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전의 프레임, 설렘을 비추다
통영의 짙푸른 앞바다를 가르며 여객선이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스크루가 토해내는 하얀 포말이 뱃길을 따라 길게 꼬리를 물고, 짭조름한 해풍이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뱃전의 붉은 난간과 그 곁에 매달린 주황색 구명환은 푸른 바다 빛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경쾌한 마침표처럼 찍혀 있다.
그 갑판의 한가운데, 마치 누군가 바다를 떼어다 놓은 듯 직사각형의 거울 하나가 우뚝 서 있다. 보통의 거울이라면 마주 선 이의 얼굴이나 등 뒤의 갑판을 비추겠지만, 이 배 위의 거울은 특별한 마법을 부린다. 거울 속에는 바람에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환하게 미소 짓는 여행자의 모습이 담겨 있고, 그 너머의 배경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남해의 아스라한 수평선과 점점이 박힌 다도해의 섬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거울은 단순히 사물을 반사하는 도구가 아니다. 거울은 광활하고 끝없는 바다의 풍경 중 가장 찬란한 일부분만을 베어내어, '지금 이 순간'이라는 액자 속에 담아내는 프레임이다. 망망대해를 온전히 두 눈에 담는 것도 벅찬 감동이지만, 한 뼘 거울 속에 맺힌 바다와 그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여행이 주는 또 다른 묘미다.
그것은 낯선 공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이방인으로서의 나를 확인하는 의식이자, 사량도라는 미지의 섬을 향해 다가가는 설렘의 증명사진이다. 거울 속에 머문 바다는 여행자의 맑은 눈동자 위로 다시 한번 반사되며, 배는 서서히 뱀처럼 구불구불한 웅장한 섬의 능선 곁으로 다가선다.
사량도(蛇梁島). 뱀 사(蛇) 자에 들보 량(梁) 자를 쓴다. 섬의 형세가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상도와 하도 두 개의 섬 사이를 흐르는 좁은 해협이 마치 뱀이 기어가는 형상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뱃머리에서 점차 윤곽을 드러내는 사량도는 단순한 바다 위의 흙덩어리가 아니다. 지리산이 멀리 남쪽으로 뻗어 내려와 바다를 건너뛰어 솟구쳤다는 지리망산(지리산)의 웅장한 암릉들이 바다를 굽어보며 호위무사처럼 서 있다.
섬에 발을 딛자 배 위에서 느꼈던 바다의 출렁임은 묵직한 땅의 기운으로 바뀐다. 바다에서 바라보던 섬과, 섬에 들어와 발을 딛고 바라보는 바다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가파른 능선을 따라 기암괴석이 톱니바퀴처럼 솟아 있는 산길을 오르면, 발아래로는 시리도록 푸른 바다가 융단처럼 깔려 있다. 깎아지른 절벽 위 출렁다리를 건널 때면 아찔한 고도감과 함께 바닷바람이 온몸을 휘감고 돌아나간다.
사량도는 거칠고 남성적인 산의 뼈대와 부드럽고 넉넉한 어머니 같은 바다의 품을 동시에 지닌 곳이다. 산과 바다가 이토록 긴밀하게 서로의 살을 맞대고 있는 풍경 속에서, 시간은 도시의 잰걸음을 멈추고 파도의 들숨과 날숨에 맞춰 느릿느릿 흘러간다.
산길을 내려와 해안선을 따라 난 좁고 구불구불한 섬마을 길을 걷는다. 인적 드문 길섶에서 또 다른 거울 하나와 마주친다. 굽은 길의 사각지대를 밝히기 위해 세워진 노란색 테두리의 커다란 볼록거울이다.
배 위에서 만난 직사각형의 거울이 여행자의 동적인 궤적을 좇고 있었다면, 굳건한 쇠기둥 위에 앉은 이 둥근 거울은 사량도의 정적인 일상을 묵묵히 응시하고 있다. 볼록거울은 평면의 거울처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반사하지 않는다. 가장자리가 둥글게 휘어진 왜곡된 시선이지만, 그 왜곡은 오히려 더 넓은 풍경을 한 품에 끌어안기 위한 넉넉함이다.
거울 속으로 시선을 던지면, 텅 빈 아스팔트 도로의 노란 중앙선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거울의 중심을 가로지른다. 그 길 너머로는 섬마을의 소박한 민가가 그림처럼 앉아 있다. 하늘빛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쨍한 파란색 지붕, 세월의 더깨가 내려앉은 야트막한 돌담, 그리고 그 돌담을 무성하게 뒤덮은 담쟁이넝쿨과 이름 모를 여름의 녹음들. 길가의 전봇대와 얽힌 전선들조차 둥근 프레임 안에서는 하나의 평화로운 정물화가 된다.
거울 밖의 세상에서는 고개를 돌려 이리저리 시선을 옮겨야만 볼 수 있는 풍경들이, 둥근 볼록거울 안에서는 하나의 우주처럼 완벽하게 응집되어 있다. 그 속에는 쫓기는 이방인의 조급함이 없다. 그저 햇살이 돌담에 머물고,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고 지나가는 느릿한 섬의 시간만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뿐이다. 볼록거울은 굽어진 길을 지나는 이들에게 '천천히 가라'고, '이 아름다운 풍경을 조금 더 눈에 담고 가라'고 무언의 인사를 건네는 듯하다.
사량도에서의 여정은 결국 두 개의 거울 사이를 오가는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나를 돌아보게 했던 직사각형의 거울, 그리고 단단한 땅 위에서 섬의 깊은 속내를 보여주었던 둥근 볼록거울. 형태도, 쓰임새도, 맺히는 풍경도 다른 이 두 거울의 공통점은 그 이면에 항상 '사량도의 바다'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거울에 비친 풍경은 찰나다. 배가 앞으로 나아가면 난간의 거울 속 바다는 다른 물결로 뒤바뀌고, 여행자가 걸음을 옮기면 볼록거울 속 파란 지붕의 집도 시야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셔터를 눌러 그 거울 속의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는 순간, 흘러가 버릴 뻔했던 찰나의 시간은 영원으로 박제된다. 사진 속 거울에 머문 바다와 섬마을의 풍경은 여행이 끝난 후에도 닳지 않는 선명한 빛깔로 남아, 일상에 지칠 때마다 꺼내어 볼 수 있는 투명한 위로가 된다.
여행이란 어쩌면 세계라는 커다란 거울에 나를 비추어보는 일일 것이다. 낯선 풍경 속에 서 있는 나의 모습을 확인하고, 내가 몰랐던 자연의 속살을 훔쳐보며, 잊고 살았던 내면의 잔물결을 다시 일렁이게 하는 것. 사량도는 그 자체로 여행자를 비추는 거대한 거울이었다.
다시 배에 오른다. 사량도를 뒤로하고 육지로 향하는 뱃길, 물살을 가르는 엔진 소리가 섬의 고요를 깨뜨리며 멀어진다. 배가 출발할 때 보았던 뱃전의 거울 앞을 다시 서성여 본다. 거울 속에는 이제 남해의 옥빛 바다 대신 육지의 잿빛 항구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하지만 마음속에 담아둔 거울에는 여전히 사량도의 풍경이 머물러 있다. 지리망산의 거친 숨결, 돌담을 에워싼 넝쿨의 싱그러움, 그리고 파란 지붕 너머로 펼쳐져 있던 적막한 섬마을의 공기까지.
사량도의 길가에 서 있던 둥근 볼록거울은 오늘도 누군가의 발걸음을, 그리고 바람의 흔적을 제 품에 안았다가 무심히 흘려보내고 있을 것이다. 배 위에서 바람을 맞던 여행자의 미소 역시 통영 앞바다의 파도 속에 잔잔히 녹아들었다. 바다는 거울 속에 머물렀다 흘러가고, 거울은 풍경을 품었다가 이내 비워낸다. 그렇게 비워진 자리에 남은 사량도의 짙은 여운만이, 거울 밖을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푸른 바다로 출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