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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4월 20일 월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 Hallelujah!!
- 어제 오후부터 시작 된 봄비가 갈급한 대지에 힘을 얻게 하는 월요일 아침이 시작 되고 있습니다.
- 세계적인 ‘코로나19’ 바이러스 전염병으로 확진자와 사망자 소식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두려움과 공포의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 너무나 감사한 것은 우리의 질병관리 본부의 대응책에 따라 협력하고 특히 의료진의 많은 수고로 안정세를 갖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고,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운 소식이 될 것입니다만, 방심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기에 조금 더 방역과 사회적 거리두기에 인내하고 위생관리에 서로가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 그리고 특별히 국가의 경제가 회복되고 정상화 되도록 기도드리고 다시금 열정과 소망의 불이 활활 타 오르도록 힘씁시다.
- 때로는 고통과 고난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 신뢰하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강하고 담대하게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신실하게 달려가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시편73편 1- 14절}
1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2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4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5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6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7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8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9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10 그러므로 그의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11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는도다.
12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13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14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
◑◑◑◑ 제 목 ◑◑◑◑
◗◗ 배교의 유혹을 극복하라.
◑◑◑ 본문 이해와 요약 ◑◑◑
◗ 오늘부터 시편의 제3권은 73편부터 89편까지 17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특히 11편은 아삽의 시이고, 3편이 고라 자손의 시, 나머지 헤만과 에단이 각각 한 편씩으로 되어 있습니다.
- 본 시편은 역대상 15장 17, 19절에 의하면 아삽과 헤만, 에단은 다윗 시대의 레위 지파 성가대를 이끌었던 찬양대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시편 49편과 동일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오늘 73편은 지혜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잘 되는 사람들을 보고 믿음으로 사는 자의 혼란스러워하는 문제는 다루고 있습니다.
- 아삽이라는 신인은 성전중심과 하나님 중심을 살아가지만 고난과 역경을 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 중심으로 잘 사는 모습을 보고 실망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불신자들이 형통하는 것을 보고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 왜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보다 더 잘 되는가 하는 의문 때문에 믿음을 의심하는 경우입니다.
- 이 시편 기자 아삽이 이러한 모습을 보고 거의 실족할 뻔하였다 라고 고백합니다.
- 4-12절까지는 악인들의 모습들을 묘사하고 있는데, 불신자들은 죽을 때에 고통을 당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 집니다.
-그리고 아무런 재앙도 당하지 않는 것 같고, 포동포동 살이 쪄서 잘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 이런 와중에 불신자들은 폭력을 옷 입고, 거만하고, 남을 비웃으며, 악의에 찬 말을 쏘아 붙이고 입으로는 하늘을 비방하고 혀로는 땅을 휩쓸고 다니고 있습니다.
- 불신자들은 신세가 편하고 재산은 늘어만 가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을 보다보니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도 마음이 홀려서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라고 낙심하고 있습니다.
- 13-14절에서는 그와 반대로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 대한 의문점을 말하고 있는데, 깨끗하게 살고 죄를 짓지 않고 살아온 것이 모두가 다 허사란 말인가? 생각도 합니다.
- 14절에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받았도다” 즉, “하나님, 주께서는 온종일 나를 괴롭히셨으며 아침마다 나를 벌 하셨습니다.”라고 는 실토하고 있지만, 그러나 최종적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네게 복이라”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 결론적으로 시편을 지은 아삽은 다윗 당시에 성가대를 이끌었던 찬양 지휘자요, 대장이라고 봅니다.
- 아삽은 본 시편을 통하여 악인의 번성과 의인의 고난이라는 부조리한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 특히 악인들이 형통하게 됨에 따라 어떠한 삶의 태도를 갖게 되는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목걸이는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기 위한 장식물로서, 악인들은 교만한 자신의 모습을 통하여 자신이 특별한 인물인 듯이 자랑하는 행세하여 입는 옷은 몸을 치장하는 것입니다.
- 악인은 포악과 강포를 행함으로써 자신들의 허무한 현실과 그들의 탁월성을 과시하려 했습니다.
-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주님만 믿고 악인의 실상을 결코 부러워하지 말 것을 부탁하는데, 그 이유는 성도들은 크나큰 위기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 그는 이와 같은 현실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포기할 뻔하는 심각한 갈등을 겪었지만, 끝내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공의로우신 심판을 믿는 겸허한 자기 고백과 함께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을 보게 됩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 신앙삶의 승부는 과정보다 결과다.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 세상적인 형통과 번영들이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는 다가 아니며,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복입니다.
- 1절을 살펴보면 시인은 하나님은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는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신다.’는 것은 큰 은혜와 구원의 복을 베푸신다는 말입니다.
-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이 공의로우신 분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 그리하여 하나님은 의인에게는 은혜와 복을 베풀고 악인에게는 형벌을 베푸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지금 현실을 바라볼 때, 그의 믿음은 흔들리기 시작하였는데, 단순히 믿음이 흔들린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 그는 너무나 큰 시험에 들어 믿음을 포기할 뻔하기까지 하였다는데, 시인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대하여 의심하게 되었고, 그러한 의심은 그로 하여금 믿음의 길에서 돌이키게 할 뻔하기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 그래서 시인은 자신의 이러한 마음 상태에 대하여 2절에서 “나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라는 말로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 여기서 ‘실족’이라는 말은 ‘옆으로 돌아서다’, ‘내려가다’, ‘미끄러지다’라는 의미로,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 그러나 본문의 마지막 결론은 28절에서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 하리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결론으로 시인의 하나님 앞에서 복 사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데, 시인이 이전에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단지 이 세상에서 형통하고 번영하는 것이었습니다.
- 그는 하나님이 마음이 정결한 사람에게 그러한 형통과 번영을 허락하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 그랬기에 그는 왜 하나님께서는 악인에게 축복을 주시고 자신에게는 재앙을 주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것은 그로 하여금 거의 실족할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였던 것입니다.
- 그랬던 그가 지금 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참된 축복은 이 세상에서 형통하고 번영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얼마나 가까이하고 있는지와 관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 세상적으로 아무리 형통하고 번영한다고 해도 하나님을 멀리하는 자의 결국은 멸망이며, 세상적으로는 아무리 곤고한 삶을 살지라도 하나님을 가까이하여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는 결코 망하지 않고,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는 시인의 고백에는 이 모든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 그래서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 복이며,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자는 비록 이 세상에서는 고난을 당하나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며, 하나님 나라의 영원지복을 누리게 됩니다.
- 그러나 하나님을 멀리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 번영하고 형통하다고 해도 그것은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며, 그들은 궁극적으로 영원한 파멸과 멸망에 처하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무엇이 시인으로 하여금 이렇게 믿음을 포기할 마음을 먹게 하였습니까? 그 답을 3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 3절에 살펴보면 시인은 자신이 거의 실족할 뻔한 이유에 대하여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 하였음이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악인의 형통이 시인으로 하여금 믿음을 포기할 마음을 먹게까지 하였던 것이고, 그래서 악인의 형통이 무엇이었는지는 4-5절에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 앞에서 언급한 대로 시인은 하나님은 선을 행하시는 분 곧 의인에게는 은혜와 복을 베풀고 악인에게는 형벌을 베푸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 그런데 현실을 보니 시인의 그러한 믿음은 그릇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마땅히 형벌을 받아야 할 악인들이 형통하고 번영하였기 때문입니다.
- 시인은 형통과 번영은 당연히 의인의 몫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실상은 의인이 아니라 악인이 형통하고 번영하는 것을 보고 신앙적 회의에 빠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 여기서 잘못된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시인의 신앙적 명제가 잘못된 것입니까?
- 하나님은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는 분이라는 시인의 믿음이 잘못된 것입니까?
- 하나님은 분명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은혜와 복을 베푸시는 분으로 알고 믿었는데, 하나님은 의인에게는 은혜와 복으로 갚으시고 악인에게는 형벌로 갚으시는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 그렇다면 시인이 신앙적 회의에 빠지게 될 정도로 악인이 형통하고 번영하는 까닭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 하나님이 그들에게 은혜와 복을 베푸셨기 때문입니까? 단적으로 말해서 아닙니다.
- 시인과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세상적인 형통과 번영을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로 이해한다는 것이며, 하나님이 선을 행하신다는 것을 세상적인 형통과 번영의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 그러나 이것은 대단한 오해이며, 하나님이 선을 행하신다는 것은 세상적인 형통과 번영의 차원이 아니라. 이것은 종말론적인 것이며, 동시에 현실에서도 하나님은 의인에게 선을 행하십니다.
- 그러나 하나님이 의인에게 선을 행하신다고 해서 의인이 반드시 현실적으로 형통하고 번영을 누리는 것은 아니며, 하나님이 선을 행하시는 것이 때로는 14절의 시인의 고백처럼 종일 재앙을 당하고 아침마다 징책을 당하는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음을 말합니다.
- 왜냐하면 하나님이 행하시는 선의 궁극적인 목적은 의인으로 하여금 현실의 형통과 번영을 누리게 하는 데 있지 않고, 영원한 형통과 번영을 누리게 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 이러한 목적에 따라 하나님은 의인이 당신의 뜻에 부합하는 삶을 살도록 때로는 징계하시므로 의인은 세상적인 의미의 형통과 번영 대신에 재앙과 징책을 당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 사실 세상적인 번영이나 형통은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로도 이해할 수 있지만, 전혀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가 아닐 수도 있기에 악인들의 형통과 번영이 바로 그러한 경우에 해당합니다.
- 시인은 악인의 형통과 번영을 하나님께서 그들을 축복하신 결과로 이해하였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으며, 악인들의 형통과 번영은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가 아니라 도리어 그들을 버리신 저주의 결과였던 것입니다.
- 악인들은 영원한 멸망을 당할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악을 행하여도 그들의 멸망의 때가 차기까지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방치하여 두십니다.
- 욥기12장 6절에서 “ 강도의 장막은 형통하고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자는 평안하니 하나님이 그의 손에 후히 주심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그리하여 악인들은 자신들의 악을 통하여 세상에 사는 동안에 일시적으로 혹은 일생 동안 형통하거나 번영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 그들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번영과 형통만 거듭되므로 그들의 마음에 회개할 생각조차 없는 것입니다.
- 이처럼 회개의 기회조차 생각지 못하게 만드는 형통은 오히려 그들이 멸망하도록 정해진 자들임을 증거 하는 것일 뿐이므로 우리 성도들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 지금 내가 예수 믿는 않는 불신자들의 번영과 형통을 부러워하고 기죽어 있는 모습은 아닌지? 그래서 나도 예수를 버리고 세상적으로 한번 살아 보았으면 하는 유혹된 마음으로 빼앗긴 적은 없는지? 그러나 세상적 가치관의 결과는 무엇이며, 끝까지 믿는 자의 결과는 무엇인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가진단과 자문자답 해 봅시다. 믿음의 승부는 과정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 그리하여 악인들의 형통과 번영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악인의 형통과 번영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 코로나 사태로 많은 위기 앞에 무조건 불행한 것만은 아니라 우리를 깊이 깨닫게 하는 과정에 감사합시다.
- 감사 할 조건들을 찾으면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환경 위에 계신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흐르고 있음에 감사로 찬양 드립시다.
- 시편37편 35-36절에서 “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래의 땅에 서 있는 나무 잎이 무성함과 같으나 내가 지나갈 때에 그는 없어졌나니 내가 찾아도 발견하지 못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 시인은 후에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 하나님이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신다는 신앙적 명제의 의미를 확실하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 그래서 그의 신앙적 회의를 극복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28절에서“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라는 고백으로 본 시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 그러므로 하나님은 분명 선하신 분이시기에, 오직 믿음으로 사는 의인에게 선을 행하시는 분이시므로 분명한 믿음의 확신 가운데 거하여, 결코 악인의 형통과 번영을 부러워하지 말고, 또 택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임할 때, 그것이 도리어 하나님의 은혜인 줄로 알고, 감사로 찬양 할 수 있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