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연구: 갈라디아서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
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갈라디아서 1:11~24).”
갈라디아서에서 사도 바울은 복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요 사람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하나의 계시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가 바울에게 어떤 것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그 자신을 바울에게 계시하신 것이라고 말입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전하는 것이 아니었고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전파하고 계시하십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 4:5).
하나님은 모든 사람 안에 그리스도를 나타내시기를 기다리시고 열망하십니다. 우리는 “불의로 진리를 막”으나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이는 것 같이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롬 1:18~20)인다는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진리(요14:6 참조)이시며 하나님의 능력(고전 1:24 참조)이시며 하나님의 신성(요 1:1 참조)을 가지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악인들이 막고 있는 진리이시며, 사람들이 믿음으로 살 수 있도록 그들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십니다(신 30:14; 롬 10:6~8참조).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들 안에 계신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사실에서 분명히 알수 있지만 우리가 막고 거스리기 때문에 그분을 알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안에 나타나게 되시기를 인내로 기다리시고 계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이 제 길을 가고 영광을 받으며 나사렛 예수의 완전한 생애가 죽을 육신에 나타나는 때가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이 일은 지금 아무리 죄 많고 타락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원하는 자”안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그렇게 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막고 거스리는 것을 멈추어야만 합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그의 자신에 관하여, 그의 과거 열심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믿는 바를 구약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구약의 가르침은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만을 가리키는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그의 성령이 선지자들 속에 계셨고 그들의 마음을 감동하여 후에 사도들이 전하였던 꼭 같은 복음을 전파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모세와 그의 글에 대하여는 조금도 정죄하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서기관들에 대하여서는 그들이 성경에서 읽고 명하는 것은 모두 따라야 하지만 그들의 본을 따라서는 안 된다고(마 23:2,3)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성경 말씀에 그들이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대교는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에서 가르치는 하나님의 말씀과는 전혀 다른 사람의 유전, 조상의 전통을 믿고 따랐습니다.
성경에는 모태로부터 필생의 사업에 택정함을 받은 삼손, 예레미야, 이방의 왕 고레스, 그리고 침례 요한의 예가 나와 있습니다. 이런 예는 단편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모두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살후 2:13)라는 말씀은 데살로니가 사람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십니다. 이와 같이 우리 모두는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딤전 2:4)는 하나님께서 마찬가지로 모두에게“각각 사무”(막 13:34)를 맡기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서 소명하신 일을 하도록 이끌기 위하여 지금도 우리와 분투하고 계십니다. 사울은 지독한 핍박자였지만 큰 사도가 되었습니다. 각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따라 하나님을 증거하도록 택정함과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상을 깨닫고 결단할 때 그 생애에 새로운 의미가 주어질 것입니다. 이 진리를 아는 지식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우리 각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간구하며 전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이끌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에 충성하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혈육과 의논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우리는 아주 귀한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스스로 성경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믿는 대신에 그저 목사나 다른 사람의 의견만을 맹목적으로 따른다면 그는 올바른 선택을 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때로는 너무나 분명한 하나님의 요구임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에게 그 큰 일을 할 수 있는 지를 물어 보게 됩니다. 사실 우리가 의논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혈육은 내 자신입니다. 진리의 문제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습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 3:5)“.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잠 28:26).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지혜 있는 사람은 즉시 순종하며 심지어는 자기 자신의 마음과도 의논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본을 따라 예수님을 보았을 때에 즉시 자신의 주로 인정하고“주여 내가 무엇을 행하기를 원하시나 이까”라고 외쳐야 합니다. 우리는 진실한 마음으로“주의 계명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치 아니하여”야 할 것이며“주께서 내마음을 넓히시오면 내가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리이다”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방인의 선지자였습니다. 사실 성경에서는 이교와 이방이라는 말 사이에 차이가 없습니다. 또 이 단어는 열방이라는 말과 같은 것으로 사용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절에서“너희가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는니라”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이교도”라는 말에서 온 것이며 이 구절자체가 이방인은 곧 우상을 숭배하는 이교도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이 이교도들 가운데서 취함을 받았으므로(수 24:2 참조) 모든 이스라엘은 이방인 가운데서 취함을 받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여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므로“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롬 11:25,26)을 것입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그의 진리를 어느 한 민족에게 국한시켰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롬 10:12). 이 분이 온 인류의 하나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 된 자로서 하나님의 이름이 만약 우리로 말미암아 욕을 당한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이 공공연하게 하나님을 욕하는 자들이 되는 것만큼 나쁜 것입니다. 우리는“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는 하나님의 간곡한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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