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육필공원'
대구 팔공산 동화사 입구에 세워진 한국 현대시인들의 육필시비이다.
시인들의 육필 시비를 한 곳에 이렇게 많이 세워 놓은 곳은 아마 전국에서 여기뿐일 것이다.
자연석을 수집하는 어떤 문학애호가가 자신이 즐겨 읽는 시인들의 육필 시 25점을 모아서 전시해 놓았는데,
돌에 새겨진 시가 종이에 인쇄된 시보다 한 번도 더 좋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고 감동 받기도 어렵지만,
부자들이 이렇게나마 시를 알리는 것은 나쁘지 않아 보인다. 길가에 있어서 행인들이 쉽게 볼 수 있다.
유일하게 육필이 아닌 백석의 시는 1936년에 발간된 시집 <사슴>에서 사용된 고풍스러운 활자 형태를 재현했다고 한다.
그 외 모든 시인과 필체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한용운, 윤동주, 김지하, 유안진, 신경림, 안도현, 천상병...
윤동주 시인의 따뜻하고 온화한 필체는 익히 보아 와서 잘 안다.
천상병 시인의 필체는 무례하지만 '철없다'는 선입견과 일치한다.
육필공원 조성 때 특별히 써서 원고를 보내주었다는 고은 시인의 필치는 힘보다는 활달하다는 느낌이다.
굵은 획의 '마저절위(磨杵絶葦)'라고 쓴 한용운의 글씨는 가슴이 섬뜩, 무섭기까지 하다.
'공부에 워낙 몰두하다가 보니까 절굿공이가 다 닳아서 바늘이 되었고, 책을 묶은 가죽끈이 다 닳아서 책이 모두 떨어져 버렸다'는 의미로서, 모든 일에 힘써 노력하는 삶의 자세를 일러주는 글귀라고 한다. 매우 낯선 말이다.
안도현 시인의 육필은 그의 고향이자 나의 고향인 예천 흑응산 기슭에도 '예천' 시비가 있어 눈에 익다.
그런데 오래 눈길을 끈 시는 박노해 시인의 '사람만이 희망이다'
글씨가 길고 뾰족뾰족하다. 목소리는 한없이 낮고 부드러운데, 그의 삶과 필체가 똑같지 않은가.
꼿꼿하게 신념을 지켜나간 대꼬챙이 같은 바른 양심을 생각하며 유일하게 발길이 오래 머문 작품이다.
최근에 나온 베게보다 더 두꺼운 그의 시집과 사진집은 오는 겨울방학 때 읽으려고 이미 목록에 올려 두었다.
첫댓글 시인과 글씨체를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아주 새롭습니다.
'신언서필'이라고 한 옛말이 틀리지 않아요. 글씨는 그 사람의 사람됨을 엿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료입니다. 좋네요.
오잉? 동화사에 있다구요? 전 못봤는데...
진입로 길가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