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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트] 18
씬1. 달리는 승용차 안
(수술 복장에 마스크를 쓴 찬성이 운전 중이다. 뒷자리에 강모와 성모가 앉아 있고...
강모, 뒤 돌아보며, 불안하다. 성모, 마스크를 쓴 두 눈이 촉촉해 있고...)
강모 : 고맙습니다... 근데, 누구신데 저를...
성모 : (마스크 쓴 채, 본다)
강모 : .. (눈에 익은 눈매다. 보는데)
성모 : .. (눈물이 고여 오고) 차, 세워.
씬2. 강변 / 승용차 안
(승용차가 다가와 선다. 승용차 안... 강모, 뭔가 이상해서 빤히 성모를 보는데... 성모, 마스크를 벗는다.
강모, 성모를 알아보더니 놀란다. 얼른 차 문을 열고 도망치는데.. 성모, 급히 따라 내리며...)
성모 : 강모야..!
강모 : ..? (멈춘다)
성모 : 야, 이강모..
강모 : ... (천천히 돌아보는데)
(성모가 천천히 다가와 선다. 강모, 뭔가 이상한 듯이 성모를 보는데... 잠시, 시선 마주치는 두 사람...)
성모 : 여기가.. 서울에서 제일 높은 빌딩이냐?
강모 : ... (눈물 고인다, 형이구나)
성모 : (눈물 고이고) 난 니가 죽은 줄 알았어... 바보같이.. 내 동생을 눈앞에 두고도... 못 알아봤지, 뭐야.
강모 : 형... (빤히 본다)
성모 : 그래... 내가 니 못난 형이다.
강모 : 성모 형...
성모 : ... (다가와서, 조용히 포옹한다. 눈물 흐르고)
강모 : (눈물 훔치며) 형, 미주 못 봤지? 우리 미주...
성모 : 미주, 만났어.
강모 : ... (보다가, 다시 눈물) 미안해 형.. 어머니... 돌아가셨어.
성모 : 얘기 하지 마, 강모야..
강모 : 막내도 멀리 입양 보냈고... 미주도 고아원에서 컸어...
성모 : 다 알아... 다 알아서... 너무 가슴이 아프다.. 내가 못나서... 내 가족을 못 지킨 게... 너무 화나고 아파...
강모 : 형... (우는데)
성모 : .. (안아 준 채, 눈물 흘린다)
씬3. 그 강변 (시간 경과, 새벽)
(날이 밝아 온다. 승용차가 서 있고... 강모와 성모가 나란히 앉아서 강 쪽을 보고 있다.
찬성이 운전석에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고...)
성모 : 너 황회장 밑엔 어떻게 들어 간 거야?
강모 : (씩 웃으며) 나한텐, 친아버지 같은 분이셔.
성모 : ... (본다)
강모 : 미주 잃어버리고.. 내가 가장 어렵고 힘들 때, 날 거두어주셨어.
성모 : (굳어진다, 뭔가 말하려고) 강모야..
강모 : 회장님도, 나처럼 고아출신이야. 나도 그분처럼 꼭 성공해 보려고.
성모 : ... (차마 말 못하고)
강모 : 형은 중정에 어떻게 들어갔어? 거기 들어가기가 쉽지 않을 텐데..
성모 : .. (본다)
강모 : 조필연 국장이 형을 꽤나 신뢰하나보던데.. 형도 나처럼 조국장 도움 받은 거야?
성모 : (분노가 솟구친다. 차마 말을 못 꺼내고) 그 얘긴 나중에 하자.
강모 : ..? (보면)
성모 : (작은 배낭을 건네며) 그 안에 위조 신분증하고, 필요한 것 좀 챙겨 넣었다.
강모 : ... (받으면)
성모 : (주머니에서 종이쪽지를 주며) 니가 숨어있을 주소지야. 당분간 거기가 있어.
강모 : (씁쓸하게) 평생 숨어 살고 싶진 않아.
성모 : 이 형이, 너 절대 그렇게 안 만들어. 너 곧 외국으로 보낼 거야.
강모 : ... (본다)
성모 : 형을 믿어. 알았지?
강모 : ... (받는다, 고맙고) 미주, 잘 부탁해 형.
성모 : 걱정 마, 임마... 내가 우리 집 장남이잖아. 지금부터 내 동생들.. 다 내가 보살필 거다.
(강모, 성모의 손을 맞잡는다. 미소 지어 보이는데.. 승용차 안에서 찬성이 그들을 본다)
씬4. 중정 건물 (아침)
필연 : (E) 어떻게 된 거야?
씬5. 중정, 조필연 방
(성모와 고재춘이 와 있다)
필연 : 이강모가 탈옥을 하다니..!
재춘 : 누군가가 이강모를 빼돌렸습니다.
필연 : ..! 공범이 있단 말이야?
재춘 : 형사들을 제압한 솜씨를 보면 분명 전문가들 소행입니다.
성모 : 아무래도, 민국장 쪽이 의심스럽습니다.
필연 : 민홍기 부하들 철저하게 따라 붙어. 놈들이 이강모를 숨겨뒀다면, 분명 선거 전에 접촉을 시도할 거야.
재춘 : 예.
성모 : 알겠습니다, 국장님... (의미심장한 눈빛)
씬6. 달리는 차 안 (낮)
(성모와 찬성이 미주 집을 찾아가고 있다. 찬성이 운전 중이고...)
찬성 : 한 가지만 여쭤볼 게요.
성모 : ..? (본다)
찬성 : 조필연, 황태섭이 아버님 죽인 원수라는 거.. 왜 동생한테 말씀 안하셨어요?
성모 : ..
찬성 : 동생이, 아직도 황회장을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던데...
성모 : 복수는 나 혼자 하면 돼.
천성 : ...
성모 : 어릴 적부터 강모 걔, 꿈이 많았던 놈이야. 동생 손에 더러운 피를 묻히게 하고 싶지 않다.
찬성 : 결국은... 그 멍에를 선배님이 혼자 다 뒤집어쓰겠단 말씀이시네요?
성모 : 강모, 나 때문에 죽을 고생, 충분히 다 했어. 난 앞으로 동생들을 위해서 살 거다.
씬7. 미주네 집, 대문 앞 (낮)
(형사 1, 2가 와 있다. 미주가 나와 있고...)
미주 : 글쎄, 전 모른다니까요.
형사 1 : 아가씨 친 오빠라며?
미주 : 그날 이후로 한 번도 못 봤다구요.
형사 2 : 경찰서에 데려가서 조사해야지, 안 되겠어.
미주 : (놀라서) 경찰서요? 제가 경찰서에 왜 가요?
성모 : (E) 수고가 많습니다.
(성모와 찬성이 다가온다. 미주, 성모를 보자 반가운 마음.. 그러나 이내 표정 숨기고... )
성모 : (찬성에게) 이강모 동생이, 이 아가씬가?
찬성 : 예...
형사1 : 댁들은 누구쇼?
(찬성, 신분증을 꺼내 보인다. 형사 1, 2... 얼른 자세 고치고..)
성모 : 이 아가씬, 우리가 조사하죠.
형사 1 : 예? 예.. 그러십시오.
(형사 1, 2.. 인사하고 간다.
성모와 찬성이 잠시 그들을 보다가... 성모와 미주, 얼른 집 안으로 들어간다.
찬성, 남아서 주변을 살피는데...)
씬8. 동, 방안
(들어서는 성모와 미주..)
미주 : (마음 급하게) 작은 오빤?
성모 : 안전한 곳으로 빼돌렸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미주 : 큰오빠... (좋아서 덥석 안긴다)
성모 : .. (안아주다가, 본다) 앞으로 형사들이 널 미행할거야. 내가 찾아오기 전엔, 먼저 연락하지 마.
미주 : 알았어, 오빠... 근데, 강모오빤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야?
성모 : 우선, 외국으로 빼돌릴 거야. 그런 다음에 진범을 잡아서 누명을 벗겨줘야지.
미주 : (금방 풀이 죽어서) 그럼, 우린 언제 다 같이 모여서 살 수 있어?
성모 : 조금만 더 참자.. 지금은 어쩔 수 없어.
미주 : 강모 오빠 외국 나가면 나도 따라갈 거야. 가서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작은오빠 돌봐줄 거야.
성모 : (안쓰럽다) 미주야... 강모는 나한테 맡기고, 넌 그냥 니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즐겁게 살면 돼.
그게 강모한테도 더 좋을 거야.
미주 : ...
성모 : 우선, 집부터 좀 좋은 데로 옮기자. 버스 차장 일도 그만 둬. 앞으로 오빠가 생활비 꼬박꼬박 줄게.
미주 : 아냐, 오빠.. 괜히 경찰들한테 의심만 받을 거야.
성모 : ..
미주 : 오빠 말대로 내 일, 열심히 하면서 즐겁게 살게. 강모 오빠나 잘 보살펴 줘.
성모 : ... (미소, 머리 쓰다듬는다)
씬9. 바닷가 마을 (낮)
(조그마한 어촌... 강모가 배낭을 하나 메고 걸어간다. 쓸쓸하게 바닷가를 쳐다보는 강모...)
씬10. 민박집 방안
(할머니의 안내로 방안에 들어 온 강모.. 방안을 둘러보는데)
할머니 : 오래 있을 거유?
강모 : 며칠 쉬었다 가려구요.
할머니 :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 해, 총각?
(할머니, 나가면 강모, 배낭을 내려놓고 벽에 털썩 기대앉는다)
강모 : (눈물 고여 오고) 정연아... (한숨 내쉬며) 우리 언제 다시 만나냐? 그런 날이.. 또 올까..?
씬11. 병원 진찰실 (15부의 그 병원)
(수척해진 정연이 머리 희끗한 노의사에게 진찰을 받고 있다.)
의사 : (챠트를 보며) 아무 이상 없어. 심장도 정상이고..
정연 : ... 그래요?
의사 : 몸에 이상도 없는데 하루 종일 가슴 통증이 있고.. 불면증, 호흡곤란, 식욕 부진이라... 혹시 애인하고 헤어졌어?
정연 : 네?
의사 : 실연당하고 가슴앓이 하는 환자들 중에 이런 증세가 있거든.
정연 : (희미하게 미소) 그냥... 친구가 걱정 되서 그런가 봐요.
씬12. 만보건설, 기획실
(문성중과 기획실 직원들이 분주하게 전화를 걸며 각자 업무 중이고.. 정연이 들어서서 자리에 앉는다. 뭐가 생각하는 그 위로...)
의사 : (E) 가끔 머리가 스스로를 속일 때가 있어. 근데 몸은 절대 거짓말 못하거든.
내가 보기엔 정연이 니가 그 친구 사랑하는 거 같은데..
(정연, 길게 한숨.... 이때, 민우가 실장실에서 나와 정연에게 다가오고...)
민우 : 황정연씨?
정연 : (본다)
민우 : (서류 툭 던지며) 이거, 다시 작성하세요.
(민우, 실장실로 들어간다. 정연, 서류를 펼치는데 메모지가 있다. 정연, 메모지를 보는데..)
민우 : (E) 내일 쉬는 날이야. 한강호텔 앞에서 열두시에 만나. 지금 데이트 신청 하는 거야.
강모 일이라면 걱정하지 마. 어떻게든 내가 도울 방법 찾고 있으니까...
(정연, 실장실 쪽을 보면...
실장실 안에서 몰래 블라인드 틈새로 정연을 살피던 민우와 시선 마주치고.. 민우, 얼른 블라인드 닫는다.)
씬13. 동, 실장실 안
(민우, 쑥스러운 듯 미소... 픽 웃는데서...)
씬14. 만보건설 로비 (낮)
(정연, 복잡한 표정으로 걸어 나온다.
이때, 정식이 허겁지겁 뛰어 나오다가 서류를 잔뜩 든 여직원과 부닥친다. 여직원, 서류를 뿌리며 넘어지는데...)
정식 : 아, 씨.. 똑바로 못보고 다녀?
(정식, 다급하게 지나간다. 정연, 뭔가 이상해서.. 급히 뒤를 쫓아 나가는데...)
씬15. 지하 주차장 / 승용차 안
(박소태가 성냥개비를 입에 씹으며, 주변을 살피며 서성이고 있다.
급히 다가오는 정식... 소태, 능글맞게 인사하며...)
소태 : 별일 없으셨죠?
정식 : (낮게) 야 임마, 너 미쳤어? 여길 찾아오면 어떡해?
소태 : 그럼 어떡합니까? 돈이 다 떨어졌는데..
정식 : 뭐?
(정식, 얼른 주변을 살피며 소태를 끌고 승용차 안으로 들어간다.
이때, 나오던 정연이 얼른 몸을 숨기고 승용차 쪽을 보는데...
승용차 안의 정식과 소태...)
정식 : 너, 내가 준 그 돈을 벌써 다 썼단 말이야?
소태 : 숨어있기가 쉬운 줄 아세요? 그러니까, 이번에 아예 큰 걸로 한 장 주시던가요.
정식 : (멱살 잡고, 때릴 듯이) 이 자식이, 그냥 확..!!
소태 : (뻔뻔하게 쳐다보며) 왜요? 줄 돈 없어요? 없으면 어디 가서 앵벌이라도 해야죠, 뭐... 만보건설엔 일자리 좀 있을라나...?
(일각.. 정연이 승용차 안을 노려보고 있다. 정식이 소태에게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 준다.
정연, 직감적으로 뭔가를 느끼는데... 정식과 소태가 차 밖으로 나온다)
정식 : 너, 이번이 마지막이다? 또 허락도 없이 내 앞에 나타나면, 그땐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줄 알아? (씩씩대고 간다)
소태 : 지금 누가 누굴 협박하는 거야?
(소태, 질겅거리던 성냥개비를 툭 뱉어내고는 가는데.. 고개를 내밀며 소태 쪽을 보는 정연...)
씬16. 인근, 다방 안
(박소태가 홀짝 거리며 쌍화차를 마시고 있다. 레지가 앉아 있고..)
소태 : 야, 쌍화차에 계란 노른자 좀 동동 띄우지 그랬냐?
레지 : 어휴, 오빤... 그건 모닝커피지.
소태 : 모닝? 그럼 나도 모닝으로 줘.
레지 : 지금 점심때잖아. 모닝이 무슨 뜻인지 몰라?
소태 : 모닝이 계란이란 뜻이잖아, 이년아.
레지 : 어휴, 답답해...
소태 : (눈치 보며) 아냐? 아 맞다. 노른자.. 그치? 맞지?
(이때, 정연이 소태 앞에 나타난다. 소태, 뭔가 하고 보는데..
레지, 어서 오세요, 하며 눈치보고 자리에서 일어서고.. 정연, 자리에 앉는다)
정연 : (노려보며) 박소태... 맞지?
소태 : 뉘신데 귀한 이름을 함부로..
정연 : 나, 정연이야, 황정연... 날 모르지 않을 텐데?
소태 : ..! (안다. 놀라서 얼른 자세 고치고)
정연 : (소태의 손을 잡아끌며) 같이 경찰서 가.
소태 : (놀라서 얼른 잡아 빼며) 왜 이래요?
정연 : 그날 정식이하고 홍회장 만나러 갔었잖아..! 경찰서에 가서, 있는 그대로 진술 하라고..!!
소태 : (표정 굳어진다) 누가, 본 사람 있데요?
정연 : 있든 없든, 경찰서에서 가려.
소태 : 우리, 거기 간 적 없거든? 근데 왜 아까부터 반말이야?
정연 : 없어?
소태 : 그래, 없어. 가려다가 말았어, 왜?
정연 : 정식이 왜 만났어? 그동안 왜 숨어 있었는데?
소태 : 골치 아프네, 정말... 가자구, 가... 나, 피할 이유 없거든?
(소태, 일어서서 나간다. 정연, 따라 나가는데... 카운터 앞...)
레지 : 오백원이에요.
소태 : .. (멀뚱히 보다가) 뭐해요, 돈 안내고?
(정연, 마음 급해서 얼른 지갑을 꺼내 계산하는데.. 소태가 냅다 도망친다)
정연 : 야, 너..! 거기 안 서..? (놀라서 거스름돈도 받지 않고 쫓아가는데)
씬17. 다방 앞, 거리 (낮)
(박소태가 허겁지겁 나온다. 죽자 사자 도망치는데..
뒤이어 나오는 정연, 사방을 둘러보지만 이미 소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정연, 망연하게..)
씬18. 만보건설 로비 (낮)
(심각하게 들어서는 정연... 이때, 황태섭과 주영국이 급박하게 걸어 나오고 있다.
정연, 태섭을 보자 뭔가 결심한 듯 그 앞을 가로막으며)
정연 : 드릴 말씀이 있어요.
태섭 : .. (본다) 급한 일이냐?
정연 : 예, 아주 급한 일이에요.
태섭 : .. (영국에게) 경찰서엔 자네가 갖다 와. 강모, 그 놈이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 좀 알아오게.
영국 : 알겠습니다, 회장님.. (간다)
정연 : ..? 강모한테 또 무슨 일 있어요?
태섭 : 강모가... 탈옥을 했다는구나.
정연 : ..!! (놀라서) 네?
태섭 : 올라가자. (가면)
정연 : .. (놀라서, 따라가는데)
씬19. 회장실 안
(태섭과 정연이 자리에 앉는다)
태섭 : 그래, 급한 일이란 게 뭐야?
정연 : 이 말씀을 드려야 될지 고민 많이 했어요. 하지만, 아버지가 꼭 아셔야 될 것 같아서요.
태섭 :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말해 봐라.
정연 : 홍기표 회장 죽은 날... 그 별장에 정식이가 갔었어요.
태섭 : ..!! (크게 놀란다) 뭐?
정연 : 시덕이가 강모 차 키를 정식이한테 줬데요. 그 차에, 강모 작업복이 들어 있었고요.
태섭 : (충격) 정연아..?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정연 : 그날 정식이하고 같이 간 박소태란 자가 있어요. 방금 정식이가 그 자를 만나는 걸 봤어요.
태섭 : .. (멍하다가) 아냐... 뭔 오해가 있을 거야. (믿고 싶지 않다) 정식이, 그 놈이... 대체 왜 홍기표를 만나러 가?
정연 : (또박또박) 시덕이 말로는... 장부를 찾고 싶어 했데요. 아버지한테 잘 보이고 싶다고요.
태섭 : ...!! (어질)
정연 : 아버지? (부축하듯이) 괜찮으세요?
태섭 : (정신 차리고) 너, 딴 데서 이 얘기 안 했지?
정연 : 아버지한테 처음 말씀드리는 거예요.
태섭 : ... (멍해서, 생각)
정연 : 강모.. (복받치는 감정 누르며) 아버지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했어요.
지금, 강모 누명 벗겨줄 사람... 아버지 밖에 없어요.
태섭 : (단호하게) 정식이는 아니다.
정연 : 아버지?
태섭 : 그 놈, 못났어도 내 아들이야..! 내가 내 아들놈을 모를까봐? 그 놈, 절대 사람 못 죽여. 정식이는 아니야..!
정연 : (굳어진다) 그럼 강모는요? 강모는 살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태섭 : ...
정연 : 틀림없이 정식이가 장부를 갖고 있을 거예요. 아버지가 직접 확인해 보세요.
태섭 : 그럴 필요 없다.. 절대... 절대 정식이는 아니야.
정연 : 전 아버지 믿어요. 불쌍한 강모, 모른 척 하실 정도로 비겁한 분 아니라는 거... 믿어요, 저... (일어서서 나간다)
태섭 : (충격이다, 머리 감싸며) 아냐.. 정식이가 사람을 죽이다니? 절대 그럴 놈 아냐...
씬20. 요정집 전경 (밤)
(홍등이 걸려 있고.. 풍악소리)
씬21. 동, 방안
(태섭과 정식이 단 둘이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다)
태섭 : 한잔 받아라. (술 따라주면)
정식 : (기분 좋아서) 예, 아버지.. (받고) 웬일이세요? 아버지가 저하고 이런 술자리까지...
태섭 : 애비가 아들하고 술 한 잔 하는 게 뭐 어때서?
정식 : (날름 마시고, 잔 건네며) 한잔 받으세요, 아버지.
태섭 : 그래, 오랜만에 아들놈이 따라주는 술 한 잔 먹어보자.
정식 : (기분 좋게, 술 따르면) 요즘 많이 힘드시죠?
태섭 : .. (술 한 모금 마시고)
정식 : 저두 회사 돌아가는 사정, 웬만큼 다 알아요. 지하철 공사도 해야지, 곧 보궐선거 시작되면 조국장님 선거지원도 해야지..
거기다가 부동산 값도 떨어져서...
태섭 : 그래서 말인데... 정식아..
정식 : 예, 아버지...
태섭 : 너, 혹시... 홍기표회장 장부 갖고 있냐?
정식 : ..!! (화들짝 놀란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태섭 : .. (보면)
정식 : 아니, 그 장부를 제가 왜 갖고 있어요? 아부지도 참...
태섭 : 어차피, 홍회장은 죽었어. 살인범은 강모로 낙인 찍혔고..
정식 : 그, 근데요?
태섭 : 만약 니가 그 장부를 갖고 있으면, 나한테 넘겨라. 그것만 있으면, 선거 자금은 걱정 안 해도 돼.
정식 : 아부지..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태섭 : 장부가 없으면 할 수 없지만... 만약 니가 갖고 있으면, 그거 잘 활용해야 돼. 그래야만 회사가 살 수 있어.
정식 : ..
태섭 : 내가 오죽하면 너한테 이런 말까지 하겠냐? (술 한 잔 마시고) 이담에, 너두 내 자리 앉아보면 내 고충, 알게 돼.
정식 : .. (보는데)
태섭 : 먼저 들어갈 테니, 천천히 마시고 와.
(태섭, 일어서서 나간다. 정식, 고민스럽게 보는데...)
씬22. 동, 밖 마당 (밤)
(걸어 나오는 태섭.. 잠시 멈추고 방 쪽을 돌아본다)
태섭 : (E, 마음의 소리) 정식아.. 너, 아니지? 니가 죽인 거 아니지? 제발.. 제발 장부를 가져오지 마라... 제발, 정식아...
(눈물 고인 채 걸어 나가는데)
씬23. 동, 방안
(명월이 와 있다. 정식이 명월의 무릎을 베고 누워서 생각에 잠겨 있고..)
명월 : 뭔 생각을 그렇게 해?
정식 : ..! (확 일어나 앉고) 아버지가 저렇게 까지 말씀하시는 거 보면, 지금이 분명, 기회는 기회야.
명월 : ..? 기회? 무슨 기회?
정식 : 이 참에, 확실하게 눈도장 찍고 후계자 승낙을 받아내 버려?
명월 : 그래, 오빠.. 얼른 회사 좀 이어 받아. 나도 팔자 좀 확 피게.
정식 : 어이구, 요 여우같은 년.. (껴안으며 장난친다)
씬24. 구멍가게 앞 (아침)
(바닷가 마을의 구멍가게 앞 공중전화부스... 모자를 눌러 쓴 강모가 전화 중이다)
강모 : 밀항? (놀라서 주변 살피며) 행선지가 어딘데?
씬25. 중정, 성모 방
(성모가 혼자 전화 중이다)
성모 : (수화기 들고) 지금 알아보는 중이니까 조금만 참아. 배편을 구하는 대로, 곧 외국으로 나갈 수 있을 거야.
강모 : (F) 미주는 잘 있지?
성모 : 걱정 마. 아주 씩씩하게 잘 있어.
씬26. 구멍가게 앞 (아침)
강모 : (수화기 들고) 형이 더 걱정이야. 나 때문에 형까지 잘못될까봐..
성모 : (F) 너 잘못되면.. 나도 세상 그만 살려구..
강모 : 농담이라도 그런 말하지 마, 형.
성모 : (F) 그러니까.. 너, 꼭 무사해야 돼. 안 그러면... 나, 죽어서도 엄마, 아버지 못 뵙는다.
강모 : .. (가슴 아프다) 미안해 형... 나 때문에 형까지...
씬27. 중정, 성모 방
성모 : 너 그렇게 된 거, 내가 못나서 그래...
강모 : (F) 형...
성모 : 다시 연락하자... 그래..
(성모, 수화기 놓는다. 마음 무겁고.. 이때, 찬성이 들어선다)
찬성 : 선배님..!
성모 : 알아봤니?
찬성 : 인천에서 홍콩으로 들어가는 배가 있어요.
성모 : ..!! 밀항이 가능하겠어?
찬성 : 전문적으로 그 일만 하는 놈들이에요.
성모 : 지체 할 시간 없다. 그 놈들 접촉해서, 자리 만들어 내.
찬성 : 예, 선배님.
성모 : 절대, 우리 신분을 노출해선 안 돼.
찬성 : 걱정 마세요.
성모 : .. (기대감)
씬28. 주차장
(승용차 안.... 정식이 장부를 들고 고민 중이다. 그 위로...)
태섭 : (E) 장부가 없으면 할 수 없지만... 만약 니가 갖고 있으면, 그거 잘 활용해야 돼. 그래야만 회사가 살 수 있어.
정식 : 그래... 이것 때문에 사람까지 죽였는데.. 그냥 없앨 수는 없지...
(정식, 장부를 손에 들고 차에서 내린다)
씬29. 회장실 안
(태섭이 깊은 고뇌에 빠져 있다. 노크소리..)
태섭 : 들어 와.
(정식이 들어선다. 태섭, 정식을 보자 얼른 일어서서.. 정식, 다가온다. 정식의 손에 들려 있는 봉투...
태섭, 놀라서 그 봉투를 보는데... 정식, 그 봉투를 건넨다. 태섭, 놀라서 선뜻 받지 못하는데...)
정식 : 얼른 꺼내 보세요. (낮게) 아버지가 애타게 찾는 게.. 그 안에 있어요.
태섭 : .... (차마 열지 못하고)
정식 : 참, 아부지두.. (봉투에서 장부를 꺼내 펼쳐 보이며) 보세요, 아버지, 홍회장 장부 맞죠?
태섭 : (애써, 침착하게) 이거... 왜 니가 갖고 있는 거냐?
정식 : 예?
태섭 : 홍기표... 니가 죽였냐?
정식 : ... (굳어진다)
태섭 : 니가 죽인 거 맞아?
정식 : (억지로 미소 지어보이며) 그딴 게, 지금 무슨 상관이에요. 이 장부만 있으면...
태섭 : 이노무 자식..!! (뺨을 후려친다)
정식 : ... 아버지?
태섭 : (멱살 잡는다, 눈물 고이고) 니가... 니가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내 아들이 사람을 죽이다니...!
어떻게 된 거야, 이 눔아..!!
정식 : (눈물 고이고, 멍하게) 전 그냥.. 아버지 기쁘게 해 줄 생각 밖에 없었어요...
태섭 : (본다, 애처롭고) 이런 못난 놈... (눈물 흘린다)
정식 : 아버지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조금이라도 도움 드리고 싶어서 그랬어요.
태섭 : (눈물 훔치며) 그래.. 너 아무 잘못 없다. 자식 못난 거, 다 부모책임이야..
내가 널 잘못 키웠어.. 다 내 잘못이야... 내가 죽일 놈이야..
정식 :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요..! 그냥 재수가 없었을 뿐이에요..!! 아버지한테 인정받고 싶었을 뿐이라고요..!!
태섭 : 안다, 이놈아.. 다 알아..
정식 : 아버지가 뭘 알아요..! 제 맘을 알아요? 정연이한테 밀리고, 강모한테 채이고,
뭘 해도 골칫덩이 취급만 받는 심정, 아시냐구요..!!
태섭 : (무너지듯 정식을 끌어안고 울음 터뜨린다) 정식아... 이놈아, 정식아..
정식 : 저요, 아버지만 절 인정해 주시면 감빵 가도 후회 없어요..! 근데, 이게 뭐예요? 이게 다 뭐냐고요..!!
(정식, 밖으로 뛰쳐나간다. 이때, 들어서던 정연과 마주치고...
정식, 눈물 흥건한 채 정연을 노려보다가 밖으로 나간다..
정연, 태섭을 보는데... 태섭, 망연하게 눈물 흘리며... 정연, 가슴 아프고..)
씬30. 강변 (낮)
(한적한 강변... 승용차가 서 있고.. 정연이 승용차 안에서 태섭을 본다.
태섭의 손에 장부가 들려져 있고.. 태섭, 생각에 잠긴 채 강 쪽을 보는데..
정연, 승용차에서 내리더니 태섭에게 다가간다)
정연 : 이제 그만 일어나세요.
태섭 : 홍기표.. 내가 죽인 거다.
정연 : 아버지..?
태섭 : 정식이 그렇게 된 거 나 때문이야. 내가 대신 살인자가 되면 돼.
정연 :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태섭 : 정식이가 아니라, 정연이 너라도 그랬을 거다. 내 자식이 살인범이 되는 거, 난 눈에 흙이 들어가도 그 꼴 못 본다.
정연 : 아버지..!
태섭 : 정연아... (눈물 고이고) 너... 너, 딱 한번만 눈감아주면 안 되겠냐?
정연 : ... (놀라서)
태섭 : 이 애비를 위해서... 한번만 모른 척 해주면 안 돼?
정연 : 강모는 어떡하구요? 강모도 아버지한테 자식이나 다름없잖아요..!
태섭 : 그 놈한텐... 내가 해줄 수 있는 거 다 해줄 거야.
정연 : 아버지..!!
태섭 : (라이터를 꺼내든다. 불을 붙이려는데)
정연 : (손을 잡아 말리며) 안돼요, 아버지.. 이러시면 안돼요..!!
태섭 : (눈물 고인 채 보며) 넌 내 심정 모른다.. 이 담에 자식을 낳아 봐야 알아...
강모 그놈은 내가 뭐로든 보상해 줄 수 있지만... 부모가 자식 인생 망쳐 놓고... 어떤 걸로도 보상이 안 돼...
정연 : 아버지..
태섭 : 미안하다, 정연아...
(태섭, 장부에 불을 붙인다, 활활 타들어가는 장부... 태섭, 눈물 흘리며..
정연, 더 말리지 못하고 넋이 나간 듯이 눈물 흘리며 보는데..)
씬31. 용역반 사무실 안 (낮)
(전화벨이 울린다. 혼자 있던 시덕이 기다렸다는 듯이 급히 수화기를 든다)
시덕 : 여보세요? (대답 없자) 가, 강모냐?
강모 : (F) 시덕아..
시덕 : (놀라서) 야, 임마.. 너, 지금 어디야?
강모 : (F) 여기 인천에 있는 섬이야.
시덕 : 인천 어딘데? (사이) 나만이라도 너 있는 데, 알아야 할 거 아냐. (사이) 어, 잠깐만..? (급히 메모지 꺼내 적는다)
씬32. 구멍가게 앞 (낮)
(공중전화 부스... 강모, 전화중이고)
강모 : 아가씨는? 아가씬 잘 있지?
시덕 : (F) 걔, 곧 결혼한대..
강모 : ... (말문 막힌다)
시덕 : (F) 울 엄마가 그러더라. 조민우네 집에서 결혼 서두르는 것 같다고..
강모 : ... (울컥)
시덕 : (F) 강모야? 너 듣고 있냐?
강모 : (울음 삼키고) 니가 아가씨 좀 잘 지켜줘.
시덕 : (F) 야, 임마... 지금 정연이가 문제야?
강모 : 아가씨, 혼자 할 줄 아는 거 별로 없어. 너라도 좀 옆에서 챙겨 줘라.
시덕 : (F, 화나서) 어휴, 이 바보 같은 놈..!
강모 : 그리고.. 혹시 내 걱정 많이 하면 나 괜찮다고... (목에 메어온다, 애써 참으며) 조민우랑 행복하게 잘 살라고..
그렇게 전해줘.
시덕 : (F) 야, 이강모..!
(강모, 수화기 놓는다, 눈물 고여 오고.. 허탈하게..)
씬33. 용역반 사무실
(시덕, 한숨 내쉬며 수화기 놓는다. 가슴 아프고.. 이때, 정연이 들어선다)
정연 : 강모한테 연락 없었니?
시덕 : ... (곱지 않은 시선으로 노려본다)
정연 : 너한테도, 아직 소식 없어?
시덕 : 없어요.
(시덕, 문 쾅 닫고 나간다.
전화기 옆에 놓여 있는 메모지... 정연, 뭔가 싶어서 집어 들고 보는데.. ‘인천시 강화군 서해 민박...’
이때, 시덕이 급히 들어선다. 황급히 전화기 주변을 살피는데...)
정연 : 이거 찾니?
시덕 : ..! (놀라서 얼른 메모지를 가지려고 손 뻗는데)
정연 : (얼른 빼며) 이거... 강모가 있는 데지?
시덕 : ... (낭패) 얼른 주세요.
정연 : 강모, 여기 숨어 있는 거 맞지?
시덕 : (화가 나서) 강모가 이렇게 된 게 누구 때문인데요..! 다 아가씨 때문이에요..!
정연 : ..? 무슨... 말이야? 나 때문이라니..
시덕 : 걔가 왜 미친놈처럼 회장님한테 충성했는지 알아요? 나중에라도.. 어떡해서라도 아가씨 얻고 싶어서...
사랑인지 지랄인지 그거 하나 얻겠다고 그 짓했어요.
정연 : ...!! (쿵, 마음 한쪽이 무너진다)
시덕 : 아가씬 조민우한테 시집 가버리면 그만이지만, 강모, 그 놈은 대체 뭐냐고요..! 그 불쌍한 놈, 그만 좀 괴롭히라구요..!!
(나가버린다)
정연 : ... (놀란 채, 눈물 고여 오며) 강모야...
씬34. 바다 (밤)
(강모가 혼자 물끄러미 바다 쪽을 보고 있다. 외롭고 쓸쓸하게..)
씬35. 황태섭 집, 정연 방 (그 밤)
(불이 꺼져 있는 방안... 정연이 잠을 못 이루고 침대에 앉아 있다. 가슴이 너무 아프다. 눈물이 고여 있는 그 위로...)
강모 : (E) 하지 마세요.
씬36. 회상 (14부, 52씬)
강모 : 그딴 결혼이면 하지 말라구요..!!
정연 : ...
강모 : 회장님, 제가 구해낼게요. 그런 인간들한테 고개 숙일 필요도 없고, 끌려 다닐 것도 없어요.
아가씬 그냥 나만 믿고 있어요..!
정연 : .. 너, 지겹지도 않니?
강모 : ..
정연 : 넌 뭐든지 나한테 주기만 하잖아. 받는 건 하나도 없으면서... 난 늘 너한테 짐만 되잖아.. 질리지도 않아?
강모 : 지겨워요. 그래도, 조민우랑 결혼은 절대 안돼요.
정연 : 왜..?
강모 : ... (본다)
정연 : 니가 내 결혼을 왜 말리는데..?
강모 : 나... 아가씨... (마른 침을 삼키며)
정연 : ... (본다)
강모 : (차마 고백 못하고) 결혼하는 거 싫어요.
씬37. 몽타주 (정연 회상, 시간 역순으로)
- 약혼식 장면... 민우가 정연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고 있고..
일각의 강모가 눈물 고인 채 서글픈 미소를 지어보이며 박수치는 모습...
- 극장 안에서 정연을 물끄러미 보는 강모의 모습 등등이 이어지다가...
- 시험문제를 설명하는 어린 정연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강모의 모습..
- 불 꺼진 만보건설 사무실 어린 정연과 강모가 부닥치는 모습...
- 6부, 39씬에서...
강모 : 먹든 말든 맘대로 해라... (소파에 벌렁 눕는다)
정연 : 안가구 왜 누워?
강모 : 지금 다리 밑에 가봤자, 좁아서 잘 데두 없어. (눈을 감는다)
정연 : 야, 남녀칠세부동석인 거 몰라?
강모 : 친구 사이에 남녀가 어딨냐?
정연 : 이강모... 혹시 너 나 좋아해?
강모 : 야..! (벌떡 일어나 앉으며) 넌 니가 이쁘다고 생각하냐?
정연 : ...
강모 : 난 얼굴 예쁜 애가 좋거든.
씬38. 다시 정연 방
정연 : (오열하듯 운다) 강모야...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니? 내가 어떡해야 되니?... 미안해.. 미안해, 강모야... (우는데)
씬39. 황태섭 집 전경 (아침)
씬40. 동, 거실
(태섭과 남숙, 정식이 식탁에 앉아 아침 식사중이다. 달그락거리는 숟가락 소리만... 무거운 침묵...
정식, 슬그머니 태섭의 눈치를 살핀다.
태섭, 슬쩍 정식을 살피다가 시선 마주치면 정식, 얼른 먹는데 열중하고.. 태섭도 무거운데...
뭔가 이상한 낌새를 챈 남숙...)
남숙 : 오늘.. 아침 공기가 이상하네? (정식에게) 너 또 아버지한테 뭐 잘못한 거 있어?
정식 : ... (대답 않고 먹기만)
남숙 : (태섭에게) 여보, 얘 또 뭐 사고 쳤어?
태섭 : (귀찮다) 밥이나 먹어.
(남숙, 입을 씰룩대는데... 이때, 복자가 급히 이층에서 내려온다)
복자 : 큰일 났어유, 회장님..! 아가씨가...
태섭 : 정연이가 왜요?
복자 : 아가씨가 방에 없시유.
남숙 : 걔가 언제, 우리하고 밥상머리 마주한 적 있어?
복자 : 그런 게 아니고.. 한번 올라가 보세요. 옷장도 잔뜩 풀어헤친 거 보니까... 집 나간 것 같어유.
태섭 : ..!! (놀라서) 뭐? 집을 나가?
정식 : ...?
씬41. 달리는 버스 안 (아침)
(승객이 별로 없는 시외버스 안이다. 강모를 찾아가는 길...
말쑥한 차림의 정연이 창밖을 보며 앉아 있다. 손에 든 주소지.. 이때, 정연의 눈에 보이는 약혼반지...
정연, 잠시 보다가 반지를 손가락에서 빼낸다. 망설이다가... 정연, 뭔가 다짐한다.
차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더니... 움켜쥔 손을 천천히 펼치는데... 그 손 안에서 떨어지는 반지...)
씬42. 민우 방
(민우가 옷을 입고 있다. 와이셔츠, 커프스단추, 넥타이, 향수까지 멋들어지게 뿌리고 거울을 본다. 설레는 표정...)
씬43. 귀금속 매장 (낮)
(멋진 정장 차림의 민우가 들어온다. 여자 점장이 반갑게 맞아주며...)
점장 : 오셨어요?
민우 : 반지 다 됐어요?
점장 : 네. (보여주면서) 오늘 프로포즈 하실 거라고 하셨는데... 날짜 어기면 안 되죠.
민우 : (흡족하게 보면서) 예쁘네요. 맘에 들어요.
점장 : 근데, 저번에 약혼하셨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민우 : 어쩌다보니까 제대로 된 프로포즈를 못했어요. 오늘 정식으로 청혼하려구요.
점장 : 아, 그러셨구나..
씬44. 호텔 레스토랑 안 (낮)
(빈 홀 안... 직원들이 한쪽에 풍선을 달며 이벤트를 준비 중이다. 한쪽에선 실내악단들이 준비 중이고...
민우가 홀 안을 둘러보며 매니저에게 뭔가를 지시 중이다. 매니저, 고개를 끄덕이고...)
씬45. 동, 호텔 앞 / 버스 안 (낮)
(민우가 꽃다발을 들고 서 있다. 설레는 표정...
이때, 호텔 앞 정류소에 버스가 정차 한다. 미주가 손님들을 내려 주는데...)
미주 : 한강호텔 앞이에요, 빨리빨리 내리세요, 빨리빨리..!
(손님들, 다 내리면 미주, 민우쪽을 보고는 버스에 탄다.
그 버스 안.. 몇몇 여고생들이 민우를 보며 멋있다고 얘기하는데...)
미주 : (민우를 물끄러미 보다가, 갸우뚱) 저 사람, 어디서 봤는데..?
(버스 서서히 출발하고..
민우, 설레는 마음으로 정연을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보는 모습에서..)
씬46. 버스 정류소 (낮)
(섬마을의 한적한 길가.. 버스가 다가와 선다.
그 버스가 지나가면 옷 가방을 손에 든 정연이 혼자 서 있고...)
씬47. 바닷가 민박집 앞 (낮)
(서해민박이라는 허름한 간판...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서 생선들을 손질하고 있다.
정연이 다가가고... 뭔가 이야기 하는데 할머니, 손짓으로 바닷가 어딘가를 가리킨다)
씬48. 바닷가 (낮)
(강모가 물끄러미 바다 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때, 다가오는 정연... 선뜻 나서지 못하고 강모를 바라보기만...
강모,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데 정연이 있다. 멍해지고...)
정연 : (애써 미소 지으며) 강모야... (다가온다)
강모 : .. (놀라서 보는데)
정연 : (호흡하고) 흠, 바다 냄새 좋다. 야, 이 좋은 걸 치사하게 너 혼자 보러 왔냐?
강모 : .. (표정, 차가와진다)
정연 : 뭐야, 그 표정은? 너, 찾으려고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강모 : (화를 참으며) 아가씨..
정연 : 그렇게 부르지 마. 너한테 아가씨란 말, 다신 듣고 싶지 않아.
강모 : ... (보다가) 아직 나가는 차 있을 거야. (정연의 팔을 잡고 가려는데)
정연 : (뿌리친다) 나, 집엔 못 돌아가.
강모 : (답답하고) 야, 황정연..
정연 : 방이 생각보다 넓더라? 주인 할머니도 맘씨 좋아 보이구...
강모 : (버럭) 왜 이렇게 철이 없어..!! 나 지금 수배 중이야. 내 옆에 있다간 너까지 위험한 일 당한다구, 모르겠냐?
정연 : ... 그게 뭐 어때서?
강모 : ..?
정연 : 너도 나 때문에 험한 일 많이 겪었잖아. 나도 그러면 왜 안 되는데?
강모 : ... 돌아가.
정연 : 싫어... 니가 이렇게 나올 거란 거, 모르고 온 거 아냐.
강모 : 가야 돼.
정연 : 절대 안가.
강모 : 너, 정말...
정연 : 보고 싶었어, 강모야.
강모 : ...!!
정연 : 보고 싶었어... 못 견딜 만큼... 아주 많이 보고 싶었어...
강모 : ... (보는데)
씬49. 호텔 앞
(민우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보더니 수화기를 놓고 나온다. 손에 들려져 있는 꽃다발...
민우, 잔뜩 오기어린 표정으로 굳어져 있고... 또다시 기다리기로 작정 한 듯이 서 있는데...)
씬50. 민박집 방안 (그 밤)
(밥상이 차려져 있고.. 정연이 강모를 기다리며 수첩의 각 페이지에 뭔가를 그리고 있다.
정연, 수첩을 주르르 펼쳐보더니 만족스런 모습으로...
이때, 강모가 들어선다. 정연, 얼른 수첩을 치우고는...)
정연 : 배고프지? (생선 찌개 뚜껑을 열며) 여기 바닷가라 그런지 생선이 참 싸더라구. 맛있을지 모르겠다.
강모 : .. (무표정으로 차갑게) 내일 아침에, 첫차 타고 서울로 돌아가.
정연 : (무시하고) 이집 할머니가 김치두 줬어. 얼른 먹어 봐.
강모 : .. (보다가, 숟가락을 들고 찌개를 떠먹어 본다)
정연 : 어때? 맛있어?
강모 : ... (밥을 떠서 찌개를 퍼먹기 시작하고)
정연 : (으쓱해서) 맛있구나? 맛있을 거야. 어깨너머로 배우긴 했지만, 내가 눈썰미가 제법 있거든.
강모 : .. (말없이 먹는다)
정연 : 너, 영광인 줄 알아. 내가 머리털 나고 처음 해보는 음식이야.
강모 : .. (게걸스럽게 먹기만)
정연 : 그렇게 맛있어? (좋아서) 천천히 좀 먹어, 체하겠다.
(정연, 흐뭇하게 보다가 숟가락으로 찌개를 떠먹더니)
정연 : 어휴, 짜..! 야, 그만 먹어. 너무 짜서 못 먹겠다.
강모 : ... (먹는데)
정연 : (숟가락 잡는다) 먹지 말래두. 넌 짜지도 않니?
강모 : 이걸 누가 끊인 건데?
정연 : 아까 간 볼 때는 괜찮은 것 같았는데... (슬쩍 눈치 보듯) 물 붓구 다시 끓이면 좀 나을래나?
강모 : 됐어. (먹는다)
정연 : (숟가락 놓는다, 괜히 미안해서) 어휴, 신경질 나. 여기 소금은 왜 그렇게 짠 거야?
(배가 고팠던지, 맛있게 먹어주는 강모.. 정연, 그런 강모가 내심 고맙고, 흐뭇하고...
정연, 슬그머니 수첩을 꺼낸다)
정연 : ... (대수롭지 않은 척) 이거 한번 봐봐.
(강모, 뭔가 보면... 정연, 수첩을 주르르 펼쳐 보이는 시늉을 하고는 강모에게 건넨다.
강모, 그 수첩을 받아들더니 보지도 않고 툭 던져 놓고.. 정연, 한숨... 밉지 않게 흘겨보는데)
씬51. 호텔 앞 (밤)
(어느새 어두워진 거리..
사복을 입고 퇴근을 하던 미주가 걸어오다가 민우를 본다, 민우, 잔뜩 굳은 채 꽃다발을 들고 있고..)
미주 : (혼잣말) 저 사람, 아직두 저러구 있네? (연민이 생겨서) 누굴 저렇게 기다릴까? 불쌍하게...
(가려다가, 생각난 듯) 아, 맞다, 세탁비..!
민우 E : 닦아.
- 인서트 회상 (17부 33씬)
민우 : (짜증) 에이 증말...! (미주를 확 밀치며) 더 번졌잖아. (손수건을 꺼내서 닦는데)
미주 : (미안해서) 죄송해요. 세탁비 드릴게요.
민우 : 됐어. 아, 재수 없어.
(민우, 콧물 닦은 손수건을 휴지통에 툭 던지고 간다)
- 다시 호텔 앞
(미주,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미주 : ... 저기요.
민우 : ... (시큰둥하게, 본다)
미주 : (주머니 뒤져서 돈 내밀며) 저... 세탁비예요.
민우 : ..? (본다)
미주 : 저번에 경찰서에서... 기억 안 나요?
민우 : (알아보고, 괜히 화나서) 꺼져줄래?
미주 : .. (보다가, 민우 주머니에 돈을 찔러주며) 기다리는 사람 안온다고 너무 화내지 말아요.
민우 : 뭐?
미주 :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나두 많이 기다려봐서 알아요. 근데, 못 오는 사람도 분명히 애가 탈거예요.
민우 : (노려보다) 너, 지금 누구 염장 질러?
미주 : 네?
(민우, 잔뜩 화가 나서 꽃다발을 확 바닥에 던지더니 가버린다.
미주, 그 꽃다발을 짚어들고 물끄러미 민우 쪽을 보는데... 왠지 모를 호기심 정도...)
씬52. 로열클럽, 홀 안 (그 밤)
(경자가 지나가다가 황태섭을 보자 화들짝 놀라서 얼른 숨는다. 태섭이 잔뜩 지친 모습으로 들어서고....
이때, 홀 안에서 앵콜을 연호하며 박수소리..
태섭이 보면, 화려한 무대복 차림의 경옥이 마이크를 잡고 있다. 여가수가 피아노에 앉아 있고...
태섭, 잠시 경옥을 보는데..)
경옥 : 고맙습니다. 이번 노래는 개인적으로 추억이 있는 노래예요.
(경옥, 피아노 쪽을 보며 신호를 보내면 반주가 시작되고... 경옥,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태섭이 넋을 잃은 듯이 경옥을 본다)
경옥 : (마이크 잡고, 노래)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태섭 : ... (회한이 복받쳐 오는 듯 한 그 표정 위로..)
씬53. 작부집 안 (회상)
(허름한 작부집이다. 작부 티가 줄줄 흐르는 경옥이 젓가락으로 장단을 맞춰가며 구성지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공사판 인부 복장의 태섭이 마주 앉아서 흐뭇하게 경옥을 보고 있고...)
경옥 : (노래, 이어서)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태섭 : (박수치며) 야, 우리 경옥이, 노래 한번 구성지게 잘한다. 최고야..!
경옥 : 정말?
태섭 : 내가 공사판에서 뼛골 빠져도 이 맛에 산다니깐?
경옥 : (막걸리 따라주며) 한잔 마셔, 자기야. (주전자 비어있고) 술이 벌써 떨어졌네? (주방에다가) 이모, 여기 한주전자 더..
태섭 : 야, 나 돈 없어. 그만 마셔.
경옥 : 언제 여기서 돈 내고 술 먹었어? 내 월급에서 까면 돼.
태섭 : (좋아서, 한잔 마시며) 그래, 외상장부에 달아 놔. 내가 한방에 갚을 테니까.
경옥 : (물끄러미 본다) 우리... 살림 합칠까?
태섭 : (놀라서, 본다) 뭐...어?
경옥 : 왜 결혼 하잔 얘길 안 해? 혹시 마누라 있는 거 아냐?
태섭 : 얘는.. 아, 아냐... 나 하루 벌어서 입에 풀칠하기도 바뻐.
경옥 : 나, 딴 거 아무것도 필요 없어. 그냥.. 나만 사랑해주면 돼.
태섭 : ...
경옥 : 나만 바라보구.. 나만 이뻐해 주고 나만 생각하면 돼. 그건 해줄 수 있지?
태섭 : (안쓰럽고) 너, 남자 보는 눈이 그렇게도 없냐? 세상에 잘난 놈도 많은데 왜 하필 나야? 너, 나 만나면 고생길 훤하다?
경옥 : 나, 고생에 이골 난 년이야. (잔 들고) 자, 서방님... 한잔 하시와요.
태섭 : ... (미안한 표정으로)
씬54. 로열클럽 안 (현실)
경옥 : (노래, 2절) 새파란 꽃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 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딸랑이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경옥을 보는 태섭의 눈가가 흥건해 있다. 가슴이 저미는 듯..)
씬55. 로열클럽 복도 (시간경과)
(경옥이 지배인과 경자와 함께 바쁜 걸음으로 걸어간다. 룸 앞 여가수가 나와 있고)
경옥 : 어떻게 된 거야?
지나 (여가수) : 많이 취하셨어요. 사장님을 계속 찾으셔서...
경옥 : (잠시 생각) 아무도 들어오지 마. (룸 안으로 들어간다)
경자 : .. (호기심, 슬쩍 룸 안을 들여다보는데)
씬56. 동, 룸 안
(들어서는 경옥... 술에 취한 황태섭이 테이블에 고개를 처박고 있다)
경옥 : (다가가 앉는다, 잠시 보다가 흔들며) 황회장님...
태섭 : 응? (게슴츠레 본다) 경옥이... 경옥이 왔냐?
경옥 : 밖에 직원들 있어요. 그렇게 부르지 말아요.
태섭 : ... (한숨 내쉬며) 요즘 복잡한 일이 좀 많아... 사는 게 고달파서.. 여기 오면 좀 나을까 했는데..
경옥 : ...
태섭 : 미안하다... 내가 너한테 이러면 안 되는데...
(태섭, 일어서다가 비틀거리면.. 경옥, 얼른 태섭을 부축하는데.. 태섭, 경옥에게 안기듯이...)
경옥 : 괜찮으세요?
태섭 : (떨어지고) 다음부턴... 이런 일 없을 거야. (가려는데)
경옥 : 난 괜찮아요.
태섭 : .. (본다)
경옥 : 지치고 힘들면 언제든지 오세요. 여긴 술집이니까...
태섭 : 그래.. 넌 술집 주인고.. 난 그냥.. 술손님이니까. 더 이상 욕심내면... 미친놈이지. 내가... (비틀거리며 나간다)
씬57. 동, 밖 복도
(염재수가 황태섭을 부축해서 나간다.
경옥이 그런 태섭을 물끄러미 보는데.. 이때, 지배인이 경옥에게 뭔가 귓전에 전하고..)
씬58. 로열클럽, VIP룸
(백파가 앉아 있고.. 경옥이 들어선다)
경옥 : 어르신 오셨어요?
백파 : ... (술병을 들고 잔에 따르려는데)
경옥 : .. (얼른 받아서) 한 잔 올릴게요. (술을 따른다)
백파 : 황태섭 그 사람, 생각한 것보다 물건이더구나.
경옥 : ..
백파 : 잘 관리해 놔라, 대신... 큰 고객일수록, 사적인 감정이 일을 망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돼.
경옥 : 저, 그런 감정 없어요.
백파 : 니 딸한테도 마찬가지다. 훗날 후계자가 될 아이라면, 절대 고객 그 이상은 아냐.
경옥 : ... 명심할게요, 어르신.
씬59. 민박집 방 (그 밤)
(엷은 이불이 깔려있다. 강모와 정연이 각각 한쪽 구석에 앉아서 잠을 자지 못하고... 이때, 노크소리)
할머니 : (E) 총각.. 자?
강모 : 아뇨.. (얼른 문 열어주면)
할머니 : (이불을 한 아름 내려놓고) 이불 모자라지? 이거 덮고 자.
강모 : (눈치 보인다) 우린... 괜찮은데...
할머니 : 등 배겨서 못써. (정연을 흐뭇하게 보며) 참 곱네.. 좋을 때다...
정연 : .. (쑥스럽고)
강모 : (어색해서) 고맙습니다, 할머니.
(할머니, 가고 나면 강모가 이불을 깐다)
강모 : (힐끔 보며) 안 잘 거야?
정연 : 먼저 자.
강모 : ... (한쪽 구석에 눕는다. 벽 쪽을 보고..)
정연 : (물끄러미 보다가) 강모야..
강모 : 나 피곤해... 너도 얼른 자. 내일 일찍 첫차 타려면...
정연 : 널 이렇게 만든... 내 가족들을 용서 할 수가 없어.
강모 : ... (정연이 왜 찾아 왔는지 알겠다) 그래서 뭘 어쩔 건데?
정연 : 평생 너하고 함께 할 거야. 니가 하자는 대로...
강모 : 정신 차려, 황정연.. 너, 곧 결혼 할 몸이야.
정연 : (단호하게) 아니, 나 조민우랑 결혼 안 해. (본다) 할 수 없게 됐어. 강모 너 때문에...
강모 : (화가 난다. 일어나 앉고) 지금 나 동정하는 거니? 정식이 대신 살인죄 뒤집어 쓴 게 불쌍해서 이래?
정연 : ..
강모 : 그딴 동정 필요 없으니까... 내일 아침에 돌아가. (돌아앉는다)
정연 : ... 아주 어릴 적이었을 거야. 남들한텐 다 있는 엄마가 나만 없는 걸 알고... 그때부터 자꾸 뒤돌아보는 버릇이 생겼어.
돌아보면 꼭 엄마가 날 보고 있을 것 같아서...
강모 : ...
정연 : 그 버릇이 요즘 다시 생긴 거 아니?
강모 : ...!!
정연 : 돌아보면, 강모 니가 있어야 하는데... 부르면 언제든지 내 앞에 나타나줘야 하는데... 근데, 니가 어디에도 없는 거야.
강모 : ...
정연 : 난 그게.. 그냥 불편하고 걱정 돼서 그런 줄 알았어. 근데.. (눈물 고인다) 그게 아니었어...
엄마가 없다는 걸 알았을 때처럼... 나한테... 심장이 송두리째 없어져 버린 것 같았어.
강모 : ... 야, 황정연.. (돌아보려는데)
정연 : (뒤에서 와락 강모를 안는다) 너도 날 좋아 하잖아..
강모 : ...!!
정연 : 나, 사랑하잖아. 이 바보야...!!
강모 :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널 여자로 생각해 본적 없어.
정연 : (본다) 강모야?
강모 : (독하게) 회장님한테 잘 보이고 싶었어. 너하고는 그냥 친구니까..
정연 : .. (놀라서) 너.. 나한테 거짓말 하는 거, 처음이야.
강모 : (버럭, 본다) 착각 좀 하지 마...!! 내가 널 사랑했다고..? 그따위 감정, 나같이 배고픈 놈한테 사치란 거, 너 몰라서 이래?
난 그냥... 출세하고 싶었어...!! 그 뿐이야, 알겠냐?
정연 : ... (망연하게)
강모 : 나, 곧 이 나라 떠나. 그러니까...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마.
(강모, 나가버린다. 정연, 서서히 눈물이 차오르는데...)
씬60. 바닷가 (밤)
(어둡고 빈 바닷가.. 강모가 미친 듯이 뛰어 온다.
감정을 억누를 길이 없어서 씩씩대다가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고는 힘껏 바다 쪽에 던져 버린다)
강모 : (고함) 야, 이 바보야..! 나보고 뭘 어쩌라고..!! 제발 나 좀 그만 괴롭혀..!! 나도 미치겠어!! 돌아버리겠다고..!
황정연..!! 이 멍청아..!! (절규하듯 울부짖는데..)
씬61. 민박집 방안
(정연이 벽에 기댄 채 혼자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씬62. 조필연 집 거실 (아침)
(양명자가 조필연의 넥타이를 매주고 있다. 출근복 차림의 민우가 이층에서 내려오는데...)
명자 : 너, 오늘 정연이한테 나 좀 보자고 그래.
민우 : .. (본다)
명자 : 예단이며 뭐며 결혼 준비할게 산더미 같은데 어쩜 그렇게 코빼기도 한번 안 비친다니?
필연 : 일하는 며느리 들이기가 쉬운 줄 알았어?
명자 : 모르는 소리 마세요. 정연이 걔, 은근히 우리 집 무시하는 거 같아서 기분이 영 안 좋아요.
민우 : 그런 거 아니에요.
명자 : 쟤 봐요, 벌써부터 지 마누라라고 역성드는 거..
민우 : 정연이한텐 제가 얘기 할게요. (나간다)
필연 : .. (보는데)
씬63. 만보건설 기획 실장실
(민우가 초조하게 서성이고 있다. 정식이 들어서고...)
민우 : (마음 급하게) 찾아봤어?
정식 : 학교 친구들한테도 다 연락해 봤는데, 모른다더라.
민우 : ..!! 당장, 용역반 애들 다 풀어서 찾아보고, 경찰서에 실종 신고 해.
정식 : 경찰서? 가뜩이나 경찰 얘기만 나오면 두드러기가 나는데, 그런 일로 무슨 경찰까지..
민우 : (책상 내리치며) 정연이가 이강모 찾아 갔으면 어떡할 거야?
정식 : 뭐? (하다가) 야.. 너, 너무 넘겨짚는 거 아니냐?
민우 : 우리 아버지가 이 사실 알면, 다 끝장이야..! 당장 연락 해, 당장..!!
정식 : 아, 자식, 신경질은... (나간다)
민우 : .. (불안하다, 씩씩대는데)
씬64. 오병탁 사무실 안
(오병탁과 한명석, 조필연이 앉아 있다)
병탁 : 자네, 무소속으로 이번 보궐선거에 출마한다는 게 사실이야?
필연 : 그게 뭐 잘못됐습니까?
병탁 : 이번에 야당 쪽도 만만치 않아. 의석수 하나가 절실한 판에, 자네까지 나서서 표를 깎아 먹으면 어쩌자는 거야?
필연 : 제 목표는 표를 깎아먹는 것이 아니라, 당선입니다.
병탁 : 자네 정말 이럴 거야? 차기 공천 때까지 기다려 달란 말 못 들었어?
필연 : 애초부터 약속을 어긴 건 위원장님이십니다.
병탁 : 이봐, 조국장..!!
명석 : 황태섭 회장을 믿고 계신 모양인데.. 선거자금 지원에 한계가 있을 겁니다.
필연 : (본다)
명석 : 아시다시피, 지금 부동산 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어요. 지하철 공사까지 진행시키려면 돈 나올 곳이 없습니다.
필연 : 그건, 한국장님이 걱정하실 일이 아닙니다.
명석 : 걱정이 아니라, 현실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필연 : .. (잠시 곱지 않게 보다가)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일어선다)
병탁 : 곧 민국장이 올 거야. 이 자리에서 이 문제 매듭지고 끝내.
필연 : ... (대꾸 없이 나가버린다)
병탁 : 저, 저 인간, 정말 말로 안 통하는 인간이구만.
씬65. 동, 밖 복도 (낮)
(조필연과 고재춘이 걸어 나오는데 민홍기와 엄가가 다가온다)
홍기 : 자네, 벌써 가는 건가?
필연 : .. (본다) 이강모, 어디다가 빼돌렸어.
홍기 : ..! (본다)
필연 : 탈옥 도와준 놈들, 전문가들이야. 니 놈 짓인 걸 내가 모를 줄 알아?
홍기 : 이 봐.. 다른 건 몰라도, 이번 선거는 피차 깨끗한 승부를 벌이는 게 어때?
필연 : 네 놈 입에서 그런 말 나오는 거... 나, 안 믿어.
(민홍기, 비웃듯이, 픽 웃다가.. 소리 내서 웃으며 간다)
필연 : (민홍기를 노려보며) 이강모, 어떡하든 선거 전에 잡아야 돼.
재춘 : 지금 수사력을 총 동원하고 있습니다.
필연 : 전국 각지의 항구 쪽을 알아 봐.
재춘 : 예?
필연 : 내 예감대로라면, 놈은 분명 밀항을 하려고 들 거야.
재춘 : (놀란다) 밀항이요..?
필연 : 경찰하고 은밀히 공조수사 벌여. 밀항을 돕는 브로커들 파악하면 분명 꼬리가 잡힐 거야.
재춘 : 알겠습니다, 국장님.
필연 : 철저하게 비밀 수사를 해야 돼, 알아들어?
재춘 : 절대 민국장 귀에 안 들어가도록 보안에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필연 : .. (눈빛)
씬66. 구멍가게 앞 (낮)
(공중전화 부스... 강모가 동전을 넣고 다이얼을 돌린다. 신호음...)
성모 : (F) 여보세요?
강모 : 형, 나야... 어떻게 됐어? (놀란다) 홍콩?
씬67. 중정, 성모 방
성모 : (수화기 들고) 홍콩으로 들어가는 배가 있어. 곧 자리가 날 테니까 준비하고 있어라.
씬68. 구멍가게 앞 (낮)
강모 : (수화기 들고) 알았어, 형... (수화기 놓고, 걸어가는데)
씬69. 민박집, 방안
(강모, 방문을 열어보는데 아무도 없다. 가지런히 개켜진 이불... 정연의 가방도 보이지 않는다.
방안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수첩... 강모, 수첩을 펼쳐 보는데... 뭔가 그림이 있다.
선으로만 그린 어설픈 그림 솜씨... 다음 장에도... 그 다음 장에도...
강모, 정연이 했던 것처럼 빠르게 주르르 넘겨보는데... 활동사진처럼 그림속의 여자가 남자가 점점 가까워진다.
끌어 앉는 두 사람... 말풍선 속에 하트가 그려져 있고... 글씨들이 하나하나 박힌다. 나, 랑, 결, 혼, 해, 줄, 래?
강모, 가슴이 울컥한다. 급히 밖으로 달려가는데)
씬70. 정류소 (낮)
(버스가 정차해 있다. 강모, 뛰어 오는데... 버스가 출발한다.
강모, 숨이 차서 씩씩대며 버스를 보는데.. 멀어지는 버스... 강모, 왠지 가슴 아프고 서운하다. 망연하게 보다가 돌아서는데...)
씬71. 해변가 (낮)
(강모, 잔뜩 풀이 죽은 채 걸어온다)
강모 : (혼잣말) 멍청한 놈... 어차피 헤어질 거.. 상처는 주지 말았어야지.. (제 머리 쥐어박으며) 에이, 꼴통자식...
(이때, 강모의 시선에 들어오는 여인... 가방을 옆에 놓고 정연이 하염없이 바다 쪽을 바라보고 있다.
강모, 반가움에 놀라서 막 부르려다가 멈춘다. 물끄러미 정연을 보는데... 그 모습이 쓸쓸하고 아름답다.
강모, 이내 씁쓸해진 모습으로... 천천히 다가가는 모습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