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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가좋다오 원문보기 글쓴이: (一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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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23강-죄책과 후회
로마서 8장1-13절 / 김인환 목사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느니라. 2.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기 때문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통하여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하셨나니 곧 죄로 인해 자신의 아들을 죄 많은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사 그 육신 안에 죄를 정죄하셨느니라. 4. 이것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는 우리 안에서 율법의 의가 성취되게 하려 함이니라. 5. 육신을 따르는 자들은 육신의 일들을 생각하되 성령을 따르는 자들은 성령의 일들을 생각하나니 6. 육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망이요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생명과 화평이니라. 7. 육신적인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아니하며 참으로 복종할 수도 없으므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8. 그러므로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느니라. 9. 그러나 너희 안에 하나님의 영께서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나니 이제 어떤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는 그분의 사람이 아니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해 죽었으나 성령은 의로 인해 생명이 되시느니라. 11. 그러나 만일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분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자신의 영을 통해 너희의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들이지만 육신을 따라 살도록 육신에게 빚지지 아니하였느니라. 13.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나 성령을 통해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롬8:1-13 KJV)
[천로역정]이라는 책을 읽어 보셨나요? 성경 다음으로 크리스천들이 제일 많이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로 잘 알려진 존 버니언이 [흘러넘치는 은혜]라는 자서전을 썼는데 그 자서전에 보면 자기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무려 18개월 동안이나 죄책감과 후회 속에 그렇게 매여 살았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존 버니언 같은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 믿고 나서 우리처럼 죄책과 후회 속에서 18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낸 거예요. 저는 존 버니언이 부럽기까지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성도들을 보면 성도님들 중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믿고 나서 18개월이 아니라 굉장히 오랜 세월 심지어 몇 십 년 동안이 죄책과 후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오늘 본문에 있는 이 사도 바울의 선언입니다.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이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도바울은 분명히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결코 정죄함이 없다. 라고 우리에게 말했는데 우리는 정죄함이 없는 게 아니라 여전히 죄책감과 후회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왜 우리가 죄책과 후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깨닫고 정말 감사와 찬양과 기쁨이 넘치는 그런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시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자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도 왜 죄책과 후회에서 우리가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요?
첫째로 육신을 따라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뭐라고요 육신을 따라 살아갑니다. 자 오늘 본문 5-8절 읽어 볼까요? ➤“5. 육신을 따르는 자들은 육신의 일들을 생각하되 성령을 따르는 자들은 성령의 일들을 생각하나니 6. 육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망이요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생명과 화평이니라. 7. 육신적인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아니하며 참으로 복종할 수도 없으므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8. 그러므로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느니라.”
자 육신을 따르는 자들은 어떻게 살아간다고요? 일단은 육신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 즉 하나님을 대적하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육신은 우리의 몸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육신이 무엇인지 아주 복음적인 설교가이자 신학적인 존 파이퍼는 복음과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바울이 사용하는 육신이라는 말은 그저 인간 육체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죄악 된 본성을 의미하는 겁니다.
자 육신을 따른다. 여기서 육신은 우리의 몸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죄악 된 본성을 의미하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의 육신대로 살지 않는 육신을 따라 살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의 몸의 어떤 욕구나 욕망을 채우지 말아야 된다. 이런 뜻이 아니에요. 우리의 죄악 된 본성을 의미함이라 그렇다면 그 죄악 된 본성이 무엇입니까? 내가 선악과의 따먹은 이후 인간의 모든 보유성 그것은 자기가 선하게 주체가 되어서 선악을 분별하고 자기의 행위로 의롭게 되려는 하나님처럼 되려는 것 그게 바로 죄악된 본성입니다 그래서 읽었던 우리가 로마서 5절부터 8절까지를 우리가 제대로 해석하면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 즉 자기가 행위로 의롭게 되어서 하나님처럼 되려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것을 생각한다. 매일 내가 어떻게 하면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고 그런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육신을 따라 열심히 살면 어느 날 깨닫게 됩니다. 아 나는 도저히 안 되는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라 건져낼 자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육신의 생각 자기의 행위로 의롭게 되어서 하나님처럼 되려는 그 생각을 따라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게 된 것이고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결국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라고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 바울의 절망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육신을 따라 살면 후회와 죄책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도 왜 우리가 죄책과 후회해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 둘째 이유는 성령을 따라 살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살아야 되는데 우리는 성령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자 오늘 본문 3-4절을 새 번역으로 읽어보겠습니다. ➤“육신으로 통하여 율법이 미약해져서 해낼 수 없었던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해결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의 죄된 육신을 지닌 모습으로 보내주셔서 죄를 없애시려고 그 육신에다 죄의 선고를 내리셨습니다.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가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이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우리가 성령을 따라 살면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완벽하게 이룰 수 있다고 오늘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왜요? 이 성령을 따라 산다. 이건 또 무슨 뜻일까요? 우리가 이걸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을 우리가 열심히 금식 기도원에 가서 방언 기도 받고 병 고침에 의사를 받고 뭐 이런 거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제일 오래되는 그런 개념이 바로 성령에 대한 오해입니다 많은 분들이 성령을 어떤 능력이나 신비한 힘이나 이런 것들로 이해해요. 여러분 성령의 역사하면 방언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신 병 고침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신 것은 성령은 그런 어떤 신비한 병을 고치는 능력이나 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인격이시며.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성령이 왜 오셨습니까? 우리를 방언하게 하기 위해서이 병을 고치게 하기 위해서요? 여러분 우리 육신의 병이 고쳐져도 결국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입니다. 성령이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오셨을까요? 물론 성령은 이 땅에 병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시니? 방언의 은사를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시니? 그러나 성령이 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에게 방언을 주거나 우리에게 어떤 경고침의 능력을 주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오신 이후에 궁극적인 이유에 대해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 12-13절입니다. ➤“12. 내가 아직 너희에게 말할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그것들을 감당할 수 없느니라. 13.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분은 스스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무엇이든지 자기가 듣는 것만을 말씀하시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시리라.”
여러분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하시는 가장 중요하고도 본질적인 그 목적은 일은 우리가 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아멘! 여러분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그래서 진리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럼 성령이 깨닫게 하는 이 진리가 뭘까요? 성령이 깨닫게 하는 진리 성령이 깨닫게 하는 진리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 라는 진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의롭게 될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성령이 오신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을 따라 우리의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행위로는 의롭게 될 수 없는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믿는 믿음으로만 우리가 의롭게 될 수 있다. 하는 이 진리 이 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성령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1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새 번역으로 제가 읽어드립니다. “여러분이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성령으로 뭘 해야 산다고요. 몸의 행실을 죽이래요. 이것도 또 우리는 왜요. 성령을 이용해서 성령님 도와주셔서 내가 행위로 내 몸의 행실 내 몸의 모든 욕망을 죽이게 해 주십시오. 여러분 육신을 따라 살면 왜 죽습니까? 내 행위로 의롭게 되려는 사람은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을 따라 몸의 행실을 죽인다는 말은 몸은 여기서 말했지만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몸을 바디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성령으로 몸의 행실 내 행위로 의롭게 돼서 하나님처럼 되려는 그거를 죽이면 살리라 그 뜻입니다. 여러분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라는 것은 성령은 오직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이롭게 될 수 있는 이 진리를 깨닫게 하심으로 더 이상 우리가 우리의 행위로 내가 의롭게 되어서 하나님처럼 되려는 그 노력 그것을 그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의로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서 살리라 영생을 얻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멘!
여러분 왜 우리가 죄책과 후회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요?
성령으로 몸에 행실을 죽이기는 고사하고 성령님 오셔서 내가 의롭게 되어서 내가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있도록 좀 도와주세요. 라고 여전히 육신을 따라 살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진리의 성령으로 그 진리를 깨닫게 하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의롭게 될 수 있는 그 진리로 몸의 행실을 죽이십시오. 그럴 때 우리는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죄책과 후회에서 자유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 4절 메시지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율법은 언제나 근본적인 치유가 아니라 죄에 대한 미봉책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그동안 응할 수 없었던 율법 조문의 요구에 우리가 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한층 더 노력해서가 아니라 오직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행하시고 계신 일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통하여 의롭게 된다는 일 그걸 받아들이므로 우리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을 따라 산다는 걸 오해하지 마십시오. 온갖 은사를 받고 온갖 그런 것을 받았다고 해서 성령을 따라 사는 게 아닙니다. 성령을 따라 산다는 것은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진리 내 행위로는 도저히 의롭게 될 수가 없구나! 오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구나! 누가인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낼 수 있을까? 라는 걸 깨닫게 되고 마침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의롭게 될 수 있다는 이 진리 일치를 깨달을 때 죄와 사망에서 자유 하게 되는 줄 믿으시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도 왜 죄책과 후회해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요?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디 안에 있지 않다고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다. 로마서에서 가장 중요한 한 구절 뽑으라면 저는 이 구절을 뽑고 싶습니다. 같이 읽어볼까요?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느니라.” 아멘! 뭐라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의 결코 정죄함이 없어요. 그럼 당연히 우리가 정죄를 받지 않는데 왜 죄책감과 왜 후회 속에도 우리는 살아가요. 여러분이 말씀을 알고 계시나요? 여러분 왜 그 이유는 한 가지예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래요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 계십니까? 그럼 왜 죄책과 후회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는데 우리가 죄책감과 후회 속에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가 말로는 다 예수 안에 있다고 말해요 그러나 여러분 예수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육신의 생각 안에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도 여전히 육신의 생각 내 행위로 하나님처럼 의롭게 되려는 이 결단과 노력이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지금 방금 읽은 구절을 이제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의 결코 정죄함이 없는 이 말씀을 읽기는 이렇게 읽지만 우리가 어떻게 해석을 하냐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렇게 해석하고 읽어요. 이 말씀이 아직 나에게 역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요.
여러분 이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가 결코 죄를 안 짓나요? 여러분 예수님 믿고 죄 안 짓고 사세요. 여러분 우리가 의롭다 여겨 주셨다는 걸 기억하십시오. 도저히 의롭지 않은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 같은 십자가에서 다 치르셨다. 그래서 다 이루셨다고 한 거예요. 뭘 이루셨습니까? 우리 죄 값을 다 치르셨다는 거예요. 다시는 우리가 죄 값을 치를 때 없다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통하여 우리는 결코 정죄함 받을 수가 없어요. 죄 값을 다 치웠는데 어떻게 또 죄값을 치룰 수가 있습니까. 그 뜻입니다. 이게 지금 그런데 왜 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믿고 의로움 그렇게 해서 의롭다 여김을 받았어요.
그 말은 죄를 안 짓는 노력이 인정되어서 구원 받은 게 아니라 도저히 의롭다 여김을 받을 수 없는 우리를 은혜로 의롭다 여기셨기 때문에 우린 여전히 죄를 짓고 살아요. 필요가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양심에 조금이라도 자기 내면을 돌아보는 사람이라면 저와 여러분이 얼마나 무지막지한 죄인인지 너무 잘 알 거예요. 뭐 이렇게 나와서 예배드릴 땐 다 멀쩡해 보이고 다 괜찮은 거 같지만 온갖 못된 짓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합니까? 사랑하는 배우자에게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도 산 여러분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까? 예수 믿어도 우리 죄 져요 결코 정죄함이 없다 그랬지 결국 죄를 짓지 아니 한다가 아니요.
➤요한1서 5장13절 “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들을 쓴 것은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하고 또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라.”
자 여기서 요한일서가 누구에게 썼어요.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 구원받은 사람들 영생이 있는 사람들에게 썼대요.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 믿음이 예수님이 영생이요. 아멘! 그걸 모르고 살고 있는 거예요. 구원 받았는데 구원의 기쁨을 못 누리고 살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기쁨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 지금 이거 쓴 겁니다. 요한일서 앞부분 보면 1장 9-10절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 하나님의 증언은 더 크도다. 그 까닭은 이것이 하나님의 증언 곧 그분께서 자기 아들에 관하여 증언하신 증언이기 때문이라. 10.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그 증언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에 관하여 주신 증언을 그가 믿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의롭다 받는 것이지 의로워진 것이 아니다.
죄를 자백해라. 무슨 얘기해 너희들 죄짓고 살잖아! 예수 그리스도 믿고 너희 안에 영생이 있는데도 너희를 죄짓고 살잖아? 그 죄를 자백해 만일 우리가 범죄 하지 아니하였다. 즉 죄를 자백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않다. 여러분 무슨 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믿어도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우리라는 거예요.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 하나님의 증언은 더 크도다. 그 까닭은 이것이 하나님의 증언 곧 그분께서 자기 아들에 관하여 증언하신 증언이기 때문이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그 증언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에 관하여 주신 증언을 그가 믿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우리 행위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은혜로 의롭게 된 것이거든요. 그래서 우리 행위는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런데 의롭대요. 예수님께서 죄 값을 다 치러 주셨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결코 우린 죄를 짓는데도 그 죗값을 묻지 않겠다. 그게 정죄함이 없느니라. 하는 뜻입니다. 그 너무 감사해요. 죄까지 다 치러졌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매일 죄를 자백할 때 우리는 죄를 자백하면서 누가 죄를 졌어요. 죄를 자백하면서 세상은 어떻게 합니까. 죄 값을 치러야 돼요. 그런데 우리는 죄를 자백해도 죄 값을 치르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의 죄 값을 십자가에서 다 치러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여러분 이게 이제 절대 정죄 받지 않으니까? 마음대로 죄짓고 살아 그런 뜻이에요. 그런 뜻이 아니에요. 정지함이 없으니까 다시 육신의 생각으로 빠져 들어가서 네 행위로 의롭게 되려는 노력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어 이미 온전히 우리를 의롭다 하신 거예요 성경 보세요 우리를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이가 또한 우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 편에선 우린 이미 영화가 이루어진 사람이에요. 예수님처럼 된 사람이란 말이에요. 믿어지 이게 믿어지세요. 저와 여러분 같이 이렇게 죄와 허물로 오늘도 죄짓고 사는 저와 여러분이 이미 예수님처럼 되었대요.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이게 은혜예요. 여러분 왜 우리가 그런데도 계속 죄책감과 후회에서 벗어나지 못하나요? 예수님 안에 있어야 되는데 내 생각 안에 있어요. 자기 육신의 생각 안에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나를 도저히 의롭다 할 수 없는 매일 죄짓고 사는 나를 오늘도 정죄하지 않는 그 은혜를 따라서 기쁨과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며 매일매일 기쁘게 살아가야 되는데 이미 의롭다 하신 우리를 더 이상 정죄하지 않는데 내가 노력해서 정죄한 맞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내가 하나님이 되어서 내 행위로 의롭게 되려는 이 자기 생각 육신을 따르는 것 육신의 생각 안에 있으니 어찌 죄책과 후회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오늘 다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이 말이 깨달아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직도 구습 육신을 따라 그게 종교 생활이에요. 그게 은혜로 시작하고 복음으로 시작했다가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다시 사망의 법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다시 우리를 옭아매었던 그 율법의 조문 아래 우리가 메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 안에 있습니까?
예수님 믿으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지 예수님 믿고 나서도 여전히 자신의 생각 안에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사랑하면서 그것이 마치 남들보다 더 거룩하게 사는 것이냐? 자기의 결심 자기의 의지 자기의 유용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애쓰다 보니까 매일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니 그 얼굴에 복음을 받은 사람이 기쁜 얼굴은 아니고 매일 매일 죄책과 후회 속에서 남의 이 모양일까? 나는 왜 안 될까? 예수 그리스도 언제까지 믿으면 될까? 평생 속고 사는 겁니다.
복음은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이 할례 없는 은혜, 이 정죄함을 없이 하기 위해서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은혜 그 은혜 때문에 오늘도 매일 죄짓고 살지만 오늘도 죄를 자백하고 주님 내가 주인입니다. 오늘도 내가 구제불능의 죄인입니다. 이런 나를 사랑하사 이런 나를 구원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을 경배합니다. 이게 신앙생활입니다. 그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기쁨과 의로움과 평강과 기쁨과 감사를 누리며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녹취 / 김은영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