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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1. 주일찬양기도예배 설교문【교회신앙의 달】- 두배 부흥전도주일
제 목: 영적 침체를 극복하는 믿음.
Subject: Belief which overcome spiritual stagnation.
본 문: 고린도후서 1:4~5절
4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사람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Text : 2Corinthians 1:4~5 4Who comforteth us in all our tribulation, that we may be able to comfort them which are in any trouble, by the comfort wherewith we ourselves are comforted of God. 5For as the sufferings of Christ abound in us, so our consolation also aboundeth by Christ.
찬 양: 316장(통 장) - 주여 나의 생명,
320장(통 350장) – 나의 죄를 정케 하사,
324장(통 360장) – 예수 나를 오라 하네,
325장(통 359장) – 예수가 함께 계시니,
333장(통 381장) - 충성하라 죽도록.
praise: 316장(통 장) - Lord, my life,
320장(통 350장) – to condemn my sins,
324장(통 360장) – Jesus calls me to come,
325장(통 359장) – Jesus is with you,
333장(통 381장) - Be loyal! Die!.
할렐루야!! 금년 한 해에도 사랑하는 교회 공동체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와 은총이 교회 공동체여러분과 교회 공동체여러분의 가정에 그리고 교회 공동체여러분의 사업과 가정 위에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오늘은 9월 첫째 주일인 교회 두배 부흥전도주일입니다.
주제: 영적 침체도 영적 활력을 얻는 기회입니다.
설교(sermon)
오늘부터 찬양기도예배시간 7주 동안 교회에 대한 말씀을 살펴볼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책이 복음서특징은 입니다. 복음서의 선포된 기독교 진리, 예수의 구속적 사건이 중심이지만 예수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그대로 보여주며 사실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복음서의 핵심 주제는 ‘믿음. Belief.’입니다. 구원ㆍ능력ㆍ기적ㆍ치유ㆍ승리ㆍ영광ㆍ하나님 나라ㆍ작은ㆍ큰 믿음을 있습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장소입니다. 매주 교회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상황은 예측하기 힘들만큼 천차만별입니다. 지난주에 좋은 얼굴을 하던 모습(행복한 얼굴)dl 이번 주에는 슬픈 얼굴(우울한 얼굴)이 되고, 승승장구하며 잘되던 사업이 이반 주에 와서는 어려움을 겪고, 지난주까지 건강하던 사람이 이번 주에는 갑자기 환자가 되고, 그동안 서로 친했던 관계가 이번 주에는 서로 멀어지고, 은혜 가운데서 기뻐했는데 오늘은 의욕을 잃고 금심이 기득합니다. 그런가하면 지난주까지 죽을 만큼 답답하게 지냈는데 이번 주에는 밝은 모습이 되고, 지난주까지 시험에서 허덕이고 문제로 고통당하던 사람이 이번 주에 형통한 모습으로 감사해 하는 모습도 보게 됩니다.
왜 매주 교회는 이렇게 전혀 다른 모습들로 가득합니까? 모두가 잘되고, 기쁘고, 믿음이 좋고, 감동적인 교회생활을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어느 교회도 그런 교회가 있을 수 없고, 어느 가정도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어느 교회, 가정, 어떤 교회 가족이든 매일매일 서로 다르게 겪는 믿음의 길이 있습니다. 교회도 항상 부흥하고 은혜가 충만한 것이 아닙니다. 시련의 때가 있고 겪어야 할 고난의 시기가 있습니다. 개인의 믿음생활도 예외는 아닙니다. 은혜의 결정에 도달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감동의 때가 있는 반면에, 쓰라린 고통과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시달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영적 활력의 때와 영적 침체의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영적 활력에 있을 때는 교회의 생활도 신바람 납니다. 그러나 자신이 영적 침체에 빠지게 될 때는 교회도 나오기 싫고 하나님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어 하며 방황하게 됩니다. 그런데 교회 가족들이 영적 활력을 느끼기보다 오히려 영적 침체를 훨씬 자주 그리고 위험도를 넘을 정도로 겪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영적 활력보디 영적 침체에 대해 말씀을 하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두 번째 편지의 서론 부분인데 사도 바울이 영적 침체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다는 고백입니다. 다시 읽겠습니다.
4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사람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4Who comforteth us in all our tribulation, that we may be able to comfort them which are in any trouble, by the comfort wherewith we ourselves are comforted of God. 5For as the sufferings of Christ abound in us, so our consolation also aboundeth by Christ.
사랑하는 교회 공동체여러분! 저는 먼저 교회 공동체여러분들에게 이 말씀 그대로 어떤 영적 침체, 탈진, 후퇴, 약해짐에서도 하나님의 위로를 통해 과감하게 일어서기를 축원합니다. 만일 영적 침체의 기간이 길어지고 더욱 지치게 되면 아주 깊은 사랑으로 빠져들어 갈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믿음생활을 하면서 위험지대 깊이 들어갔거나 낭떠러지 바로 앞에 서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적 생명력이나 영적 활력, 세력이 약해지면 더는 지탱하거나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상태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모든 영적 침체, 고난에서도 하나님의 위로를 통해 일어선 자신의 모습을 소개하며 고린도교회는 물론 오늘의 교회 공동체들에게도 영적 침체에 있을 때 하나님의 위로를 통해 일어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여러분의 영적 수치(level)는 어느 정도 됩니까? 지금 교회생활이 영적 절정이거나 가장 영적으로 활발한 상태에서 힘찬 활기를 보여주고 있습니까? 주의 일을 감당하는 힘이 강력하게 느껴지고 있습니까? 성령의 충만함은 물론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은 열정으로 불타오르십니까? 아니면 영적 의기소침과 저하로 영적 우울증에 걸린 모습처럼 아무런 의욕이나 기대도 없이 이대로 무기력하게 자신의 처지를 비극으로 여기며 절망하는 바닥난 상태입니까? 주의 일에 대한 간절함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까? 영적 수치가 높이 나타날수록 교회생활은 활기차겠지만, 영적 수치가 낮아지면 일에 대한 어지러움은 물론 포기하고 싶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유난히 영적 침체를 심하게 겪은 것에 대해 회상을 합니다. 본문 뒤에 나오는 말씀인 고린도후서1:8~9절을 보십시오.
8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8For we would not, brethren, have you ignorant of our trouble which came to us in Asia, that we were pressed out of measure, above strength, insomuch that we despaired even of life: 9But we had the sentence of death in ourselves, that we should not trust in ourselves, but in God which raiseth the dead:
사도 바울은 위대한 종이었습니다. 1세기에 그리스와 로마와 세계를 흔들고 다니면서 큰 능력과 기적을 보여주며 사역을 했던 불굴의 주의 종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삶의 끈을 놓고 싶어 하겠습니까? 힘에 겨운 심한 고난을 당하면서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 상황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형선고라는 표현을 쓸 만큼 절망감 속에서 모든 것이 외부로부터 오는 것에 의하여 정지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혹시 교회 공동체여러분 중에 사도 바울이 겪었던 것처럼 심한 고난으로 인하여 살 소망마저 잃어가는 분이 계십니까? 점점 영적 탈진과 약해짐으로 마음의 번뇌와 심리적 고통과 정신적 괴로움 그리고 육체적 나약함까지 겹치며 비천함에 빠져들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오늘 사도 바울이 다시 일어선 것처럼 교회 공동체여러분도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영적 침체는 믿는 자들에게 해로운 것이라기보다 절대 유익을 주기 때문입니다.
1. 영적침체는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가 됩니다.
영적 침체를 느낀 그리스도인은 바울 사도만이 아닙니다. 성경에 소개된 수많은 인물들이 깊은 침체를 겪었습니다. 갈멜 산 영적 싸움에서 승리한 후 아합과 이세벨에게 쫓기던 엘리야 선지자는 로뎀 나무 아래 앉아서 생명을 거두어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왕상19:4절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But he himself went a day's journey into the wilderness, and came and sat down under a juniper tree: and he requested for himself that he might die; and said, It is enough; now, O LORD, take away my life; for I am not better than my fathers.). 엘리야 선지자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 제단을 다 태우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던 능력의 선지자였던 지금은 자신의 생명을 거두어달라고 하나님께 절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첫 지도자인 모세도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의 소리를 들을 때, 도저히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다고 하면서 즉시 죽여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민11:15절 주님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 And if thou deal thus with me, kill me, I pray thee, out of hand, if I have found favour in thy sight; and let me not see my wretchedness.).
예레미야 선지자도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하여 말씀을 전하지만 자신이 조롱거리가 되었을 때, 자신을 저주하며 죽고 싶은 마음을 토해냈습니다(렘20:14~15절 14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15나의 아버지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기를 당신이 득남하였다 하여 아버지를 즐겁게 하던 사람이 저주를 받았더면, 14Cursed be the day wherein I was born: let not the day wherein my mother bare me be blessed. 15Cursed be the man who brought tidings to my father, saying, A man child is born unto thee; making him very glad.).
바울 사도는 주님의 일을 하면서 그리스도인이 감당할 수 없는 극한 어려움을 당한 주의 종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죽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 있었고,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죽음과 싸워야했습니다. 고린도후서11:23~27절을 읽겠습니다.
23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3Are they ministers of Christ? (I speak as a fool) I am more; in labours more abundant, in stripes above measure, in prisons more frequent, in deaths oft. 24Of the Jews five times received I forty stripes save one. 25Thrice was I beaten with rods, once was I stoned, thrice I suffered shipwreck, a night and a day I have been in the deep; 26In journeyings often, in perils of waters, in perils of robbers, in perils by mine own countrymen, in perils by the heathen, in perils in the city, in perils in the wilderness, in perils in the sea, in perils among false brethren; 27In weariness and painfulness, in watchings often, in hunger and thirst, in fastings often, in cold and nakedness.
이런 고통의 길을 갔던 바울 사도이기 때문에 살 소망이 끊어지는 죽음을 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소명을 향하여 달려갔던 수많은 주의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그 치열하고 험난한 절망 앞에서 영적 침체를 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 침체는 곧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화난이나 고난 중에서도 위대한 고백을 한 것이 위로의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일을 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목사는 물론 모두가 달려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대호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 천지입니다. 단순히 전략이나 돈, 사람에 대한 어려움이 있겠지만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것은 자신의 영적 침체, 탈진, 절망입니다. 이것이 찾아오면 누구든지 심한 통증과 함께 믿음은 물론 삶의 의욕까지 포기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 침체의 시기가 오히려 믿는 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죽음도 생각하게 되지만 하나님도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처절하고 비통한 모습 때문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자신에게 던지는 동시에 하나님에게도 던지게 되어 결국 영적 침체기에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영적 침체는 훨씬 깊이 하나님을 아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다윗 왕은 유다 광야에 있을 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시편63:1~2절에 1하나님이여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님을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님을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2내가 주님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님을 바라보았나이다. 1O God, thou art my God; early will I seek thee: my soul thirsteth for thee, my flesh longeth for thee in a dry and thirsty land, where no water is; 2To see thy power and thy glory, so as I have seen thee in the sanctuary.
그리고 다윗 왕은 항상 영적 침체가 왔을 때 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시25:1,15,21절 1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15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21내가 주님을 바라오니 성실과 정직으로 나를 보호하소서. 1Unto thee, O LORD, do I lift up my soul. 15Mine eyes are ever toward the LORD; for he shall pluck my feet out of the net. 21 Let integrity and uprightness preserve me; for I wait on thee,27:4절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분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One thing have I desired of the LORD, that will I seek after; that I may dwell in the house of the LORD all the days of my life, to behold the beauty of the LORD, and to enquire in his temple,37:34절 여호와를 바라고 그분의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똑똑히 보리로다. Wait on the LORD, and keep his way, and he shall exalt thee to inherit the land: when the wicked are cut off, thou shalt see it,39:7절 주님이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님께 있나이다. And now, Lord, what wait I for? my hope is in thee,59:9절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니 그분의 힘으로 말미암아 내가 주님을 바라리이다. Because of his strength will I wait upon thee: for God is my defence,62:1,5절 1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분에게서 나오는도다 5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1Truly my soul waiteth upon God: from him cometh my salvation. 5My soul, wait thou only upon God; for my expectation is from him,63:2절 내가 주님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님을 바라보았나이다. To see thy power and thy glory, so as I have seen thee in the sanctuary.).
사랑하는 교회 공동체여러분! 믿음생활은 항상 영적 절정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 침체가 있습니다. 그것은 심하게 무너지라는 뜻이 아니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그 고난 중에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신호입니다.
2. 영적 침체는 믿음의 진보를 이루는 수단이 됩니다.
믿음의 그리스도인들이 좋아하는 언어는 부정적인 쪽보다 긍정적인 쪽이 많을 것입니다. 기쁨, 감사, 축복, 평안, 형통, 승리를 원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원치 않고 좋아하지 않는 손님이 찾아와 괴롭힙니다. 괴로움, 상처, 아픔, 낙심, 미움, 죄, 허무함, 피곤, 불행, 죽음이 사람이 사는 곳마다 따라옵니다. 어떤 경우는 교회에서 열심히 일을 하면서 어려움을 당하거나 주의 부르심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데 들려오는 심장을 도려내는 말들을 듣게 될 때, 그리고 힘에 겨운 일들을 하게 하여 너무 벅차고 감당하기 역부족일 때 정말 쉬고 싶고 떠나고 싶고, 그만두고 싶은 영적 침체가 찾아옵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교회 공동체만이 겪고 나만이 당하는 괴로움이 아닙니다. 빌립보 교회도 같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런 교회를 향하여 바울 사도가 전한 말씀은 너무 분명했습니다.
빌립보서1:12,25절입니다.
12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25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12But I would ye should understand, brethren, that the things which happened unto me have fallen out rather unto the furtherance of the gospel; 25And having this confidence, I know that I shall abide and continue with you all for your furtherance and joy of faith;
영적 침체는 복음 전파의 진전, 믿음의 진보를 확실하게 하는 도구라는 것입니다. 영적 침체는 결코 믿음의 후퇴나 낙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 침체가 오면 모든 것이 마비되든지 정지됩니다. 교회 일을 잘하고 교회를 힘껏 섬기던 그리스도인이 돌변하여 세상일에 빠지고 부끄러운 일을 하고 하나님에 대해 믿음과 소망을 잃었습니다. 교회도 기도의 불이 꺼지고 봉사가 시들해지고 영혼 구원을 위해 흘리던 눈물이 마릅니다. 영적 침체의 늪에 빠지면서 믿음, 사명, 건강, 하나님도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영적 침체는 결코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는 응답이 아니라 믿음의 진보를 위한 인도하심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에게는 영적 침체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끊임없는 교훈이 있습니다.
빌립보서1:20절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According to my earnest expectation and my hope, that in nothing I shall be ashamed, but that with all boldness, as always, so now also Christ shall be magnified in my body, whether it be by life, or by death,3:8절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님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Yea doubtless, and I coqnt all things but loss for the excellency of the knowledge of Christ Jesus my Lord: for whom I have suffered the loss of all things, and do count them but dung, that I may win Christ,
에베소서4:13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Till we all come in the unity of the faith, and of the knowledge of the Son of God, unto a perfect man, unto the measure of the stature of the fulness of Christ:
주의 일이나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다가 겪는 영적 침체가 있는 것은 나의 믿음과 연관이 깊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영
적 침체는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기도 하고, 더 깊은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하게 하고, 더욱 함께하시고, 감사하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심으로 은혜의 깊이와 넓이를 더 하게 하시는 하나님과 깊어지는 믿음의 진보를 향한 과정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완성된 건물이 아니라 지어져가는 건물이라고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엡2:22절 너희도 성령님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In whom ye also are builded together for an habitation of God through the Spirit.). 건물을 짓는데 비가 오고 바람이 분다고 해서 짓던 건물을 포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좋은 건물을 지으려면 오랜 기간이 걸리고 훨씬 많은 횟수의 비바람을 견디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교회 공동체가 겪는 비바람, 폭풍은 견고한 교회와 믿음을 위한 진보입니다. 영적 침체에서 믿음이 세워집니다.
3. 영적 침체는 다른 영적 능력을 얻게 하는 통로가 됩니다.
고린도후서12:7~10절입니다.
7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7And lest I should be exalted above measure through the abundance of the revelations, there was given to me a thorn in the flesh, the messenger of Satan to buffet me, lest I should be exalted above measure. 8For this thing I besought the Lord thrice, that it might depart from me. 9And he said unto me, My grace is sufficient for thee: for my strength is made perfect in weakness. Most gladly therefore will I rather glory in my infirmities, that the power of Christ may rest upon me. 10Therefore I take pleasure in infirmities, in reproaches, in necessities, in persecutions, in distresses for Christ's sake: for when I am weak, then am I strong.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몸은 견디기 힘들만큼 좋지 않았습니다. 육체의 기사이며 사탄의 사자라고 표현한 것은 심한 아픔을 주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간절하게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다른 말씀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 육체의 병이 은혜라고 사도 바울은 깨닫게 되었고 그 약함으로 인하여 더욱 강학 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And he said unto me, My grace is sufficient for thee: for my strength is made perfect in weakness. Most gladly therefore will I rather glory in my infirmities, that the power of Christ may rest upon me.(고후12:9절)
그러면서 바울 사도는 더욱 능력의 영역들이 확장되어가면서 몸의 약함뿐만 아니라 능욕, 궁핍, 박해, 곤고함까지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새로운 강한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13:4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분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분과 함께 살리라. For though he was crucified through weakness, yet he liveth by the power of God. For we also are weak in him, but we shall live with him by the power of God toward you.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다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별것 아닌 것에 무너지는 그리스도인도 많습니다. 거창한 핍박이나 박해 때문에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 한마디에 생사를 거는 허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일지라도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약한 것 때문에 자신을 더욱 살피게 되고 약한 것을 위하여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서 부족한 것 때문에 많은 것을 얻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4:13절에서 이렇게 자신의 처지에 대한 느낌을 말했습니다.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Being defamed, we intreat: we are made as the filth of the world, and are the offscouring of all things unto this day. 바울 사도도 사람들에게 비방을 받았을 때 느꼈던 감정은 음식물 찌꺼기 즉 쓰레기, 오물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비관하고 비참하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말 때문에 자기를 파멸시키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는 더욱 큰 새로운 영적 세계를 발견했습니다. 20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For the kingdom of God is not in word, but in power.는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사는 그리스도인은 말이 아니라 능력으로 살아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믿음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약하고 부족하고 어려운 것 때문에 영적 침체를 누구나 겪습니다. 그러나 영적 침체가 축복이 되는 것은 새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4:11~12절입니다.
11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1Not that I speak in respect of want: for I have learned, in whatsoever state I am, therewith to be content. 12I know both how to be abased, and I know how to abound: every where and in all things I am instructed both to be full and to be hungry, both to abound and to suffer need.어떤 형편에서도 자신이 대처할 수 있는 비결의 능력을 배웁니다.
고린도후서12:7, 6:9~10절입니다.
12:7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And lest I should be exalted above measure through the abundance of the revelations, there was given to me a thorn in the flesh, the messenger of Satan to buffet me, lest I should be exalted above measure. 몸의 약함이 교만을 제어하는 능력의 장치가 되었습니다. 6:9무명한 사람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사람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사람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로다. 9As unknown, and yet well known; as dying, and, behold, we live; as chastened, and not killed; 10As sorrowful, yet alway rejoicing; as poor, yet making many rich; as having nothing, and yet possessing all things. 어떤 여건 속에서도 넉넉하게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교회 공동체여러분! 어떤 영적 침체에 있습니까? 교회를 나오기만 하면 영적 활력이 넘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 침체를 일으키는 원인을 제거하고 극복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비통함과 기대감을 가지고 생존의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을 깊이 체험해야 합니다. 영적 침체는 성경공부 하라는 사인(sign)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영적 침체를 당하는 교회 공동체들을 구경하고 언젠가는 좋아질 거야 하며 막연하게 기다리는 교회는 교회 공동체들을 죽도록 방치하는 위험한 교회입니다. 교회의 목적은 사람이 구원을 받도록 해야 하지만, 또한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을 더욱 능력 있는 믿음으로 살도록 이끄는 일도 열심히 대해야 합니다. 만일 교회 공동체들이 영적 침체로 인하여 신음하고 생명의 피가 말라가는데 목사와 교회 가족들이 아무런 책임감이나 죄책감도 없이 자신이 할 일만 하고 있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침체가 왔을 때,
첫째, 영적 침체는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임을 믿는 것입니다.
둘째, 영적 침체는 영적 침체는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임을 믿는 것입니다.
셋째, 영적 침체는 다른 영적 능력을 얻게 하는 통로임을 믿는 것입니다.
승리하는 교회는 교회 공동체들의 영적 침체와 상태를 파악하고, 치료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하는 교회입니다. 우리교회는 영적 침체로 인하여 의기소침과 낙심과 약함으로 말라가는 교회가 아니라 영적 활력과 능력으로 생기와 소망과 생명력으로 모두가 믿음의 표적들이 넘쳐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마침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공동체들이 영적 침체가 왔을 때 신앙은, 영적 침체는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임을 믿는 것과 영적 침체는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임을 믿는 것과 다른 영적 능력을 얻게 하는 통로임을 믿는 것으로, 부르심의 기회를 응답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시어 교회 공동체의 죄를 회개하고 성령님의 충만으로 변화되어 예수님이 교회 공동체의 주와 구세주요 그리스도이심을 전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시기를 구세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축복기도: 지금은 구세주 예수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 하나님의 교통하심이 우리교회 공동체들이 영적 침체가 왔을 때 신앙은, 영적 침체는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임을 믿는 것과 영적 침체는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임을 믿는 것과 다른 영적 능력을 얻게 하는 통로임을 믿는 것으로, 부르심의 기회를 응답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시어 교회 공동체의 죄를 회개하고 성령님의 충만으로 변화되어 예수님 그리스도가 교회 공동체의 주님과 구세주요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전파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구세주 예수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 하나님의 교통하심이 교회 공동체와 함께 하시기를 구세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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