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들고 난생처음 입원해서 8일간 머물다 오늘 퇴원한다. 결혼40주년 이기도 한날이다. 병원에 이렇게 사람들이 넘쳐날까 생각보다 많다.
질병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이 있을 수 없겠지만 100년 만에 왔다는 3월의 폭설 얘기로 저마다 기후 변화에 왈가왈부 하면서 오늘 당장 먹어야 될 처방조제약을 타기 위해 번호판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찌 그리도 한치 앞을 내다 보지 못하고 살아온 인생인가 생각하게 된다.
병원 안에서 밝게 웃는 사람들을 별로 없다. 저마다 병원을 찾은 사정이야 다르겠지만 병을 지고 들어왔다는 심리 때문일까?
삶의 무게에 짓눌린 표정의 지친 모습이다. 간혹 산부인과 병동을 나서는 남자들의 얼굴에서는 언뜻 기쁨의 조각들이 보이기는 해도 이 힘든 세상에 새 생명을 탄생해놓고 또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고난 속에서 그 생명을 성장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부담은 잊어버리는 순간이리라
살아 있기에 닥칠 수 밖에 없는 병마 속에서 인간은 나약하기 이를데 없는 추풍낙엽같은 존재 인 것을…
아침이면 "식사는 잘 하시지요? 어제 대소변 몇번씩 보셨어요? 혈압과 체온 좀 재어 볼께요?" 날마다 같은 멘트로 시작하는 병실의 일상사다.
몇일 사이에 아빠 얼굴이 좋아 지셨어요. 보기도 좋고요. 아빠 병원체질... ㅎㅎㅎ 웃고만다.
환자들과 나눈 이런 저런 얘기들이 내가 입원한 이후에 퇴원하는 사람 입원하는 사람들 차를 타고 내리듯 한다.
‘그 환자분요? 어제 CP(수술) 들어가셔서 지금 중환자실에 계시는데 코마(의식불명의 혼수상태)라죠? 힘들 것 같아요.’
항상 삶과 죽음의 경계선상에 있어서인지 죽음에 대한 얘기도 껌을 씹듯이 한다.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의 죽음에 대한 표현인 힘들다라고 하는 단어로 대치한 걸 보면 일이 몸에 베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병동의 흉흉한 분위기에서도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는 가끔은 코드블루(응급사태)가 떠도 일탈의 내색조차도 보이질 않았다.
이제부터는 죽음이란 명제에 대해서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늘것만같다. 죽음을 만지고, 숨쉬고, 손에 쥐고 돌아서는 발길을 보면서...
여느 암 환자들 처럼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는 환자를 보면서 이름하여 영화 레옹이 파노라마된다. 레옹은 그 자신을 가리켜 클리너라고 했었다.
해결사!
뛰어난 본능으로 문맹이지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고 급기야 자신의 삶을 해결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마틸다를 위해서 웃으면서 수류탄으로 자폭하던 모습과 겹쳐져 암 환자들의 삶도 그것처럼 고통 속에서도 웃음이 있지만 결국에 가서는 죽음을 맞이 할 수밖에 없는 형상이 조금은 비슷한 여운이다.
‘모자가 잘 어울리네요.’ 모자에 대해서 거부감을 갖고 있는 환자들을에게 좋은말인지는 몰라도 ‘그래요? 저는 이 모자가 싫은데… 약간 싸늘하고 메마른 느낌이다.
회진 오실때마다 느끼는 건 담당 의사 선생님의 따뜻한 미소와 간호사들의 친절이다. 참 고맙고 감사하다.
어제밤에는 한국과 오만의 축구 중계가 있었다. 미리 리모콘을 들고 있는 남자들 옆으로 아주머니들이 몰려와서 드라마를 봐야지 하면서 다툼이 인다. 결국 드라마 채널에 남자들은 자리를 뜬다.
‘100년 만의 폭설 이라죠?’ ‘글쎄요. 100년 전의 기록이 남아있다는 것이 더 신기해요. 바로 내일의 날씨는 제대로 못 맞추면서 지나간 날씨에 대한 기록은 꼭꼭 챙겨 두었다는게 도무지…’ 그래도 요즈음은 적중률이 높다면서... 이런 저런 잡다한 이야기로 아픔을 잊는다.
입실하니 하루에 주사를 세번씩 맞아야 한다고 해서 어라 날마다 세번씩 했는데 요즈음은 외부에서 튜브만을 교체할 수 있는 나비형 바늘이 나와 한번만 혈관을 찾아 찌르고 링거를 교체하고 다시 별도의 주사제를 링거에 섞어 넣는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환자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공통점은 자신의 얘기를 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얘기가 허공에 흘러 사라진다고 해도 누군가 들어주어서 기억에 남게 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회자정리라고 했던가 인생은 그렇게 만나고 헤어짐의 사이에서 의미도 없이 방황하다가 제 갈 길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