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양은 아니지만 비가 내리면서
엉성해 보이던 밭에 다소 생기가 돈다.
예정보다 닷새 이상 수확시기를 늦춘
열무가 비를 맞으면서 부쩍 키가 자라고
달팽이들에게 시달리며 근근히 연명해 오던
얼갈이배추도 오늘따라 싱그러움을 찾은 느낌이다.
수년 전에는 청개구리가 집단서식하는 마을을 이루면서
어지간한 해충들은 모조리 쫓아버려서 채소를 도와줬는데
수년간 가뭄이 지속되면서 살구나무 아래에 조성해 준
나뭇가지와 풀로 이뤄진 곳에도 보금자리를 틀지 못하였다.
따라서 개미와 벼룩벌레와 달팽이 등 해로운 벌레들이
디수 번식하게 되면서 채소의 반 정도는 벌레들과 나누는
기현상이 연속 발생하고 있으며 올핸 그나마 비워 둔 자리가
반 이상 되는 까닭에 한때는 버려진 밭처럼 황량하기도 했었다.
까치나 참새가 자주 날아들기는 하나 벌레 퇴치에는 별반
이바지하는 바가 없어 보이며 나뭇가지에 앉아 허연 똥이나
싸재끼고 밭에서 뒹굴며 흙목욕을 하는 바람에 꼴보기 싫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이다.
저번에 풀을 골라내고 부드럽게 갈아 둔 고양이변소에도 터주가
되어버린 고양이가 두어 차례 흙을 헤짚으며 똥을 덮은 흔적이 보인다.
동물들도 각기 나름대로의 생존가치가 있을 법하지만 시골생활에
여전히 서투름이 많은 나로서는 짐승이나 새나 곤충이나 벌레들이
어떻게 농사에 기여하는지를 거의 짐작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작년부터 궁여지책으로 토양살충제를 섞어두긴 하였지만 별반
효과를 보지 못하여 봄마다 벼록벌레가 기승을 부리곤하는 모습인데
괜시리 농약으로 지렁이나 거미만 죽이는 건 아닐까?
아무튼 기다리던 비가 내려서 상쾌한 가운데 바람조차 서늘해서
숨쉬기가 원활하고 마당도 갈끔해보여서 기분이 썩 좋다.
저녁무렵에는 그새 다시 불룩해진 분리수거용 부대를 정리해야겠다.
파종이 늦어 염려했던 갓과 알타리 싹이 거의 다 솟아나
사뭇 기대가 되는 가을날의 오후...역시 밭에는 비가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