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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립보서 1:19-30
19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26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바울은 주후 51년 경에 제 2차 선교 여행을 하면서 빌립보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바울은 밤에 환상 가운데 마게도냐 사람 하나를 보게 되는데, 그 사람은 서서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말합니다. 이에 바울은 마게도냐로 건너가 그 지방에 교회를 세웁니다. 그곳에서 첫 번째로 세운 교회가 빌립보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빌립보서를 쓴 때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배를 타고 로마에 도착하여 가택 연금으로 있을 때입니다. 그 때는 주후 61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빌립보서를 쓴 때는 빌립보 교회가 세워진지 약 10년 정도가 흐른 때였습니다.
바울은 가택 연금 상태에서 이제 2년을 다 채우면 로마 황제 네로에게 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실 사도행전은 가택 연금 상태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바울에 대한 묘사로 마무리됩니다.
[
19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시저, 네로 황제)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
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행 28:19, 30-31)
그런데 바울은 로마 군사들과 함께 로마로 배를 타고 오면서 배가 거대한 풍랑을 만났을 때 그가 로마 황제 네로 앞에 설 것을 하나님의 사자가 알려주었다고 증언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그들이 풍랑으로 죽지 않을 것을 확신시켜 주었습니다.
[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행 27:22-25)
그러므로 바울은 반드시 가이사 네로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로마에서 가택 연금으로 있다가 가이사 앞에서 재판을 받으면 풀려나게 될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로마에서 가택 연금으로 있으면서 빌레몬에게 보낸 빌레몬서를 보면, 바울은 자신이 곧 풀려날 것을 확신하며 빌레몬에게 그가 거할 처소를 마련하라고 부탁합니다.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몬 1:22).
또한 빌립보서에서도 바울은 자신이 가택 연금에서 풀려날 것을 알려줍니다. 바로 본문 25절과 26절입니다.
[
25 내가 살 것과 …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26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빌 1:25-26)
아무튼 바울은 로마의 가택 연금 상태에서 풀릴 것인데, 이는 빌립보 성도들의 기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이번에는 재판을 받고 가택 연금에서 풀려날 것이지만, 언제든지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살든지 죽든지 온전히 담대한 가운데 복음을 전함으로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후세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음 속에 깊게 새겨질 멋진 명언을 남깁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1).
원어로 보면, “내게 있어서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고, 죽는 것도 유익하다”라는 뜻입니다. 이 의미는 바로 앞 절 20절이 문맥을 제시하는데, 그 내용은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라고 말합니다. 즉,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이 몸으로 사는 동안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는 것이 삶의 목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내게 있어서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고 죽는 것도 유익하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사는 것은 그리스도”라는 뜻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상태를 뜻합니다. 내가 사는 것은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고 그리스도는 나를 온통 주관하셔서 내 대신 사신다는 뜻입니다. 즉, 나의 삶 전체가 그리스도에 의해 성령으로 말미암아 철저한 통치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이는 내가 나를 주장하지 아니하고 오직 주의 뜻을 받들어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마음 자세로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죽음이 허락되면 죽음도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표현을 통해,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는 일이라면 그리스도를 위해 얼마든지 죽을 수 있고,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죽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를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면, 곧바로 바울의 영혼이 그리스도 곁으로 갈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23절은 바울 자신이 죽음 직후에 어떻게 될 것을 알려주면서 신자의 죽음 직후에도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빌 1:23).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오늘 우리가 대하는 본문과 매우 유사한 말을 합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고후 5:8-9).
즉, 바울의 마음 속에는 오직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죽으나 사나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성경에 가장 뛰어난 학자이며 사도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은 항상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형제들아 …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1-2).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바울의 삶의 목표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는 것”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뚜렷한 삶의 목표로부터 그 위대한 명언인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는 고백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사실 바울은 이 세상에 태어난 이후로 유대 사회 속에서 모세의 율법을 지키며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하는 자로 살려고 최선을 다하던 자였습니다. 그는 유대교 율법을 계명으로 만든 613개의 계명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 3:4-6).
그러나 그는 유대교에 심취한 나머지 산헤드린 공회에서 이단 나사렛 파를 잡아 죽이고 옥에 가둘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습니다. 그는 나사렛 예수는 결코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믿었습니다. 그 이유는 나사렛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에 따르면, 나무에 달려 죽은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이지 메시야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참조, 신 21:23). 그러므로 바울도 다른 유대인들처럼 유대 나라를 로마 제국에서 독립시켜 줄 메시아, 그래서 유대 나라를 온 세상에서 최고의 나라를 만들 그러한 영웅적이고 초자연적인 능력을 갖춘 메시아가 등장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무에 달려 저주 받아 죽은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는 이단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주를 따르는 주의 신자들을 옥에 가두기도 하고 심지어 죽이는데 동의하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를 미워했으며 그 이름만 들어도 너무나 분이 나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소위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해 그 이단의 괴수 나사렛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초대 교회를 뿌리 뽑는데 가장 앞장을 섰던 것입니다.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행 8:3).
그러나 그는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서 옥에 가두거나 죽이려고 다메섹으로 향하다가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영광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영광의 주께서 친히 바울을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는 회심을 하고 거듭나게 됩니다. 그 이후로부터 그는 기회가 나면 자신의 인생에 대해 간증을 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 성전에 도착했을 때 유대인들은 그를 예루살렘 밖으로 끌고 나가 소동을 부렸습니다. 이때 바울은 천부장이 등장함으로 죽지 않게 됩니다. 그러자 바울은 천부장의 영내로 들어가는 계단 위에서 소요를 일으킨 유대인들을 향해 외칩니다.
[
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4 내가 이 도(십자기에 달리고 부활하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5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6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8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행 22:3-8)
또한 바울은 갈릴리와 베레아 지방의 분봉왕이던 헤롯 아그립바 2세와 유대 나라에 파송된 로마 총독 베스도 앞에서 간증했습니다.
[
9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10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11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인들을 고문하여 강제로 예수님을 저주하고 욕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12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13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
19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20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21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22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23 곧그리스도가고난을받으실것과죽은자가운데서먼저다시살아나사이스라엘과이방인들에게빛을전하시리라함이니이다
](행 26:9-15, 19-23)
이처럼 바울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것은 영광의 주 나사렛 예수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오직 사랑 때문에 자기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율법의 저주를 친히 감당하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고전 15: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 3:13-14).
그 이후로 바울은 철저한 믿음으로 오직 그리스도와 연합하며 살아갔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그러면서 예수님의 죽음에 의해 생명을 얻게 된 자들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전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살전 5:10).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5).
그러므로 바울의 삶은 사나 죽으나 오직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삶을 통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존귀하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그가 한 고백이 오늘 본문의 21절입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1).
그러면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라는 말이 신자인 우리에게 무엇을 뜻하는지 좀 더 정확하게 분석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근원입니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그 길입니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유일한 그 목표입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근원인 이유는 주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속량하셨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바치셨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키시고 그를 만유의 주로 삼으신 후 그분께 성령을 보내실 수 있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주께서 주시는 거룩한 능력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부으시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신자들의 삶의 근원인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원수였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영광의 주를 만난 후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랑을 알게 되자, 그는 그리스도를 죽도록 사랑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바울의 마음을 무한히 사로잡고도 남는 그런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도다"(롬 5:6, 8, 10).
“그(그리스도 예수)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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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일 4:9-11)
놀라운 것은 바울은 만왕의 주이신 그리스도를 만난 후 회개하고 주 예수님을 믿었을 때 성령과 함께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 안에 있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생명은 누구든지 성령으로 거듭나는 자에게 주어지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서 회개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죽는 자에게 임하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골 3:3) 생명입니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 3:3-4).
그러므로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 신자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주의 형상을 닮은 가운데 주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2-3).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 안에서 사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믿음으로 나사렛 예수님을 의식하면서 주님을 따라 살아가면 그것이 바로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이는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죽으신 우리 주 예수님을 위해 나도 주의 뜻대로 살고자 믿음으로 나의 모든 것을 주께 드린 삶입니다. 물론 내 모든 것을 주께 바치는 것은 내 목숨까지 포함됩니다. 그것이 바로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라는 의미입니다.
지금 우리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라는 표현으로부터 그리스도 예수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부활 승천하신 주께서 나를 위해 성령으로 내 안에 오셔서 내 대신 사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내 안에 계시면서 성령으로 내 영을 이끄십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방법이며 신비입니다. 그러므로 새언약 시대의 모든 성도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 거듭난 성도라면, 여러분의 영은 그리스도의 영과 하나입니다.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전 6:17).
주께서는 성령을 통해 우리의 영과 합하시고, 우리는 믿음으로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와 합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으로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는 우리와 성령으로 연합하고 우리는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주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사실을 확실하게 선포합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
즉, 거듭난 자는 그들 안에 생명의 영이신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자들입니다. 신자는 그가 받은 새생명도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 생명을 붙드신 영도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라고 정확하게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고백은 바울 개인의 진심 어린 표현일 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난 후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는” 목적을 갖고 살아갈 때 동일하게 터져 나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목사들 및 신학자들 중에는 우리처럼 그리스도 중심으로 성경을 보는 것에 대해 너무 그리스도 중심으로 생각하면 균형을 잃게 된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중심으로 가지 말고,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균형을 잃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는 바울의 경우 치우친 사람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한 후 호흡을 마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스도 예수 외에는 삶의 목표와 신학의 목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하나님의 뜻이 택한 백성을 위해서는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신했기에 오늘 본문에서도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고 선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바울처럼 사나 죽으나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갈 6:17).
또한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영광의 나사렛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때 주께서 그에게 주신 사명을 단 한번도 인생 가운데 잊은 적이 없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그 사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입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직접 주 예수께로부터 사명을 받았습니다.
[
15 …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16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행 26:15-18)
사랑하는 여러분!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입니다. 이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사신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이 나를 인도하시도록 믿음을 행사해야 합니다. 즉,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께서는 내게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인격적으로 그분을 사랑하며 감사하며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나의 마음을 열 때에야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내 삶을 이끄시기 시작합니다. 내가 인격적으로 의식해야 하는 분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요일 1:1)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의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가 되게 하려면 인격적으로 그분을 의식하며 대화해야 합니다. 기도로 고백해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 그분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계시된 성경의 복음으로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흐레이마’는 오직 ‘로고스’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경이 완성된 이후로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만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요 16:13-15)
그리스도께서는 부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이 땅에 보내셔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의 계시와 뜻을 알게 하셨습니다. 특히 사도 요한을 통해 역사 끝까지의 계시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성령께서 부활 승천하신 영광의 그리스도로부터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주의 백성에게 알려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이 완성된 후로는 성령은 더 이상 다른 계시를 주지 않으십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주의 백성에게 필요한 모든 구속과 그에 따른 계시를 정경으로 마무리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경을 벗어나 성령의 계시를 구하는 것은 허락될 수 없습니다. 즉, 계시는 정경의 완성 이후 종료되었습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성령을 통해 성경의 뜻을 조명 받아야 주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가 내 안에 성령으로 와 계시는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교제하려면 그분의 말씀이 담긴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믿고 바라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 주께서 알려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성령의 조명으로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더욱 “내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가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두 가지를 반드시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는 믿음으로 인격체 되시는 그리스도께 기도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성령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 주셔서 성경의 뜻을 깨달아 알게 하실 것입니다.
주의 십자가의 죽음 때문에 낙심하여 엠마오로 내려가는 가던 두 제자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주를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이때 부활의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5-27).
그런데 두 제자가 예수께서 그들에게서 떠나시자 예수님과 대화를 했을 때 느꼈던 한 가지 사실을 서로 고백합니다.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더라”(눅 24:31-32).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성령 안에서 성경을 더욱 알게 되면서 마음이 뜨거워지고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기도로 주와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그리고 인격적으로 그리스도를 감사하며 사랑하며 그분의 지시를 따르고자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성경에서 성령을 통해 주의 지시를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그때 주의 지시를 온 마음을 다해 감사함으로 따르는 것이 바로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가 되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학적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고 하는 것은, 신자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한 상태로서 인격적인 교제, 즉 사랑과 믿음의 교제 상태에 있음을 뜻합니다. 그것이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는 실재입니다. 그 실재는 바울처럼 그리스도에 대한 무한한 감사와 사랑을 느끼는 가운데 갖게 되는 진심 어린 순종심인 것입니다.
그때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하늘의 기쁨이, 하나님의 완전한 평강이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즉,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 상태는 우리가 주 안에서 천국을 누리는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극한 희열 가운데 더욱 주와 함께 하고 싶은 거룩한 충동이 지속적으로 생겨납니다. 즉, 이 세상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커집니다.
하지만 아직 세상을 떠나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사명을 좀 더 이루어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내 주변 사람들에게 건네줄 복음의 선한 영향력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아직 그가 이 땅의 성도들에게 복음적인 유익을 끼칠 수 있으니 떠나지 않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빌 2:23-24).
그러한 면에서 바울은 자신이 네로 앞에 서게 될 때 풀려날 것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네로는 우리가 알다시피 가장 사악한 로마 황제입니다. 하지만 그는 고작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꼭두각시 역할 밖에 할 수 없는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께서 바울을 살려주시면 네로 역시 바울을 죽일 수 없고 오직 풀어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번 재판에서는 풀려날 것을 빌립보 성도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라”(빌 1:25).
그러므로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그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주면서, 그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이 바울의 가르침으로 인해 믿음과 지식이 진보할 것이며 영적으로 풍성한 삶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때 바울도 기쁠 것이고, 또한 빌립보 교회 성도들도 한없이 기쁠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 상태에서 바울이 하는 말과 삶을 통해 빌립보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영을 풍성하게 접하게 될 것이며, 이로써 더욱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의지할 것이며, 신앙에 대한 긍지를 갖고 힘차게 믿음의 삶에 정진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자신의 삶에서 나타나는 복음의 비밀과 능력을 다 알려준 후에 빌립보 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 그들은 지금은 옥에 갇혀 있지만 곧 반드시 만나게 될 사도 바울을 기억하면서 그의 권면을 받아들입니다.
바울은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권면합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 된 것과 하나님 나라의 시민 된 것, 특히 그리스도와 언약을 맺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라고 합니다. 바울은 그들이 그리스도로부터 성령을 통해 어떠한 신비한 능력과 위로를 얻을 수 있는지 알려준 후에 그러한 믿음 가운데 주께서 바라시는 거룩하고 사랑이 넘치는 복음의 증인된 삶을 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삶으로 입증되지 않는 신자는 거짓 신자입니다. 삶으로 입증되지 않는 믿음은 거짓 믿음입니다. 그러나 참 믿음은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믿음이기에 주께서 보내신 성령 안에서 주의 생명과 능력을 얻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참 신자들은 세상과 죄와 마귀를 향해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한 승리의 현장은 무엇보다 우리의 삶에서 나타날 것입니다. 특히 가정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나아가 사회에서 나타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와 사도의 가르침에 따라, 한 마음 한 뜻을 품을 수 있습니다. 주의 영으로 이끌림을 받는 목사의 가르침에 따라 복음의 신앙을 위해 협력할 수 있습니다. 사탄의 조종을 받으며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늘의 지혜와 선과 사랑과 빛으로 그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로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분명한 섭리와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과 주의 나라를 위해 살아갈 때 많은 방해 세력과 어려운 고난을 당할 것입니다. 이는 빛이 가려는 곳에는 어둠이 있고, 선에 대항하려는 불의와 죄악이 있기 때문이며, 그리스도를 대항하고 시기하는 마귀가 세상을 붙들고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리고 너희가 알아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빌 1:29)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빌 1:30)고 부연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영적인 싸움은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며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고 고백하며 사는 신자들에게 승리를 안겨줍니다. 그 승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보장된 승리입니다. 이는 내 능력과 힘과 지혜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승리하셔서 만유의 주가 되신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누리는 승리입니다. 이때 승리는 환경적인 승리가 포함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반드시 보장된 승리는 내적인 기쁨과 평강, 그리고 거룩함의 능력으로 인한 청결한 마음과 사랑입니다. 즉, 내 마음이 아무리 거센 풍랑 가운데서도 무너지지 않고 순결함과 정직과 거룩과 사랑과 충성을 드러냄으로 주께서 영원토록 자랑하시는 복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도 그러하고 무엇보다 저 영원한 새하늘과 새땅에서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믿음의 승리에 대해 무한한 영광으로 보상하여 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거룩한 주의 말씀을 받고, 이 더러운 세상에 물들지 말고, 불신자들처럼 탐욕과 거짓과 이기심으로 살아가지 말고, 오직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는 마음 자세로 남은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참되고 충성된 복된 주의 자녀들이 되어, 주를 만날 때 주께로부터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는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