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기
맹재범
빈 방을 얻었다
창문이 딸려 있는
이 방에 살러 왔다
자라기를 멈춘 나무들은 창틀이 됐다
이파리들은 다 어디로 갔지?
벽지엔 몇 개의 선들과 날짜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얼굴도 모르는 당신의 최소한이 여기 있었구나
창밖에는 놀러 온 사람들
손을 잡거나 헤드폰을 끼고 이 골목의 구도를 살피는 와중에도
나는 창문을 닫고 창밖을 보는 사람
놀러 온 사람들 사이에 살고 있고
가끔 새들이 창문 밑에 죽어 있다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는 새들의 소리랑 닮아 있는데
손가락은 죽지 않는다
새들은 왜 자꾸 창문으로 날아들까
최대한의 반성
이파리들은 다 날아갔는데
살아남은 새처럼
비가 온다는 예보에도
창밖은 화창
거짓말쟁이가 되거나 아직,이라고
말할 각오가 없으면
미래는 함부로 열어보지 말 것
거울 속의 나와 가위 바위 보를 할 때
제일 무서운 건 누군가 이기는 것
다행히 거울이 없는 창 방문이 있고
가득찬 것은 빈 곳으로 쏟아지기 마련이라는데
창문을 열면 나는 어느 쪽으로 넘어져야 하는지
방 안으로 들이닥칠 새들이
놀러 온 사람들처럼 창밖을 거닐고 있다
ㅡ시와 비평 반연간지 [포엠피플] 2024 여름호