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종입니까?
6ㆍ1 지방선거가 끝났다. 앞으로 4년 동안 우리 동네 살림을 책임질 4131명의 지역 일꾼들이 뽑혔다. 17명의 광역자치단체장과 교육감, 시장ㆍ군수ㆍ구청장 226명, 시도 의원 779명, 시군구 의원 2601명, 교육의원 5명 등이다. 여기에 지방선거 출마 등으로 공석이 된 7곳에서는 국회의원 보궐선거도 치러졌다.
이번 지방선거는 3ㆍ9 대선 이후 84일 만에 치러진 전국 단위 선거로 ‘대선 연장전’의 성격을 띠었다. 여당인 국민의 힘은 ‘정권교체 완성론’을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국정 운영에 대한 ‘견제와 균형론’을 내세웠다. 결과는 여당인 국민의 힘의 압승이었다. 민심은 중앙 권력에 이어 지방 권력도 교체했다. 정부와 여당으로선 국정 운영의 동력이 모두 확보된 만큼 이젠 국정 성과로 국민의 지지에 답해야 하는 책임만 남았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에 대한 우려와 걱정은 또다시 현실이 됐다. 투표인지 복권 번호 찍기인지 모를 정도로 ‘깜깜이 선거’였고 ‘묻지 마 투표’였다. 현실성 없는 공약이 남발됐고 지방 의제는 뒷전으로 밀렸다. 대선 이후 번외 경기처럼 윤심과 당심의 소재만이 난무했다. 심지어 투표일이 아니라 후보 등록일에 당선되는 ‘무투표 당선자’가 무려 508명으로 1994년 지방자치제도 시행 이래 역대 최대 숫자를 기록했다. 특정 지역을 한 정당이 지배하다 보니 아예 경쟁 후보는 출마를 포기했다. 이러한 폐단은 거대 양당이 기득권을 놓지 않기 위해 지방 선거 제도 개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번 선거는 중앙정치가 좌지우지하는 역대급 비지방(非地方) 선거의 오명(汚名)을 얻었다. 중앙 정치인과 거대 양당에 밀려 ‘풀뿌리 정치인’과 ‘소수 정당’은 설 자리가 없었다. 선거와 투표 방식 모두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했고 지역마다 달랐다. 부끄럽지만 기자 생활을 꽤 한 나도 며칠을 공부해 겨우 투표했다. 주변의 유권자들에게 물어보니 “그냥 찍었다”, “지지하는 정당을 보고 찍었다”는 답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투표 방식과 투표용지 구성도 모른 채 투표하는 경우도 있었다. 국민으로서 부끄럽고 어설픈 투표였지만 그래도 국민의 절반(투표율 50.9%)은 권리 위에 잠자지 않고 투표에 참여했다.
이번에 국민의 선택을 받은 당선인은 지역의 일꾼이 돼야 한다. 소속 정당의 종이 아닌 지역 주민의 종이 돼야 한다. 지방선거 당선자는 주민과 4년 동안 새로운 계약을 맺은 일꾼이다. 품삯을 받고 일하는 일꾼으로 선택을 받은 것이다. 소속 정당의 힘으로 당선됐더라도 주인은 뽑아 준 지역 주민이지 소속 정당이 아니다. 누구의 종이 돼 종살이할 것인가? 중앙 정치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로지 주민들 편에서 소속 정당의 오만과 독선, 아집과 내로남불에 강하게 저항해야 한다. 당내 비판자가 돼야 지방 정치가 살고 선거 제도가 바뀔 수 있다.
성경에는 ‘인정받는 일꾼’(2티모 2, 14-26 참조)의 조건을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 “속된 망언을 피하십시오. 어리석고 무식한 논쟁을 물리치십시오. 주님의 종은 싸워서는 안 됩니다. 반대자들을 온유하게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지역 정치인은 ‘정치판’에서 권력욕에 취해 선거만을 생각하는 ‘정치꾼’이 아니다. 지역 주민들의 고단한 삶의 구석구석을 밤낮없이 살피고 한 사람도 소외되거나 낙오되지 않도록 지역 공동체를 지키는 파수꾼이다. 고통과 희생의 십자가를 앞장서서 양어깨에 짊어지고 지역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일깨워 주신 나눔과 비움 그리고 섬김을 가식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지역의 참 일꾼, 참 리더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