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에서 드러난' 새로운 세계질서'
글/ 정혁보
이라크에 대한 선전포고를 발표하면서 부시 미국대통령은 목청을 높였다.
"지금은 역사적인 순간이다. 우리는 지난 해에 위대한 진보< 동서냉전 체제의 붕괴>를 이룩했다. 우리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지 않고 법이 다스리는, 유엔이 창립 당시 내걸었던 대로 평화유지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 새로운 세계질서를 형성할 기회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미국-이라크전쟁은 이 새로운 세계질서 ' 형성을 위한 첫번째 실험장이 된 셈이다. 그리고 그 실험에서 성공했다.
'새로운 세계질서'-이 말은 물론 이때 처음 등장한 표현은 아니다. 부시 대통령이 말하는' 위대한 진보'를 이룩한 순간부터 비롯된 말이다. 냉전체제의 붕괴는 세계가 화해와 협조, 그리고 경쟁과 긴장에서 평화로 이행하는 '위대한 진보'의 서막이었어야 마땅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긴하다. 그러나 그것은 '말'이다. 이 '위대한 진보' 는 소련과 동구사회주의권의 기존체제와 가치가 급속히 해체됨으로써 극심한 혼란과 진통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드는 계기가 된 반면, 미국과 그 동맹국에게는 '훌륭한 기회'이자' 중대한 도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40여년에 걸친 냉전에서 승리한 것으로 확신했으며, 그 승리의 여력으로 미국의 보다 크고 많은 이익이 보장된는 질서를 편성하는 주도국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를 맞이한 셈이다. 이제 소련과 공산주의라는 '가위눌림 같은 도전세력은 약화되었다. 아니, 당분간은 사라졌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싹튼다. 냉전체제의 유지에 필요했던 장치들은 해체되어야만 했다. 나토와 미일안보체제로 대표되는 종래의 반소동맹은 존재 의미를 잃게된 것이다. 국내적으로도 미국은 ' 소련으로부터의 위협'이 사라진 터에 엄청난 군비를 써가면서 전지구적 전력을 계속해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이에 더하여 미국의 경제적 실패를 만회해야 할 중대한 임무가 미국 정부에 안겨졌다. 여기서 ' 새로운 도전 '이 떠오른 것인데, 그 실체는 작년 3월 백악관이 발표한 <국가안전전략 >에 잘 나타나 있다. 미국의 안전 ( 이의 )을 위협하는 ' 새로운 도전 '이 주로 ' 지역지배를 꿈꾸는 나라와 침략, 위압, 반란, 테러리즘, 마약의 부정거래 '로 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 우리의 군사력 을 행사할 필요가 있는 곳은 소련이 아니라 제 3세계일 것"이라고 ' 예고' 했다. 도전이 오는 방향이 ' 동쪽에서 ' 남쪽으로 바뀌었다는 말이 된다. ('남쪽'은 개발도상국과 제 3세계• 가난하고 약한 나라들을 말한다. )
이런 주장을 놓고 미국은 ' 새로운 도전'을 창출해내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는 해석은 결코 ' 악의에 찬' 해석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미국의 ' 새로운 도전론'에 대한 호응은 영국에서도 나왔다. 작년 말(1990년) 영국 의 한 여론조사에서 " 기원 2천년의 적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영국인의 49%가 이슬람이라고 대답하고 있어 소련 11%, 독일 8%를 훨씬 웃돌고 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전에 대처 전 영국수상이 나토의 가상 적은 중동에 있다고 단언한 것과 더불어 생각해보면 21세기를 향하는 세계에서 경제개발면에 있어서의 새로운 남북대립이 문명론적인 수준에 있어서의 새로운 동서대립과 함께 심각해질 위험이 생겨났다. ' 새로운 남쪽'에는 소련 속의 아시아가 들어있는 한편, 새로운 동쪽'의 최전면에는 동구에 대신하여 중동이 서 있다. 이 새로운 접촉점은 중동으로부터 소련 남부에 이르는 이슬람 세계다. 결국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략. 합병은 ' 새로운 도전 '을 찾고 있는 미국에게 절호의 기회'를 가져다 준 셈이 된다.
' 새로운 세계질서 '를 위한 실험장이 된 대 이라크 전쟁은 처음부터 순조로왔다.
미.소의 대립, 제3세계의 높아진 목청 등으로 해서 좀처럼 의견을 모을 수 없었던 유엔의 '출병허가'를 받아내고 그 여세로 다국적군대와 다국적자금을 동원, 42일 만에 전쟁을 승리로 매듭지었다.
거부권이라는 ' 가시’가 있는 유엔 안전보장회의에서의 ' 출병허가는 ' 신세계질서 '구도의 길잡이기도 한데, 이를 위해 미국이 소련에 40억 달러 상당의 원조를, 이집트에는 외채 140억 달러를 면제해 주는 한편, 시리아에는 10억 달 러 상당의 군사원조를, 터어키에는 90억 달러의 군사원조와 방직물 수출 쿼터 증액을, 중국에는 1억 달러의 세계은행 융자와 천안문사태 이후 악화되었던 외교관계의 정상화를 제공했다는 사실도 우리는 알고 있어야겠다.
' 새로운 세계질서'는 결국 '팍스 아메리카나( 미국 주도의 세계평화 )의 다른 표현이다. '팍스 아메리카나'를 위해 미국은 제 3 세계에 친미정권을 세우고 또 옹립할 것이다. 친미정권이라고 해서 무조건 다 나쁠것은 없다. 허지만 제 3세계의 친미정권이 어떤 성격을 갖는가 하는 것은 지난 역사를 들추지 않더라도 알 수 있다. '팍스 아메리카 나와 제 3세계의 '민족주의 '가 조화를 이를 수 있을 때, 그 새로운 세계질서'는 참된 뜻의 ‘새로운 세계사의 진보’라는 빛을 발할 것이다.
중동전이 끝난 지금 우리의 관심의 촛점은 우리 한반도에 이 팍스 아메리카나'가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 지에 쏠리고 있다.
그러한 때에 미국의 국방차관보가 의회 공청회에서 한반도를 전쟁가능성이 가장 큰 곳이라고 증언했다는 보도는 우리를 불길하게 만들고 있다.
어째 으시시하다.
1991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