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歲寒圖)의 발문(跋文)과 自題(자제)
김정희(金正喜:1786~1856)
본관은 경주. 자는 원춘(元春), 호는 추사(秋史)·완당(阮堂)·예당(禮堂)·
시암(詩庵)·과노(果老)·농장인(農丈人)·천축고선생(天竺古先生)등이 있다.
조선후기 금석학파를 성립하고, 추사체를 완성한 문신. 실학자이며 서화가이다.
지난해에 『만학』 · 『대운』 두 권의 책을 부쳐왔고,
去年以晩學大雲二書寄來 거년이만학대운이서기래
*계복(桂馥)의 『晩學集』 과 운경(惲敬)의 『대운산방문고(大雲山房文藁)』를 말함.
금년에는 또 『우경문편』을 부쳐왔는데
今年又以藕畊文編寄來 금년우이우경문편기래
*경(耕)= 경(畊): 밭 갈 경.
이는 세상에 흔히 있는 것이 아니다.
此皆非世之常有 차개비세지상유
머나먼 천만리 밖에서 구입한 것이며
購之千萬里之遠 구지천만리지원
여러 해를 걸쳐서 얻은 것이요
積有年而得之 적유년이득지
한 번에 가능했던 일도 아니었다.
非一時之事也 비일시지사야
또 세상은 물밀듯이
且世之滔滔 차세지도도
권력과 이익만을 추구하는데
惟權利之是趨 유권리지시추
이와 같이 마음과 힘을 다하여 얻은 것을
爲之費心費力如此 위지비심비력여차
권력가에게 돌리지 않고
而不以歸之權利 이불이귀지권리
바다 멀리 야의고 볼품없는 사람에게 주기를
乃歸之海外蕉萃枯槁之人
마치 세상이 권력과 이익만 좇는 것 같이 하니
如世之趨權利者 여세지추권리
태사공이 이르기를
太史公云 태사공운
*태사공: 사마천(司馬遷)
“권세와 이득으로 합친 자는
以權利合者 이권리합자
권세와 이득이 다하면 서로 멀리하게 된다”.
權利盡而交䟽 권리진이교소
그대 또한 도도하게 흐르는 이 세상 사람으로
君亦世之滔滔中一人 군역세지도도중일인
초연히 권력을 좇아가지 않고 테두리 밖에서
其有超然自拔於滔滔權利之外 기유초연자발어도도권리지외
권세와 이익만으로 나를 대하지 않았으니
不以權利視我耶 불이권리시아야
태사공의 말이 잘못되었단 말인가?
太史公之言非耶 태사공지언비야
공자께서 말씀 하시기를
孔子曰 공자왈
“몹시 추운 뒤에야
歲寒然後 세한연후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 것을 알 수가 있다”.
知松柏之後凋 지송백지후조
소나무와 잣나무는 본래 사철 푸르지만
松柏是貫四時 송백시관사철
시들지도 않는다.
而不凋者 이불조자
세한 이전에도
歲寒以前 세한이전
하나의 소나무와 잣나무요
一松柏也 일송백야
세한 이후에도
歲寒以後 세한이후
같은 소나무와 잣나무이다.
一松柏也
공자께서 특히 세한 이후를 말씀하신 것은
聖人特稱之於歲寒之後 성인특칭지어세한지후
지금 그대가 나에게
今君之於我 금군지어아
앞서 말미암아 더할 것도 없이
由前而無加焉
이후에라도 덜할 바도 없다
由後而無損焉 유후이무손언
그런 까닭에 그전에 그대에게
然由前之君 연유전지군감
마땅히 칭찬할 것이 없었는데
無可稱 무가칭
그런 일이 있고 난 뒤에도 그대는
由後之君 유후지군
또한 성인에게 가히 칭찬을 받을만한 것이 아니겠는가?
亦可見稱於聖人也耶역가견칭어성인야야
공자께서 특히 칭찬한 것은
聖人之特稱 성인지특칭
모든 것이 시든 뒤에 지조와 절개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非徒爲後凋之貞操勁節而已 비도위후조지정조경절이이
또한 몹시 춥고 어려울 때에 느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亦有所感發於歲寒之時者也 역유소감발어세한지시자야
오호라
嗚呼오호
서한의 순박하고 살기 좋은 세상에서도
西京淳厚之世 서경순후지세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時) 같은 어진 사람도
以汲鄭之賢 이급정지현
형편에 따라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기도 하고 없기도 하였다.
賓客與之盛衰 빈객여지성쇠
하규의 문에 써서 붙여놓은 글씨 같은 것은
如下邳(邽의 誤) 榜文 여하비방문
* 하규현(下邽縣)에 사는 적공(翟公)이 대문에 손님을 박대하는 글
세상인심이 박절하기가 극에 달했으니
追切之極矣 추절지극의
슬픈 일이다.
悲夫 비부
완당 노인이 쓰다.
阮堂老人書 완당노인서
*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가 59세 때에
청나라에 머물고 있는 제자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에 그려준 그림이다.
추사가 제주도에 귀양살이할 때 두 번이나 건너가 찾아뵙고
역관으로 있으면서 청나라를 드나들 때마다 귀한 책을 구해서 추사에게 보내 주었다.
그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자문과 발문도 손수 지으셨다.
우선 이상적은 이 「세한도」를 중국에 있을 때 받고서, 청나라 십육명가(十六名家)에게 다시 제찬(題贊)을 받았다.
「세한도」가 유명한 것은 그림과 글씨뿐만 아니라, 그 속에 녹아있는 따스한 이야기가 있고,
청나라 유명한 학자들의 글도 한몫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