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장미
이 원 수
해가 저문다.
학교 서쪽 유리창에 놀이 비친다. 아, 그예 저물 때까지 붙들려 있었구나. 선생님이 야속하다. 해가 지도록 기다리게 하고 그만 돌아가라는 말은 끝내 하지
않는구나.
나는 서쪽 하늘이 환히 붉어오는 걸 눈부신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저녁 놀은 짧은 구름을 솜사탕처럼 만들어놓는다. 그 솜사탕은 하늘에 널리 퍼지며 꽃빛깔로 아름답다.
장미꽃의 연분홍 빛깔이라 생각하니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장미꽃 때문에 나는 집에도 못 가고 붙들려 있는 것이다. 그 연분홍 장미 때문에…
학교 뜰에 심은 장미가 너무나 아름다왔다.
여러가지 꽃들이 많이 피었지만 장미만큼 귀하게 생긴 건 없다고 생각되었다.
둘둘 말린 장미꽃 꽃잎. 그 발그래한 빛깔. 그윽한 향기.
사내아이들은 대개 그 꽃을 보고,
“야, 멋지다!”
하고는 잠시 바라보다가 가버린다. 그러고 나면 잊어버린 듯 다른 장난에만 정신이 쏠린다.
그런데 나는 왜 그 꽃을 잊지 못했을까. 지나가다 보고는 다시 와서 보고, 접심시간에도 또 가서 보고------.
그러다가 나는 죄를 짓고야 말았다. 채송화 한송이라도 꺾어선 안된다고 선생님이 무섭게 일러주신 것도 잊고, 나는 그 몇 송이 장미꽃 가훈데서 뒤쪽에 있는 한 송이를 남몰래 따고야 말았던 것이다.
마침 아이들이 곁에 없었다. 운동장에서 뛰고 노는 놈들이야 설마 보랴 싶었다. 한 송이 내가 가지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꽃은 무사히 꺾어 가졌다. 우선 호주머니에 넣고 있다가 학교 뒷산에 가서 가
만히 꺼내봤다. 참 예뻤다.
이런 꽃을 내가 가졌다는 것이 무한히 자랑스럽고 즐거웠다.
그러나 그걸 누구에게 보일 수는 없었다. 학교에서는 누구든 그 꽃이 화단에 핀 장미라는 걸 모률 아이는 없을 테니까.
나는 그 꽃을 가진 것이 두려워져 왔다. 그러나 그걸 호주머니에만 넣고 있다가는 시들고 구겨져서 못 쓰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실없이 걱정이 되었다.
가만히 그 꽃잎을 하나 따서 입에 물어보았다. 향긋한 냄새가 좋았다. 큰 누 나 냄새 같았다.
나는 그 꽃잎을 잘강잘강 씹었다. 무언지 모르게 마음이 울렁거렸다. 다치지 않고 꽃병에 꽂아두고 싶은 꽃을 씹고 있었던 나는, 그 꽃을 두 손으로 마구 비볐다.
아주 손으로 짓이겼다.
가지고 있다가는 야단이나 맞을 것이다. 그렇다고 호주머니 속에 숨기고 있다 가는 시들어 못 쓰게 될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내가 짓이겨버리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내 손으로 힘껏 짓이겨서------.
꽃은 내 손에서 갈기갈기 찢기고, 멍들고, 흐트러져버렸다.
참 허무한 일이었다. 그러나 시들게 해두는 것보다는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냐?”
뒤에서 선생님의 무서운 목소리. 나는 깜짝 놀라 돌아다보았다. 담임 선생님이 서 계셨다.
“넌 학교 꽃을 꺾기만 하는 게 아니라 찢어버리기까지 하는구나. 오늘은 내가 부를 때까지 교실에 남아 있어.”
이렇게 해서 나는 공부가 끝나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부러워하게 된 것이다. 교실에서 두 시간 이상이나 나는 혼자 남아 있었다.
꽃을 꺾은 죄.
꽃을 짓이겨버린 죄.
한 가지 죄만 해도 무거운데 두 가지 죄를 지었으니 선생님께서 꾸짖어도 나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뚜벅뚜벅 발자국소리가 났다. 선생님이 오시나 보다. 나는 책상에 엎드리고 있었던 몸을 일으켜 바른 자세로 고쳐앉았다.
이미 교실에는 저녁 어둠이 서리기 시작하여 구석 쪽에는 낮에는 볼 수 없던 거무스레한 안개 같은 것이 끼어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신다. 한 손에 가방을 들었다. 인제 집으로 돌아가시는 길인가 보다.
“장미 벌레! 어떠냐?”
선생님이 성난 얼굴도 아니고 웃는 얼굴도 아닌 무표정 한 낯으로 말하며 내
앞에 와 섰다.
나는 선생님의 말뜻을 얼른 짐작할 수도 없고, 또 무어라 할 말도 없어 잠자코 고개만 떨어뜨렸다.
“기분이 어떠냐 말이다.”
“잘못했어요.”
나는 그제사 고개를 들어 선생님을 쳐다보며 사과의 말을 했다.
“잘못한 줄 모르나? 기분이 어떠냐 묻는 거야.”
“……”
“장미를 먹을 때와 찢고 비벼버릴 때의 기분이 어떻던가 얘기해봐.”
“……”
나는 수줍은 아인가 보다. 그때의 기분을 말할 수가 없다. 기분이란 것은 무슨 이치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느낀대로 말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도 말을 할 수가 없다.
“……”
속으로는 알 수 있었다. 나 혼자라면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말을 나는 할 수가 없다. 선생님 아니라, 다른 누구한테도 할 수가 없다.
선생님이 내 대답을 기다리다 그만두고 좀 엄한 말씨로,
“넌 학교 화단에 있는 꽃이 너 한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겠지?”
“예.”
“네가 예쁜 장미 한 송이를 따 가지면 천명도 넘는 많은 아이들이 예쁜 꽃을 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꽃을 꺾었으니 너야말로 나쁜 아이다.”
“예.”
“예가 뭐야?”
“……”
“천여 명의 사랑을 받을 장미꽃을 꺾어 가지고 그걸 어떻게 했지?”
왜 선생님은 1학년 아이들한테 하듯이 저러실까? 그 꽃을 어떻게 했는지 선생님이 똑똑히 보았으면서 되풀이해서 말하는 걸 들어야만 되겠다는 말인가. 좀 동정심이 있어줬으면 좋겠다. 죄 지은 놈을 자꾸 괴롭히는 게 재미있나봐!
“손을 대는 것만 해도 좋지 않은데, 며칠을 굶고 온 놈처럼 꽃잎을 씹었지?
그걸 먹는 걸로 알았나?”
나는 입을 다물기로 했다. 어떤 말을 해도 대답을 아니하리라 결심했다.
“꽃잎을 씹었다는 건 네가 얼마나 철이 없고 아름다운 걸 모르는 식충인가를 말하는 거야. 그걸 먹어 ? 장미를 먹는 놈은 장미벌레야. 넌 장미벌레란 말이다.”
“……”
“먹는 건 네가 벌레라서 그렇다 치자. 그래 나중엔 그 예쁜 꽃을 찢고 비벼서 없앴다. 이건 난폭한 사람의 짓이야. 귀여운 걸 귀여운 줄 모르고 그걸 발로 밟아주는 못된 자들의 짓이다. 넌 장미 벌레보다도 더 나쁜 짓을 했단 말이다.”
“……”
“알겠나?”
나는 〈예〉 하는 대답이 나오는 걸 꾹 눌러 삼켰다. 아무 말도 안하리라는 결심이었기 때문이다.
“모르겠냐?”
선생님의 목소리가 커졌다. 화나신 소리였다. 나는 대답대신 훌쩍이고 있었다. 눈에 눈물이 넘치고 있었다.
선생님은 교탁 옆에 있는 의자에 가서 앉는 모양이었다.
“아! 나도 피곤하다.”
내게 지친 것일까? 선생님은 고단하신 모양이다. 나는 선생님에게 대해서 한가닥 동정의 마음이 이는 걸 느꼈다.
종일 공부를 가르치고 학교 사무도 보고 또 아이들이 저지르는 일을 바로잡아주기 위해 여태 집에 못 가시고 있는 것이 가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선생님··----”
모기소리 같은 소리로 부르며 얼굴을 들어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검은 칠판 때문일까? 그 쪽이 어두워 보였다.
그런데 이건 웬일인가.
선생님이 앉아 있는 의자 옆에 예쁜 계집아이 하나가 서 있다. 우리 학교 학생은 아닌 게 분명했다. 나이가 열대여섯은 됐을 것 같고, 또 옷이랑 얼굴이랑
이런 국민학교 아이가 아니었다.
첫 번 눈길이 갔을 때, 내가 느낀 것은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두 번째 바라보았을 때, 나는 그 소녀의 얼굴에 수없이 많은 생채기가 나 있는 걸 알았다.
무슨 악마 같은 귀신이, 아니면 고양이의 발톱이 맘껏 그 아이의 얼굴을 할퀴
어 놓은 것 같았다.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그 소녀의 얼굴은 화경으로 들여다보는 것같이 또렷이,
그리고 커다랗게 내 눈앞에 보였다.
연분홍의 고운 살결.
연한 초록의 원피스.
사람도 꽃같이 아름답구나·-----하고 나는 처음 깨달은 듯 속으로 중얼거렸다.
선생님은 그 소녀를 언제부터 보고 있었는지 놀라지도 않고 교실 창문 쪽만 보고 있었다.
“선생님!”
내가 부른 것이었으나 그와 똑같은 순간에 그 소녀가 불렀다.
선생님이 소녀에게로 놈길을 돌렸다.
“선생님,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셔요?”
소녀의 질문이었다. 나도 그렇게 묻고 싶었던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말야---”
선생님이 조용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무얼 생각하는 듯, 말을 끊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무언지 찾는 시늉만 하고 있었다.
“좋아요. 선생님 마음 잘 알아요. 선생님이 장미를 꺾지 말라는 것도, 씹지도 말고 찢지도 말라는 말씀, 다 옳아요. 저를 위해 참 고마운 말씀이어요. 하지만 선생님, 재는------”
하고 그 소녀가 눈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재를 너무 나무라지 말아 주셔요. 전 제를 사랑하고 있어요. 재는 저를 마구 비벼서 찢었어요. 저는 재 때문에 죽었어요. 아! 나를 죽인 아이여요!
사람을 죽였으면 사형을 받겠지요. 장미꽃을 죽인 아이는 어떻게 됩니까? 사형은 안 받습니까, 선생님?”
“걱정할 것까진 없지, 사형 같은 건 없으니까------”
선생님의 음성은 좀 떨리고 있었다.
“저를 죽이긴 했지만 재는 나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었어요. 꽃을 심어주지 않는 사람, 심어놓은 꽃도 짓밟아 죽게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렇지만 재는 한
송이 꽃을 꺾었을 뿐, 아주 장미나무를 죽이진 않았어요. 또 꽃이 필 거여요. 저는 재한테 죽었지만 다른 가지에 다시 피고 싶어요. 이번에는 꺾지 않고 보며 사랑해주겠지요.,,
“알겠어. 하지만 아가씨가 내게 하는 말은 장미를 꺾어서 씹고 찢고 한 아이를 위해 너무 두둔하는 것 같군. 장미꽃은 한 아이의 꽃이 아니란 말야. 몇천백 명의 꽃이야. 이걸 알아야 해.”
“알아요. 그렇지만 절 그렇게도 좋아해주는 아이는 못 봤어요. 전 재 때문에 아픔과 죽음을 당했지만, 죽어도 사랑을 받는 게 즐거웠어요. 아가, 이리 와!”
소녀가 두 팔을 벌리고 나를 불렀다. 나는 꿈속 같은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
나 그 소녀에게로 다가갔다.
“사량해줘서 고맙다. 죽도록 사랑해줘서. 난 이팔이 되었지만 또 다시 필께
그때는 날 죽이지 않아도 네 마음을 잘 아니까 좋아.”
소녀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나는 숨이 막혀 죽는가 했다. 그러나 그의 품을 빠져나오려 하지는 않았다. 소녀는 생채기 난 얼굴에 눈물이 두 줄기 흘러내려 내 얼굴에 떨어졌다.
“장미 아가씨, 아냐, 장미 누나! 고마와요.”
“잘 있어. 선생님께 사과하고 잘 가.”
숨막히다고 생각한 것은 진환 향기 때문이었다. 소녀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소녀가 섰던 자리엔 찢어진 장미꽃잎 몇 개가 떨어져 있고.
선생님이 조용히, 그리고 다정스럽게 말했다.
“기분이 어떻더냐? 아까부터 묻지 않았냐?”
“좋았어요. 장미꽃을 찢어버릴 때도 좋았고, 지금도 좋았어요.”
“망할 녀석!”
선생님이 내 엉덩이를 탁 치며 웃었다.
“가자!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