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천장어
이지호
풍천(風川)이라는 말에는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다는 슬픔이 담겨 있다
바람을 온몸에 바르고 짠물에 드는 뱀장어
등지느러미 하나로 버텨야 하는 온몸이
밤처럼 검고 미끄럽다
허약한 산란
몸을 뒤틀며 나아가는 것들의 길은 구부러진 후미를 남긴다
숨기고 싶은 것이 많은 것들은 밤과 친하고
몸 안에 부른 배를 가진 여자가 물 밖에서 살았다 밝혀지지 않은 산란처가 있듯 배, 안의 새끼들은 보이지 않게 태어나야 한다 민물의 밋밋함보다 짠맛을 먼저 알려주어야 하는 아이 하나를 데리고 사라진 후미에
미끄러운 소문만 무성하다
발이 없어 방향도 남아있지 않은 봄
제 짝이 없는 계절들만 뒤 처 져 행락으로 소란하다
둘이 하나를 만들지 못하고
하나가 하나를 만드는 일이 봄날사(史)에 다분하다
벚꽃이 서로 손을 잡고 풍천에 든다
여자가 남겨놓고 간 체불의 월급이 불룩하다
바람이 물을 섞고 있는 곳
한 계절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고 있다
은산상회
흙 묻은 장화들이 앉았다 간 파라솔 아래
빈 막걸리병들이 출출했던 시간처럼 서 있다
젖어있는 노인들의 힘이 울퉁불퉁 진흙으로 떨어져 있다
거친 발톱을 세운 발자국도
껄렁하기만 했던 야성도
가벼운 물결무늬, 투박한 기하학 무늬로 저마다의 생을 찍어 놓았다
시골 마을에도 중심부는 있고
마을을 지탱한 것은 허름한 파라솔과 평상이다
국제회의장이 된 곳
대통령, 반기문, 김정은, 오바마, 빈 라덴도 한 번쯤 왔다간 곳
오늘의 난상토론은 용식이, 철구, 미순이다
윗마을 아랫마을 죽일 놈 썩을 놈이 치워진 자리에
어버이날이라고 부쳐온 돈이 농협 창구같이 시끌벅적이다
자식자랑으로 잔액의 ‘0’ 숫자가 늘어나도
‘0’은 영
맞장구만 있을 뿐 악플도 뒷조사도 없다
평상에서 돋은 말은 바람이 가져간다
떠나는 이야기보다 도착 이야기가 많은 상회
늙어가는 품목들이 늘고
새로운 것들은 팔리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키운 기업형 농산물이 노인들이 거둔
늙은 맛을 따라가지 못하듯
평상은 구수한 입담 맛에 길들여 있다
늙은 맛이 가득한 파라솔 밑 평상에 그림자가 떨어져 있다
늙어가는 시간은
아무도 모르는 지름길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시에』 2012년 봄호
이지호
충남 부여 출생. 2011년 『창비』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