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냐 6:25
참된 위로는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점점 잘못 되어가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모두가 옳다고 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며 어떻게 공감하며 어떻게 위로하며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 답을 알려주세요.
말씀을 함께 나누는 형제에게는 아내가 결혼하며 데리고 온 20대의 아들과 아내와 살며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9세의 아들이 있는데 큰 형이 치킨을 시켜서 혼자 먹었다고 합니다. 하나만 달라고 했더니 하나는 주었는데 두 번째는 거절을 당했다고 합니다.
어린아이가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요…
다음날 아침 저금통에 있는 돈 팔천 원을 꺼내서 예비군 훈련 가는 형에게 주며 힘든데 맛있는 거 사 먹으라며 주었다고 합니다.
그 큰 아들이 엄마에게 너무 부끄러웠다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저도 그 이야기를 들으며 감동했습니다.
’팔천원을 꺼냈어요 ‘ 여기까지 듣고 엄마한테 치킨 사달라고 했겠구나 속으로 넘겨짚다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어린아이에게서 한 수 배웠습니다.
공감, 위로.
사랑이 부족해서 갈수록 이것이 필요한 세상을 살며, 우리 예수님이 그래주신 것처럼 공감하며 위로하기!
욥기서를 묵상하며 그렇게 살 수 있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욥이 고통을 호소합니다.
나의 괴로움을 달아 보며 나의 파멸을 저울 위에 모두 놓을 수 있다면 (6:2)
인생의 원인을 알 수 없는 고난을 통해 우리에게 주워지는 것!
보내주신 '욥기 제대로 읽는 법'을 들었습니다.
고난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훈련 과 같다.
지금의 수준만큼 살고, 고민하고 다 겪은 후에 수용할 수 있다는 말씀!
그리고 나이가 드는 것은 내가 겪은 고난의 열매를 보게 된다는 말씀이 내 짐을 지고 나아가게 하는 깨달음을 줍니다.
욥과 같이 알게되고 포용하고 끌어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힘듦을 하나님께 호소하고 힘들어 할 수는 있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나에게 있음을 잊지 않고 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엘리바스의 말에 욥은 항변합니다.
“나의 괴로움을 달아 보며 나의 파멸을 저울 위에 모두 놓을 수 있다면 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그러므로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2~3절)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는 욥은 친한 친구에게 정죄가 담긴 말보다 참된 위로의 말을 듣길 원합니다.
개인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고, 감내할 수 있는 역량이 다른데, 지금까지 제 기준으로 판단하며 정죄하며 말도 안 되는 위로를 많이 했습니다. 역량도 안 되는 제가 참 부끄럽기만 한 언행을 했습니다.
참된 위로자 이신 예수님처럼 제자들의 실수에도 정죄와 비판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하시며 품으셨던 그 위로와 공감이 제게도 가득하길...
참된 위로자 되신 예수님 닮길 간절히 원합니다.
욥에게 고난의 고통은 바다의 모래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그 고난의 시간이 왜 주어졌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의로웠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살았습니다.
그것만이 그 고통가운데 기쁨이 되었고 위로가 되었습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보았을 이들은 그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고 오히려 멋대로 판단하며 욥에게 큰 상처를 더해 주었습니다.
고난을 겪고 있는 이에게 말 한마디 한마디가 큰 상처가될 수 있음을 욥기를 시작하며 계속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에 욥기를 묵상할 때에는 욥의 모습이 많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다시 묵상을 하니 그의 친구들의 모습이 더 많이 보입니다.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다시금 느껴봅니다.
욥의 친구들과 같이 상황에 따라 말씀만 가지고 내멋대로 판단하며 고통 중에 있는 이들에게 상처 주지 않는 이가 되기 원합니다.
함께 고통을 느끼며 공감하며 진정한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모두가 죄인이며 누구 하나 더 잘난이 없고 더 옳은이 없는 이 땅에서 내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더불어 살아가기 원합니다.
고통당하는 이의 마음을 헤아려줄수 있고 진실한 격려와 위로를 통해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며 함께 이겨나갈 수 있는 복되고 귀한 주의 자녀 된 삶 되기를 기도하고 소망합니다.
욥은 하나님이 자기를 멸하고 끊어 버리신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으므로 인해 위로를 받고,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죽음을 앞두고 했던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의 고백을 연상 시킵니다.
삶의 고난과 즐거움의 연속속에 동일하게 우리를 지켜보시고 동행하심을 기억히기 원하며 그런 주님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영의 눈이 떠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