪽은 마치 입술모양이다.
주로 남부 지방에 자라는 두해살이풀로, 습기가 많은 양지나 반그늘에서 자라며 키는 20~50㎝이다
형제봉 505m
서쪽 강천로 쪽으로 내려가기 전에 2개의 산봉우리가 마주보며 나란히 서있다 하여 형제봉이라 부른다.
그러나 지금은 강천산 저수지 댐 공사로 훼손되어 그 형체가 변해버렸다.
형제봉이란 의미조차 짐작할 수 없는 표지판 앞에서 흔적을 남기고 떠나왔다
돼지머리와 오리지널 참이슬
토마스 형님이 단골집에서 특별 주문하여 가져오신 간식이 나왔다
30년째 단골로 다닌다는 남부시장 돼지머릿집의 작품이라고 하신다
여기에는 19도짜리 참이슬은 어울리지 않고, 빨간 뚜껑 오리지널 참이슬이 곁들여져야 제맛이 난다 ㅎㅎ
금성산성 북문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 도림리와 금성면 금성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산성이다(사적 제353호)
터만 남아 있던 금성산성에 대한 복원은 1995년부터 시작, 동·서·남·북 모든 문과 허물어진 성곽 등 많은 부분을 복원했다.
이 중 외남문인 보국문(輔國門)과 남문인 충용문(忠勇門), 북문 등 3곳은 누각까지 복원했다.
금성산성
산성산으로도 불리는 금성산 줄기의 해발 350∼600m 능선에 쌓은 산성이다.
길이가 3km에 가까운 큰 규모로, 장성의 입암산성, 무주의 적상산성과 함께 호남 3처산성(三處山城)으로 불렸다.
성벽에 사용된 돌은 화강암 이외에 특이하게도 주변에서 산출한 점판암을 사용하였다.
아픈 데서 피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둣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김용택 <사람들은 왜 모를까>부분
각시붓꽃
각시붓꽃은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 어디 산을 가더라도 만날 수 있는 야생화다
여러가지 붓꽃들 중에서 각시붓꽃은 바라볼수록 다소곳함과 소박함이 느껴지는 꽃이다
꽃이 피기 전의 모양이 옛 선비들이 쓰던 붓의 모양과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꽃 이름 중에 각시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키가 작은 데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마치 수줍은 새색시들이 조심조심 봄나들이를 나선 것 같은 모양이다
산성을 따라 걷다
등산로는 금성산성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졌다
산성은 13세기 중반 무렵의 고려 말에 처음 쌓았으며, 태종 10년(1440)에 고쳐 쌓았다.
그 후 세종 16년 무렵에 폐기되었다가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다시 수축하여 사용되었다고 한다
시간이 충분하면 산성을 한 바퀴 돌아볼 요량이었는데 여의치 못하여 절반만 돌았다
산성산(연대봉) 603m
전라남도 담양군의 금성면 금성리 · 용면 산성리 ·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여기에 서면 남록과 북록으로 나뉘어 두 마리의 용이 동으로 강천을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성의 좌우는 아찔할 정도로 가파른 절벽으로 되어 있어 걸어가는 두 발이 후들거렸다
오랜 시간의 아픔을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아픔도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바람 불지 않는 인생은 없다.
바람이 불어야 나무는 쓰러지지 않으려고
더 깊이 뿌리를 내린다.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이유다.
바람이 우리들을 흔드는 이유다.
아픔도 길이 된다.
슬픔도 길이 된다......................................................................이철환 <아픔과 슬픔도 길이 된다> 전문
운대봉
북바위로 내려가기 직전에 허공에 떠 있는 형상의 운대봉을 만났다
봉우리의 모양이 구름 위로 높이 떠있는 모습이라 하여 운대봉이라 부른다.
안전장치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정상은 오르지 못하고 운치있는 소나무만 만나고 내려왔다
북바위
금성산성을 따라 운대봉으로 오르기 전 기암괴석이 우뚝 솟아있다.
잘 다듬어진 원통 모양이 마치 북처럼 생겼다 하여 북바위란 이름을 얻었다.
기암괴석과 금성산성이 만들어내는 묘한 매력으로 우리들의 발걸음은 행복하였다
금성산성 동문
산성의 동문터에 이르렀지만 누각이 복원되지 않아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성곽의 높이는 3~5m 이내로 그다지 높지 않은 편이다
경사면이나 깎아지른 듯한 절벽, 거대한 바위 등 천혜의 자연을 이용한 곳이 많아 상당히 높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1908년 동학농민군이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전투를 치른기도 한 곳이다
하산길
내려가는 길도 경사가 완만하고 계단이 없어 매우 편안하였다
물길 옆에 돌무더기가 있고, 오래된 목장승이 세워져 있었는데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이곳에서 신발을 벗고 탁족을 즐기며 고생한 두 다리를 위로하였다
바위 사이를 돌아
흰 자갈 위로 흐르는 물위에
하얀 꽃잎처럼 떠서
나도 이 세상에 귀를 열 수 있다면
눈을 뜰 수 있다면
이 세상 짐을 다 짊어지고
나 혼자라도 나는 강천산에 들라네
이 세상이 다 그르더라도
이 세상이 다 옳은 강천산
때동나무 꽃 아래 가만가만 들어서서
도랑물 건너 산딸나무 꽃을 볼라네
꽃잎이 가만가만 물위에 떨어져서
세상으로 제 얼굴을 찾아가는 강천산에
나는 들라네.......................................................................................................김용택 <강천산에 갈라네> 부분
구장군폭포
삼한시대에 혈맹으로 맺어진 아홉 명의 장수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폭포다
비록 인공폭포지만 시원스레 떨어지는 두 개의 물줄기에 온몸이 서늘해졌다
전주로 돌아와서 안방마님들까지 초대하여 질펀한 시간을 즐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