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아래 철기시대 금은제 이식을 연구하게 된 계기에 의해 철기시대 이식에 앞서 연구한 것이 청동기시대 금속제(금,은,동) 귀걸이이다.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대부분 지역은 사실 청동기시대의 대부분 기간 귀걸이를 착장하는 문화적 풍습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 전기 청동기시대와 후기 청동기시대가 교체하는 중간 시기에 갑자기 주로 황금으로 제작된 매우 특이한 형태의 황금제 귀걸이가 출현하였고(함께 게시되어 있는 황금팔지와 함께), 이 귀걸이는 특정 시기 권력을 갖고 있는 수장층 분묘에 빠짐없이 부장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황금 귀걸이가 부장된 수장층 무덤에는 또한 예외없이 권력, 권력의 기반으로서의 무력, 권력을 이면에서 받침하는 이념을 상징하는 청동기가 부장되어 있다.
부장 능력으로 보아, 아마 이들은 한 시대, 일정 범위의 북방 지역에서 활동하던 청동기집단, 청동기사회의 대표자들이었을 것이다.
다만 이 시기 우리 옛 민족이 활동하던 한반도와 그에 이웃한 요동과 길림 중부, 연변조선족자치주 등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이와 같은 귀걸이가 제작되지도, 또 사용되지도 않았다.
아무튼 이 황금귀걸이는 같이 사용된 당시로서는 이색적인 청동기 양식과 함께 이 물질문화의 성격을 살펴보는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아주 오랜 옛 적 아무 것도 모른 체 청동기, 청동기문화를 중심으로 한 이른 시기의 물질문화를 연구하겠다고 결심하였을 때, 처음 섬서성역사박물관에 갔다-그때는 관람객도 없어 나 혼자만이 하루 종일 유물을 관찰하고, 실측하고, 기록하는 등, 적적하면서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었다- 그토록 직접 보고 싶어하던 북방청동기를 보면서 감격하여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그때 중형 목곽까지 전시되어 있던 전시실의 한 부스에서 영롱한 빛을 발하며 전시되어 있던 황금제 나팔형 귀걸이를 보고 무척 기이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이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장성 연선의 주요 도시들에 있는 박물관에서 계속적으로 이 유물들을 보게 되었고, 이어 보다 작은 도시의 문물관리소 등에서 역시 같은 유물을 특정 양식의 청동기와 함께 계속적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을 통해 언제인가 이 유물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수십년이 지나서야 논문으로 정리하게 된 것이다.
아래는 이 논문의 요지이다.
청동기시대 중국 동북 지역의 금속제 이식은 귓고리를 걸어 내려 뜨려 착장하되 귓고리 아래에 속이 비어 있는 나팔구형식(AI식)과 소형 실체의 삼각형식(AII식)이 있는 것, 금속사 한쪽 끝에 실체의 이등변 삼각형식이 있는 원환형식(BI식)과 실체의 타원상의 삼각형식(BII식)이 있는 것,
금속사를 둥그렇게 말되 금속사의 양쪽 끝이 원환의 반 이상을 돌며 교차하지 않는 것(CI식), 반 이상에서 수회 돌려져 있는 것(CII식), 반 이상에서 수회 돌려져 있되 CII식과는 달리 상단의 금속사 아래에 폭을 같이 하며 수직으로 감아져 있지 않고 동심원상으로 수평으로 돌려져 있는 것(CIII식)으로 분류된다.
이 이식들은 세부적인 형태와 제작 기법을 고려할 때, AI식→AII식→BI식→BII식과 CI식→CII․CIII식의 변천 관계가 상정된다. 그러나 A․B형의 경우 하북성 북부 등지에서 보다 앞선 시기에 형식적 변천 과정을 거치며 공존하던 형식들이 현지의 특수한 수요에 의해 수용되어 제작된 까닭에 시간적으로는 반드시 위의 순서에 따라 변천되지는 않았다.
중국 동북 지역에서 각 형식의 제작 및 유행 시기는 AI식은 기원전 10~9세기, AII식은 기원전 17~16세기, BI식은 기원전 16~9세기, BII식은 기원전 17~12세기, CI식은 기원전 12~5․4세기, CII식․CIII식은 기원전 9~5․4세기이다.
중국 동북 지역의 이식은 기원전 15세기 이전 하가점하층문화권의 오한기와 부신시에 AII~BII식이 예외적으로 분포하다가 기원전 12~10세기 시라무렌하 유역의 하가점상층문화 초기 유적에 CII식이, 대릉하 상류역의 위영자유형의 유적에 BII․CI식이,
유하 유역의 고대산문화 유적에 AI식이 역시 예외적으로 공반하고, 기원전 9~7세기에 이르러서는 영성현을 중심으로 하는 하가점상층문화권에 BI․CI~CIII식이, 백금보문화권의 동남 변연과 북쪽 변연의 유적에 CI․CII식이 공반하다가 기원전 6~5․4세기에는 분포 범위가 축소되어 내몽고 동남부에만 CI~CIII식이 분포하는 양상을 보인다.
청동기시대 중국 동북 지역 이식의 시공적 양상은, 첫째 중국 동북 지역 전체에서 대체로 청동기시대 전 기간 동안 이식이 제작된 지역은 내몽고 동남부가 유일하고, 둘째 내몽고 동남부의 이식 제작과 착장 풍습은 하북성 북부 장성 연선의 북방계 문화와의 지속적이고도 긴밀한 문화적 교류와 연관이 있으며,
셋째 내몽고 동남부의 이식 제작과 착장이 기원전 9~7세기 인접한 길림성 서부를 통해 백금보문화권에도 영향을 미쳤고, 넷째 이외의 지역에서는 하가점하층문화기와 위영자유형기 요서의 일부 지역을 뺀 나머지에서는 이식의 제작은 물론 착장 풍습이 없었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이와 같은 양상은 중국 동북 지역의 여러 물질문화와 각 물질문화 간의 상호 작용 및 계통적 흐름과 관련하여 일정한 시사점을 준다. 중국 동북 지역의 주요 물질문화 계통으로는 내몽고 동남부의 하가점하층문화-하가점상층문화 계통, 길림성 서부와 흑룡강성 서부의 소랍합문화-백금보문화 계통, 요서와 요동 일부의 십이대영자문화(십이대영자유형-남동구유형, 정가와자유형) 계통, 요동의 마성자문화-이도하자유형 등 소규모 토착 지역 문화 계통, 길림성 중부의 서단산문화 계통, 연변조선족자치주 일대의 흥성문화-유정동문화 계통, 흑룡강성 동부의 토착 제 유형 계통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청동기시대 이식이 제작․착장된 지역은 고대산문화를 제외하면, 내몽고 동남부와 길림성 서부․흑룡강성 동남부의 계통뿐이다. 이러한 양상과 힘께 내몽고 동남부 지역이 하가점하층문화기부터 하북성 북부의 북방계 제 문화와 깊은 상호 작용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내몽고 동남부를 중간 고리로 한 하북성 북부-내몽고 동남부-길림성 서부와 흑룡강성 서부의 물질문화 교류축 설정이 가능하다. 반면 십이대영자문화기 요서-요동-길림 중부 지역은 이식이 전무하면서 십이대영자문화계 유물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교류축으로 설정할 수 있다.
이식이 전혀 출토되지 않으면서 유물복합 전반이 연해주 북부 및 하바로프스크 남부와 유사하고 십이대영자문화계 청동기와 토기가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흑룡강성 동부는 현재의 연해주 북부-하바로프스크 남부와 연결되는 별개의 교류축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으로,
이식이 없되 흑룡강성 동부․길림성 중부․한반도 동북부․연해주 남부와 모두 연결되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일대는 주변의 큰 교류축 중간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모두에 연결되는 성격을 띄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무튼 이식을 통해서도 청동기시대 중국 동북 지역 물질문화의 상호 작용 관계망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청동기시대 중국 동북 지역의 이식으로는 예외적으로 황금제가 있기는 하지만 절대 다수는 청동제이다. 중국 동북 지역의 청동제 이식은 현지에서 직접 제작되었는데, 이는 세부적인 형태와 일부 유적에서 용범이 발견된 것을 통해서도 입증된다.
세부적으로는 AI식 이식의 경우 금속사 하단의 나팔구형식이 속이 비어 있는 입체형식인 까닭에 형지를 사용한 합범에 의해 주조한 후 상단의 금속사는 가열 후 단타와 압마를 통해 나팔형식은 마연을 통해 완성하였고, AII식~CIII식은 주조 후 가열 또는 냉각 처리를 한 후 단타와 압마를 통해 제작하였다.
주조를 위한 용탕, 즉 합금 비율은 이식의 성격에 맞게 적정 비율로 조절되었는데, 시기와 유적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