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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종교 重創 (중창) 추진회 원문보기 글쓴이: 성 용 탁
독립운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독립운동의 정신적 최고의 지도자 이신 홍암대종사님 존영
대종교를 중광 하시고, 민족고대역사,개천절,한민족전통예법,등 복원하시고
중광가, 이세가,밀고, 신리대전,밀계,밀유,수도시,공고교도문,예언시,순명3조,등
남기셨고 향년 54세 순교 하심
13,,14,,대 대종교 총전교 역임하신 우학도인 여해 권태훈 전 총전교님 (실화 소설 단 소설 주인공)
앞줄 왼쪽에서 두번째 홍암대종사님,과 제자들 1946년 대종교총본사가 만34년만에 조국에 환국하여 대종교총본사에서 찍은 기념사진 ( 대종교 임정 국무 위원분들) {일제의 모진 탄압과 박해를 피해 만주로 망명하여 동경성에서 대종교 할동 기념사진} ▲ 중국 화룡시 청파호 인근에 백두산을 향해 안장된 대종교 3종사 묘역. 홍암 나철홍암대종사님의 유언에 따라 이곳에 모셨다. 가운데가 홍암 나철홍암대종사님, 왼편이 북로군정서 총재 백포 서일종사님, 오른편이 대종교 2대 도사교 무원 김교헌종사님 묘다. 반미특위(일본잔재 청산경찰)의 실패로 일본잔재들의 기득권 세력의 득세로 대종교는 탄압되고 10만명 대종교 순교자 독립운공자 선열님들은 지금도 무시을 당하시며 대접을 못받으시는 슬프고 안따가운 현실, ,,, 인류 평화와 배달조국 광복을 위하여 10만명의 고귀하신 위대한 순교와 빛나는 30만의 무명 독립투사들의 영혼을 달래 드리며, 명복늘 빌며 다시 기억 하자 | 독립운동의 총본부의 역활의 대종교,독립운동의 아버지 홍암 대종사님 추모드리며, 조국 통일광복을 이루워 세계평화를 이루는 대한민국을 맞이하자 --- 대종교 총본사 성용탁 선도사 강의 --- hp 010-6609-4989 1904년 백봉신사는 32인과 함께 백두산에서 수도를 하던중 한울의 묵계 계시를 받고 보본단 석실에서 발해시대 문왕이 보관한 고대 천신교의 고귀한 여러경전을 찿는다 그리고 단군교표명서를 발표하고 제자를 통해 홍암대종사님께 전수한다 『삼일신고』와 『신사기』신가 등 즉 발해 고왕의 삼일신고 예찬문(御製三一神誥贊文), 고왕의 동생 대야발의 삼일신고서(三一神誥序), 고구려개국공신 마의극재사의 삼일신고독법(三一神誥讀法), 발해 문왕의 삼일신고 보존기((三一神誥奉藏記)가 실려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고대로 부터 천신교 경전이 발해국 문왕까지 삼일신고가 전해진 경위가 밝혀져 있고, 그 뒤에 대종교까지 전하여진 경위는 백두산의 백봉과 백전 등 32인이 1904년 10월 3일에 발표했다는 ‘단군교포명서(檀君敎佈明書)’에 있다. 단군교포명서에서 백봉신사는 “본교는 4천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 본래 있던 종교다”라고 밝혔다. 이어 “본교가 흥하면 천지가 다시 새롭고 산천이 다시 빛나며 인민이 번창할 것이고, 본교가 쇠하면 상하의 지위가 바뀌고 음양의 질서가 어그러져 만물이 흥왕치 못한다”고 설파해 놓았다 [단군교포명서]를 받은 나철대종사님은 이듬해인 1909년(기유년)인 단기 4366년 정월 15일 자시를 기해서 한성 북부 제동 취윤정 아래 8통 10호 육간 초옥 북벽(北壁)에 ‘단군대황조신위’를 모시고 제천(祭天)의 대례(大禮)를 거행하신다. 동지 오기호, 강우, 최전, 류근, 정훈모, 이기, 김인식, 김춘식, 김윤식 등 수십 인과 함께 행하며 단군교 중광을 공포하기에 이른 것이다
고려중엽 천신교(대종교)가 700년만에 다시 문을열고 4366년 역사의 대광명한 한얼빛이 다시 떠오른날이 대종교 중광(重光)절 이다 교주로 추대된 나철대종사님은 교리를 정비하고 교세를 넓혀 1910년 2만 1,539명의 교인을 확보했으며 이름도 대종교로 바꾸며 교세 확장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리고 몇년후 그당시 일본의 탄압을 피해 중국 만주에 망명한 약 40만동포중에 80%에 해당하는 30만이상 동포가 대종교 신앙인 교인이 된다 1910년대부터 1945년 해방전까지 무장 독립 투쟁에 너,나 할것없이 모두 활발히 참여 한다 대종교는 구한말과 해방 직전까지 항일무장투쟁에 따른 10만 순교와. 우리말 지키기와 한글 사전편찬, 역사 바로세우기 등을 통하여 우리민족사에 지대한 업적을 남긴 종교 교단 이다. 상해임시정부 ,독립무장투쟁,한글,문화,역사,독립투사,등 독립운동의 모든 집결지가 대종교였다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도자 독립운동의 아버지라 일커는 분이 대종교 홍암 대종사님 이시다 홍암대종사님의 뒤을 이여서 독립운동의 정신적 총 지도자로서 김교헌 무원종사님, 서일 백포종사님,윤세복 단애종사님 이렇게 독립운동 36년동안 이여저 갔다
또한 대종교 성직자,교직자,일반신도 모두가 독립운동가 였던것이다 그수가 무려 50만명 이상인 것이다 지금 안타갑게 대종교는 다른 종교들에 비해 무관심과 망각 속에 묻혀있는 종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종교가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과 민족혼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혁혁한 발자취는 섣부른 말로는 이루 다 형언할 수 없을 만큼의 크고 높은 찬탄과 경외의 대상이 되고도 남는다.
아래글 독립운동명단은 모두 대종교 성직자 교직자등 지도자분들 이시다 ◑상해 임시정부 임원 대종교인: 이시영,박은식,조완구,신규식,박찬익,이상룡,안재홍,김규식, 신채호,이동녕 조경환,민필호,황학수,이광,등 22인 ◑한글우리글 지키기: 주시경,정인보,이극로,신영균,최현배,김두봉,이병기,권덕규,이윤재,이희승,등 ◑영화:나윤규 ◑경제: 안희재 ◑비행사: 안창남 ◑마라톤:손기정 ◑문화 : 안학,현진건, 이병기,안재홍,등 ★무장독립투사 : 북로군정서 총재=서일,총사령관=김좌진,참모장=이장녕,사단장-김규식,,등 연성대장= 이범석,홍범도,이상룡,조성환,나중소,현천묵,이정천,이정양,이홍래, 현천묵,계화,이장녕,조병준,최해,박영준,윤복영,오광선,이범석,궝영만,,등등 ★무오도립선언서 : 김교헌,조소앙,신규식,김좌진,김동삼,박성태,박찬익,손일미,여준,조성환, 한홍,황상규,신채호,이범윤,김학만,문창범,윤세복,,이광,이시영,이탁,허헉, 이상룡,이세영,임방, 이종탁,최병학,박은식,이동녕,신규식,이동휘, 북로군정서의 무장독립군 부서는 다음과 같다, 이 분들은 모두 대종교 교직 간부들 이시였다 ★총재: 서일(대종교 교직,전강) ★총 사령관: 김좌진★ 참모장: 이장녕★사단장 :김규식 ★여단장: 최해 ★연대장 :정훈★연성대장 : 이범석★경리: 계화★길림분서(分署)고문 :윤복영 ★군기감독: 양현 ★사관연성소장: 김좌진★교관: 이장녕★교관: 이범석★교관: 김규식 ★교관: 김홍국★교관: 최상운 ★임오교변 : 윤세복,권상익,김서종,나정련,안희재,나정문,오근태,이재우,이창언,강철구,이정, 성하식,김진호,안용수,이종수,권영준,김두천,이성빈,서윤제,김영숙,윤정현, 이용태,최관, ★오기호,이기,이용태,니현익,전희균,김인식,정관,이홍수,정원택,맹주천,이상설,오기현,황학수 이광,이인,신덕영,백남규,김승학,유근,윤세이,신성모 안재홍 ,김영숙,조만식,안호상,명제세, 등 ★광복후 대종교인 초대 정부내각 : ▲이시영=부통령, ▲ 이범석=총리, ▲안호상=문교장관, ▲명제세=십계원장,▲정인보=감찰원장,▲신성모=국방장관, ▲안재홍=민정장관,등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바로 독립투사 대종교인을 정부수립에 민심수습과 정부 기초수립 작업에 이용만 하고 반민투위(일제잔재 청산전담 경찰)을 해체하면서 대종교인들 모두 해임 팽 시켰다 또한 일본잔제와 미군정과 이승만정부는 임정정부의 지도자급 단체 귀국 과 독립군 지도자, 독립군단체의 귀국을 철저히 막고 방해하며 일본군 잔재들을 대다수 기용하여 군대을 조직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바로 일제때 일한 경찰,군인장교, 일제국사 학자,등 을 일본 앞잡이 악명높은 일제 잔제들을 수 없이 등용 시켰다 등용된 일본잔제 그들은 독립투사 척결,독립투사을 빨갱이로 매도,역사왜곡, 가짜 독립투사 명단 작업, 대종교 탄압 등 수없는 악행을 저질르며 재산,권력을 차지하며 기득권을 누리며 호의 호식 하였다. 지금도 일본잔제 그들과,많은 후손들은 기득권을 갖고 권력,재산을 쥐고 호의,호식 상류층으로 많은 부루를 형성하고 있는 실정이다 근대 한국사를 보면 1910년 국권 피탈 이후 광복후에서도 역사가 너무나도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받는다. 마치 한국의 독립투쟁사가 아니고 일제의 식민지 경략사 같은 느낌... 사이비 독립운동을 벌인 이승만이나 사실상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아들인 안창호의 흥사단 운동,기독교 독립운동의 주류가 될 수는 없는 것이며 크게 잘못된 기록인 것이다. 실제로 배달 조국 사람이 살고 있는 곳에서 불굴의 신념으로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던 무장독립운동 계열의 사람들이 광복운동사의 주류로 사실로 기록 되어져야 한다. 또한 끊임 없이 광복이 오고야 만다는 신념을 갖고 전파한 독립 투사들이 진실하게 기록되여야 한다. 많은 이들이 구한말에 나철대종사께서 대종교를 창시한 것으로 알고 대종교가 하나의 신흥 민족종교인 것으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한국사의 크나큰 큰 불행이다. 대종교가 민족사에서 복권되는 날이 한국사가 바로 서는 날이 될 것이다. 대종교는 창교된 것이 아니라 중광 했다고 하는 이유는 이미 옛 고대 신시 개천으로 한얼님의 진리가 인간 세상에 최초로 내려온 때부터 있어온 민족 종교이며 인류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를 이어 오면서 면면히 이어지는 천선교(天仙敎)를 근세에 이르러 다시 일으킨 것이므로 중광(重光)이라 말한다. 그러기에 대종교 역사가 4476년이 되는것이다 나철홍암대종사님께서 삼일신고와 신사기. 단군교 포명서를 건네준 백봉신사님과 도인들은 백두산을 중심으로 예전부터 내려오던 비전(秘傳)의 옛 천신교의 법통의 바통을 이여받아 현대 근대에 크게 일으킬 적임자로 나철홍암대종사님을 선택 하셨으며,그리하여 그 한울바통을 이여 받으신 나철홍암대종사님은 비로소 민족혼의 부활을 위하여 바른 민족 전통과 신앙이 필요함을 깨닫으시고 국수망도가존 즉 나라는 망해도 민족 뿌리정신은 살아있다는 신념으로 대종교 중광에 나섰던 것이다. 나철 홍암대종사님은 ‘신리대전(神理大全)’을 저술하여 단군대황조님의 신앙의 사상적 틀인 삼신일체 한얼님 신관 사상을 철학적으로 정확하게 규명하시여 대종교는 민족을 초월하여 인류종교로 정립 하셨다
조국 독립운동의 거점을 확보 하였다. 1911년에는 나철대종사님에 의해 파견된 신규식은 중국 상해에 독립운동의 발판을 구축했다.
나철 대종사님은 일제의 박해와 탄압를 피해 1911년7월21일 총본사를 만주 화룡현 청파호로 옮겼다. 일본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대종교의 만주 진출은 신앙의 자유와 교세를 떨치기 위함이었다. 1910년 10월에 이미 북간도지사를 설치하고, 11월에는 박찬익을 앞세워 청산리에 시교소를 두었다. 1911년 6월에는 화룡현 학성촌을 중심으로 활발한 포교활동을 전개했다. 1911년에는 독립운동 단체인 중광단을 조직했고, 군관 학교를 세워 무장 항일 세력 양성에 힘쓰게 된다. 특히 1912년에는 나철대종사님을 중심으로 박찬익·박승익·심근·현천묵·백순·조창용· 기길(대종사님의 부인) 등이 백두산 북녘 화룡지역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활동을 전개 하였다. 500여 가구가 한꺼번에 입교하는 일이 있었는가 하면 100여 명이 동시에 입교하는 사례도 있을 정도로 활발하게 포교활동이 이루어 졌다. 대종교는 중광후 1년안에 신도가 3만명 가까이 모여들었다 특정 지역이나 마을주민 전부가 입교하는 등 교세는 급속하게 확산 되었다. 그리고 청호와 서울, 상해, 소왕청에 4도(道) 본사(本司)를 두었다. 조선반도와 중국, 러시아 연해주 등 조선민족이 사는 곳에 학교를 세워 포교 활동과 민족교육을 힘썼다. 배달학교,신흥무관학교,동창학교,동명학교,사관연수관학교,등 많은 민족학교를 세웠다 정인보,이시영,지석영 ,김좌진,등,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수없이 대종교에 입교 하였다. 이들이 1920년대의 항일독립운동 전선에 나타나 치열한 항일투쟁을 벌인 배경에 대종교가 있다.
노령·연해주 지방을 관할하는 동도교구, 남만주로부터 중국 산해관까지 관할하는 서도교구, 한반도 전체를 관할하는 남도교구, 북만주 일대를 관할하는 북도교구, 중국·일본 및 구미지역을 관할하는 해외교구 등의 5개 교구를 획정하는 등 항일 독립운동의 본산으로서 위상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김좌진·윤복영,·이범석·,여준·이홍래·정신·이동하·한기욱 등 실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대종교인들이 무장독립운동의 지도자급으로 활동했다. 1940년대 까지의 임시정부-북로군정서-청산리 대첩-봉우전투 - 흑하사변-임오교변- 조선어학회 사건의 맥은 대종교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대종교는 민족정신과 전통의식의 담지자로서 조선사람들을 각성시키고, 광복의 의지를 북돋았으며, 끝까지 변절하지 않고 투쟁 하였다. 대종교는 민족역사의 바른 흐름과 전통에서 자연스럽게 광복을 위해 노력 하였기에 사대주의/제국주의를 거부하고 민족의 광복을 위해 나아간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당시 일제가 철저히 탄압한 것이 사회주의/공산주의 였지만, 그보다고 더 극악하게 탄압한 것은 대종교였다. 당시 일제는 대종교를 종교를 가장한 독립운동 단체로 인식하였었다.
당시 기독교는 선교사의 영향과 보수근본주의 영향으로 정교 분리를 내세우며 독립운동을 외면하는 흐름이었으며, 천주교는 일제에 영합하는 상태였고(안중근의사는 천주교도였지만 사형전에 천주교로부터 파문을 당하였다) 불교는 일제의 침략에 휘말려 실제로 대처승단화 하였으며 (한용운 선사 등 일부의 저항이 있었지만 소수에 그쳤다), 유림은 친일세력으로 변신하였다. 투철한 신념과 확신으로 끝까지 변절하지 않고 해방전까지 액하감옥에서 마직막 순교까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마직막 해방전 끝까지 투쟁하였던 독립운동 세력은 오직 하나 밖에 없었다 그것이 바로 대종교 이다.
그리고 대종교는 시대상황에 따라 중광과 함께 조국을 찿기 위하여 항일운동의 선봉에 설 수 밖에 없었다. 일제하에서 일본이 공산당보다도 더 탄압을 받은 것이 대종교인 것을 보면, 일제가 얼마나 대종교를 싫어했는지 알수가 있다. 이에 대해 일제는 1915년 총독부령 제83호 ‘종교통제안’을 만들어 대종교를 종교단체를 가장한 독립운동단체로 불법화 시킨 후 국내 포교를 금하였다
이에 항거하여 나철 대종사님은 황해도 구월산에서 1,한얼님을 위하여, 2,대종교를 위하여. 3,세계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이 한몸 대신 한얼님전에 받치신 이신대명(以身代命)으로 순명3조(殉名三造)의 유언을과 중광가,예언 등 남기시고 대종교 중광 8년후 54세일기로 순교 하셨는데, 일종의 호흡수련법인 조식법(調息法)을 써서 호흡을 멈추어 순국하신 것은 최고의 수행경지에 들었음을 나타내셨다. 1917년에는 윤세복, 박은식, 신채호, 조성환, 홍명희, 조소앙 등 대종교 핵심인물 14명 명의로 대동단결선언을 발표한 바 있다. 1918년 대한(무오)독립선언 또한 대종교가 주도를 했다. 독립군 및 독립 운동단체 결집을 위해 연해주의 1918년 김교헌, 박찬익, 김좌진, 신채호,이시영, 이상룡, 이범윤, 조소앙, 박찬익,등 민족지도자,39인 연서로 조소앙이 집필하였다고 알려진 무오독립선언서는 일제의 대한제국 병합의 참탈이 사기의 강압과 무력폭행 침략에 의한 것이므로 한일합방은 무효임을 선언하고 대한민국은 완전한 자주 독립국임을 선포하고 육탄혈전의 무력으로 일제에 맞서 독립을 완성할 것을 <무오대한독립선언서(戊午大韓獨立宣言書)>를 화룡현에 있던 대종교총본사에서 발표하면서 무오독립선언을 토대로 2,8동경독립선언과 3,1독립선언운동이 일어나게 된 동기가 되여 독립운동에 활기를 붙기 시작했다. 또한 3.1만세운동의 결실로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해에서 탄생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수립 당시 의정원 29명 중에서 대종교 원로가 21명이었고, 정부조직에 임명된 13명 중에서 11명이 대종교였다고 한다. 3분의 2 이상 대종교 교인 이였다 그리고 실제로 무장독립운동단체를 만들어 일제와 싸웠다. 서일, 김좌진,윤세복,김혁, 이상룡 등 대종교인들이 북로군정서, 서로군정서, 흥업단, 신민단, 대진단 등 독립군을 만들어 마침내 청산리 대첩,봉우대첩을 대승으로 이루어 내었다.
청산리 전투에 대승을 거두신 백포 서일종사님은 함경북도 경원 태생으로 경술 국치후에 동만주로 망명하여 홍암대종사님의 말씀에 감화 되시여 31세에 대종교에 입교한 분이시다. 서일 종사님은 중광단(重光團)을 조직하여 직접 항일무장투쟁에 나섰다. 중광단은 정의단으로 확대 개편되고 나아가서 북로군정서로 발전하였다. 김좌진,등 수많은 애국지사가 사관연성소 출신들로 이들을 주축으로 청산리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백포 서일 종사님은 한학과 역리(易理)에 능통하신 분으로 불교와 신학(神學)에도 조예가 깊어 ‘회삼경’ ‘삼일신고 도해 강의’, ‘신리 주해(神理 註解)’, 종지강연, 삼일문답 등을 저술하셨다.
서일 총제님으로 계시던 북로군정서의 독립군 2천8백명의 독립군은 80%가 대종교의 교인들이였다 그리고 독립군 군자금을 대종교 신도들이 100% 충당하였다 2800명으로 일본군3천300명의 일본군을 모두 섬멸하는 세계 역사의 유레가 없는 대승 이였으며 독립군은 70명을 고귀하신 희생을 당했다 대종교인들과 독립군들을 향해 가해진 일제의 보복과 참살은 가혹하고도 끈질겼다. 소련으로 망명한 독립투사들은 일(日)공사 요시자와의 위협 사주를 받은 소련으로부터 무장해제를 강요당하는 소위 「흑하사변(黑河事變)」이라는 직격탄을 맞았고 다시 일본군의 보복을 대비 하기 위해 밀산 당벽진에서 전력을 정비 하는중 간교한 일본군은 중국의 산악 지대 전투에 밝은 중국 마적단 고산직을 매수하여 야밤에 일본군 야포까지 동원하여 급습하니 우리독립군은 속절없이 비참히 참화를 당하는 통분한 일이 벌어졌다 토비(土匪)들의 습격까지 겹쳐 급격히 힘을 잃게 된다,. 동포들의 희생과 수많은 청년독립군들의 희생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던 것이였다 수천명의 애국지사 독립군은 태국기와 사랑하던 가족 사진을 가슴에 품고 비통한 죽음을 당하였고 동포마을에 있던 대종교 교당 건물은 불태워지고 대종교 교인들은 어린아이,아녀자,노인 ,닥치는대로 살인,방화로 모조리 다 원통한 죽음을 당하였다
이 비참하고 비통한 현실을 보시고 백포 서일종사님은 1921년 음력 8월 27일(양력 9월 28일) “조국광복을 위해 생사를 함께 하기로 맹세한 동지들을 모두 잃었으니 무슨 면목으로 살아서 조국과 동포를 대하리오. 차라리 이 목숨을 버려 사죄하는 것이 마땅하리라” 이런 유언을 남기고. 귀신도깨비 날뛰고 뱀과 돼지가 물어 뜯어 인족은 피투성이 되고 해는 저물어 길은 끊겨도다 인간은 어디로 갈 것인가 ? 라는 한탄시를 읊으며 이 모든 참화가 자신의 잘못으로 생각하고 뒷산에 올라 페기법으로 스스로 41세 한창나이에 순국 하셨으니 정말로 한울도 울고 산천초목이 다 통곡하며 울었다. 그러나 순국하신 서일 성자는 말이 없으셨다 김교현 무원대종사님는 그당시 최고의 대학자 였으며 1910년 대종교에 입교 하셨고 서울 종로의 조계사터 99 칸 대궐같은 집과 많은 토지를 팔아 모두 만주에 와서 민족학교를 세우시고 교적 발행과 독립자금을 충당하셨다 만주에서 포교활동을 하던 중 1916년 홍암 나철 대종사님이 순교하시자 교통을 전수받고 활동에 나서 1922-1923년간에 46개의 시교당을 설치하셨다. 신단민사 신단실기 단조고사의 상고사 역사를 정리 집대성 으로 집필하시고 만주에 34개소, 국내 6개소, 러시아지역 3개소, 중국본토 3개소였다. 이를 보면 일본의 악할한 탄압을 피해 대종교의 확장은 옛 배달나라땅 만주지역 동포를 중심으로 대종교를 포교하며 독립운동의 주류의 중심으로 성장한 것을 알 수 있다. 무원종사님은 밤,낮으로 원도와 교리와 역사집필에 정진하시며 포교에 매진 하신다 사랑하던 대종교 시교사 신규식 가족이 일본군 의해 몰살당하고 많은 동포가 일제에 학살당하는 여러 비보를 듣으시고 식음을 끊고 차디찬 혹한의 냉방에서 상심의 병환과 동상으로 57세로 순교 하셨다 대종교의 3세 교주를 지낸 단애 윤세복 종사님은 1910년 10월 12일 홍암 나철 대종사님를 만나 큰 감명을 받은 후 입교하여 밀양의 수만석의 대부호의 토지를 몽땅 팔아 대종교포교,교육사업, 독립자금으로 충당하셨으며 만주 환인현에서 대종교 시교사로 일하면서 동창학교를 설립하시고, 액하감옥에서 삼법수행의 삼법회통을 집필 하시며 밤낮 원도와 포교와 독립운동에 밤,낮으로 매진하셨다.
조국이 해방이 되여 1946년 단애종사님은 대종교총본사 간판을 짊어지시고 교우들과 함께 34년만에 조국에 환국 하시여 교리 연구와 후배 양성에 매진하시였다 일제 액하 감옥에서 일본경찰에 심한 고문을 당하시여 그 휴유증으로 1960년 파란만장한 80세로 순교 하셨다 1925년 일제는 “대종교 주요 간부인 서일종사님이 대한독립군의 수령으로서 그 교도를 이끌고 일본에 항전하였으니 대종교는 곧 반동군단의 단체로서 종교를 가장한 항일단체이니 중국에서 영토책임상 이를 해산시켜야 한다”는 것에 의해 일제 통제에 있는 일제만주국에서의 대종교 포교금지령이 내려져 대종교는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대중국외교통이었던 박찬익이 활약하여 1929년 포교금지가 풀리지만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 다시 활동이 금지 되었다. 그럼에도 단애 윤세복 종사님은 1934년 대종교 선도회를 조직하여 포교와 항일운동을 계속하였으며 1939년에는 대종교 교적 간행위원회를 발족하여 2만권에 이르는 대종교 서적을 간행하였다. 이극로의 ‘널리 펴는 말’을 트집잡아서 국내와 만주, 중국에서 대종교 박해사건을 일으킨다. 국내에서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알려진 것이며 만주와 중국에서는 ‘임오교변’이었다. 1942년 임오교변으로 단애 윤세복 종사를 포함한 25여명의 전국의 대종교 지도자들이 모두 다 체포되시여 일본 경찰의 악란한 고문으로 10명이 순교 하셨다. 그 10분이 임오 십현감 이시다 대종교는 대종교를 접하였던 당시의 한국인에게는 모두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신채호와 박은식은 대종교에 입교한 뒤 그전까지 가졌던 고루한 유학에서 벗어나 민족의 자주정신을 깨우치고 단군조선부터 고구려, 발해를 이어 내려온 민족 전통에 그대로 접목하여 역사와 철학을 완성시켰다. 신채호 선생의 ‘동국 민족고유의 도가,선가, 낭가 사상을 정립한 것이며, 박은식의 몽배금태조는 과거 사대모화적인 유교정신의 잔재를 청산하면서 느낀 자기 고백의 회심서(悔心書 : 뉘우침의 글)인 것이다. 기독교 세례를 버리고 대종교로 개종하였으며, 국어사랑의 바탕을 단군대황조님 신앙에서 찾아 민족의 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조선어학회를 이끌었던 이극로 선생은 단애 윤세복 종사님에게 감명을 받아 대종교에 입교하였으며 당시 조선어학회가 국내의 대종교 비밀 결사조직을 실제로 담당하였다. 민족자본가로 독립운동의 군자금을 대었던, 독립투사로 알려진 백산 안희제 선생도 대종교 정신을 토대로 민족경제를 위해 노력하였던 분이시고 임오교변 때 순국하셨다. 일본이 참탈당한 그 당시 대종교가 처음부터 해방전 끝까지 목숨을 걸고,받히며 장렬한 무장투쟁을 하는 동안 기독교나 다른 종교들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일제에 영합하는 태도를 취하였던 점과 큰 대조가 된다. 대종교는 중광한 이후 바로 항일 독립운동의 최전선에 나가 민족의 독립과 미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일본군에 맞서서 치열한 항알투쟁으로 끝까지 싸웠다. 그 당시 대종교인 모두가 하나같이 오직 조국광복과 민족뿌리 정신을 찿고, 인류평화를 위해 농사를 지으면서, 재산,돈,등 모든것을 아낌없이 독립운동에 받치며 자신들은 헐벗고 굼주림을 고통속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목숨까지 살신성인으로 기꺼히 희생 하셨던 것이다 무려 10만명 이상의 대종교 교인분들의선열님이 일제의 의해 순국하셨던 그 위대하신 선열분들 생각하면 우리는 너무 부끄럽고 면목이 없다 이러한 순수한 10만분들의 희생의 종교신앙,단체가 세계어느 곳에도 찿아 볼수가 없는것이다 그러나 대종교는 광복이후에도 국내 실권을 장악한 친일파들과 기독교만을 절대시 하는 기독교도들에게 노골적인 박해를 받으며 대종교는 점점 쇠락하여 졌다. 미군정에 박해를 받고 이승만정권에 등용된 일제 잔재들에 박해를 받고 일제 군인장교 노릇한 일제 앞잡이 군인장교출신 사람들에게는 대종교는 눈에 가시였다 (만주에서 대종교 독립군 섬멸에 앞장섰던 조선족 일제 장교) 그래서 이승만 정권과 5,16군사정권은 대종교가 세운 홍익대학,경희대학,단국대학,국민대학을 강제로 다 빼앗아 대종교의 인제 양성을 차단하여 단기연호를 폐지 하며 대종교 발전을 막았다 이러함의 역사가 민족적으로 보면 참 불행한 역사인 것이다 예컨대 대종교인들은 일본인과 일본앞잡이 일본잔재 조선인에게 늘 박해와 살해위험이 뒤따랐다. 대종교인 대부분이 독립운동의 지도자급들 인데다가 하는 일도 일본 그들이 제일 싫어하는 한글국어보존 운동과 배달역사바로세우기 아니면 무장투쟁을 선도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일본군과 일본앞잡이 조선인들에게 참혹한 박해와 가난과 순교의 길 아니면 참살을 당해 고혼으로 떠도는 사람들이거의 대부분이 대종교인 이다. 대종교의 순국선열분들은 모든 것을 조국의 광복을 위해 바쳤기에 광복 후에는 거의 모든 것을 잃었다. 그리고 이제는 기억하는 이들이 별로 없음은 한국사의 너무나도 큰 비극이다. 그러나 그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들이 있으며, 한국사에서 일제 강점기가 공백이 아닌 당당한 투쟁의 역사로 기록되어 질 수 있는 것이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잊혀진 대종교인들의 순국과 희생을다시 한 번 기리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은 독립운동으로 그때 가신 영령들에게 최소한의 감사와 진혼곡을
올려드려야 하며. 삼가 명복을 빌여 드리며, 위로해 드리며 대접 하여 드려야 한다 민족적 고유 전통 위에서 조국광복과 인류평화를 위해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구현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친 대종교가 흘린 10만 선열님의 고귀하신 피와 땀에 대해 한국의 모든 사람들은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대종교의 무장독립의 수 많은 순국선열님 이 아직도 독립유공자의 대접도 못받으시고 푸대접에 잊혀저 가는 통탄할 현실이다, 목숨,재산,가족 모두다 조국광복에 다 받치신 대종교인이신 독립유공자 선열님들을 과거 정부에서는 독립유공 1 -2 등 공신도 안드리고 대종교신도라는 이유 때문에 3 -4등의 푸대접 공신을 드린 경우가 많다 정말 가슴을치는 어이없는 일이다 지금도 독립운동 방송에 다른 종교인들의 독립운동 명단은 매스컴등에 선전되면서 , 독립운동의 총 본부 중심 역활을 한 대종교(大倧敎)는 대(大) 자도 안보낸다 왜그럴까? 대종교가 독립운동의 역활이 70-80%을 차지하니 대종교가 거론되면 모두가 위축이되고 친일잔재들이 들어나 위축이 되고 잘못된 역사판도가 바뀌는 것이 두려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것이다 친일파가 수많이 득세하여 민족주의자들 독립투사분들을 역 청산한 바탕위에 비틀려 거꾸로 선 한국의 현대사가 바로 잡히는 날, 대종교의 인류평화와 조국 광복의 희생이 다시 평가 받을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바로 우리배달나라의 정체성이 바로서며 대 국운이 도래 할것으로 본다 일제로부터 조국이 해방이 되였지만 외세의 힘에 의한 해방을 맞이하다 보니 외세들은 대한민국이 하나로 통일 독립되는것을 막았다 조선반도는 세계지리에 천혜의 요새이므로 엄청난 강대국이 될수있는 여건이 되므로 소련과 미국은 조선반도 분단을 원하고 일본은 맞장구를 치니 우리 한민족은 다시 미소 양국의 이데올로기 체제 사상 경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남북으로 갈렸고, 6.25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으면서 남북 분단은 돌이킬 수 없는 한많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70여년 동안 정말 불행한 한 많은 역사가 된것이다 만약 해방이 되고 바로 분단이 안되고 남북이 하나로 통일되며 일제가 청산되고 개혁과 개방을 이루 갔다면 우리나라 조국은 독일보다 중국보다, 일본보다 더 강대국이 되여 미국, 러시아, 대한민국이 세계최대 강대국으로 되여 일본이 대한민국을 감히 무시 못하는 쩔쩔매는 초강대국 복지국가 대한민국이 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불행하게도 남한은 일제청산도 못하고 서양의 기독교 자본주의 사상의 영향 아래 자유시장경제 질서와 반쪽 기울어진 자유주의 체제로 나왔고, 북한은 서양의 유물론 공산주의 사상의 영향 아래 국가계획 경제질서와 사회주의 체제로 나왔다. 남북 분단의 원흉이었던 미국과 소련의 이데올로기 체제 경쟁은 끝난지 오래지만, 남북은 여전히 분단 상태다. 한반도라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언어와 같은 문화를 가지고 수천 년을 함께 살아온 단일민족이 아직도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70년을 지내고 있다니, 참으로 한많고 한심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다행히 2018년에 들어와서 한반도에 비상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18.9.19 평양공동선언을 기점으로 오랫동안 얼어붙어 있던 한반도에 평화의 봄기운이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우리 한민족은 모처럼 맞은 이 기운을 세차게 몰아 이번에 반드시 끊어진 한반도의 허리를 이어야 하지만. 그러나 다른 나라의 힘에 의해 전쟁으로 이루어지는 통일은 또 하나의 큰재앙을 가져올 뿐이다. 그러함은 완전한 영원한 조국통일이 될수 없다. 조선반도의 조국의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러시아,중국,일본이 분명히 개입되여 조국은 완전 초토화 되며 더 불행한 2차 3차 분단이 이루워 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 미국,러시아,일본,중국,은 우리 조국이 남,북한이 통일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방해하게 되여있다 통일된 조국 대한민국이 엄청남 강대국이 될 소지가 있어 두렵기 때문이다 통일은 반드시 우리 한민족 스스로의 힘으로 평화적으로 차근차근 이루어 나가야 한다.
남한과 북한의 국가 지도이념은 모두 외래 사상에 기반하고 있다.
조국의 정통성이 바로 서며,바른 역사가 정립 되며,사대주의와 일제잔재를 바로 청산하여 질때 ∼∼∼∼∼ 그때가 되어야 배달계레가 대 천운을 맞이하며 대 국운이 도래하기 위해서는
10만이상의 애국선열님의 고귀하신 희생 바탕 터전위에 서있는 대종교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오직 한얼님의 성령의 정통성 천법통(天法統)의 중심의 맥을 계승한 대종교가 크게 중창으로 가야함을 꼭 밝히고자 한다 그래야함이 조국 통일,세계평화의 길을 찿아가기 때문이다 자,,,,, 이러한 중요한 시기에 우리는 진정 대종교를 위하고 있는가 ? 모두가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으로 나에게 물어 보자
나는 한울을우러러 한점 부끄럼없나,,,하며 나을 진심으로 돌아보자 한울은 아실 것이다 띠끌만큼도 세세히 다 아실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두러워 하자 ,,,,,,, 대종교 중광 근대사 독립운동사를 일부 단편적 밝히 글입니다 이웃,사회등 많이 퍼날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종교의 항일 지사들. 위 왼쪽부터 김동삼, 김좌진, 신채호, 우덕순, 이동녕, 이병기, 이상설, 이시영, 이회영,장지연, 정인보, 주시경, 지청천, 최현배, 홍명희, 홍범도. (주시경이 말모이를 위해 일일이 정리한 자필 원고 [주시경 김두봉 이극로 말모이 뜻 조선
개천4476년 3월 1일 대종교 선도사 : 성 용탁 올림 hp010 - 6609 - 4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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