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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쇼트트랙 종목의 공식적인 명칭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일반적으로 스피드스케이팅이라고 부르는 종목의 공식적인 명칭은 ‘롱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쇼트트랙 역사의 초창기 때는
‘롱트랙’ 스피드스케이팅과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았고,
‘롱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출신의 선수들이 ‘쇼트트랙’으로 전향하거나 겸업해서 뛰는 경우가 많았다.
최초의 쇼트트랙 세계선수권 대회는 1976년에 개최되었다.
당시에는 ‘롱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이 ‘쇼트트랙’을 겸업해서 뛰는 경우도 많이 있었는데,
남자 스피드스케이팅의 게이튼 바우처,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의 보니 블레어 같은 선수들도
‘롱트랙 스피드스케이팅’ 분야의 레전드인 동시에
‘쇼트트랙’ 세계선수권에 출전해서 우승한 기록을 보유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쇼트트랙의 선구자였던 김기훈, 이준호, 채지훈 선수도
본래 ‘롱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출신으로 시작해서
‘쇼트트랙’ 전문 선수로 전향한 케이스.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 시범종목 채택에 이어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정식종목 채택 이후로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이 대중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쇼트트랙’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기존의 ‘롱트랙 스피드스케이팅’은 ‘스피드스케이팅’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이후 ‘쇼트트랙’은 동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의 효자종목이 되었다.
쇼트트랙의 초창기였던 1980년대에는
종주국인 캐나다가 절대적인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미국, 영국 등의 서구권 국가들이 세계선수권에서 강세를 보였고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세계적인 강호의 반열에 들어서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대한민국의 남녀 쇼트트랙 선수들이
종주국인 캐나다를 제치고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을 휩쓸며 최강국으로 떠올랐다.
이후 남자 쇼트트랙에서는
대한민국과 캐나다가 양대산맥 체제를 이루며 경쟁하다가
점차 한국으로 힘의 균형이 기울면서 독주 체제를 갖추기 시작했고
중국이 신흥 강호로 떠오르며
한국, 캐나다, 중국이 트로이카 체제를 형성했다.
여자 쇼트트랙에서는
종주국인 캐나다가 아예 서열 3위로 밀려난 뒤
대한민국과 중국이 약 3년~5년 주기로 번갈아가며 세계 정상을 다투고 있다.
쇼트트랙 국제대회의 종류
쇼트트랙 국제대회 중 최고 권위의 대회는 세계선수권.
매년 개최되는 세계선수권에서는
500m, 1000m, 1500m, 3000m 슈퍼파이널
네 개 분야에서 각 종목별 금은동 메달을 시상하고
종목별 포인트를 합산한 개인종합 순위를 매겨서 금은동 메달을 시상한다.
단체경기인 계주(남자: 5000m 릴레이, 여자: 3000m 릴레이)를 포함하면
총 6개 분야의 메달을 시상한다.
개인종합 1위를 차지하는 선수는 쇼트트랙의 세계챔피언으로 등극하게 된다.
1980년대까지는
단체경기인 계주(릴레이)에서는 공식적인 메달 수여가 없는 번외 경기의 성격으로 치러치다가
1990년대 이후부터는
계주(릴레이)에서도 공식적으로 메달을 수여하기 시작했다.
남녀 3000m 슈퍼파이널의 경우
1990년대까지는 타 종목과 똑같은 금메달 1개의 가치를 지녔었지만,
2000년대 이후부터는 개인종합 포인트에서 동률을 이룰 경우
3000m 슈퍼파이널 성적에 가중치를 부여해서 개인종합 순위를 매기고 있다.
올림픽 쇼트트랙에서는
개인종합이 없고 각 종목별 금은동 메달만을 시상하고 있다.
따라서 올림픽 금메달의 가치는 세계선수권 개인종합 우승과 동일선상에 놓아서는 안 되며,
굳이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메달의 가치를 호환해서 비교하려면
어디까지나 각 개별 종목별 메달의 성적만을 비교해 보아야 한다.
더군다나 세계적인 강호들이 올림픽에서 유독 부진하다거나
반대로 평상시에는 무명이었던 선수가 올림픽에서 로또 대박을 터뜨리며
깜짝스타로 떠오르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어느 종목이든 마찬가지이겠지만
쇼트트랙에서도 올림픽 금메달 자체만으로 세계 챔피언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세계선수권에서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해야만 세계 챔피언의 칭호를 얻으며
그 종목의 세계 최강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올림픽은 4년에 한 번씩 열린다는 희소가치가 있고
일반 대중들에게도 널리 흥행하며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선수들은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두는 경우가 많다.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할 경우
그 종목의 명실상부한 최강자이자 세계챔피언임을 입증하는 무대이기는 하지만
비인기 종목의 경우에는 해당 종목에 관심과 애정이 있는 일부 팬층 내지는 매니아를 제외한
일반 대중들이 잘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고독한 최강자’의 포지션에 위치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기억나겠지만
1992년 알베르빌의 김기훈,
1994년 릴레함메르의 채지훈,
1998년 나가노의 김동성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며 당대의 세계 최강자 였다.
오늘날 쇼트트랙의 세계랭킹을 매기는 대회인 ‘쇼트트랙 월드컵 시리즈’는
1998년부터 공식적으로 출범해서 2000년대 이후에 정착되었다.
쇼트트랙 월드컵 시리즈는
매년 1차대회부터 6차대회까지 개최되며,
올림픽이 열리는 시즌에만 4차대회까지로 마감된다.
우리나라 남자 쇼트트랙의 에이스 계보가
채지훈->김동성->안현수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동안
중국의 리자준과 치열한 경합을 벌이기도 했고,
여자 쇼트트랙에서도
‘전이경 vs 양양 A’의 치열한 자존심 대결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최근에도 심석희와 최민정이 걸출한 성적을 올리고 있다.
남자 쇼트트랙의 역사 - 1980년대 1976년에 개최된 최초의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미국의 Alan Rattray 선수가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선수권 대회 초대 챔피언에 등극했다. 제1회 대회 준우승자였던 캐나다의 Gaetan Boucher(게이튼 바우처)는 1977년 제2회 대회와 1980년 제5회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사상 최초의 2회 우승자에 등극했다. 1980년대까지는 쇼트트랙의 종주국인 캐나다 선수들이 절대적인 강세를 보였는데 그중에서도 Guy Daignault(가이 데이그놀트) 선수는 개인종합 우승 2회, 준우승 1회, 3위 1회를 기록했다.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남자 개인종합 우승 2회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를 통틀어서 단 9명뿐. (세계선수권 남자 개인종합 통산 2회 이상 우승자) => 게이튼 바우처, 가이 데이그놀트, 가와이 도시노부, 미첼 데이그놀트, 마크 가뇽, 리자준, 김동성, 안현수, 이호석) 우리나라의 쇼트트랙 팬들에게는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 김기훈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부터의 역사가 널리 알려져 있다. 실제로 쇼트트랙이 대중화될 무렵에 명실상부한 쇼트트랙의 황제로 등극한 선수가 김기훈이었으며, 이후 쇼트트랙 황제의 계보는 ‘김기훈 -> 마크 가뇽 -> 김동성 -> 안현수(빅토르 안)’으로 이어졌다.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에 걸쳐서는 한국 쇼트트랙의 선구자인 김기훈, 이준호의 쌍두마차와 함께 영국의 윌프레드 오레일리가 삼각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김기훈과 이준호는 국내 대회와 아시아, 세계 무대에 걸쳐서 치열한 라이벌 의식을 드러냈으며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같은 국제대회에서는 김기훈과 오레일리가 치열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김기훈과 이준호는 모두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출신으로 ‘쇼트트랙’으로 전향했다.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는쇼트트랙이 시범종목으로 채택되었는데 영국의 오레일리가 500m와 1000m 금메달을 획득하며 2관왕에 올랐고 대한민국의 김기훈이 1500m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대한민국의 이준호가 3000m 금메달을 획득했다. 따라서 김기훈, 이준호, 오레일리는 ‘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반열에 올랐고 이 중에서 오레일리는 ‘사상 최초의 올림픽 2관왕’에 등극했다. 남자 쇼트트랙의 역사 -1990년대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는 쇼트트랙이 사상 최초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고 남자부에서는 1000m 한 개 종목에만 개인종목 금메달이 걸려 있었다. 당대의 세계 정상급 선수였던 대한민국의 김기훈과 이준호, 영국의 윌프레드 오레일리, 캐나다의 미첼 데이그놀트와 프레드릭 블랙번, 일본의 가와이 도시노부, 이시하라 다쓰요시, 뉴질랜드의 맥밀런 등의 선수들이 사상 최초의 ‘올림픽 (정식종목) 금메달리스트’에 등극하기 위해 경합을 벌였다. 우리나라의 김기훈은 사상 최초의 ‘올림픽 (정식종목) 금메달리스트’에 등극했다. 캐나다의 블랙번과 우리나라의 이준호는 사상 최초의 ‘올림픽 (정식종목) 은메달, 동메달리스트’에 등극. 이어서 남자 5000m 계주(릴레이)에서 김기훈, 이준호, 송재근, 모지수로 구성된 한국 대표팀이 금메달을 획득. 김기훈은 사상 최초의 ‘올림픽 (정식종목) 2관왕’에 올랐다.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세계 최강자로 올라선 김기훈은 올림픽 직후에 열린 1992년 덴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역사상 최초의 전관왕 신화를 달성하며 명실상부한 쇼트트랙의 황제로 등극했다. 김기훈은 500m, 1000m, 1500m, 3000m에서 모두 금메달을 획득하고 개인종합 금메달까지 거머쥐며 5관왕으로 전종목 석권의 위업을 달성했다. 특히 예선부터 결승까지 모든 레이스에서 단 한 번도 1위를 내주지 않는 완벽한 레이스를 펼치며 ‘덴버의 연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후 김기훈은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도 남자 10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김기훈의 뒤를 이을 차세대 주자로 한국에서는 채지훈, 캐나다에서는 마크 가뇽이 새롭게 등장했다. 채지훈은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남자 1000m에서 김기훈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한 후 5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릴레함메르의 영웅’으로 등극했다. 특히 결승전에서 독주하던 이탈리아의 미르코 빌레르민을 상대로 막판 ‘스케이트날 내밀기’ 대역전극을 펼친 장면은 두고두고 명승부로 회자되었다. 여기까지의 역사를 정리한다면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에이스 계보는 김기훈, 이준호의 쌍두마차 시대에서 채지훈의 시대로 이어졌으며, 세계 쇼트트랙 황제의 계보는 김기훈에서 마크 가뇽으로 이어졌다. ‘김기훈 vs 이준호 vs 오레일리’, ‘마크 가뇽 vs 채지훈’의 라이벌 시대를 거쳐서 이번에는 ‘김동성 vs 리자준’의 새로운 라이벌 시대가 막을 열었다. 김동성은 김기훈과 채지훈의 계보를 잇는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새로운 에이스로 떠올랐고, 김기훈과 마크 가뇽의 계보를 잇는 쇼트트랙의 황제에 등극했다. 남자 쇼트트랙에서 세계선수권 전종목 석권의 신화를 달성한 인물은 1992년 대한민국의 김기훈과 2002년 대한민국의 김동성이 유이다. @ 남자 쇼트트랙의 역사 - 2000년대 이후 2000년대 이후의 남자 쇼트트랙 세계 최강자를 꼽을 때는 그 어느 누구도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안현수(빅토르 안)의 이름을 떠올리게 됩니다. 안현수는 ‘김기훈 -> 채지훈 -> 김동성’의 계보를 잇는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차세대 에이스였습니다. 안현수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5년 연속으로 세계선수권 개인종합 우승을 거머쥐며 종전 기록 보유자였던 마크 가뇽의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이로써 안현수는 ‘김기훈 -> 마크 가뇽 -> 김동성’의 계보를 잇는 명실상부한 쇼트트랙의 황제로 등극했습니다. 안현수는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3관왕에 오르며 생애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안현수가 국제 쇼트트랙 대회에서 우승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해서 그다지 감흥이 크게 와닿지 않을 정도로 안현수는 절대 강자로 군림하며 독주했습니다. 그러나 안현수에게도 부상으로 인한 공백기를 맞는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안현수는 러시아에 귀화하면서 이름도 빅토르 안으로 개명했습니다. 빅토르 안은 2014년 유럽 선수권을 석권한 데 이어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3관왕에 오르며 완벽하게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이로서 안현수(빅토르 안)은 인간승리 드라마의 주역으로 새롭게 거듭났습니다. 빅토르 안은 2014년 세계선수권에서 7년 만의 개인종합 우승을 거머쥐며 통산 6번째로 세계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이 기록은 남녀 쇼트트랙을 통틀어서 중국의 양양 A와 함께 최다 우승 타이기록이었습니다. 안현수(빅토르 안)의 시대가 워낙에 철옹성 같은 1인 독주 시대이다 보니, 그의 전성기와 라이벌 구도 역시 총 세 차례의 시기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안현수 시대 1기의 라이벌 구도는 ‘안현수 vs 아폴로 안톤 오노’, 안현수 시대 2기의 라이벌 구도는 ‘안현수 vs 이호석’, 안현수 시대 3기의 라이벌 구도는 ‘빅토르 안 vs 찰스 해멀린’의 라이벌 구도였습니다. 미국의 아폴로 안톤 오노와 캐나다의 찰스 해멀린은 단일 시즌 성적만을 놓고 볼 때는 확실한 최강자로서의 임팩트를 주지 못했지만, 10년이 약간 넘는 오랜 기간 동안 세계 10위권 이내에 드는 강자로서의 기량을 꾸준히 유지하며 롱런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이호석은 최전성기 시절에 안현수라는 라이벌을 만나는 불운으로 인해 2인자의 설움을 겪어야 했지만, 세대교체 주기가 빠른 대한민국 쇼트트랙 선수로서는 매우 보기 드물게 롱런한 케이스였습니다. 아폴로 안톤 오노, 찰스 해멀린, 이호석은 모두 안현수 시대의 2인자 그룹에 해당하는 선수들로서 안현수의 최대 라이벌로 꼽혔던 선수들입니다. 물론 안현수가 워낙에 절대 강자였기 때문에 라이벌이라고는 해도 그 격차는 상당히 큰 편입니다. 오노, 해멀린, 이호석은 과거 1990년대를 주름잡았던 김기훈, 채지훈, 김동성, 리자준, 마크 가뇽과 같은 대전설들과 비견될 수 있는 선수들은 아닙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의 시기만을 놓고 봤을 때는 안현수(빅토르 안)라는 절대강자가 존재하는 가운데, 그 다음 자리를 놓고 2인자 그룹을 형성했던 선수들이 오노, 해멀린, 이호석이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쇼트트랙 무대에 발을 들여놓는 신예 선수들의 눈높이에서는 아폴로 안톤 오노, 찰스 해멀린, 이호석도 나름 전설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안현수 시대 2기와 3기 사이에는 부상으로 인한 공백기가 있었는데, 이 시기에 잠시나마 세계 최강자의 지위에 올랐던 선수들은 대한민국의 이정수, 곽윤기, 노진규 선수였습니다. 이정수는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남자 1000m와 1500m 금메달을 획득하며 2관왕에 올랐고 남자 5000m 계주(릴레이) 멤버로 참가해서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이정수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유력한 차세대 세계챔피언 후보로 떠올랐으나 2010년 세계선수권 개인종목에 출전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했고, 이는 나중에 이정수와 곽윤기 두 선수 사이의 ‘짬짜미 파동’으로 비화되었습니다. 이정수가 짬짜미 파동 이후에 전성기 기량을 찾지 못하고 내리막길을 걸은 반면에 곽윤기는 오히려 이전보다도 한 단계 더 발전한 기량을 선보이며 2012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대표팀 후배 노진규를 제치고 개인종합 우승까지 거머쥐었습니다. 이정수와 곽윤기는 모두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출전권 획득에 실패했지만 이후 다시 한번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이정수는 2017년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에 출전해서 남자 1500m와 1000m 두 종목에서 3위를 차지했고, 이 중 남자 1500m 부문에서만 시상대에 올라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곽윤기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며 생애 두 번째로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루게 되었는데, 개인전에는 출전하지 못하지만 남자 5000m 계주(릴레이) 멤버로 참가해서 대표팀 후배인 서이라, 임효준, 황대헌, 김도겸과 함께 메달 획득의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비운의 스타 노진규는 2011년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2관왕에 오른 데 이어서 2011년 세계선수권에서는 1500m, 1000m, 3000m 슈퍼파이널 금메달을 휩쓸고 개인종합 우승까지 거머쥐면서 4관왕으로 세계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노진규는 2011년과 2012년 월드컵 시리즈에서 두 시즌 연속으로 세계랭킹 1위에 올랐고 특히 1500m 부문의 절대강자로 군림했습니다. 2013년에는 동계 유니버시아드 2관왕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노진규는 부상 후유증으로 인해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개인전 출전권을 놓치고 남자 5000m 계주(릴레이) 대표팀 멤버로만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골육종 발병으로 인해 올림픽 출전을 포기해야만 했고, 오랜 투병생활 끝에 2016년 4월 3일 세상을 떠나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고 노진규 선수는 짧은 기간 동안 눈부신 업적을 남겼습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과 세계선수권까지의 시즌이 마무리된 이후로는 세계 쇼트트랙계의 양대 베테랑 선수인 빅토르 안(안현수)과 찰스 해멀린(샤를 아믈랭)이 모두 노쇠화로 인해 기량이 저하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빅토르 안과 샤를 아믈랭은 이제 세계 최강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세계 10위권 안팎의 기량을 유지하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출전해서 마지막 불꽃을 태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한편 최근에는 세계 쇼트트랙의 판도가 절대강자가 없는 혼전 양상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 그래도 가장 두각을 나타낸 선수로는 네덜란드의 싱키 크네흐트가 있습니다. 싱키 크네흐트는 2014년 유럽선수권 대회에서 빅토르 안(안현수)의 뒤에서 ‘뻐큐’를 날렸다가 푸틴에게 찍혀서 징계를 받으며 유명해진 선수입니다. 그 유명한 ‘뻐큐 사건’이 있은 지 이듬해인 2015년 시즌에 싱키 크네흐트는 유럽선수권과 세계선수권의 개인종합을 연달아 제패했습니다. 싱키 크네흐트는 2017년에 자국인 네덜란드 홈에서 개최된 세계선수권에서는 개인종합 2위에 올랐습니다. 한편 대한민국 남자 쇼트트랙은 올림픽에서는 김기훈(1992년), 채지훈(1994년), 김동성(1998년), 안현수(2006년), 이정수(2010년)의 계보로 이어지는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해냈고, 세계선수권에서는 이준호(1990년), 김기훈(1992년), 채지훈(1995년), 김동성(1997년, 2002년), 민룡(2000년), 안현수(2003~2007년), 이호석(2009~2010년), 노진규(2011년), 곽윤기(2012년), 신다운(2013년), 서이라(2017년)의 계보로 이어지는 개인종합 세계챔피언을 배출한 쇼트트랙의 최강국입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시즌 이후 사상 최악의 침체기에 빠지며 몰락한 것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냈던 대한민국 남자 쇼트트랙에서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시즌을 앞두고 임효준과 황대헌 투톱이 새로운 에이스로 떠오르며 다시한번 쇼트트랙의 맹주 대한민국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출처: 야후 위키피디아,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과거 신문, 방송 뉴스기사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