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부활 제4주일, 5월 8일은 어버이날이었습니다. 부디 모든 어버이들께서 주님에게서 풍성한 축복을, 자녀들에게서 효도 많이 받으셨고 받으시길 바랍니다. 모든 어머니들에게, 특별히 성직자와 수도자 어머니들에게 성모님은 가장 탁월한 롤 모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기회를 통해서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영성에 대해 몇 말씀드릴까 합니다.
어느 여류 시인은 “여성이 되는 길을 배우는 이 일은 평생 동안의 작업이다. 여성다운 여성이 되는 것은 일생 동안의 노력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표현했더군요. 저는 이 말의 의미를 알아듣기 어렵지만, 여성들과 어머니들은 아마 공감하고 동의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여성의 삶도 그렇고 어머니의 삶도 평범하지요. 이 평범한 일을 평생토록 하면서 여성은 여성다워지고, 어머니 또한 어머니다워지는 것이라 봅니다. 그런데 이 평범성은 약하지만 강합니다. 이 평범성은 보잘 것 없는 것 같으나 아주 특별합니다. 그것은 사랑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라고 느껴집니다.
우리는 저 마다 자신의 부모님에 대한 기억들이 있습니다. 남성 수도자인 저에게는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스승은 부모님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책은 배우지 못한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책이고, 우리는 그 책을 잘 읽고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제가 젊은 사제였을 때, 성경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내용은 모리야 산에서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침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오면서 이해하게 되었는데, 모든 부모는 아브라함이 되어야 한다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자녀는 하느님에게서 받은 선물이며, 하느님에게서 받았기에 하느님께 되돌려 주어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물론 자녀들은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셨으니’ 당연히 부모의 자녀입니다. 다만 부모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관점에서 자신들의 자녀들을 다시 보시길 바랍니다.
자녀가 어렸을 때야 부모 품 안에서 보호받고 사랑받고 관심 받으며 성장하겠지만, 언제가 자녀가 성장해서 떠나야 할 때가 오면, 부모는 자식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도록 빗겨 서서 지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제 부모님도 처음 제가 지금의 이 길을 걷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제 아버지는 ‘인생은 자기가 사는 것’이기에 후회하지 말고 걸어가도록 지지해 주셨지만,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신자가 아니셨기에 남자가 장가도 가지 않고 산다는 게 너무 힘들 것 같다고 반대하셨지요. 하지만 신자가 되신 이후 제 부모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기꺼이 저와 함께 그리스도인으로 새롭게 세례를 통해 거듭나셨고, 그 이후엔 저의 가장 굳건한 버팀목이 되셨습니다. 성모님 역시도 아드님 예수님을 하느님께 대한 믿음에서 기꺼이 인류 구원을 위해 봉헌의 삶을 사신 분이셨듯이, 제 부모님도 그렇게 성모 마리아와 같은 길을 걸으셨었습니다.
성모님의 삶은 예수님을 잉태하는 순간부터 아드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죽으신 순간까지 아드님과의 관계 안에서 여성으로써나 어머니로써 되어가셨습니다. 마리아께서는 당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겪으시면서, 당신의 인생 여정을 통해 하느님의 진정한 협력자요 구원의 도구이며 연장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시면서 사셨습니다. 그렇게 어머니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구원 신비를 마음속에 새기고 간직하며 순명하고 사셨기에 마침내 하늘에 불러올리심을 받으셨으며 천상 모후의 관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어머니 마리아의 삶의 시작과 마침을 응축한 것이 바로 마리아 노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성모님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셨으며, 철저히 하느님의 자비에 맡겨진 존재이셨습니다. 인간적 처지와 세상의 현실을 볼 때 자신의 비천함을 알고 계셨으며, 그런 자신을 선택하신 하느님의 돌보심에 늘 감사하면서도 부족한 자신을 도구로, 연장으로 더 나가서 협조자로 선택하신 하느님을 찬송하며 사셨습니다. 그리하여 성모님은 자신의 존재와 삶을 통해 큰일을 하신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선포하시고 미래를 하느님의 자비에 온전히 맡기셨습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신 예언자이셨습니다. 사실 자식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늘 예언자이십니다. 어머니는 앞일을 앞당겨 보시고 깨우쳐 주시는 예언자이십니다.
이렇게 자신의 삶의 여정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고 터득한 어머니 마리아처럼 우리 역시 동일한 인생 여정을 걷도록 초대받고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인생살이란 자신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하면서 살아간다고 할지 모르지만, 기실 따지고 보면 대부분 타인에 의해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어머니의 마리아의 인생도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달리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인생살이가 바꿔졌잖아요. 예수님 또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당신 스스로 모든 일을 다 이루었지만 종내는 유다의 배신과 배반 곧 Paradidomi (=넘기다, 건네주다, 배반하다.)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국면을 맞았습니다. 결국 구원은 자신에 의해서 보다 타인이 한 일을 받아드림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이를 예수님의 苦難이 아니라 受難이라고 표현했는지 모릅니다. 이처럼 인생살이는 타인으로 말미암아 살아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게 인생살이라고 한다면 여기에 하느님의 뜻이 담겨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를 위해 성모님께서 아드님으로 인해 어떻게 살아오셨는가를 성모 7苦를 통해서 묵상하고자 합니다.
1) 시메온의 예언: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2,35)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성전에서 봉헌하던 날, ‘시메온’은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라고 예언하신 후 어머님 마리아 또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예리한 칼로 찔리듯 아픔’을 겪으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시메온의 이 예언은 예수님을 따르면서 한생 동안 성모님께서 겪으셔야 했던 고통을 암시한 예고의 말씀이었습니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이러저런 말들을 우리는 듣게 되지만, 마음의 고통은 사실 대못이 아니라 작은 바늘과 같이 콕콕 찌르는 말들과 험담과 단죄와 판단의 말들로 인한 상처와 그로인한 고통이라고 봅니다. 사실 아픈 것은 큰 상처가 아니라 가장 잘 아는 가족이나 친지, 그리고 이웃에게서 받은 작은 상처들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열정적으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병자들과 마귀 들린 사람들을 치유하셨습니다. 허나 예수님은 분주하게 활동하시다보니 쉴 수 있는 여유도 없었고 음식을 드실 수도 없으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활동은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반대를 받으셨으며, 심지어 예수님이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마르3,22)고도 하였습니다. 급기야 이런 소문을 들은 가족과 친척들은 “예수가 미쳤다”고 판단하고 예수님을 붙잡으러 나섰습니다. ‘아니 무슨 일이야. 그렇게 착하고 사리 분별이 뚜렷한 예수가 마귀 들려 미쳤다니!’ 하며 야단법석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친척들의 뼈아픈 소리를 들으신 어머니 마리아의 심정을 어떠하였을까요? 이러저런 이유와 핑계로 어머니 마리아와 형제들은 급기야 예수님께서 가르치고 계시는 곳까지 소문을 듣고 직접 찾아왔나 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는 전갈을 제자들에게 하자, 그 제자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마르3,32) 아마도 어머님과 형제들은 예수님을 붙잡고서 ‘집으로 우리와 함께 가자구나. 네가 미쳤다고 집안 어르신들이 역정과 성화가 대단 하시다.’라고 말씀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말을 전한 어머니 마리아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고 힘드셨을까요? 친척 어르신들에게서 ’누가 애비 없는 자식 아니라고 할까봐‘ 그런다는 둥 생트집 잡는 소리며, 역정하는 소리를 들으셨을 테지요. 남이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집안 어르신들의 질책과 역정 소리는 비수가 되어 어머니 마리아의 가슴에 깊이 박혔을지 모릅니다.
아드님을 모세의 율법에 따라 성전에 봉헌한 기쁨의 순간도 잠시, 시메온의 예언은 마치 찬물을 끼얹은 듯, 마른하늘에 날 벼락과 같은 예기치 않은 소식이었습니다. 이 예언을 들은 어머니는 삶을 살면서 어느 한 순간도 이 말을 잊어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때론 두려움으로, 때론 걱정스런 눈빛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우리 인생에서 시메온은 누구였습니까? 이런 예고를 듣게 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할 것 같습니까? 사실 시메온의 예언은 외면적으로 불편한 소리일수도 있었겠지만 인생에서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사실 인생은 好事多魔라고도 하고, 새웅지마塞翁之馬라고도 하잖아요. 삶이란 늘 시메온만이 아니라 뜻하지 않은 순간에 ‘한나’처럼 위로해 줄 사람이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슬픔과 기쁨, 어둠과 밝음은 끊임없이 교차하면서 우리네 삶의 언저리를 찾아올 것입니다.
2) 이집트로 피신: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마태2,14) 우리 인생살이에서 헤로데처럼 자기보신과 이득을 위해 타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람과 상황에 직면하여, 어쩔 수 없이 삶의 자리를 떠나 낯선 곳으로 이주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론 정치적이나 종교적 신념에서, 마치 유다인들의 디아스포라 건설과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미국으로 떠났던 청교도들처럼, I.M.F와 같은 경제적인 이유로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나, 이 땅에서 가족 부양과 생계를 위해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처럼, 금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정든 고향과 조국을 떠난 우크라이나의 피난민처럼, 계속적으로 이주민은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아브라함처럼 성가족도 고향을 떠나 낯선 이집트로 피난을 갔습니다만 이는 자신들의 조상들이 이집트로 내려갔던 시련의 역사에 동참하는 의미를 품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 모두는 끊임없이 인생의 순례자이며, 우리 모두는 노마드nomad(=유목민,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사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순례자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이곳’이란 시공에 대한 욕심과 집착에서 벗어나 언제든지 버리고 떠날 준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코헬3,1)는 말씀처럼 성가족은 이집트로 떠나가야 할 그때 떠났고, 되돌아야 올 때가 되어서 되돌아오셨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이 마련하신 때를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준비하고 있다가 그 뜻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때를 준비하고 있지 않다가 ‘낭패를 보았다.’는 게 역사의 교훈임을 우리는 압니다. 그때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단지 외적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때를 알 수 있도록 우리는 시메온처럼 마음을 열고 성령의 이끄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낯선 곳을 여행할 때 저는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낯선 곳에서 적응하고 정착하기 위해서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성가족은 낯선 곳에서 낯선 모든 것을 겪으면서 열린 마음과 도움을 받으면서 살게 되었기에 떠돌아다니는 이들을 더 잘 이해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세상 살아오면서 제가 가장 힘든 순간이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저는 수련장으로 척산리 수련소를 떠날 때, 1995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참 제자는 무수히 버리고 떠나는 사람이지만 실제로 제가 가장 하고 싶고 머물고 싶은 곳을 처음으로 떠나야 하고 내려놓아야 한다는 게 그때가 영적으로 처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베트남을 떠나서 정착하고 병으로 말미암아 되돌아 온 2014년 한해 저는 4공동체를 전전해야만 했습니다. 현재 낯선 곳을 떠돌고 살아가는 난민 숫자는 2,590만 명이 된다고 합니다. 어쩌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난민 숫자는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3) 성전에서 잃으심: “애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루2,48) 우리 가운데 살아오면서 무언가를 잃어버린 경험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우리는 때론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아끼는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보람과 행복을 주던 직장을 잃거나 직책에서 물러나야 하는 경우 그리고 나이 들면서 건강을 잃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직장이든, 때론 건강을 잃어버린 다음에 겪었던 상실감은 엄청난 충격이며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저는 엄마와 함께 ‘아랫 시장’에 갔다가 엄마를 잃고 난 뒤 겪었던 두려움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 두려움은 바로 저의 무의식 밑바닥에 침잠되어 있던 ‘버려짐’의 기억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다른 형제에 비해 엄마에 대한 집착이 아주 심했던 까닭은 바로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느꼈던 ‘버려짐’이었던 것입니다. 제가 신부가 되고 난 뒤, 제 엄마는 성령세미나를 받고 난 다음 어느 날, 저에게 ‘신부 용서해줘. 너무 힘들어서 신부를 지우려고 했었어!’라는 고백으로, 그 ‘버려짐’에 대한 두려움의 원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왜 나는 엄마에 대한 집착이 다른 형제들보다 심했으며, 왜 나는 내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엄마를 불편하게 해서는 아니 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짓누르며 살아왔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대한 엄마의 가장 큰 폭행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말로 인한 폭행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제 엄마는 자주, ‘엄마 말 듣지 않으면 꽉 죽어버릴 거야‘라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가장 큰 두려움은 엄마의 부재였습니다. 그러기에 제가 저도 모르게 엄마에게 ’엄마 죽지 마‘ 라고 한 표현은, 어떤 의미에서 ’엄마 사랑해‘ 라는 또 다른 표현이었습니다. 신부 되고나서 집에 들어설 때 마다, 저의 一聲은 ’엄마, 어딨어!‘ 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엄마 돌아가신 다음, 엄마를 잃은 상실감과 죄책감으로 저는 무려 6개월 이상 눈물로 밤을 지새웠으며, 제 삶에서 가장 수도자답지 않은 시간을 보냈고 너무 힘들어서 수도원을 떠나려고도 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은 그 사람을 잃고 난 뒤 비로소 느끼는 상실의 아픔, 부재의 두려움입니다.
저를 잃어버리고 당황하시고 상심하셨을 제 엄마의 심정을, 예수님을 잃으시고 뒤늦게 아신 어머니 마리아와 아버지 요셉의 심정을 통해 미루어 짐작합니다.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다.’ ‘사흘 뒤에야 찾으실 때’까지 어머니 마리아의 애타는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도 세상의 여러 곳에서 자식을 잃고 삶이 황폐해진 부모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듣고 있습니다. 담배 갑에도 부착된 ‘미아 찾기’ 광고와 길바닥에 나뒹구는 미아 찾기 전단지! 가정불화로 집을 나가 험한 곳에서 헤매고 있는 수많은 청소년들! 때론 기차역과 지하철역 바닥에 누워 있는 수많은 노숙자들! 일자리를 잃고 실망감과 삶의 의지마저 잃은 실업자와 해고자들, 때론 잃어버린 젊음과 건강을 잃고서 위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 이처럼 세상은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잃어버림과 되찾음의 과정에서 몇 가지 점이 먼저 제 눈에 보입니다. ‘12살’(=유다인들의 성인식 ‘바르 미츠바’를 거행하는 나이로, 성인으로 이제 토라 곧 성경을 읽고 묵상할 나이기 되었다는 의미)이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사춘기처럼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자각의 시기이기도 합니다. 모태에서 육체적인 분리가 일어났다면, 이 시기는 심리적으로 부모와 자식 사이에 ‘분리의 아픔’을 겪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더 이상 ‘품 안의 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됩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루2,49)라는 말을 들을 때, 부모의 입장에선 부모에게 ‘말대꾸’하는 것으로 느끼셨겠지만, 이 표현은 바로 저도 ‘한 사람, 인격’으로 생각하고 자기를 표현할 나이가 되었음을 선언하는 표현입니다. 부모가 이를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에 따라서 이 분리의 아픔은 비례할 것입니다.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라는 말은 바로 여러분의 자녀들이 부모가 되신 여러분에게 하신 말입니다. 이제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하며,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할 바를 알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을 잃어버림을 알고 찾기까지 보다 이 순간 어머니 마리아는 몸도 마음도 더 아프셨을 것입니다. 마냥 품 안의 자식인 줄만 알았었는데...
4) 십자가 길에서 모자 만나심(=십자가 길 제4처): “그 가운데에는 예수님 때문에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여자들도 있었다.”(루23,27) 동양권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런 상태를 ‘단장지애斷腸之哀’라고 표현합니다. 이 단장의 유래는 중국 오호십육국 시대, 진나라 ’환혼‘이 촉을 정벌하기 위해 삼협이라는 협곡을 지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환혼의 병사 하나가 새끼 원숭이 한 마리를 잡아 자신의 배에 태웠습니다. 그러자 그 원숭이의 어미가 슬피 울면서 그 배를 따라왔습니다. 어미 원숭이는 백 여리를 따라오다가 결국 배에 올라탔으나 힘을 다하여 죽고 말았습니다. 병사들이 이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습니다.(斷腸) 이미 원숭이는 자식을 잃은 슬픔이 너무 커서 창자가 끊어진 것입니다. 나중에 이 일을 안 ’환혼‘은 크게 노하여 그 병사를 내치고 말았습니다. ’단장‘이란 어휘의 유래를 통해 원숭이 어미만이 아니라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가르침입니다. 이런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어머니 마리아 또한 예수님이 짊어지고 가신 그 길을 뒤따르면서 더 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 않은 심적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흔히 구약성서에서 자비를 나타내는 단어인 '라하밈 rahamim'은 “다른 사람에 대한 한 인간의 본능적인 애착을 나타낸다. 이 자비는 셈족에 의하면 어머님의 품rehem안에 자리 잡는 것이다.”(레옹 디푸르 59) 또한 자비에 대한 표현인 스플랑크논 splagchnon에서 온 스플랑크니조마이 splagnizomai는 내장內臟을 뜻합니다. 이처럼 인간의 내장은 상처받기 쉬운 감정이 발원發源하는 장소를 나타냅니다.
세상 살아오면서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은 가장 직면하기 어려움 고통입니다.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이 무력감!! 십자가 길에서 어머니 마리아께서 느꼈던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면 느낄수록 도망치고 싶고 죽고 싶은 심정에서 자책감하고 자학감에 빠질 수밖에, 이것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겪는 우리의 영적 가난이며 무력과 무능의 아픔입니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신 예수님의 고통과 또 다른 어머니 마리아의 통고입니다. 허나 어머니 마리아께서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아들 예수가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끝까지 지쳐 넘어지고 쓰러지고 엎어져도 다시 일어나 나아갈 수 있도록 함께 걷고 또 걸어가면서 힘을, 용기를 불어 넣는 이 일 밖에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어느 누구도 예수님께서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대신 짊어질 수 없기에 이를 받아들이면서 함께 하는 수밖에 달리 무엇이 어머니 마리아에게 있었겠습니까? 사랑은 다만 마음뿐만 아니라 몸으로 함께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길을 함께 걸으시면서 아드님을 위해 기도하신 성모님께 교회 지체인 우리도 십자가 길에서 함께 동행해 주실 것을 간청하는 마음에서,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 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주소서.’라고 노래 부르면서 ‘십자가의 길’을 걷도록 합시다.
저는 수련기 동안 제 심장병이 발발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첫 번째 수술 후 병상에 사지가 묶인 채 누워있는 저를 보고 우시면서 했던 어머니의 표현이 지금도 마음 깊이에 새겨져 있습니다. 제 어머니는 제게 “나는 너를 낳았을 때 기뻤고, 네가 나를 속였을 때 슬펐고, 네가 아팠을 때 아팠다.”고 말씀하시면서 줄곧 ‘미안해, 미안해’라는 말만 우시면서 되풀이 하셨습니다. 저를 대신해서 아플 수도 없었고, 다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딱한 처지 때문에로 내내 어머니는 우셨습니다. 더욱 제 병의 원인이 바로 어린 시절 독감으로 인한 ‘바이러스’가 침투해서 생겼다는 의사의 말을 제게서 전해 듣고 더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이 또한 제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였고, 그러기에 제 어머니는 저로 인해 성모님의 고통에 동참하게 되었고 성모님께 끊임없이 기도하시면서 저를 봉헌하셨습니다.
5) 어머니께서 십자가 밑에 서 계심: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요19,25) 타인의 고통이 사무치고 그의 아픔을 共感하면 우리 마음에 자비compassion가 차오르게 됩니다. 자비란 compassion은 ‘com과 pati’ 곧 with+ to suffer라는 뜻으로 고통 받고 있는 존재의 고통을 함께 겪는 것입니다. 자비 혹은 사랑이 연민과 다른 이유는 연민에는 행동이 뒤따르지 않지만, 자비는 즉각적이고 자발적인 행동을 시작합니다. 자비는 상대방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에 기반하고, 말이 아닌 함께 있음과 행동으로 동감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고통 받은 존재의 자각에서 그 존재와 함께 현전하려는 끈기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예전 물대포로 사망한 ‘백남기 임마누엘’ 형제의 딸 ‘백민주화’ 양이 우리 모두에게 다른 무엇보다도 ‘함께 해주십시오’라고 부탁할 때, 저는 그녀의 애달픈 마음을 공감하였습니다. 다른 어떤 위로보다도 몸으로 함께 해주기를 간절히 그녀는 바랐던 것입니다.
지난 ‘사순절 특강5: 예수님의 가상 칠언’의 5언에서 이미 이 복음을 묵상했기에, 다만 골고타 까지 따라 오시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 곁에 서 계신 어머니의 모습에서 교회 지체인 우리가 서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다시금 확인합니다. ‘십자가에 가까이’ 그리고 그 십자가 밑에서 그리스도인인 우리의 동질성이란 바로 고통당하신 예수님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 자비에 따른 연대와 동참의 차원에서 예수님의 남은 고난을 함께 합니다.
6) 성모님께서 예수님의 시신을 품에 안으심: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내 달라고 청하자, 빌라도는 백인대장에게 알아보고 나서 요셉에게 시신을 내주었다.”(마르15,43.45) 이제 모든 일이 다 이루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드님의 고통을 보면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어머니 마리아는 온몸에 상처투성인 예수님의 시신을 품으로 감싸 안으십니다. 어머니 마리아께서는 눈물 없는 통곡으로 자신의 배를 열고 처음 태어나던 때의 아드님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삶의 모든 생애 동안의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했던 모든 추억들이 한꺼번에 밀물처럼 온 몸에, 마음으로 밀려왔을 것입니다. 이로 인해 더욱 더 고통이 배가되어 밀려왔기에 자신도 모르게 더 힘주어 아드님의 시신을 끌어안을 수밖에 다른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께서 아들 예수님을 품에 안으신 모습을 관상하고 관조했던 미켈란젤로는 그런 어머님의 마음을 연상하면서 불멸의 작품 ‘피에타Pieta 상’(=연민, 슬픔, 탄식, 비탄)을 조각했기에 그 피에타 상이 바로 어머니 마리아의 통고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상에 태어난 피에타 상을 통해 자식을 먼저 보낸 모든 분들이 성모님을 통해 위로와 위안을 얻게 됩니다. 저의 양부모님이신 시몬과 데레사(=자녀 다섯을 화재로 잃고 신자가 되었으며, 제 신앙의 길을 열어주신 분들)께서 제 서품을 기념해서 피에타 상을 봉헌해 주셨으며, 지금은 광주 일곡동 명상의 집 뒤 언덕에 모셔져 있습니다. 사실 저는 누이 잃고 방황할 때, 저는 제 스스로 성당을 나갔고 그 때 ’피에타 상‘을 보면서 제 누이를 끓어 안고 통곡하시던 제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오늘도 자식 먼저 보내고 비탄 속에 살아가고 있는 많은 어머니들을 봅니다. 살아 움직이는 피에타!
(=원래 미켈란젤로의 로마 베드로 대성당의 ’피에타상: 2인 구도/예수와 성모상‘은 23세 때 완성한 작품이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피렌체의 피에타 상; 예수님과 성모님, 니코데모와 막달라 마리아‘의 4인 앙상블로 제작하였습니다. 왜 마리아 막달레나인가? 4인 구도에서 어머니 마리아는 슬픔에 잠겨 있고 십자가형을 당한 아들의 기울어진 머리 때문에 약간 가려져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제시하는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침착한 시선은 균형 잡힌 머리, 천사 같은 머리띠에 의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녀의 자세와 묵언 중의 호소는 시신이 무덤 속으로 내려질 때 나오는 말씀을 상기시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11,25). 사실 예수님의 부활의 첫 목격하고 그 기쁜 소식을 전한 사람입니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죽었든, 사고로 죽었든, 질병으로 죽었든, 자녀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모든 부모의 마음은 한결 같으실 것입니다. 자식을 잃고 정지용은 ‘유리창1’(1930)이란 시를 통해 자신의 심정과 상태를 이렇게 토로하였습니다.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흔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자식을 잃고 상실감에 빠진 부모는 밤이 되면 자식이 더 그리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리창 앞에 서게 됩니다. 유리창에는 성에가 껴 있습니다. 그것은 ‘차고 슬픈 것’입니다. 입김을 불면, 유리창에 ‘언 날개가 파닥거리듯’ 녹기 시작합니다. 유리창이 가로막고 있기에 자식을 만날 수 없습니다. 이승의 아버지와 저승의 자식의 거리입니다. 만남은 ‘황홀’이지만, 단절은 ‘외로움’입니다. 정지용은 그래서 ‘고흔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자식은 마치 ‘산새처럼 날아갔기에’ 자식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그리움을,피를 토하듯 표현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자식을 잃은 부모는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면서, 사노라면 살아진다는 말처럼, 사노라면 살아지게 마련입니다. 다만 알콜 중독자의 심정으로 ‘주님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꿀 용기를 주시고,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 평화를 주시며, 그리고 이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피에타가 있습니다. 특히 세월호 침몰로 죽어갔던 학생들의 부모들의 고통!
7) 아드님을 묻으심: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모셔다가 유다인들의 장례 관습에 따라, 향료와 함께 아마포로 감쌌다.”(요19,40) 아래에서 땅에서 온 육은 모두 땅에 묻히지만, 위에서 하늘에서 온 영은 땅에 묻힐 수 없습니다. 부활의 빈 무덤처럼 땅이 아닌 하늘에, 아버지의 품에 묻히며, 어머니의 마음에 묻혔습니다. 흔히 ‘부모가 죽으면 청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품 안에 묻는다‘는 말의 뜻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당신 마음속 기억의 창고에 아드님을 묻고 품으셨습니다. 사랑이 기억이듯이, 신앙은 ’기억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예수님을 땅에 묻으신 것이 아니라 당신 마음에 아드님을 묻고 품으셨습니다. 그런 까닭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무덤이 비었다.‘는 성경의 기록에 눈과 마음이 머뭅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 다음 글을 인용합니다. 동아일보(2021.5.27.일) ‘한시를 영화로 읽다: 아들의 무덤’의 임준철‘ 님의 글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걸어도 걸어도’(2008년)엔 자식들이 찾아와도 살가운 말 한마디 없는 권위적인 아버지가 나온다. 가족은 함께 왁자지껄 즐겁지만 아버지의 모습엔 어딘가 쓸쓸함이 배어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가족이 모인 이유가 드러난다. 그날은 죽은 큰아들의 기일이었다. 세상을 뜬 뒤 한참이 지났건만 아버지는 여전히 그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명말 청초의 대학자 황종희(黃宗羲·1610∼1695)도 마찬가지인데, 그는 아들의 죽음을 잊지 못한 가운데 ‘아수의 무덤에 성묘하며’라는 시를 남겼습니다. “아수가 죽은 뒤 한 해가 지났건만 하루도 슬프지 않은 날이 없었네. 봄바람 불땐 찾아와 통곡할 수도 없어, 가을빛이 단풍나무 물들 때에야 왔구나, 음식 올려놓고 지전 불사르는 오늘, 네가 꽃잎 따고 물장난 치던 옛일 떠오른다. 빈산에 네 이름 연거푸 불러보노니, 비록 이승과 저승 달라도 들을 수 있기를.” 아수(阿壽)는 황종희의 넷째 아들로 그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과 한 밥상에서 먹고 같은 침상에서 자며 외출할 때도 꼭 손을 잡고 다녔다. 격변의 시대 속 고뇌하던 아버지에게 아수는 늘 위안이 되었다(‘亡兒阿壽壙志’). 그런 아들의 요절은 시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극도의 비통함 속에서 황종희는 아들을 애도하는 20수가 넘는 시를 썼다. 아들을 묻는 날 아버지는 “하늘 어두워져 난 돌아가려는데, 달빛 어둑하건만 넌 누구와 함께 하려니(天昏吾自去, 月暗汝誰群)?”(‘至化安山送壽兒’)라고 읊었다. 한 해가 지난 뒤 다시 찾은 무덤 앞에서 아들의 이름을 목 놓아 불러보지만 슬픔은 여전히 마음에 사무친다.>
난니 모레티 감독의 영화 ‘아들의 방’(2001년)에서도 아버지는 갑작스러운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아들과의 약속을 어긴 탓에 아들이 사고를 당했다고 자책합니다. 아버지는 괴로움을 잊기 위해 운동을 하고 큰 소리로 음악을 들어보지만, 아들과의 추억들만 자꾸 떠오릅니다. 죽음은 하느님의 섭리이니 받아들이라는 신부의 강론에 분노하기까지 합니다. 그는 훌륭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였지만 정작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료할 방법을 찾지 못합니다. 아버지는 “그날 아침 약속대로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면”이란 생각을 반복하지만 아들의 죽음은 결코 되돌릴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 도처에서 자식 잃은 부모의 슬픔을 목도합니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에서 어머니는 아들의 무덤을 참배하며 “자식 묘를 찾는 것만큼 힘든 일이 있을까?”라고 말합니다. 가슴에 묻는다는 말로도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이란 말로도 그 슬픔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자식 잃은 부모들께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개정된 공식용어 ‘고통의 성모님’ 보다 ‘성모칠고聖母七苦’가 더 친숙한 것은 그 표현의 명확성과 명시성에 있다고 봅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인류구원 사업에 있어서 위대한 ‘협력자’이시며 ‘중재자’이신 성모님께서는 아드님 예수께서 걸으셨던 모든 길에 있어서, 첫 걸음부터 마지막 걸음까지 함께 하셨고 동참하셨던 분이시기에 성모님께 은총을 중재하여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기도를 대신해서 “십자가의 성모‘를 대신 바칩니다.
1. 아들예수 높이달린, 십자곁에 성모서서, 비통하게 우시네.
2. 섧고설운 슬픈고통, 성모성심 칼에찔려, 참혹하게 뚫렸네.
3. 독생성자 수난하니, 여인중에 복된성모, 애간장이 다녹네.
4. 아들수난 보는성모, 맘저미는 아픔속에, 하염없이 우시네.
5. 예수모친 이런고통, 지켜보는 우리죄인, 누가울지 않으리.
6. 십자가의 아들보며, 함께받는 성모고통, 누가슬퍼 않으리.
7. 우리죄로 채찍모욕, 당하시는 아들예수, 성모슬피 보시네.
8. 기진하여 버려진채, 죽어가는 아들보고, 애처로이 우시네.
9. 사랑의샘 동정성모, 저희들도 슬퍼하며, 함께울게 하소서.
10. 그리스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제마음에, 불이타게 하소서.
11.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맘속에 주님상처, 깊이새겨 주소서 .
12. 저를위해 상처입고, 수난하신 주님고통, 제게나눠 주소서.
13. 사는동안 십자고통, 성모님과 아파하며, 같이울게 하소서.
14. 십자곁에 저도서서, 성모님과 한맘으로, 슬피울게 하소서.
15. 동정중의 동정이신, 성모님의 크신슬픔, 저도울게 하소서.
16. 주님상처 깊이새겨, 그리스도 수난죽음, 지고가게 하소서.
17. 저희들도 아들상처, 십자가의 흘린피로, 흠뻑젖게 하소서.
18. 동정성모 심판날에, 영원형벌 불속에서, 저를지켜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