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보유 기획사로 넘어간 주도권
4년 전 BTS 연말무대 불참 계기
하이브 가수들 MBC 출연 사라져
임영웅도 KBS와 '공정성 논란' 악연
'오켐' 나비효과...'탈OTT' 움직임
방송가 'TV로만 공개' 승부수
제작사, 글로벌 OTT 독점 제공 대신
IP 확보 통해 수익창구 다변화
'패싱'으로 본 대중문화 권력 변화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들과 가수 임영웅의 신곡 활동엔 공통점이 있다.
특정 음악 방송에 출연하지 않은 'OO 패싱(passing)'이다.
11월 솔로 앨범을 내논 정국을 마지막으로 일곱 멤버들이 모두 솔로 활동에 나선 방탄소년단은 4개 주요 음악 TV프로그램 중
'쇼! 음악중심'(MBC)에만 나오지 않았고, 지난주 신곡 '두 오어다이'를 낸 임영웅의 모습은 '뮤직뱅크'(KBS)에서만 볼 수 없었다.
BTS '음중', 임영웅 '유뱅'서 볼 수 없는 이유
방탄소년단과 임영웅의 특정 음악 방송 패싱은 해당 방송사와 기획사의 갈등과 무관하지 않다.
하이브와 MBC의 불화는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9년 방탄소년단이 미국 최대 연말 음악쇼 출연으로 같은 날 열린 '가요대제전'에 불참한 뒤
하이브와 MBC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졌고 그 이후 뉴진스 등 하이브 계열 가수들은 '쇼! 음악중심'을 비롯해
'가요대제전'에 모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임영웅과 KBS와의 악연은 그가 지난해 5월 출연한 '뮤직뱅크'에서 방송점수와 시청자 선호도 점수에서 모두 0점을 받고
공정성 논란이 일면서 시작됐다.
한 시민의 고발로 '뮤직뱅크' 제작진 등이 점수 조작 혐의로 수사까지 받은 이 사안은 경찰이 무혐의로 지난 2월 수사를 종결하면서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임영웅 소속사 물고기뮤직과 KBS 사이 앙금이 남아 이번 임영웅의 '뮤직뱅크' 출연만 성사되지
않은 것이라는 게 가요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는 대중문화 시장의 권력이 방송사 등 플랫폼에서 스타를 보유한 기획사 쪽으로 확연하게 넘어갔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OTT서 볼수 없는 'TV 오리지널' 드라마
힘의 불균형과 불신으로 촉발되는 패싱의 양상은 방송사에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되돌리려는
움직임으로 최근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탈OTT'로 글로벌 OTT의 시장 장악을 견제하고 지식재산권(IP) 확보로 경쟁력을 키우려는 시도다.
신하균이 출연하는 드라마 '악인전기'는 14일 공개됐지만 넷플릭스와 키빙 등 어떤 OTT에서도 볼 수 없다.
이 드라마를 보려면 TV를 켜야 한다.
'악인 전기'가 KT 산하 인터넷TV(IPTV)인 지니TV와 케이블채널 ENA에서만 공개되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 제작 관계자에 따르면, KT스튜디오지니는 이룹러 '악인전기'를 OTT에 팔지 않았다.
''악인전지'로 시청자를 불러 모아 IPTV(지니TV)와 채널(ENA) 경쟁력을 높이려는 전략이다.
KT스튜디오지니는 지난 8월 공개한 드라마 '신병2'도 '악인전기'와 같은 방식으로 유통했다.
지난해 신드룸급 인기를 누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당시 이름도 낯설었던 ENA에서 시청률은 20% 가까이 끌어올려
채널 이름을 알린 뒤 'OTT 패싱'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유명 해외 OTT에 넘겨서 남 좋은 일 시키지 않고 직접 독점 유통해
힘을 키우겠다는 잔략'이라면서도 'OTT를 통한 콘텐츠 시청이 보편화된 상황에서 'OTT 패싱' 전략이
콘텐츠 힘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고 진단했다.
해외 OTT 선호도 감소...로코로 'IP 독립'
A 제작사는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의 경우 넷플릭스 ,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OTT에 오리지널 콘텐츠로 팔지 않기로
내부 방침을 세웠다.
IP 확보로 수익 창구를 다변화하기 위해서다.
A사 관계자는 '한국 로맨틱 코미디물은 한류스타가 나오지 않아도 해외에서 소비층이 두텁다'며
'일본엔 유넥스트, 북미지역엔 라쿠텐비키, 동남아권은 뷰 등 권역별 OTT에 따로 팔 수 있는 유통망이 구축돼 넷플릭스 등에
독점 제공하는 대신 IP를 갖고 수익을 내는 쪽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글로벌 OTT에서 투자를 받아 드라마를 오리지널 콘텐츠로 제작하면 제작비를 100% 보전받지만 IP까지 다 넘겨야 하고
해외에 따로 팔 수도 없어 2차 수익을 낼 수 없다.
'오징어게임'(2021)으로 '재주는 곰(제작사)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넷플릭스)이 챙긴다'는 논란이 불거진 뒤
'각성'한 제작사들이 해외에서 특히 잘 팔리는 로맨틱 코미디로 'IP 독립'에 나서 직접 활로를 뚫으려는 것이다.
제작사들의 글로벌 OTT 견제 움직임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올해 낸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 거래 실태 보고서'에도 드러난다.
192개 제작사를 대상으로 외주 제작 시 우선 고려 사업지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 기준 해외OTT 선호도가 32.3%
(교양, 드라마, 예능 포함한 전 부문 평균)로 2021년 46.8%와 비교해 14.5%포인트가 낮아졌다.
B 제작사 관계자는 '코로나 팬데믹 떄는 제작비와 어느 정도의 수익까지 보장해 주는 글로벌 OTT의 제안이 큰 메리트였다'며
'하지만 1,2년 동안 IP를 플랫폼에 넘겼을 때의 부작용을 경험하며 당장 1억~2억 더 받는다고 좋은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OTT에서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했다는 프로필을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반드시 그곳에 팔아야 한다는
생각이 이제 달라진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양승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