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예찬
김경애
호박잎을 찌고 있다. 그것은 혀에 착 감기는 맛은 아니지만 여름 한철 이따금 별미로 먹는다. 살짝 찌면 마치 비로드 같은데, 나는 그 적당하게 깔끄러운 촉감을 좋아한다. 호박잎에 쌈장과 식은 밥 한 숟갈을 얹은 후 생선 한 점 올려놓고 어지간히 여민다고 해도 막상 입에 넣으면 볼이 미어진다.
밭이랑에 나가보면 호박과 수박 잎의 모양새를 구별하기가 별로 어렵지 않다. 호박잎은 발레리나의 치맛자락 같고 수박 잎은 집시여인의 치맛자락 같다. 거기엔 희끗한 무늬도 있다. 하지만 이랑에 기어가는 모습하며 이파리 밑에 열매를 숨기는 심사가 서로 닮았다. 호박과 수박은 혹시 조상이 한 핏줄인데다가 항렬마저 같아서 ‘박‘자 돌림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한여름에 수박을 따라잡을 과일이 없다. 수박의 무늬를 따라 식칼로 쪼개면 쩌억 소리와 함께 수박에서 물이 나오기 전에 입에서 침이 먼저 나온다. 수박은 대청에서 온 식구가 둘러앉아 먹어야 제격이다. 수박 한 통이면 모두 배부르게 먹고도 남는다. 입언저리부터 아랫배까지 시원해서 굳이 에어컨이 아니어도 선풍기 바람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런데 수박은 저장이 문제이다. 요즘처럼 핵가족 시대에 럭비공만한 수박을 들여놓으면 도무지 주체할 수 없어서이다. 냉장고에서도 자리를 많이 차지해서 골치 거리다. 그래서 이웃들을 불러 모아 함께 나눠 먹으니 정이 오가서 좋긴 하다.
그에 비하면 호박이 훨씬 실용적이다. 호박만큼 수확이 푸짐하고 허실이 없는 것도 드물다. 양도 으뜸이고 쓰임새도 으뜸이다. 애호박을 도톰하게 잘라서 밀가루와 계란을 씌워 살캉하게 전을 부치면 토라졌던 시어머니도 슬며시 다가올 테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엔 호박채로 부침개를 부쳐 먹으면 그 맛이 그만이다. 그리고 볕 좋은 가을날에 애호박을 나붓하게 썰어 채반에 말리면 이듬해 정월 대보름에 훌륭한 호박나물이 된다.
늙어서 대접 받는 것은 호박만한 게 없으리라. 어쩌다가 큰 이파리에 가려서 누렇게 영글도록 주인 눈에 띄지 않은 호박이 있다. 늙은 호박이다. 크기로 치면 돌잡이만한 것도 있다. 횡재한 농부는 강아지 보듬듯 안고 와서 툇마루에 놓는다. 큼지막한 호박 여남은 덩어리를 쟁여 놓으면 그 해 겨울은 만석꾼이 부럽지 않다. 종갓집 맏며느리의 실팍한 둔부를 보는 느낌이라고나할까, 맷방석처럼 생긴 호박은 영락없이 맷돌질하는 아낙의 엉덩짝 같다. 그것으로 호박엿, 호박떡, 호박죽, 호박오가리를 만들고, 게다가 호박김치도 담근다는데 나는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
요즘엔 자취를 감춘 지 오래지만 옛날에는 피부에 웬 사마귀가 그리 많았는지. 동네에 사마귀가 있는 아이들이 수두룩했다. 코흘리개들이 팔소매를 걷어 부치고 운동장 느티나무 그늘 아래 빙 둘러 앉으면 혁이네 할머니는 함지박을 이고 팔자걸음을 걸으며 나타나셨다. 여봐란 듯이 얼굴에 한가득 미소를 머금고 밭이랑을 건너오셨다. 함지박 속에는 호박 두세 개와 칼이 있었다. 냉이를 캐는 작은 칼이었다. 할머니께서 칼로 호박을 저미면 진이 송골송공 맺혔다. 그 진을 사마귀에 바르면서 주문을 외우셨다. 그런 일을 여러 번 거친 후 내 이마의 사마귀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혁이 할머니는 부스럼도 고치셨다. 나중에 안 일인데 말린 호박 꼭지를 갈아 참기름에 으깨서 발랐다고 했다. 게다가 뱀에 물리면 호박꽃을 찧어 붙여서 효험을 보았다니 혁이 할머니는 가히 피부과 의사였다.
“호박꽃도 꽃이냐?”
물론 꽃이지. 야하지도 되바라지지도 않은 꽃. 영락없는 순박한 시골 처녀다. 그래서인지 뒷면에 깔깔한 솜털이 돋아난 것은 아마도 자신을 보호하자는 속셈이지 싶다. 다섯 꽃잎의 끝에는 제법 날카로운 털 한 개가 화살을 겨누듯 뾰족하게 내밀었다. 노르스름한 꽃잎은 살짝 안으로 말려서 나팔꽃이나 도라지꽃보다 훨씬 육감적이다. 깊숙한 곳에 종처럼 생긴 수술에는 벌과 개미가 무시로 드나들며 화분을 나른다. 다소곳한 모양새가 볼수록 정감이 가는 꽃이다.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 되냐?”
기가 찰 노릇이다. 만일 호박이 듣는다면 까무러칠 일이다. 호박 닮고 싶은 수박은 있어도 수박 닮고 싶은 호박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호박은 수박처럼 속살이 화려하다거나 한 입에 짜릿한 행복감을 안겨주지는 못해도 깊은 맛이 있다. 침묵하는 여인처럼 은근하다.
처서가 지났는데도 마지막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얼마 있으면 들녘엔 볏단이 쌓이고 밭에는 큼지막한 호박덩이가 석양볕에 마지막 깊은 맛을 짓고 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