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 스님이 천장암(충남 홍성 연암산에 있는 절, 깨달음을 얻어 처음 찾아간 곳, 속가 식구들이 살고 있던 곳)에 있을 때의 일이다. 생모와 친형이 있었고, 주지인 계허 스님은 속가의 형이었다. 경허가 처음 천장암을 찾아간 1880년 봄, 양반 한 사람이 머슴을 데리고 왔는데 시주를 하러 왔다. 그 날 시주하러 온 경허를 문전 박대한 양반이었다. 시주하러 갈 때 "내가 시주를 하면 그 대가로 어떤 공덕이 생기겠는가?"라고 묻자 경허가 호탕하게 웃고는 "공덕을 바라고 시주를 하려면 시주를 해도 아무런 공덕이 없습니다."라고 하자 시주를 못하겠다고 했었다.
양반이 생각하다가 머슴에게 쌀을 지게하고 천장암으로 온 것이었다. 이유를 묻자 "저는 장사꾼이 아닙니다. 공덕을 바라고 시주를 하겠다면 그것은 시주가 아니라 장사꾼이 흥정하는 것이니 돌아가십시오." 경허를 높이 치켜세웠다. "그대는 도가 깊고 학문을 많이 한 사람 같소, 후에 덕이 트게 될 사람이니 이 시주를 받으시오."
"그래, 쌀만 가지고 왔소? 자와 저울은 가지고 오지 않았소?"
"자와 저울이라니 무슨 말씀이오?"
"도가 깊고 학문을 많이 하여 덕이 무거운지 알려면 자로 재고 저울로 달아보아야 할 것인즉 그것은 아니 보이니 하는 소리입니다."
"아니, 그것을 어떻게 자와 저울로 달 수 있습니까. 그것은 머리로 알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순간 경허의 입에서 커다란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악!" 모두 놀라 바라보는데 양반에게 다그쳤다.
"도와 학문의 깊이를 자로 재지 않고 머리로 알 수 있다고 했으니 방금 제가 지른 소리의 무게는 도대체 몇 근이나 나가겠습니까?"
경허의말 에 양반은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소리의 무게라니? 그것은 잴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요, 학문 역시 자로 잴 수 없는 것이며, 깨달음의 무게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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