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찾기
이병창(진달래교회목사, 시인)
1983년 노벨상 수상작가 윌리엄 골딩의 의 대표 장편으로 ‘파리대왕’이라는 소설이 있다. 1954년에 발표한 그의 소설은 무인도에 고립되어 야만적인 상태로 되돌아가는 소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의 인간 조건과 인간 본성의 어두운 측면을 우화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데 냉전 시대의 불안한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전 세계 독자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
핵전쟁이 벌어진 위기상황에서 한 떼의 영국 소년들이 후송되던 중 무인도에 불시착한다. 무인도에서 벌어지는 소년들의 삶과 죽음, 투쟁을 그린 작품으로 인간 본성의 결함에서 사회결함의 근원을 나타낸 소설이다. 2차 세계대전에 해군으로 참전했던 저자는 조용한 낙원이 어떻게 생존을 위한 잔인한 투쟁의 섬으로 변하게 되는가를 보여줌으로써 광기와 불안에 떠는 인간들이란 이 세상에서 “꿀벌이 꿀을 만들어내듯이 악을 만들어내는 존재일 뿐”이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윌리엄 골딩은 <사실적인 설화 예술의 명쾌함과 현대의 인간 조건을 신비스럽게 조명하여 다양성과 보편성을 보여주었다>는 수상 이유와 함께 198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핵분열의 엄청난 파괴력을 알게 된 인류가 과연 영속적인 평화를 누릴 수 있을까 하는 냉전 시대의 회의적 분위기가 팽배해 있던 당시에 <파리대왕>은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특히 영미의 학생들 사이에서 많이 읽혀 작가는 <캠퍼스 대왕>이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1992년에 영화로 제작되었다.
오늘 파리대왕을 소개하는 것은 ‘파리대왕’ 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악마를 뜻하는 ‘바알세불’을 번역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해하는 악마란 맹수가 아닌 파리처럼 손짓만으로도 내쫓을 수 있는 그런 대상이다. 에덴동산 이후 악마는 유혹하는 영이었다. 사실 인간의 삶은 수많은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 하지만 그 유혹은 파리와 같다. 내쫒으려고만 하면 쫒아낼 수도 있는 그런 것들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악마를 파리로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소통되는 인간에게 해당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귐이 없는 사람에게 악마는 호랑이나 사자와 같은 주인이다.
인간의 의지는 너무나도 약해서 아무리 이를 악물고 결심을 해도 오래가지 못한다. 그것은 에너지의 법칙 때문이다. 지구는 무중력 공간이 아니다. 인간은 때를 따라서 먹어야만 힘을 쓰게 되어있다. 자기 존재에 대한 이해가 없고 말씀의 밥을 먹지 못하는 인간에게 유혹은 피할 길이 없다. 아니 피해야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살을 빼기 위해 다이어트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일정한 식사시간을 지키고, 밤참이나 과식을 피하고 규칙적인 수면 습관을 갖는 것이 어려운 일이지 그럴 맘이 없는 사람에게는 아예 힘들 이유가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의 길을 간다는 것, 하나의 소중한 목표를 갖기 시작할 때 상황은 달라진다.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나 수영의 박태환에게 국민들이 열광하고 감동하는 것은 그들이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고자하는 목표를 세웠고 그에 걸 맞는 각고의 노력을 했기 때문이 아닌가. 만약 그들에게 삶의 목표도 노력도 하지 않았다면 그들을 기억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들이 대단한 것은 자기 인내와 놀고 싶고 게으르고 싶은 유혹을 뿌리쳤기 때문이다.
성공하는 사람의 특성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은 유혹을 견디는 인내심과 소속감이라고 한다. 이점을 이해하는 데 있어 스탠포드 대학에서 실험한 유명한 머시멜로 이야기가 있다. 400명의 어린 아이들에게 머시멜로 사탕을 주고 나서 15분을 막지 않고 참으면 두 배의 사탕을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먹어버렸다. 그러나 소수의 참는 아이들이 있었다. 마틴교수는 15년 후에 참았다가 사탕을 두배로 받았던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조사했다. 결론은 그들이 참지 못하고 사탕을 먹어버린 아이들과는 매우 다르게 각 분야의 훌륭한 리더로 성장해 있었다. 작은 유혹을 참을 수 있는 힘이 인간의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그 조사는 밝혀 주고 있다.
성서 역시 사람과 하나님께 사랑 받는 사람이 되려면 유혹을 참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자기 존재의 정체성이 분명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 정체성은 소속감으로 나타난다.
“이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고전 1:4)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소속감이 분명해야 한다. 아침이면 각자의 일터로 갔다가 가정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밖으로만 돌고 있다면 그는 방황하는 사람이다. 직장인의 절반이 퇴근 후에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이 무엇을 말해 주는가. 돌아갈 곳이 없고 가야할 곳이 없는 사람이 행복할 까닭이 없다. 직장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소속감이 없이 근무한다.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아이엠에프가 한국 사회에 던진 충격과 비극은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게 된 것이었다.
회사에 대한 소속감이 없으면 긍지도 자부심도 있을 수 없다. 직장인 절반이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이 없는 데 이들의 비극은 그들이 리더로서 성장할 수 있는 근본적인 조건의 싹이 잘라져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긍지, 자존감은 소속감에서 출발한다. 군인에게 소속이 없다면 그는 탈영병이거나 군인이 아닐 것이다. 바로 이런 점을 깨닫고 많은 회사들이 사원들로 하여금 소속감이 분명하도록 하는 여러 장치들을 시행하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호칭에 대한 배려이다.
웅진 코웨이는 정수기 관리하는 직원들을 웅진 코디(회사 이름중에 코와 레이디의 합성)라고 부른다. 월급 문제를 떠나 회사에 대한 소속감이나 긍지가 없어 고심했는 데 호칭을 바꾸고 나서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모 호텔에서는 사원들에게 ‘여러분은 고객들의 하인 ,하녀가 아니라 신사 숙녀이다’라고 교육한다고 한다. 디즈니랜드에서는 모든 종업원들을 cast라고 부르고 있다. 그것은 디즈니랜드라는 공간 연출의 배역을 맡은 사람이라는 존재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아버지인 존재가 바로 나이다. 나는 그 무엇을 나로 세우지 않는 나로서의 나이다. 여기에 우리의 존재감이 있고 정체성이 있다. 그 정체성은 진달래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나타난다. 성경책 들고 다니는 것도 부끄러워하고 어느 교회 다니느냐 할 때 우물쭈물하는 사람은 하늘의 자식으로 사는 긍지가 있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예수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 빛을 됫박으로 덮어 두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숨어서 은둔하라고 세상에 보내어진 사람들이 아니다. 풍부한 삶을 자신과 세상에 베푸는 사람으로 살라고 보내어진 존재이다. 그리스도의 것으로 사는 삶이란 보물찾기와 같다. 내 안에 있는 신성의 불꽃, 나에게 주어진 공간과 시간과 모든 조건 속에서 하나님의 보물을 찾아가는 사람은 풍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