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龍의 해
용두산 미디어 파크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겨울 공원의 밤 9시. 아직 망막에서 멀어지지 못한 광복로 트리축제의 현란한 불빛 잔영으로 어둠은 한층 짙게 다가온다. 디지털 미디어 파크로 재단장한 용두산공원 시설물 중에서도 ‘종각 미디어파사드’가 단연 압권이다. 새해 초이틀 밤에 공원을 찾은 사람들은 우리 노부부처럼 신문과 방송이 전하는 지역대학과 기업이 개발한 콘텐츠를 이곳에서 만나기 위해서일 터이다.
칠흑 같은 공원의 어둠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 옆 황금빛 트리도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한다. 그 트리 앞에서 왁자하게 사진촬영 삼매경에 빠진 소녀들을 만났다. 우리 부부가 가까이에서 기다리는데도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까르르 까르르 웃음을 연발하며 즐거워한다. 셋은 까만 복장에 키가 고만고만해 더욱 귀여워보인다. “얘들아, 할배 할매도 한 번 찍어봐 줄래?” “아, 네 네 네… 찍어드릴게요.”
휴대폰을 받아들었으면 바로 셔터만 누른 후 돌려주면 끝날 것을 또 계속 눌러대기의 시작이다. 옆 둘은 뭐가 그리 신기한지 촬영하는 친구의 폰 화면에 시선을 집중한다. 난 그런 대접을 받는 게 부담스러워 "그래, 됐다! 그만하자."고 했지만 “아! 네 네 네… 그런데 하트도 함 해보세요.” 정말 못 말리는 알파세대 소녀들이다. 덕분에 우리 부부는 생전 처음으로 성탄 트리 앞에서 하트 포즈도 취한 사진이 생겼다.
'용두산 엘레지' 노래에 나오는 194계단 복판으론 성능 좋은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된 지 꽤 오래다. 비를 피할 수 있도록 전체 구간에 지붕도 덮어 터널구조로 만들었다. 코로나 이전, 계단 양쪽 벽면에 앙증맞은 네온사인도 설치했는데 그 불빛이 여전히 현란하다. 도심에 위치하여 현대사의 굴곡을 지켜봐온 해발 50m 용두산이 '청룡의 해'를 맞았다. 비록 낮고 작은 산이지만 그 기운이 용처럼 힘차다는 걸 알 수 있다.
용두산 이름이 말해주듯 그 형세가 용이 머리를 들고 바다를 건너다보는 도심공원. 한창 푸르던 1964년 여름, 대전에서 부산에 전입하여 공원에 첫발을 디뎠고 어언 60년 세월이 흘렀다. 공원은 토성동 직장에서도, 주경야독하던 동대신동 캠퍼스에서도 가까워 휴일이면 하숙집에서 걸어서 오를 수 있었다. ‘용두산 엘레지’ 노래가 세상에 나온 그 해였다. 하숙 친구들과 함께 한 흑백사진 속 추억이 아스라하게 다가온다.
‘용두산 엘레지’는 원래 1962년 작곡가인 고봉산이 먼저 불렀지만 흥행에 실패하자, 2년 뒤인 1964년 최정자가 다시 불러 세상에 퍼지면서 탄생시기도 1964년으로 바뀌었다. 작사는 최치수가 맡았다.
용두산아 용두산아 너만은 변치 말자
한 발 올려 맹세하고 두 발 디뎌 언약하던
한 계단 두 계단 일백구십사 계단에
사랑 심어 다져놓은 그 사람은 어디가고
나만 혼자 쓸쓸히도 그 시절 못 잊어
아~ 추억의 용두산
용두산아 용두산아 꽃피는 용두산아
임의 고운 손을 잡고 사랑하던 층층계단
한 계단 두 계단 일백구십사 계단에
꽃무지개 그려놓던 그 사람은 어디가고
저 달처럼 나만 혼자 추억을 더듬어
아~ 찾아온 용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