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 포럼]신용불량자에게 입체적 지원을
한복환 신용회복위원회 사무국장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신용불량등록제’가 지난 4월 28일 폐지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신용불량자들은 금융 족쇄가 사라져 이제는 신용거래가 좀더 자유로울 것이라는 기대감에 반겼지만, 금융회사들은 개인신용평가 시스템이 채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에서 난색을 표명하기도 했다.
금융권에 급격한 연체율 상승이 나타나지 않는 등 아직까지는 별다른 부작용이 없는 것 같아 다행이지만 안심하기엔 아직 이르다.
정부는 지난해의 신용불량자 종합대책에 이어 올해 3월 국민기초생활수급자, 군복무자 등 미취업 청년층 그리고 영세자영업자 등 생계형 신용불량자 약 40만명에 대해 채무상환유예 및 장기분할상환을 근간으로 하는 획기적인 신용회복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신용불량자 문제가 서서히 해결되는 모습을 보이는 시점에서 그 동안 사각지대에 있었던 생계형 신용불량자에 대한 지원방안을 마련함으로써 정부 대책을 마무리하기 위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 시행 이후 지금까지 약 3개월간 신용회복위원회와 한국자산관리공사에 신용회복지원 신청을 한 채무자는 신청대상자의 약 10분의 1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신용불량등록제도의 폐지는 ‘일정금액 이상을 3개월 이상 연체한 채무자’를 ‘신용불량자’로 별도로 구분, 관리하고 각종 금융 이용을 제한하는 등의 획일적인 규제를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것일 뿐 갚아야 할 빚이 줄어들거나 안 갚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또 제도가 폐지된다 하더라도 일시에 금융거래가 자유로워지는 것도 아니다. 빚 갚기를 게을리 할 경우에는 종전처럼 금융회사로부터 빚 독촉을 받게 되고 법원으로부터 압류나 강제집행을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다.
우리 사회가 과다한 금융채무 불이행자 문제를 하루속히 해결하고 선진 금융사회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채무자가 실질적으로 재기할 수 있도록 범사회적으로 지원하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 먼저 민간의 신용회복지원제도와 법원의 개인회생제도 등 채무자를 위한 채무조정제도와 함께 실질적으로 회생이 가능하도록 사후지원체제를 갖춰야 한다.
신용회복위원회에서는 지난 2002년 10월 출범한 이래 지금까지 42만명의 채무자가 신용회복지원을 확정받아 채무를 상환 중이며, 빚을 모두 갚고 재기에 성공한 사례도 1500건이나 된다.
그러나 이들이 빚을 모두 갚고 재기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기존 채무를 일부 감면받더라도 채무상환기간이 최장 8년에 이르기 때문에 상환기간 중 소득감소, 실직, 사고 또는 질병 등 다양한 위험에 노출돼 있는 반면, 저축할 여력이 부족한 데다가 제도금융권으로부터의 대출도 쉽지 않다.
영세자영업자의 경우에는 운영자금, 시설개보수자금 등의 수요가 절실함에도 자금조달수단이 없어 영업활동이 크게 제약받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일부 업종의 경우에는 경기회복 지연, 과당경쟁 등으로 실질소득이 크게 감소하거나 정보ㆍ기술ㆍ자금 등의 부족으로 시설개선 또는 전업이 좌절돼 재기에 실패할 우려도 크다.
또 저소득근로자의 경우에는 잦은 실직이나 재취업을 위한 지식과 정보의 부족으로 보다 안정적인 직업을 구하거나 소득증대의 기회를 얻기가 어려운 데다 재난, 질병 또는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제도금융권을 통한 자금조달이 불가능하다.
고금리의 사채 등을 이용하다가 극빈층으로 전락하는 사례가 많은 실정이다. 따라서 이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채무상환을 완료하고 확실하게 재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채무조정에 융통성을 부여해 기초생활을 보장해야 한다.
자녀학자금ㆍ병원비 등 긴급자금을 공급하고 필요시 경영개선 또는 전업 등 구조조정을 적극 유도하는 등 입체적인 지원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신용회복지원 확정자를 대상으로 하는 ‘마이크로 크레디트’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올해가 유엔이 정한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해가 아닌가!
필자약력
▶청주대 경영학과 졸업 ▶금융감독원 신용감독국 신용정보팀장 ▶현 신용회복위원회 사무국장
[헤럴드경제 2005-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