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정동 이황 집터, 김장생과 깁집 생가터(서울시립미술관)
성북 삼각산 길상사에서 이동하여 서울 정동의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왔다. 대법원 건물을 리모델링 한 미술관이다. 이곳이 바로 퇴계 이황(1501년~1570년)의 집터였으며 또한 김장생과 그의 아들 김집의 생가터다. 지금은 간데 없는 그들의 유적이다. 오직 서울시립미술관이 덩그렇게 들어서 있어 걸음이 왕래할 뿐이다. 퇴계 집터는 한양에서 관직생활할 때 살던 곳이다. 재취였던 안동 권씨의 친정이기도 하다. 퇴계선생이 한양에서 잠깐씩 근무할 때 이 집에서 생활했으며, 고봉 기대승을 1558년에 이 집에서 처음 만났다. 1552년 명종 7년 여름 사헌부에 근무할 때와 이후 성균관 대사성으로 승진되었을 때도 이곳에서 살았을 것이다. 그는 유학자였지만 많은 시를 썼다. 이육사 시인은 퇴계의 14대 후손이다. 그들의 고향은 경북 안동이다. 안동 이육사 고향 마을 가까이에 이황의 고택과 묘소가 있다. 퇴계는 1570년 12월 8일 70세의 나이로 병세가 악화되어 숨을 거두었다.
김장생(1548~1631)과 김집(1574~1656) 부자의 생가터 역시 이곳 서울시립미술관이다. 유교국가인 조선시대 문묘에 배향된 18현으로 숭배받는 인물이다. 또한 5현 중의 한 사람인 퇴계 이황이 이곳에서 살았다니, 결코 범상치 않은 지역이다. 조선은 유교를 정치, 문화, 사상의 건국이념으로 삼았다. 유학의 주류는 성리학이다. 김장생의 스승은 율곡이다. 우람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내려오니 뜨락에 '김장생, 김집성샌 생가터'라는 표석이 있고, 조금 더 내려오니 우거진 숲 사이에 '이황 집터'라는 표석이 있다. 이황 집터 표석은 나무에 가려 자세히 보아야 찾을 수 있다. 좀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도로변에 세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진입하는 입구에는 커다란 장미꽃을 둥근 원형으로 만든 큰 조각상이 화사하게 웃는다. 퇴계 이황과 김장생, 김집이 조선의 성리학을 꽃피우던 그날의 환생이듯 고결하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