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현리 천문학교/정일근
내 사는 은현리 산골에 별을 보러 가는 천문학교가 있다. 은현리 천문학교에서 나는 별반 담임 선생님, 가난한 우리반 교실에는 천체망원경이나 천리경은 없다. 그러나 어두어지기 전부터 칠판을 깨끗이 닦아놓는 착한 하늘이 있고, 일찍 등교해서 교실 유리창을 닦는 예쁜 초저녁 별이 있다. 덜커덩 덜커덩 은하열차를 타고 제 별자리를 찾아오는 북두칠성 같은 덩치 큰 별들이 있고 먼 광년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느라 숨을 헐떡이는 별들도 있다.
오래전 나도 별과 같은 학생이었다. 그때의 우리들처럼 별들도 여간 말썽꾸러기가 아니다. 내가 출석을 부르는 사이 슬쩍 자리를 바꾸어 앉는 개구쟁이 별이 있고, 시간 시간 붉은 옷 노란 옷으로 갈아입는 멋쟁이 별도 있다. 그러나 나는 별들을 야단치지 않는다. 혹시 별이 울어버릴까 두렵기 때문이다. 은현리 천문학교에서는 누구도 별을 울려서는 안 된다. 별이 울어버리면 하늘 제자리에 손톱 자국같은 생채기를 내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오래, 아주 오래 별을 바라본 사람은 알 것이다. 가령 첨성대에 올라 별을 바라보았던 서라벌의 점성가들은 벌써 알고 있었을 비밀이다. 그 비밀을 말하자면, 모든 별들은 악기라는 것이다. 하늘이 눈물로 만들어진 하늘의 악기, 그래서 별들은 쨍그랑 쨍그랑 수정 유리 소리를 내고, 바람 부는 날 은현리 천문학교에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혹 당신이 듣지 못했다 해도 부정해서는 안 된다. 믿지 않으면 별들의 연주를 영원히 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젊은 날 내가 지휘자가 되고 싶었다는 것을 이야기했던가. 하얀 연미복을 입고 하얀 구두를 신고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을 열광적으로 연주하고 싶었다. 이제 그 꿈이 이뤄졌다. 필하모니를 지휘했던 카라얀 선생도 나보다 가슴 뛰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작은 산골에서 지휘봉을 들고 밤하늘에 뿌려져 있는 별들이 소리를 조율한다. 나의 지휘로 은현리 별들이 서서히 합주를 시작하면 미리내는 안단테로 흘러가고 밤하늘은 유려한 음악에 젖는다.
별은 자신을 때리며 소리를 낸다. 별은 소리를 낼 때 가장 빛난다. 작은 별은 맑은 소리로 웃고 큰 별은 우렁찬 소리를 고함을 지른다. 물고기자리의 별들은 물고기가 되어 튀어 오르고 전갈자리의 별들은 전갈이 되어 달아난다. 개구쟁이 녀석들이란 1악장이 끝나기도 전에 내 지휘 따위는 안중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편안하다. 연미복을 벗어 던지고 구두를 벗어 던지고 지휘봉마저 던져버리고 풀밭에 눕는다.
하늘의 별들이 네게로 뛰어내린다. 선생님 하며 내 품으로 달려온다. 내가 바다가 보이는 교실의 선생님이었던 그때처럼 내게로 달려와 아이들은 노래를 부른다. 우리는 천문학교 교실에서 한 몸이 되어 노래를 부른다. 별들이 모두 제 집으로 돌아간 새벽 나는 악보를 그린다. 아주 옛날 은현리에 살았던 우시산국* 사람들이 바위에 그 별자리를 새겼듯이 천상열차분야지도** 같은 황홀한 하늘의 합창을 잊어버릴까 내 마음의 천문도에 또박 또박 그려 넣는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에 있던 고대국가
**우리나라 옛 천문지도
<시 읽기> 은현리 천문학교/정일근
정일근 시인의 <은현리 천문학교>는 모두 6연이나 되는 긴 산문시입니다. 그러나 일단 시를 읽어 나아가기 시작하면 어느새 마지막 부분에 이르게 되고, 시 읽기를 마친 우리들의 머릿속에는 잊었던 유년의, 자연의, 저녁의, 하늘의, 별들의 아름다운 동화적 세계가 펼쳐집니다.
정일근 시인의 시적으로도, 직업적으로도 의도한 바를 성취해 나아간, 소위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몇 해 전 뇌종양 수술을 받아야 하는 어려움이 찾아왔고, 그는 이를 계기로 그가 신문 기자로 활동하던 도시 울산을 떠나 ‘울산시 울주군 웅천면 은현리 135의 31번지’라는 시골 마을로 전업시인이 되어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결정이었겠지만, 거기서 그의 삶과 시는 새로운 차원의 성장을 이룩하기 시작하였고, 그는 위 시가 수록된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이라는 시집을 내어놓았습니다.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이라니요? 그렇습니다. 이 말은 좀 낯설지만 그러나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이 말대로 시골로 이사를 와서 전업시인이 된 그는 아침이면 도시의 사무실 대신 그의 시골집 앞마당으로 출근(?)하여 풀꽃과 바람과 구름을 친구 삼아 시를 쓰고 이야기를 나누다 저녁 무렵이면 집 안으로 퇴근하곤 하는 것입니다.
출근과 퇴근은 도시가, 근대가, 산업화가, 시계가 만들어낸 용어이자 산물입니다. 농경사회만 보더라도 생체리듬이 기계리듬에 앞섰고, 사람들은 보다 자유롭게 일터와 집을 드나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일터에서 만나는 동료들은 사람들이라기보다 오히려 자연이었습니다. 농경사회의 생활이 반드시 더 낫거나 옳은 것은 아니지만, 삶의 다양성과 현대의 출퇴근이라는 문제를 생각해보기 위하여 이런 말을 꺼냈습니다.
정일근 시인은 건강과 도시 그리고 직장을 잃은 것은 분명 아픔이고 피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지혜롭고 새로운 삶이 터에 얼른 하얀 실뿌리를 푸근하게 내리고 그곳에서 진정 절박한 사람만이 진심과 열정이라는 무기로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삶과 시의 세계를 창출한 것입니다. 그가 이런 자신을 당당하게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이라고 소개하였을 때, 그리고 위의 시에서처럼 밤하늘의 별들을 지휘하는 전문학교의 선생님이자 오케스트라 단원의 지휘자라고 소개하였을 때,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그를 부러워하였습니다. 그것은 부러운 세계라고 하는 것이 큰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숨은 오솔길에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지표였습니다.
위 시의 시작은 은현리 산골 마을에 천문학교가 있다는 데서부터 이루어집니다. 그 천문학교에서 시인은 별반의 담임선생님이고 그는 하늘의 뭇별들을 학생으로 두고 있습니다. 이런 구성 속에서 천문학교이 학교놀이가 마음껏 전개됩니다. 인간들의 학교와 달리 은현리의 천문학교는 밤이 되어야 문을 엽니다. 그 천문학교의 등교도 그러니까 밤이 되어야 이루어집니다. 학생들는 별들은 멀고 가까운 곳에서, 이런저런 모습으로, 등교를 하고, 이들을 가르치러 오는 선생님도 밤의 시간에 출근합니다.
위 시에서 담임선생님인 시인은 별들을 아주 재미있게 묘사합니다. 일찍 와서 담임선생님인 시인은 별들을 아주 재미있게 묘사합니다. 일찍 와서 유리창을 닦아놓은 별, 덩치가 큰 별, 바쁘게 등교하는 별, 개구쟁이 별, 말썽꾸러기 별, 멋쟁이 별, 이들은 모두 우리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교실에서 만났던 친구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는 이들을 절대 울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는 별반의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하지 않는다면 존재는 그들의 싱싱한 실재를 구김없이, 아름답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을 그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인은 첨성대 시절의 예언가적인 천문학자들을 상상하다가, 이내 자신의 말로 ‘별들은 그들 하나하나가 악기다’라는 명제를 만들어냅니다. 이 명제를 달리 표현하면, ‘이 우주 속의 모든 존재는 다 그 나름의 노래를 내장시킨 악기다’라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런 시인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이 시를 더 읽어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단 이 말에 동의하게 된다면 위의 시 제3연부터 시작되는 은현리 천문학교의 별반 음악회는 매우 감동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지휘자가 된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담임선생님도 지휘자와 다르지 않습니다. 다양한 악기를 조율하고 각자의 소리를 내면서 서로가 조화로운 음을 만들어내도록 각각의 소리를 내면서 서로가 조화로운 음을 만들어내도록 각가의 연주자와 학생들을 이끄는 일은 정말 대단한 능력과 노력과 열성을 필요로 하니까요.
시인의 지휘자가 되고 싶었던 소망을 별반 담임선생님으로서 실현시킵니다. 바다를 보고 연설을 했다는 한 쉬르레알리즘 작가처럼, 하늘이 별들을 품어 안고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노릇을 하는 시인의 모습은 여러 면에서 인상적이고 시사적입니다. 지휘봉을 들고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음을 맞추고 음악을 만들어내는 시인은 그런 자신이야말로 세계의 명지휘자 카라얀보다도 가슴 뛰는 시간을 가졌다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그 자랑은 무해하여 민망하지 않다는 것이 이채롭습니다.
밤하늘에서 별반의 지휘자가 되어 하늘과 땅 사이에 음악의 선율을 가득 채우는 시인, 그는 어린 나라의 사람이거나 이야기책 속의 사람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의 시골마을에서 벌어진 일이고, 별들에 대하여 아는 자가 아닌, 결과 함께 사는 자가 만들어낸 환상적이지만 리얼한 장면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음악회의 장면을 어린이 나라의 것만으로, 환상적인 것만으로 생각할 수 없는 측면이 다른 곳에 숨어 있습니다. 시인은 음악회가 절정에 이르는 듯한 제4연에 이어지는 제5연에서 “별은 자신을 때리며 소리를 낸다” “별은 소리를 낼 때 가장 빛난다”와 같은 명언을 보석처럼 행간 속에 박아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 그는 먼저 인생을 산 자라는 의미로서의 ‘선생님’ 같은 혜안의 소유자가 되고, 별들의 동화적인 음악회 속에는 동화적인 음악회 속에는 동화의 나라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음을 감지하게 합니다. 별들이 자신을 때리며 소리를 낸다는 것은 자신을 단련함으로써 존재는 화성和聲을 창조한다는 의미이고, 그때에 별들이 가장 빛난다는 것은 가장 맑은 목소리가 가장 환한 얼굴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이런 별들의 참소리의 비밀을 안 시인은 더 깊은 감격 속에서 지휘를 합니다. 그러나 그가 맡은 반의 별들은 초등학교 교실 속의 개구쟁이들, 그러기에 그들의 음악회는 전문가의 그것처럼 완벽하지 않습니다. 전문가의 음악회가 보여주는 음악회라면 이들의 음악회는 그들끼리 좋아서 관객 없이 하는 자축 음악회입니다. 따라서 시인 자신도 개구쟁이들처럼, 지휘자의 복장을 벗어버리고 풀밭에 누워버립니다. 결국 ‘미완성 교향곡’을 연주한 셈이지만 완성된 교향곡의 인위성에 비하면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연주인 셈이지요.
선생님의 지휘에 따라 자신들의 악기를 울리며 서로 하나됨을 보여줬던 천문학교 별반의 풍경은 이제 몸으로 포옹하고 품어 안아서 하나가 되는 동화나라를 창조합니다. 제6연의 내용처럼 지휘복과 지휘봉을 벗어버리고 풀밭에 누워서 달려오는 별들을 품에 안은 시인의 모습은 이 세상에서 더 행복한 광경을 따로 말할 수 없는 그런 풍경입니다. 별들은 선생님의 품에 안겨 누구의 지휘도 없이 선생님과 함께 밤새도록 노래 부르다 새벽 무렵 어둠이 다하기 전에 그들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낮은 사람들의 시간이니까요.
새벽이 되어 별들과 작별하며 시 속의 화자인 선생님은 황홀한 그 밤의 합창을 잊어버릴까봐 악보를 그립니다. 그의 악보는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만큼 잊을 수 없는 합창의 지도이며, 우시산국 사람들이 바위에 새신 것보다 더 오래 견딜, 마음속에 새겨진 악보입니다.
위 시 속의 시인처럼 별들과 음악회를 열고, 별들과 합창을 하고, 그 음악을 마음의 지도에 그릴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파도를 대상으로 연설을 하거나, 나무들과 함께 축배를 들거나, 꽃들과 함께 비밀의 화원에서 놀 수 있는 사람도 행복합니다. 이들이 상상과 내면은 허황한 듯하나 그런 놀이야말로 돈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진정 행복한 삶의 한 자락입니다.
마당으로 출근하는 정일근 시인은 그의 시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에서 자신이 잠시 자리를 비우면 바람이 공책을 몰래 넘기고 구름이 그의 시를 훔쳐 읽고 달아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또다른 시 <아침 부처>에서 아침 마당가로 나오면 세수하려고 받아놓은 물에 하늘이 먼저 세수하고 파란 얼굴로 저만큼 서 있다고 말합니다. 그기 자신의 시에서 시골 마당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렇게 일러줄 때마다 그것을 듣고 상상하는 우리의 마음도 거기에 포개집니다.
아내가 찻집을 운영해서 생활하는 시골에서의 시인의 삶은 넉넉하지 않겠지만 그는 긍정의 시선으로, 시인의 마음으로 패자가 될 수 없다는 의지로 보다 풍성한 상상으로, 그의 마당이 상징하는 시골에서의 삶을 풍요롭게 생성해 갑니다. 그것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생성’입니다.
앞에서 잠시 언급하였지만 그 생성의 현장을 눈에 잡힐 듯이 보여주는 정일근이 시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의 전문을 소개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솥발산 산자락에 살면서부터
마당에 놓아둔 나무 책상에 앉아
시詩를 쓴다. 공책 펼쳐놓고
몽당연필로 시를 쓴다
옛 동료들이 직장에서 일할 시간
나는 산골마당이 새 직장이고
시가 유일한 직업이다
월급도 나오지 않고
의료보험 혜택도 없지만
나는 이 직장이 천직天職인양 즐겁다
나의 이 직장 동료들은 풀꽃과 바람과
구름, 내가 중얼거리는 시를
풀꽃이 키를 세우고 엿듣고 있다
점심시간,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
바람이 공책을 몰래 넘기고
구름이 내 시를 훔쳐 읽고 달아난다
내일이면 그들은 더 멋진 시 보여주며
나에게 약을 올릴 것이다
이 직장에서 골찌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열심히 마당으로 출근한다
울산시 울주군 웅촌면 은현리 135의 31번지, 정일근이 사는 시골집의 작은 마당은 이제 문학 지리의 한 공간으로 기억되기에 충분합니다.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 형태가 아니라 그 속에 누가 살며 그곳에서 그가 무엇을 생각하며 또 무슨 일을 하는가에 따라 그 부피와 밀도와 이미지가 달라진다는 공간의 시학을 여기서 새삼 절감하게 됩니다.
―정효구, 『시 읽는 기쁨』, 작가정신,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