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창신학교 설립자이며 독립유공자 이승규 장로의 동상 어디로
이승규 장로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로서는 그가 민족문학가로 유명한 시조시인 노산 이은상 선생의 부친이라는 데 있다. 알고 보니 그는 옛 마산의 신교육의 선각자이며 사립 창신학교의 설립자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3.1독립운동 당시 마산에서 있은 항일투쟁에도 관여한 애국독립투사(국가 유공자 1995 보훈록 제13권 32926호)로 훈장도 받은바 있었다. 나는 최근 들어 도저히 그냥 지나치기 힘든 한 사실에 매달리게 되었다.
그의 업적을 기려 시민들의 정성으로 만들어 창신학교 교정에 세워두었던 동상이 어떤 사정에서인지 사라진 것에 대한 궁금함이었다. 필자는 창신학교가 1990년 무렵 운영난으로 매각되어 주인이 바뀔 때 교정에 서 있던 설립자 이승규 장로의 동상이 어딘가로 사라졌다는 풍문을 들었던 것이다.
짐작하기는 학교권리를 인수한 측에서 그 동상을 설립자 차원에서 당연히 인수받아 옮겨간 학교에 그대로 가져가서 세웠더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무슨 생각에선지 인수하지 않고 방치해 두는 바람에 생긴 문제로 보였다.
옛 학교자리(마산시 회원동 415번지 일대)에는 지금 한효아파트가 서 있다. 아파트정문에는 여기가 ‘옛 창신학교 터’(이 곳은 1924년부터 1990년까지 마산 최초의 민족 사립학교인 창신학교가 있었던 자리이다)라고 새긴 작은 돌비석이 정문에 서 있을 뿐이다.
소문에 의하면 신축 아파트 구석에 남아있던 이승규 설립자의 동상은 아파트 입주민들이 들어오며 아파트와 어울리지 않고 오히려 밤에는 무섭기까지 하다는 여론이 돌자 어느 사이 없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동상의 내력을 아는 사람들이 당시에는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어느 정도 동상의 운명에 대해 걱정을 하고 그 처리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였으리라는 짐작은 된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그날 동상이 없어지던 날의 현장 이야기를 어디서 들을 수 있다는 말인가.
필자는 우선 그 동상의 모습실체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그랬는데 이 장로의 둘째아들인 노산 선생의 추모 문집으로 발간된 <민족시인 노산의 문학과 인간>(횃불사)이란 책을 만나면서 그 사진을 보게 된 것이다.
이 책은 노산이 별세한 1982년 그 해 11월에 발간된 것으로 여기에 문제의 동상 사진이 게재되어 있다. 사진에는 노산 선생 과 그 가족으로 보이는 일행이 동상을 배경으로 함께 담겨있다.
이승규 장로는 1860년 서울 출생으로 마산에 자리 잡은 해가 1903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장로는 개화한 지식인으로 한의사로 활동하며 상당한 재력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민족문학가 노산 이은상은 이 해에 태어난다.
이 무렵 정착한 이 장로는 당시 마산의 낙후된 교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1906년 우선 독서숙(讀書塾)을 설립하여 독서운동을 통한 청소년 교육에 나선다. 이 무렵 마침 호주선교사들이 들어온다.
이 장로는 이들로부터 선교를 받아 기독교를 믿으며 교회(성호리 교회, 훗날 문창교회)를 세우게 되고, 이 선교사들과 선교사업의 일환으로 교육에 참여하여 마침내 1908년에 앞의 독서숙을 개편하여 사립 창신학교(昌信學校)를 개교하게 된다.
당시는 일제 치하로 실제는 이승규 장로가 설립자였으나 조선 사람은 교장이 될 수 없어 선교사들이 학교장을 맡고 이 장로는 실제 학교운영자로 실무 일을 맡게 된다. 창신학교는 처음에는 초등과만 개교하였으나 이들이 초등과를 마치면서 상급학교가 필요함에 따라 고등과가 생겨 일괄교육기관이 된다.
아무튼 창신학교는 이처럼 일제하의 고난의 역사 속에서 버텨 그동안 개명(한때는 濠信학교가 되기도 함)을 겪는 등 곡절이 있었으나 마산 사학의 전통을 이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아쉬운 것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설립자 이승규 장로의 동상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편함이다.
1922년에 작고한 이 승규 장로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마산의 사회장으로 모셔졌다. 그동안의 사학설립과 개신교회의 창설 등 지역 발전에 기여한 업적이 감안된 지역의 예우임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지역의 선구적 위인을 기려 세운 동상이 불투명하게 사라졌는데도 어찌 이리 무심해서야 되겠는가 하는 것이 필자의 지금의 답답한 심정이다. 어디 하소연 할 길이 없다. 이런 잡문이나 끌쩍거리며 아쉬움을 풀 밖에 없음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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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이승규 창신학교 설립자 동상(앞에 노산 이은상 선생 가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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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창신학교 자리에 세워진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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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창신학교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10년쯤도 더 지나간 어느 해에 그 학교 교장님을 만난 적이 있고, 차를 한 잔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고 몇몇 자료를 구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안확 선생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의 남다른 지식과 지혜를 알게 되었지요. 창신학교의 창설은 한국교육의 현장이고, 현실입니다.
고이고이 모시고 기리어야 할 것이 사라진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노산 이은상 선생님의 부친이라는 것을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창신대학을 다니며 설립자이신 이승규장로님의 동상을 보긴했는데 올려진 사진과 같은 동상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관심 가져주시고 챙겨보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