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는 쓰라는 책은 쓰지 않고 마감기피 증후군 때문에 유난히도 음악에 시간을 많이 바쳤다. 그래서 폴 사이먼의 팝송에 대한 글도 두 개 올리고 나중에는 <화성학 1만자>라고 하는 글도 올리고, 사이먼과 가펑클의 <스카로로 페어>을 집대성하는 글도 올렸다. 그 중에서 제일 긴 글은 <스카보로 페어>이지만 실제로 시간을 제일 많이 들인 것은 화성학 1만자이다. 내용이야 1만자밖에 되지 않지만 방대한 화성학의 내용을 1만자로 압축하기 위해 거의 수백 시간을 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친 짓이다.^^;;
그러다 7월 하순부터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래가지고 이 책을 완성이나 할 수 있겠나... 이 책을 쓰기 위해 그 좋은 교수 직업도 박차고 나왔는데 5년 넘도록 도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그 뒤로는 집필에 몰입하느라 음악은 거의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특히 그렇게 열심히 치던 기타도 완전히 손을 놓아버렸다. 평소 자주 마시던 맥주도 집필에 방해가 될까봐 최대한 자제했다.
그러다 지난 일요일에는 모처럼만에 기타를 잡고 무대에 올랐다. 내가 살고 있는 이천에서 만든 통기타 클럽인 이통사모의 정모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통사모는 거의 내가 주도해서 만든 클럽이어서 거의 매일 밴드에 들어가곤 했는데 두 달 정도는 아예 밴드에서 탈퇴했다. 그 밴드에는 글이 자주 올라오는데 그것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모는 참석하기로 약속하고 공연도 미리 신청했다.
지난 일요일 내가 정모에서 불렀던 노래는 둘 다 김민기님의 노래다. 사실 나는 학전에서 개인적으로 김민기님과 두어번 같이 만나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다. 내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고 나의 음악 선생님인 김미선 교수님이 김민기님과 대학 다닐 때부터 친구였고, 그 친분으로 <지하철1호선> 시절부터 배우들의 발성 훈련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음악 선생님 덕분에 공연이 끝난 뒤에 배우들도 만나고 그리고 나중에는 김민기님과 같이 술도 마실 수가 있었다. 그렇게 사랑하고 존경했던 김민기님이 7월 중순 경에 세상을 떠났을 때 정말 슬펐다. 그래서 바쁜 와중에도 유튜브 상에서 김민기님과 관련된 동영상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이번 이통사모 정모에서는 그 분을 추모하는 의미로 그 분의 노래를 부르기로 한 것이다.
집필에 바빠서 기타 연습을 거의 못하다가 정모 전날 저녁부터 기타를 잡기 시작했다. 이 노래들은 꽤 오래 전부터 기타를 치면서 불렀던 노래이지만, 항상 그래왔듯이 전주와 간주를 생략하고 불렀다. 그런데 노래를 들어보니 전주가 4마디 밖에 없어 이번에는 정식으로 전주와 간주를 넣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막상 연습해보니 쉽지가 않았다. 특히 김민기님이 한영애님과 같이 부른 <기지촌>의 전주가 쉬운 것 같아도 꽤 많은 연습을 필요로 했다.
<기지촌>의 전주를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리고 나니 <아름다운 사람>은 전주를 연습할 틈이 없었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아름다운 사람>의 전주가 훨씬 쉽고 게다가 간주도 똑 같기 때문에 금방 될 줄 알았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지 손가락이 자꾸만 꼬였다. 연습할 때 이런 수준이면 무대에 오르면 삑사리가 날 것은 당연지사임을 알기에 결국 전주와 간주를 포기했다. 나의 목표는 오직 하나 그냥 노래의 느낌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었다.
<기지촌>은 어두운 곳에서 고통 받는 여인들의 이야기인데, 이 노래는 김민기님이 당시 어느 레코드사 사장에게 노래 한 곡을 써주기로 약속을 했는데 노래가 잘 만들어지지 않자 노래를 부를 윤지영이라는 가수와 함께 이태원의 어느 여관에서 며칠을 묶으면서 고민을 하다 거의 포기할 무렵에 즉흥으로 나온 노래라 한다. 당시 이태원은 미군부대가 있었고 근처에는 미군들을 상대로 하는 집창촌이 있었다고 한다. 여관방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서 떠 오른 가사와 악상을 바로 노래로 만들었던 것이다. 노래가 만들어진 시기는 1974년, 당연히 공연 윤리 심의에 걸려 가사를 대폭 고쳐야 했고, 제목도 <황혼>으로 바뀌었다. 이 노래는 근래에 와서 유튜브를 통해 비로소 들었다.
나는 이 노래를 대학 다닐 때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 회원들로부터 배웠다. 노래를 배우려고 해서 배운 게 아니라 당시 내가 다녔던 동아리는 <요가 명상회>였는데 어쩌다가 메아리와 같은 동아리 방을 썼기 때문에 그냥 자주 듣게 되어 저절로 흥얼거리던 가운데 배웠던 노래이다. <기지촌>은 가사도 참 아름답지만 멜로디나 리듬이 당시로서는 잘 들을 수 없는 블루스 스타일이어서 기억에 많이 남았던 것이리라. 그때 메아리를 통해 반강제적으로 배운 노래가 참 많은데 김의철님의 <불행아>도 하도 많이 들어서 저절로 익히게 된 노래다. 그 당시 메아리 애들이 노래가 끝나는 부분에서 “묻혀갈 나의 인생아~”를 무한반복 하는 바람에 짜증이 났던 적도 많았다.^^
<기지촌>이라는 노래의 가사는 이 사회의 어두운 그늘에서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노래이지만, 투쟁적인 구호나 직설적인 표현은 전혀 없고, 실로 절제된 표현 속에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나 있다. 이번에 노래를 부르면서 가사는 틀리지 말아야지 하면서 신경을 꽤 많이 썼는데 연습 부족이라 결국 가사 3절의 후렴 마지막 부분에서 실수를 했다. 1절 후렴에서는 “어두움에 취해 버린 작은 방안에 무슨 불을 밝혀둘까 오늘 밤에는 무슨 꿈을 꿀까, 아무 것도 뵈지 않네.”, 2절에는 “시계 소리 내 귓전을 스치더니만 창밖으로 새어나가 오늘 밤에는 무슨 꿈을 꿀까, 아무 것도 들리지 않네.” 3절에는 “작은 별들이 하나둘 떨어지더니 하늘 끝으로 달아나, 오늘 밤에는 무슨 꿈을 꿀까. 아무 것도 남지 않았네.”라고 해야 하는데 잘 나가다가 3절에서는 “작은 별들이 하나둘 떨어지더니 창밖으로 새어나가”라고 불러 2절 후렴을 반복하고 말았다.
https://youtu.be/LwukH-HslIs?si=AcR4ECz6w1Uj8SUJ
<아름다운 사람>은 서울대 미대 후배였던 현경과 영애를 위해 만들어준 노래인데 그의 노래 중 가사가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 생각한다. 첫 소절에 나오는 “어두운 비 내려오면 처마 밑의 한 아이 울고 서 있네. 그 맑은 두 눈에 눈물 고이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여라.” 이 부분은 세상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말이다. 그리고 2절은 거친 벌판에서 세상의 모진 바람을 잘 이겨내기를 기원하는 말이고, 3절은 그 모든 아픔과 시련을 다 견딘 뒤에 새하얀 눈 내린 산봉우리에 우뚝 서 있는, 그리고 마음속으로 세상을 향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되기를 축원하는 내용이다.
이 노래는 원래는 우리 모두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노래였지만 나중에 결과적으로는 김민기님의 삶 자체를 그린 노래가 되었다. 그는 젊은 날 사회적 약자를 위한 노래를 만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두운 곳에서 여린 가슴으로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렇지만 그는 거친 벌판에 서서 세상의 거센 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뜨거운 가슴으로 달렸고, 그리고 끝내는 눈처럼 순결한 정신으로 저 높은 봉우리에 우뚝 서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 나는 그날 이 노래를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었던 김민기님께 바쳤던 것이다.
https://youtu.be/Q4iyjg2k4ls?si=klOiEJYY71V8j_42
노래를 부르면서 평소 지병인^^ 무대 공포증 때문에 약간 손이 버벅거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로서는 거의 20년 가까이 바람새를 위시하여 사오모, 포크청개구리친구 등의 여러 통기타 모임의 무대에 오르면서 부른 노래 가운데 완성도가 제일 높았던 노래라 생각된다. 그 이유는 멋진 전주와 간주 등에 큰 욕심 부리지 않고 그저 노래에 집중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사이 20년 가까이 삑사리 박이라는 별칭을 계속 들으면서도 부단히 무대에 계속 올랐던 무대뽀 정신 때문에 이제는 어느 정도 무대에 익숙해진 것도 큰 이유 가운데 하나라 생각한다.
모처럼만에 글 하나 남깁니다.^^
너른돌
첫댓글 '기지촌'이란 곡은 처음 들어보는 곡이라 가사 전달이 좀 어려워 원곡을 찾아 들어보았어요.^^
김민기님과 한영애님이 부르는 곡...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https://youtu.be/CRKxkNlwjH4?si=v-PMn0vPC_L2kNhy
PLAY
기지촌은 대표적인 반미 노래죠 기지촌 다시 말하면 의정부 미군 기지 옆 집창촌을 말하는 거죠 북괴의 남침으로 미군이 참전했는데 마치 점령군 처럼 묘사하고 있죠
이 노래가 당시 제대로 알려지지는 않았죠. 정식으로 발매된 것은 한참 뒤니까요.
저는 어쩌다 보니 자주 듣게 되어 익숙해진 것이랍니다.^^
@윤의성
본문에서도 밝혔듯이 이 노래는 가수 윤지영과 함께 이태원의 어느 여관에서 머물 때 그곳 풍경에서 착상을 얻어 작곡한 것이랍니다.
그리고 미군을 점령군으로 묘사했다는 부분은 아마도 "밤거리에는 낯선 사람들, 떠들면서 지나가고..." 이 부분 같은데 너무 과도한 해석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가사는 전반적으로 그늘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을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었지 투쟁과 구호의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젊은 날 이 노래에 필이 꽂힌 것은 가사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그보다는 블루스 느낌을 주는 리듬과 멜로디 때문이었지요. 당시 우리나라에 블루스가 유행하여 블루스라는 제목을 붙인 노래는 많았지만 제대로 블루노트를 사용하여 블루스의 느낌을 살린 노래는 거의 없었지요.
그때는 화성학을 전혀 모를 때이지만 그 묘한 멜로디에 필이 꽂혔지요. 나중에 가서야 그게 블루노트임을 알게 되었지요.
아무튼 이 노래는 요즈음도 블루스가 치고 싶을 때 자주 부르는 노래입니다.^^
@윤의성 우하...행님 이거 잘못된 정보 같습니다.
아침이슬이 경찰 대공과에서 조작 되었듯이 이 노래도 마찬 가지 입니다.
아침이슬은 밝은 노래모음(맷돌 음반 72년, 최초 아침이슬 라이브 녹음(양희은) 시공관) 입니다.
https://youtu.be/Jv9l4SEPVN8?t=906
당시 데모하는 학생들 잡아다가.. 대공과 형사가...
야...너 먹고 싶은것,,, 여행 하고 싫은 것들 써봐...하면서 메모지 줍니다.
학생은 그냥 씁니다. 우선 (성)공하고 (김)치에 된장 밥 먹고 싶고, 동해안 에서 (일)출도 보고 싶고,
(만)추의 계절 가을에 설악산 단품 구경을 하면서, 세상 사는것이 목표 입니다.
이런씩으로 작성 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김 일 성 만세...글짜를 오려 편집하고
김일성을 추종하는 대학생 넘들이 김일성 만세를 쓴 일기장을 발표 했다고 뉴스 나옵니다.
이런 조작된 조서는 우리 직장내에서 회자되는 것들 이었습니다.
태양이 묘지위에 왜 떠 오르냐 ?
태양은 니들이 존경하는 김일성이지 ?
김민기는 초기 절대 데모꾼 아니었습니다.,
PLAY
완성도 높은 곡이라 해도 전혀 손색이나 과장이 없어 보입니다.
지병이 있다고는 아무도 믿기지 않는 연주솜씨, 실력 인정인걸요.
이장님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아마 제 욕심이 좀 커서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따스한 격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