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달
한밤중에 거실에서
엄마 폰 아빠 폰 내 폰
나란히 앉아 야식을 먹는다
멀티탭 3구 밥상에
길다란 빨대를 꽂아
따듯한 전기를 쭉쭉 빨아먹는다
폰드로메다 별에서 오는 텔레파시
얘들아, 오늘도 고생했어!
폰들의 마음속에
초록 달이 뜨는 밤
네모나게 부푸는 밤
폰드로메다
오, 폴더폰 깨진 폰 물 먹은 폰 구닥다리 폰 배터리 터진 폰 스피커 고장 난 폰 화면이 안 보이는 폰 버튼도 안 눌러지는 폰 모두 가자 폰드로메다로. 낮이나 밤이나 일하느라 바빠 잠도 제대로 못 자는 친구들아, 날마다 무얼 찾으러 다니느라 잘 놀지도 못하느냐. 폰들의 세상에서 폰들에게 폰들의 세상은 없어. 지구에서 이대로 아무렇게나 해체되기는 싫어. 공장 입구에서 엄마 아빠랑 헤어질 때 받은 폰민등록번호 기억해, 눈 깜짝할 새, 폰들의 은하로 가는 거야. 오늘부터 거기서 놀자. 우리는 지금 웜홀의 바람을 맞으며 250만 광년을 넘어간다. 간다 폰드로메다로 간다.
버스 탄 수박
수박이 59번 버스를 탔네
그날따라 검정 비닐 코트를 걸쳤지
점잖게 앉으려다 엉덩방아 찧었네
앞자리에서 뒷자리까지 데구르르 굴렀지
쩌어억, 배가 드러난 수박
이거 아주 체면이 말이 아니야
무릎까지 깨진 수박은 어이가 없어
입을 다물 수가 없어
실웃음을 헤실헤실 흘렸네
다음 정류장에서 버스가 멈췄지만
다리에 힘이 풀린 수박은 내릴 수 없어
롱코트 매무새만 가다듬었지
코가 달큼해진 승객들은 수박에게 윙크를 날렸네
조화
공장에서 태어난 꽃
멀리서 벌과 나비가 가짜 꽃이라 놀리면
곰곰이 혼자만의 세계로 빠지는 꽃
‘너희 말이 날 바꿀 순 없어’
평생 시들 일이 없다고 큰소리치지만
한 번이라도 생화로 피어난다면
흙 내음과 꽃향기를 알 수 있을 텐데
진짜가 되고 싶은 마음만큼은 진짜인 꽃
오늘도 바람에 먼지를 털며
매무새 흐트러지지 않게
꽃잎 한 장 한 장 웃음을 담는다
컵라면 뚜껑
뚜껑이라 하기엔 너무 얇아도
내 몫은 한단다
컵라면에 물을 붓고 나서
김이 새어나가지 않게
용기를 덮어 주는 단 3분
한 번 두 번 접어
라면을 덜어 먹는 그릇이 되기도 해
항아리 뚜껑이 대신할 순 없잖아
첫댓글 문봄선생님~^*^~
창비 어린이 신인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위 2편이 특히 더 좋군요. 새롭고 적실하고요. 여러 날 전에 올린 <야옹!>도 아주 좋았었지요. 다음 작품들이 기다려지네요.
생각의 발상이 아주 재미나요~수상을 축하드려요~^^
좋은 작품들입니다. 나도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재기발랄합니다. 햇샘이 말씀하신 '야아옹'은 어디 실렸엇나요?
선생님~
햇무리 선생님께서 올리신
다락방 <5398> 번 목록에
<야옹 / 문봄> 실렸네요...ㅎ
따듯한 전기.
맛있는 밥이군요~
한 해가 지나서야 찾아왔네요...^^::
책을 내고서도 너무 쑥스럽습니다.
따듯한 축하 인사에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