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숨겨진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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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숨겨진 비밀!
최후의 만찬은 성경에 예수님과 그의 사도들이 함께한
마지막 식사로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을 포함하여
많은 예술가들에 의해 그려졌다.
하지만 우리는 ‘최후의 만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것은 무엇이고, 이것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사진을 통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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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일 가능성이 크다.
최후의 만찬은 유월절일 가능성이 높다. 브리타니카 백과사전에 따르면,
사슴고기는 "유월절을 축하하기 위해 니산 월 15일과 16일에
유대인 가정에서 제공되는 종교적인 식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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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일 가능성이 크다.
예수님과 그의 사도들은 그 날을 기념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는데,
현대 달력에서 유월절, 성금요일, 부활절이 서로 며칠 내에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가능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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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일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 우리가 하는 잔치와는 달리 그 행사는 훨씬 덜 복잡한 행사였고,
본질적으로 희생된 양을 포함한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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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이 없었을 수도 있다.
최후의 만찬은 보통 예수와 그의 사도들이
큰 테이블에 둘러앉은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테이블 혹은 자리조차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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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이 없었을 수도 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바닥에 앉아 있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벤치나 의자 대신에 쿠션이나 카펫이 사용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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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이 없었을 수도 있다.
이것은 로마 제국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사람들이 먹는 방법이었다.
기껏해야 낮은 탁자가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림에 묘사된 것처럼 식탁보가 있는 큰 식탁은 확실히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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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의 그림은 진짜 프레스코화가 아니다.
그림이 진정한 프레스코화로 여겨지기 위해서는
젖은 석고에 물감을 발라야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렇게 따지면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프레스코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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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의 그림은 진짜 프레스코화가 아니다.
대신에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세코 프레스코라고 불리는 다른 기술을 선택했다.
이 과정은 건조한 석고 위에 템페라 페인트를 칠하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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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의 그림은 진짜 프레스코화가 아니다.
왜 다빈치는 이 방법을 사용했을까?
아마도 이 방법이 더 유연하고 건조한 석고에 대해
걱정할 필요 없이 천천히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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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의 그림은 진짜 프레스코화가 아니다.
이것은 다빈치에게 여러 기술을 꼼꼼하게 적용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었고, 이 그림을 걸작으로 만들었다.
여기에는 색상과 대비를 강화하기 위한
키아로스쿠로와 스푸마토 같은 기법이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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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라 마리아가 참석했을까?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예수와 그의 12명의 사도들을
묘사하고 있지만, 특정한 인물이 많은 추측의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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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라 마리아가 참석했을까?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사도가
사도 요한이 아니라 여자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그 여자는 막달라 마리아인 것으로 추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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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라 마리아가 참석했을까?
수염이 없는 여성스러운 얼굴을 한 사도의 모습이 그려졌다는 점이
추측을 낳았다. 그러나 이 주장을 뒷받침할 다른 증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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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당신이 보는 그림은 다빈치가 (전부)그린 것이 아니다.
유명한 다빈치의 벽화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의
벽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원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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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당신이 보는 그림은 다빈치가 (전부)그린 것이 아니다.
이 그림은 1498년에 완성되었지만, 20년도 안 되어 벗겨지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수년간 이 그림을 복원하기 위해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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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당신이 보는 그림은 다빈치가 (전부)그린 것이 아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붓질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칠해진 물감 층 아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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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최후의 만찬이 처음 언급된 곳은 어디인가?
복음서가 신약성경의 첫 번째 책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최후의 만찬이 그 중 하나에서 처음 언급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최후의 만찬에 대한 첫 언급은
고린도전서 11장 23-26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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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최후의 만찬이 처음 언급된 곳은 어디인가?
고린도전서 11장 23-26절에는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라고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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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최후의 만찬이 처음 언급된 곳은 어디인가?
이상하게도, 첫 번째 복음서는 서기 70년경에 쓰여졌지만,
코린토스 사람들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는 약 20년 전인
서기 53년 또는 54년경에 쓰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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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와 최후의 만찬
공관 복음서로 알려진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은 최후의 만찬에 대한
비슷한 설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요한복음은 조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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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와 최후의 만찬
그렇다면 요한복음의 최후의 만찬은 무엇이 다를까?
바로 날짜이다.
요한복음은 최후의 만찬이 유월절이 시작되기 전에 일어났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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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와 최후의 만찬
그러나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은
최후의 만찬을 유월절로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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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은 그다지 신성한 집회가 아니었다.
최후의 만찬은 그다지 경건한 행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꽤 편안한 식사 자리였다.
어느 순간 사도들은 누가 가장 위대한가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누가복음은 그들 사이의 대화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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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은 그다지 신성한 집회가 아니었다.
누가복음 22장 24-27절은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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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은 그다지 신성한 집회가 아니었다.
누가복음 22장 45-51절은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말씀하실 때에 한 무리가 오는데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라 하는 자가
그들을 앞장서 와서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하시니,
그의 주위 사람들이 그 된 일을 보고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칼로 치리이까 하고,
예수께서 일러 이르시되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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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식
예수님은 성찬식으로 알려지게 된 관습을 소개했고,
고린도전서 11장 24절에 따르면
"나를 기억하기 위해 이렇게 하라"고 했다.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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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식
비록 예수님의 목표는 자신을 보여주기 위한 방법으로서,
반드시 그를 기억하기 위한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의식을 소개하는 것이었다고 주장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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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의 작품만이 최후의 만찬을 묘사한 것은 아니다.
1490년대 후반에 그려진 이 상징적인 이미지는
최후의 만찬에 대한 가장 인기 있는 묘사일 수도 있지만,
확실히 유일한 것은 아니다.
사실, 지난 몇 년 동안 최후의 만찬에 대한 많은 묘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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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의 작품만이 최후의 만찬을 묘사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화가 조토는 다빈치보다 거의 200년 전인
1304년이나 1305년에 이 상징적인 장면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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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의 작품만이 최후의 만찬을 묘사한 것은 아니다.
650년 후, 살바도르 달리는 유명한 그림 '최후의 성찬식'을 완성했다.
출처: (Grun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