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의 찬바람
김 선 구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 한번 내린 눈은 녹는 법이 없이 계속하여 쌓여만 갔고, 눈 무덤 주위에서 일으키는 칼바람이 바늘 끝으로 얼굴을 찌르는 것 같은 아픔을 느끼게 하던 곳. 강원도대관령은 원래 화전민들이 살던 오지의 땅이었다. 그곳 산골짜기에 위치했던 K시험장은 외부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축산연구기관이었다. 사십년도 훨씬 전 이곳에 근무명령을 받고 처음 도착하였을 때 마주한 것은 차갑고 살벌한 날씨였다. 동토라는 말의 의미를 실감케 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얼어붙었다.
겨울철 목장의 풍경은 더욱 살벌했다. 혹독한 추위 속에 움츠리고 서성이는 소들의 모습이며 짐승을 다루는 사람들의 힘겨운 움직임과 찌든 모습들, 손수레를 밀며 토해내는 목부들의 거친 숨결과 하얀 입김, 소들을 몰고 뛰다가 눈길에 미끄러지는 낭패스러움 등. 웃지 못 할 일들이 다반사였다. 어느 날 우리 시험장을 취재 나왔던 모 방송국 기자가 이러한 장면들을 포착하여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취재내용을 「아침의 열기를 안고」라는 제목으로 TV에 방영하였다.
당시 나에게 부여된 과제는 한우를 개량하는 업무였다. 한우는 우리민족이 농경문화와 함께 키워온 동물이었다. 농업이 기계화되면서 농용으로서 사육가치가 떨어지자 고기소로 개량하자는 것이 연구목적이었다. 그 때 우리 연구실에는 Y양이 연구보조원으로, 그녀의 부친은 소를 키우는 목부로 축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담당 PD가 Y양 부녀를 한우개량을 담당하는 연구원으로 각색하여 취재 내용을 엮어나갔다. 연구업무를 위하여 부녀가 이른 새벽부터 소들을 돌보고 축사를 정리정돈하다 보면 혹독한 추위도 열기로 데워진다는 요지였다. 산골짝 오지에서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봉사하는 성실한 공무원상을 부각시켰다.
취재내용이 방송채널을 통하여 보도 되자 반응이 대단했다. 아는 이들로부터 격려인사가 쇄도했고, 여러 기관단체에서 「선진지 견학」이라는 명분으로 방문요청이 이어졌다. 방문객들을 태운 버스들이 들이닥치면 나는 본연의 업무는 뒤로 하고 손님들을 안내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것이 나에게는 반갑지 않는 일이었다. 기관장이나 상급관리자들에게는 기관이 홍보되어 흡족하겠지만 하급실무자인 나는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던 중 더 난감한 문제가 도래했다. 국회 농수산 분과 위원들이 우리 시험장을 방문할 것이라는 연락이 왔다. 때는 가을철, 월동용 사료를 준비하느라 가장 바쁜 시기였다. 옥수수를 수확하여 사일리지를 만들고, 목초를 베어 건초를 만드는 등 현장의 관리인들과 연구실 직원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런 힘든 시기에 국회위원을 위시하여 언론사 기자들까지 수십 명이 방문한다는 연락을 접하고 보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원래 목장이라는 곳이 사람 사는 곳처럼 쾌적할 수가 없다. 허지만 귀한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하여서는 축사내외부의 청소며 도로정비 등 여러 준비가 필요하였다. 먼저 축사내의 소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축사내부의 벽과 기둥은 깨끗이 닦아낸 후 새로 페인트칠을 하였다. 정문에서 축사에 이르는 길에는 산에서 마사토를 파내어서 깔았다. 밤에는 연구업적을 정리하여 브리핑 자료를 만들었다. 무려 한 달여 동안을 손님맞이 준비에 공을 들였다.
주변 경관이 어느 정도 정비되고 마지막 준비작업도 거의 끝이 났다. 이제 국회위원들에게 선보일 소들을 축사 내로 수용하여 각각 침상에 배치하였다. 그러자 소들은 습관처럼 머리로 기둥을 비벼대었다. 아직 덜 굳은 페인트가 벗겨지면서 소들의 뿔과 얼굴이 페인트로 장식되었다. 국회위원들을 맞이한다고 소들까지 나서서 화장을 하다니! 예상치 못한 모습에 그저 쓴 웃음만이 나왔다.
드디어 국회의원들을 맞이하는 날이 왔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대관령에 첫눈이 내렸다. 온 세상이 백설로 덥혔다. 하늘도 우리가 애쓰는 모습에 감동했는지 미처 손질하지 못한 부분을 눈으로 감춰 주니 금상첨화가 따로 없었다. 살짝 내린 눈이 마음씨 좋은 환경미화원의 미소처럼 고마웠다. 그저 하루 일과가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기원했다.
이윽고 국회위원들, 언론사 기자들, 이웃 기관의 기관장과 단체장들이 속속 도착하였다. 우리는 방문 인사들을 먼저 소들을 키우고 있는 시험용 축사로 안내하였다. 그곳에서 한우개량사업의 내용과 실제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동안 이루어 낸 연구 성과를 챠트를 통하여 설명하였다. 그 때였다. 축사 밖에서 소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갑작스런 상황변화에 사람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가버렸다.
밖에서는 황소 두 마리가 서로 머리를 치받으며 싸움질하고 있었다. 우리가 종자용으로 선발하여 둔 수소들이었다. 이들은 체구가 우람하고 성질이 거칠어서 한 마리씩 말뚝으로 고정하여 특별 관리하였다. 그날따라 관리인의 부주의로 황소 한마리가 말뚝을 뽑고 나와서 다른 소와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황소 두 마리가 싸움을 하며 소리를 지르자 다른 20여두 황소들도 덩달아 흥분하여 소리를 질러대었다. 마치 전쟁터와 같은 상황이 전개되었다.
다급함을 느낀 나는 축사 옆에 세워져 있던 빗자루를 들고 소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두렵거나 위험하다는 생각은 없고 오직 소싸움을 말려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나의 빗자루 공격을 받은 소가 손님들이 서있는 쪽으로 밀려났다. 소싸움 구경에 정신이 팔려있던 국회의원들이 질겁하여 피하기도 하고 눈 속에 빠져 허둥대기도 했다. 손님접대치고는 대단한 흥행거리였다. 그동안 정성을 들였던 손님맞이준비는 엉뚱하게도 소싸움 연출로 대미를 장식했다.
다음날 조간신문인 C일보의 첫 면은 온통 지난날 발생했던 사태로 기사가 채워져 있었다. “국회 농수산 분과위원들이 K시험장을 방문하자 황소들이 싸움의 묘기와 함성으로 국회의원들을 환영하였다”는 머리글과 함께 대문짝만한 사진 한 장이 실려 있었다. 내가 빗자루를 들고 황소들을 위협하고 있는 모습 이었다. 영락없는 소몰이꾼 모습이었다. 유망한 과학도를 꿈꾸던 내가 소몰이꾼의 신세로 전락한 셈이었다. 주위 동료들이 한마디씩 거들며 놀려대었다. “전국적인 매스컴을 탔으니 이제 유명인사(?)가 되었다”고
나에게 유명인의 선물을 안겨 준 대관령 시절의 기억은 아직도 나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더불어 대관령의 찬바람도 애틋한 추억처럼 떠오른다. 차가운 바람살이 때로는 훈풍으로, 때로는 온풍과 미풍으로 닥아 오곤 했다. 겨울채비가 끝나면 대관령은 기나긴 겨울로 접어들었다. 이 기간은 직장동료들과 이웃 가족 간에 훈훈한 정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직원들 대부분이 가족들과 함께 목장 내 관사에서 이웃하여 지내었기 때문이다.
봄이 되면 아침마다 송아지 찾는 어미 소들의 울음소리, 저녁이면 방목지에서 돌아오는 새끼 양들이 어미 찾는 소리가 바람결에 싸여 구성지게 울려 퍼졌다. 방목준비에 여념 없이 봄철을 보내고 나면 여유가 생겼다. 초원에서 한가롭게 노니는 소떼 양떼들과 어울렸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면 대관령 골짝에는 외로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옥수수를 수확해버린 들판도, 풀이 말라버린 초원도 황량한 모습으로 변하였다. 그래서일까. 소들이 이유 없이 먼 곳을 향하여 울부짖었다. 가을이 깊어지면 소들도 외로워지는 모양이었다. 맑은 공기를 진동하며 내는 소리가 사무치는 한을 하늘 끝에 호소하는 듯 멀리 울려 퍼졌다. 덩달아 대관령고개 마루에는 찬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 따라 바뀌는 목장풍경은 여유와 풍요로움, 때로는 외로움을 안겨주었다. 이제 입춘일이 지나가니 새봄이 손짓한다. 대관령 찬바람이 또 새로운 선물을 준비하여 기다릴 것 같다.
첫댓글 대관령 목장의 모습과 연구하는 과학도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지난 날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늘 건강하시며 건필을 기원합니다.
긴박한 소싸움이 오랫동안 추억으로 남는 글감이 되었네요. 재밌게 잘 앍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