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 차 온 세르게이를 본 볼꼬프가 쓴 웃음을 지었다.
‘녀석, 분명히 앙심 먹고 일부러 세게 찼을 거야‘
하지만 생명의 은인에게 뭐라 하겠는가?
“고맙네, 다와리쉬! 하라쇼 우미냐 두룩(자네, 제법 괜찮은 친구야.)”
움직이는 게 고통스러운지 힘들게 악수를 청한 볼꼬프는 잠시
우물쭈물하더니 어색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안 좋은 소식이네만 아무래도 알려줘야 할 것 같군. 자네 부친이
수용소에 있다네. 10년형, 일본간첩 혐의지.”
잠깐 굳어졌던 세르게이는 순식간에 부드러운 표정으로 변했다.
“고맙습니다. 기밀 사항일텐데...”
풋내기 소위는 서서히 세상사를 배워가고 있었다.
최 고려가 있는 곳은 모스크바 북쪽의 백해에 있는 꼬미 소비에트의
아르한겔스크 수용소였다. 아르한겔스크 항구는 표트르 대제 시대에는
러시아 유일의 부동항이었다. 빙산이 떠도는 북극의 바다 백해.
최 고려는 그곳에서 만난 김광서(김경천)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그는 훗날 김일성 신화의 모델이 된 독립군 영웅이다. 그가 수용소로
온 것은 1937년 10월, 연해주 조선인 17만 명을 중앙아시아 카자흐로
강제이동시키는 조치의 일환이었다. 이동에 앞서 KGB는 연해주 고려인
들의 지도자급 인물들을 일제히 검거해 수용소로 보내버렸고 김광서도
그 대상이었다.
졸지에 당한 그들은 영문도 모르고 시베리아 열차에 실려 끌려갔다.
일본 간첩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김경천부대의 탁월한 전투력에 놀란 스탈린이 연해주 고려인
사회가 더 이상 자라면 다루기 어려우니 싹을 자르자는 것이 진상이었다.
활발하던 만주의 독립군 활동은 1921년의 자유시사건 이후 뚝 끊어진다.
질곡의 세월 속에서 한줄기 시원한 샘물 같던 독립군 소식이 사라지자
함경도와 평안도 일대의 조선인들은 기가 죽었다. 그래서 영웅의 출현을
갈망했다. 메시아를 기다리는 유대인들처럼 간절히 소망했다.
그때 나타난 인물이 빨치산스크(수청)의 명장 김경천이었다.
연해주 일대의 마적을 소탕하고 3천명의 파르티잔 병력을 장악한 그는 불과
4백명의 병력만으로 이만 시 일본군과 백군 연합군 이만명을 쫓아냈고 이후
백군들은 우정 그가 있는 곳을 피해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20년대 초반에 반짝 나타났던 그의 활동은 불과 몇 년만에 잦아들었고
민중들의 갈증은 더욱 심해졌다.
갈증은 야담이 되고 야담은 전설을 탄생시켰다.
혜성처럼 나타난 백마 탄 장군이 일제 군경을 백전백승 격파했다.
백두산에 진을 치고 축지법으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 한다.
소문은 눈덩이처럼 커지며 퍼져나갔다.
친지의 피해가 두려운 독립 운동가들은 원래 이름은 물론 별호마저
알려지는 것을 꺼린다. 김경천도 김광서라는 본명대신에 김경천, 김응천,
윤경천 등 여러 별호를 사용했다.
가슴이 뻥 뚫릴 통쾌한 소삭에 목마른 민초들은 어쩌다 독립군 소식만 들리면
바로 전설에 꿰어맞추려 했다. 전설의 주인공은 김일성으로 알려졌다.
일성 부동산, 일성 상회처럼 흔한 그 이름은 신문과 경찰기록에 심심찮게 출현했다.
수퍼 맨처럼 당대에 유행한 별명이기도 했다.
라도가 통로가 열리면서 최악의 식량난은 서서히 잡혀갔고 식인 감찰대도
원대로 복귀했다. 이듬해 4월까지 라도가 통로로 탈출한 피난민은 60만 명을
넘어섰고 식량도 꾸준히 들어오고 있었다.
오랜만에 위원회 사무실로 출근한 세르게이를 스티코프가 반겼다.
“우리 영웅께서 돌아오셨군. 힘들었지?”
“저야 뭐, 서기장 동지께서도 이제 한시름 놓으셨겠지요?”
“뭐, 그렇다고 봐야지. 그나저나 볼꼬프 녀석 갈빗대를 아작 내버렸다면서..?”
세르게이는 펄쩍 뛰었다.
“중상모략 마십시오. 교관님, 그건 어디까지나 작전 중에 동료를..”
“됐네, 됐어,” 스티코프는 낄낄댔다.
세르게이의 부친이 수용소에 있다는 말에 스티코프는 혀를 찼다.
“역시... 장인 영감 말씀이 맞았군. 소인배들 같으니라구”
잠시 생각하던 스티코프는 세르게이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자네 혹시 중국에서 근무해볼 생각 없나?”
“......?”
“중국 홍군에 우리 고문단이 가있는데 말이지, 조선어 통역관이 없대.
아 물론 현지에도 통역이야 있지만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야.
자네라면 물론 자격이 충분하고도 남지. 가는 길에 부친을 어찌 해볼
방도도 궁리해보고...”
비로소 그의 속 깊은 호의를 깨달은 세르게이는 벌떡 일어나 스티코프를
힘차게 포옹했다.
“스파시보. 따와리쉬!”
“어어.. 이 친구야. 난 마누라가 있는 몸이야”
스티코프는 낄낄 댔다.
첫댓글 저 김일성 얘기가 다시 어떻게 빚어져 등장할 지 기대가 됩니다.
그런데 정태윤 작가께서는 아호가 없나요?
아호로 부르면 부르기 간단하고 폼도 날낀데....
아호가 없으면 하나 만들어 붙여 드릴까욤?
저는 아무도 안 만들어 주기에
이항복님 껄 무단차용하여 쓰고 있슴다만 ㅎㅎㅎ
몇년전 부터 유홍준씨가 부여에 집짓고 가끔 내려오는데 호를 外山이라 했다고 했다네요.
거기 집지은 동네가 外山面이라서 그렇게 지었나 봅니다. 호 지을 분들은 참고하시라고,,ㅎ
김일성이 북한에서 절대적 존재가 된 것은 6.25의 폐허 속에서 인민들이 좌절하지 않고 일어서게끔 이끈 능력 때문으로 압니다. 독립군 활동은 단지 후광효과일 뿐이지요. 스탈린 시대는 비록 공포정치의 시대였지만 구소련에서는 그를 구국의 영웅으로 존경한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