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면서 무엇보다 간절한 것은 따끈한 방바닥이다.
등을 대고 지질 수 있는.....
어느새 가을은 소리소문도 없이 자연스레 익숙해졌다.
마른 홍합을 넣고 미역국을 한 솥이나 끓였다.
매콤달달하게 닭볶음탕도 한 냄비. 계란장조림, 가지나물, 무우생채... 우유, 카스테라.
세인은 방금 밥을 먹었다 했다. 잔뜩 가져온 반찬을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으면서.
불과 얼마 전만해도 방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절대 눈 조차 마주치지 않으려 했었는데.
턱을 받치고 엄마 이야기를 경청하는 세인의 모습이 참 편안해 보인다.
잠시동안 우울을 거쳐 온 우리들의 마음은 실보다 득이 많았노라 저마다 인정이 되는지.
모든 것이 감사한 일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쉬 놓아버리지 않았던 인연의 끈!
다 괜찮아질 것이다, 다 지나가는 것이다. 수없이 되뇌었던 마음 속 다독임.
결국 우린 해내었다.
"할머니가 그러던데, 엄마는 절대 일을 놓지 못할 사람이라고. 부지런해서."
- 그렇잖아도 아저씨가 그러더라. 천성이 그런건지 정말 부지런하다고..
어쩌다가 세인과 이런 대화까지 가능해졌는지 신기하기 짝이 없다.
다빈의 생일은 21일이니 아직 날짜가 남았어도 막내라 그런지 신경이 많이 간다.
"엄마, 다빈 남자친구 정말 잘 생겼더라. 진지해 보이고."
- 엄마도 그렇게 느껴졌어. 첫눈에 확 마음이 가는 아이...
딸이 하나도 아니고 셋이나 되는 나, 때때로 시기와 질투의 시선을 빼놓을 순 없지만
아들도 없이 딸이 셋이나 된다고 알게 모르게 눈총 주던 그런 때에 비하면
지금이야 호시절이지.
선물로 무엇을 해줄까?
따뜻하고 가벼운 겨울이불과 쿠션카바를 샀다.
세인 것도 함께.
"엄마, 다빈이는 파란색을 좋아해."
- 그럼 네가 핑크색을 가지면 되겠다.
그리고 판교 알파리움 라스트리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다빈하고만.
원래는 내일이었는데, 약속날짜를 하루 앞당긴 것은 잘한 선택이다.
터키음식점 KERUAN을 들어갔는데 그 곳은 와인이나 술 종류는 전혀 취급 않는다 해서
건너편 어글리스토브... 여자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레스토랑으로.
모처럼 다빈이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겠다.
6시에 수업이 끝나서 헐레벌떡 도착한 다빈.
"엄마, 이런 곳에서 저녁 처음 먹어 봐요. 고맙습니다.
학교 앞은 냉면이나 돈까스... 양은 엄청 많지만 맛은 고급스럽지 않아요."
언제 어디서나 절도있게 공손한 아이.
대견하다.
2017년 10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